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98)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98화(98/207)
“워억!”
“으악!”
고개를 돌리자마자 바로 등 뒤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을 발견하고 소스라쳤다.
내 비명을 듣고 그도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깜짝이야. 왜 그렇게 놀라?”
깜짝이라니, 누가 할 소리를!
너 아직도 안 가고 있었냐?
언제 방으로 들어왔는지 모를 1황자 유클레드가 나 때문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서 있는 게 보였다.
“오빠가 왜 여기 있어?”
“어차피 어마마마도 탄신연 자리에 안 계시니까 돌아가 봤자 할 일도 없고, 그래서 그냥 너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지.”
“아까부터 계속?”
“응, 아까 아버지들이 그래도 괜찮다고 해서. 너도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유클레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는 유클레드를 포함한 황녀, 황자들과 부군들, 그리고 히세리온 가족들까지 한꺼번에 몰려와서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걸 놓친 모양이다.
“어쨌든 놀랐으면 미안. 밖에서 몇 번이나 부르고 노크해도 대답이 없어서……. 마침 문도 좀 열려 있기에 혹시 자는 건지 살짝만 보고 가려고 했어.”
내 전담 궁인인 마가렛과 다른 시녀들도 자리를 비우고 없어서 내가 뭘 하는지 물어보지 못하고 직접 와야 했다고, 유클레드가 변명하듯이 덧붙였다.
그러는 동안 유클레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깜짝 놀랐던 마음도 얼추 진정됐다.
‘녀석, 그래도 이제는 제법 사과를 잘하는군.’
바로 제 실수를 깨닫고 사과하는 그의 모습에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회차에서 처음 봤을 땐 고맙다는 말도 쥐어짜서 힘들게 하더니.’
유클레드가 내 얼굴에 닿아 있던 시선을 조금 더 내려, 내 품에 찰싹 안겨 있던 피오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런데 족제비랑 놀고 있었던 거야?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나 했는데.”
그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피식 웃기까지 했다.
이어진 유클레드의 말에 내 안의 난폭함이 다시금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흐응, 아무도 안 볼 땐 방에서 족제비랑 몰래 얘기도 하고 그러는구나. 하긴, 가끔 헷갈릴 때가 있긴 해도 넌 아직 5살이었지.”
유클레드는 꼭 젖먹이 애기를 눈앞에 두기라도 한 것 같은 눈으로 날 내려다봤다.
그 눈빛은 꼭 지난번에 다 같이 제르카인을 만나러 갔을 때 유클레드가 갓난아기를 향해 보였던 눈빛과 아주 비슷했다.
‘이, 이런 건방진!’
진짜 애기와 동급으로 취급당한 걸 깨닫자 가슴에 부글거리는 열이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령을 불러 얘기하고 있었다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었다.
‘우씨.’
속으로 참을 인 자를 새기며 족제비를 풀어줬다.
“피오, 가서 놀아.”
이 와중에도 간식 타령은.
아무튼 피오를 먼저 보낸 뒤 나도 밖으로 나가려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아스포델.”
그때 유클레드가 내 앞을 막아섰다.
“뭐야, 왜?”
그런 그를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또 무슨 성가신 짓을 하려고 이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유클레드가 쑥스러운 듯한 얼굴로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나를 등지고 주저앉았다.
“자, 업혀.”
“뭐……?!”
“너 몸이 안 좋잖아? 네가 가려는 데까지 내가 업어서 데려다줄게.”
‘아무한테나 이러는 건 아니지만 난 네 오빠니까 특별히~’라고 쓸데없이 덧붙이며 유클레드가 내게 손짓했다.
그걸 보고 기가 막혀서 입을 벌렸다.
빳빳한 예복을 입은 유클레드의 등이 나를 유혹했다.
왠지 등짝 스매싱을 한 대 날려주고 싶어지는 반듯한 등이었다.
이 자식, 이상하게 전부터 날 업어주고 싶어 하는 것 같더니, 착각이 아니라 진짜였어?
하지만 왜 황자씩이나 되는 놈이 앞장서서 그런 시답잖은 일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아무튼 이 9살 땅꼬마에게 애 취급당하는 건 언제 겪어도 내 성질을 돋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녀석의 등짝을 한 대 때려주면서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하려다가, 귀를 발갛게 붉힌 채 우직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유클레드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아휴. 구래, 그럼 어디 한번 업어 봐라.”
녀석이 이렇게까지 자청해서 날 모시고(?) 싶다는데, 기회를 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뭘 하든 이놈에게 애 취급당할 거, 이러다 생각보다 쓸 만하면 여기저기 다닐 때 편하게 써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고.
“나 원래 아무한테나 업히고 그런 사람 아니거든!”
유클레드의 등에 몸을 실으며 들으란 듯이 종알거렸다.
“오빠한테 특별히 기회를 주는 거니까 안 불편하게 잘 업어야 돼!”
내가 목을 꽉 끌어안자 유클레드가 몸을 움찔거렸다.
발그스름하게 물든 그의 귀가 더 가까이에서 보였다.
“크흠, 당연하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연습까지 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도대체 뭘 어떻게 연습했다는 거지?
궁금했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모순적인 기분이었다.
유클레드가 인형 따위를 업고 방을 돌아다니는 상상을 하자 왠지 팔뚝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 그럼 가자.”
나를 업은 채 일어난 유클레드가 방을 나섰다.
‘오, 의외로 안정적인데?’
연습했다는 게 정말인지, 지난번에 업혔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그의 자세에 안정감이 있었다.
“우리 궁에 오빠 말고 누가 또 이써?”
“알렉시아가 남아 있어. 타마린느는 아버지랑 같이 친척들 보러 갔고.”
유클레드에게 업힌 채 아까부터 궁금했던 걸 묻자, 그가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아까 본 너희 히세리온 친척들은 조금 전까지 남아 있다가, 네가 오고 나서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각났는지 우르르 몰려나가더라.”
그럼 지금은 유클레드랑 알렉시아만 우리 궁에 있단 소리였다.
“어마마마가 없어서 탄신연도 흐지부지되었겠네?”
“그렇지 뭐. 그래도 중요한 순서는 대충 다 끝나서 모인 사람들끼리 연회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던데.”
유클레드의 말을 들어보니 아예 탄신연 자체가 끝난 건 아닌가 보다.
‘조용히 일을 처리할 생각인가 보군.’
“네가 없는 동안 너희 친척들하고 심도 깊은 이야기를 좀 나누었는데 아주 보람 있는 시간이었어.”
그때, 유클레드가 감명 깊은 목소리로 우리 히세리온 가족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 내 등에 식은땀이 살짝 배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까 내 머리카락 두 가닥을 가지고도 호들갑을 떨던 히세리온 가족들이 생각났다.
그들을 보며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듯이 눈을 빛내던 유클레드도 떠올랐다.
도대체 우리 친척들과 무슨 보람 있는 이야기를 나눈 건지 묻고 싶었지만 또 아까처럼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다 왔다.”
그러는 동안 알렉시아가 있는 응접실에 도착했다.
곧 유클레드의 손에 문이 열리고, 그 안에는…….
“어서 와, 아델. 생각보다 늦었네.”
창가 옆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느긋이 나를 돌아보는 알렉시아의 위로 동그란 빛무리가 그려졌다.
“알렉시아…….”
넌 또 왜 그렇게 꽃을 흩뿌리면서 혼자 차를 마시고 있는 거야?
게다가 날 맞이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 거지?
누가 보면 내가 손님이고 네가 주인인 줄 알겠다, 야.
“알렉시아 언니는 왜 안 가고 여기 남았어? 타마린느 언니는 친척들 보러 갔다던데.”
유클레드에게 이제 그만 내려달라는 의미로 어깨를 툭툭 쳤다.
“그야 우리 귀여운 여동생이 걱정되니까 그렇지?”
찻잔을 내려놓은 알렉시아가 싱긋 웃자 또다시 그녀의 주위로 웅장한 배경음이 깔리는 환청이 들렸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쪽 친척들도 대개 아버지랑 성향이 비슷해서, 너희 친척들이랑 같이 있는 게 더 재밌더라, 아스포델.”
이게 진짜 이유구먼.
유클레드가 아직도 나를 안 내려주고 미적거려서 고사리손으로 그의 어깨를 좀 더 세게 팡팡 두드렸다.
“내려달라니까?”
“크흠, 아무래도 내 우수함을 충분히 알려주기엔 거리가 너무 짧았던 것 같은데……. 아스포델, 너 혹시 산책하고 싶지 않아?”
산책 같은 소리 하네.
유클레드를 무시하고 그의 등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았다.
유클레드도 약간 시무룩하게 내 맞은편에 앉았다.
“루벨리오 오빠랑 헬리만 오빠는 아직 연회 자리에 있어?”
“아니, 지금은 각자 궁으로 쉬러 간 것 같더라. 탄신연은 기니까.”
그런데 내 물음에 답한 알렉시아가 다음 순간 살며시 고개를 숙여 내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그런데 아스포델. 너 배탈이나 두통 같은 걸로 아픈 게 아니었구나?”
“뭐?”
“어른들은 우리한테 자세한 이야기를 안 해주지만, 분위기가 말이야. 록샨 아버지가 여기에 호위 기사들을 이렇게 많이 세워둔 것도 그렇고, 또 탄신연에 남아 있던 다른 황족들까지 하나둘씩 자리를 옮기는 것도 그렇고.”
알렉시아가 손에 괸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속삭였다.
“아스포델. 혹시 황궁에 숨어들어온 나쁜 생쥐라도 마주쳤니?”
알렉시아는 눈치가 빨랐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