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9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97화(97/207)
“아니에요, 어마마마!”
아득한 정신줄을 붙잡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런 거 안 붙여주셔도 괜차나요!”
과보호 조짐이 보이는 아버지에 이어 파르두스의 그림자 정예 기사까지 옆에 붙으면 난 진짜 우리 궁에서 한 발짝도 꼼짝 못 할 게 분명했다.
아니, 궁 밖으로 마음대로 못 나가는 건 둘째 치고 하루 24시간 내내 모습을 감추고 옆에 붙어 있을 테니 사역마랑 성령들을 불러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잖아!
‘그건 절대 안 되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물론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어머님의 호의인 만큼, 마음 같아서야 넙죽 엎드려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파르두스라니, 차라리 마수 박제품 100개를 받는 게 낫지!’
“어차피 아빠가 이제 계속 옆에 같이 있을 거라고 그랬고!”
“그래도 록샨과 하루 종일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는 건 어렵지 않겠느냐, 3황녀.”
“아빠랑 떨어져 있을 땐 우리 궁에 얌전히 콕 틀어박혀 있으면 되는걸요?”
혹시 내가 어물쩍거리는 새 어머니가 마음을 굳힐까 봐, 열심히 황실의 그림자 기사가 필요치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흐음.”
그러자 어머니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낯빛으로 낮은 음성을 흘렸다.
“아델은…….”
나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얼굴도 모르는 그림자 기사 싫어! 친하지도 않은 기사 언니 오빠들이랑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는 것도 싫고, 차라리 밖에 안 나가고 우리 궁 안에만 있을 거야!”
결의에 찬 외침을 들은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내 뺨을 쿡 찔렀다.
“이렇게 몇 번이나 거절하다니. 황실 역사상 이 정도로 파르두스를 거부한 황족은 네가 처음일 것이다.”
어머니 말대로, 파르두스는 황제의 비밀 정예 기사인 만큼 황위를 노리는 황족이라면 그들을 갈망하는 게 당연했다.
더군다나 황제가 자식이나 연인에게 파르두스의 기사를 붙이는 것은 깊은 총애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등줄기에 왠지 모를 싸한 느낌이 들었다.
“보라. 역시 네게 관심을 가진 것 같군.”
“앗.”
뭐야, 지금 여기에도 있는 건가?
파르두스의 그림자 기사들.
그럼 내가 본인들 면전에서 이렇게 싫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한 건가 싶어서 갑자기 속이 뜨끔거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황제 직속의 그림자 기사들인 만큼 그들이 직접 정체를 드러내기 전에는 기척조차 감지하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들이 황제의 옆에 붙어 있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 않나?
그런데 파르두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던 내가 지난 회차들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그 부분을 인식해 본 적이 없다는 건…….
‘진짜 능력자들인 거네? 신안을 가진 나한테도 한 번도 안 보였다는 거잖아.’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빙의한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와 친하지 않았으니 그렇다 쳐도…….
소설에서도 파르두스의 기사가 언급만 되고 제대로 나온 적 없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딸바보 육아물에서, 어머님이 왜 그렇게 물고 빨던 아스포델에게 파르두스를 붙여주지 않은 거지?
소설의 아스포델은 지금 이 시점의 나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한 일을 많이 겪었는데 말이다.
혹시 이것도 그냥 설정 구멍인가?
흠, 그럴 수도 있지.
개연성 구멍이 종종 나오던 소설이니까.
파르두스는 온전한 황제의 권리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옆에서 의견을 보태지 않고 조용히 서 있었다.
“폐하.”
그때 자리를 떠났던 시종이 돌아왔다.
“모르페우스 신관이 지금 막 깨어났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불러오라.”
그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해졌다.
모르페우스가 깨어났다니, 그럼 이제 궁금하던 걸 물어볼 수 있겠군.
물론 그 의뭉스럽고 음흉한 인간이 솔직하게 대답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파르두스에 대한 건 일단 보류해야겠군. 3황녀는 그만 돌아가서 쉬도록 해라.”
어머니는 나를 돌려보내려고 했다.
왠지 내 얼굴을 마지막으로 만지작거리는 손길에서 희미한 미련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어마마마, 저도 같이 신관님…….”
“경우에 따라 어린 황녀가 보기에 적절하지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불허한다.”
나도 여기에 남아 있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어머니는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단칼에 잘라냈다.
“록샨은 3황녀를 데려다준 뒤 다시 돌아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폐하.”
아버지가 나를 안고 자리를 떠났다.
그래서 결국 모르페우스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었다.
* * *
아버지는 나를 궁에 데려다주자마자 다시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마가렛과 내 다른 수행인들은 아직 치료받는 중이라 궁에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참고인 조사를 위해 또 바쁠 테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몇 겹으로 세워둔 호위 기사들이 궁 전체를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었다.
[주인아!]“피오.”
방으로 들어가자 흰 족제비 피오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우리가 없는 동안 꼬마 주인한테 무슨 일이 있었다며?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까 여기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거 들으니까 큰일 날 뻔했다고 하던데!]나한테 덥석 달려들어 안긴 피오가 조그만 솜 발로 나를 여기저기 더듬거리며 살폈다.
그러다 눈에 띄는 이상이 없어 보여 안심했는지, 작은 족제비가 수염이 흔들리도록 깊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나 걱정했어?”
[그럼 당연하지!]그런 피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푸근해지는 것 같았다.
이 녀석, 그래도 날 걱정해 주는 모습이 갸륵하군.
[꼬마 주인아, 나 여기, 앞발하고 뒷발 좀 주물러 줘.]피오는 아예 내 팔 안에 드러누워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너그러워진 나는 피오가 내민 짧은 다리를 그가 원하는 대로 쭈물쭈물해 줬다.
“오구, 그랭. 어디? 요기?”
[응, 응! 흐어, 시원하다.]거기까지는 귀엽게 봐줄 만했으나…….
[주인이 걱정돼서 아까 탄신연 자리에서 여기까지 수염이 휘날리도록 막 달려왔더니 발이 엄청 저린 거 있지?]이어진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움찔 몸을 떨고 말았다.
“아하, 내가 걱정돼서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그래! 오죽하면 주인이 시킨 일도 다 못하고! 그, 그래도 이해해 줄 거지? 다 주인 걱정하느라 그런 건데!]피오가 당당하게 덧붙였다.
그러면서 좀 더 세게 주물러 달라는 듯이 뒷발을 내미는 모습이 뻔뻔스러웠다.
“야, 너 간식에 눈이 팔려서 그냥 돌아와 놓고 지금 내 핑계 대는 거야?”
[헉! 그, 그걸 어떻게!]“뭘 놀라? 내가 모를 줄 알았어? 타마린느가 다 말했거든?”
피오의 단춧구멍 같은 눈이 파들거렸다.
[그건!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그 애가 가지고 있는 간식에서 환장하게 맛있는 냄새가 났단 말이야. 사람들 눈에 안 띄게 몰래 움직였더니 배도 금방 고파지고…….]피오는 우물거리면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주인아! 그래도 내 마음 알지?]그러다가 흰 족제비가 배를 까뒤집고 눈을 깜빡이면서 나한테 애교를 부렸다.
속 내용물은 어떻든 간에 겉모습은 귀여운 족제비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게다가 애초에 피오에게 화가 나 있지도 않았다.
“아휴, 됐어. 오늘은 너도 고생했어. 더 할 일 없으니까 그냥 방에서 쉬어. 먹을 만한 간식도 금방 준비하라고 할게.”
말랑한 족제비 발을 주물거리면서 신성력을 불어넣어 원기 회복을 시켜줬다.
음, 손에 잡히는 말랑함이 역시 중독성 있군.
그러다 조금 전에 어머니를 만났을 때의 일이 생각나서 이번에는 내 뺨을 만지작거렸다.
혹시 우리 어머니도 내 말랑한 볼살에 중독성을 느낀 건가……?
“참, 티타니아 언니!”
그렇게 의구심을 느끼다가 퍼뜩 잊고 있던 걸 떠올리고 티타니아를 불렀다.
[아스포델,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어떻게 됐나 궁금했는데.]기다렸다는 듯이 아름다운 성령이 허공에 나타났다.
“언니, 아까 봤던 그 녀석 있잖아. 정체가 뭐인 것 같아?”
[그 시체꾼 녀석 말이지?]“시체꾼?”
[고대의 금지된 술법이야. 시체 안에 자기 영혼을 넣어서 새로운 껍데기를 얻는 거지. 그런데 지금도 그런 술법을 아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티타니아도 이번 일은 의구심이 많이 드는 모양이었다.
“혹시 도망간 놈 본체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어?”
[글쎄, 일단 황궁 안에는 없는 것 같았는데. 궁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아직은 너와 내 연결이 그렇게 단단하지 않아서 중간에 역소환될 가능성이 클걸.]역시 지금 당장은 어렵구나.
아쉽지만 일단은 티타니아를 돌려보냈다.
“아스포델, 너 지금 누구랑 대화하는 거야?”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