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116)
궁상 대식 드래곤
궁상 대식 드래곤
붉은 머리의 사내는 차창에 기대어 밖을 바라봤다.
빛이 반짝이자 검고 동그랬던 동공이 순간 붉은 세로 동공으로 변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 그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봤다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 알았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에스토비톤타.
드래곤 로드의 명령을 어긴 동족을 잡아들이기 위해 한국령으로 가고 있는, 세계 유일의 외부 활동을 하는 드래곤이었다.
“하필이면 왜 내가 활동기에 들어갔을 때 일을 벌리냐고 대체, 그리고 솔직히 로드도 직접 명령 내린 적은 없다면서…”
에스토비톤타는 불만이 가득했다.
가뜩이나 종족 특성상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억누르고 있으려니 더욱 불만이 많아진다.
내부에서 일어난 불만의 악순환에 에스토비톤타는 끙끙 앓고 있었다.
드르르륵…
“손님 괜찮으신가요? 기차 내부에는 의무실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치료는 티켓값에 포함이 되어있으니 아프시면 가서 진찰을 받는 것은 어떨까요?”
“괜찮… 습니다.”
카트를 끌고 지나가던 승무원의 관심에 에스토비톤타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해주었다.
‘인간 따위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니…’
하지만 그 또한 몸속의 화를 끓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후우…”
크게 한숨을 쉬어도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꿀꺽, 꿀꺽, 꿀꺽.
“크으…”
가슴속으로 청량감이 돌았다. 특유의 톡톡 쏘는 느낌이 마치 분노를 터트려주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해주었다.
카트를 끌고 다니던 승무원에게 사이다를 사길 잘했다.
이게 없었으면 화를 가라앉히기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차 천장을 향해 브레스를 쐈겠지.
맛있는 것을 먹어 기분이 좋아지자, 화가 조금 가라앉았다.
‘후우… 이게 다 우리 드래곤이 너무 많이 죽은 탓이라니… 더럽고 치사해도 좀 더 참아야지.’
드마전쟁 이후 드래곤이 너무 많이 죽었다.
전쟁 이전에 태어난 드래곤이 로드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로드조차 고작 1,900년 조금 넘게 살았을 뿐이었다.
그는 전쟁 당시 700살로 전대 드래곤 로드에게 아직 부화하지 않은 일족의 알을 받아 모처로 숨어들었다.
암수 쌍쌍이 그린, 레드, 블루, 블랙, 골드 총 열 개의 알이 있었지만, 그중 깨어난 알은 일곱 개뿐이었다.
블랙 일족의 알은 마왕과 세계수, 페어리퀸이 싸웠을 때의 충격으로 깨져서 사라졌고 골드 일족의 알은 암컷의 알 하나만 부화했다.
그나마 로드가 블랙 일족이라 다섯 종족의 대가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거기다 마침 로드는 수컷이었고 골드 일족은 암컷이었으니 둘이 짝이 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종족간의 결합 시 태어나는 종족은 부모의 종족 중 하나가 랜덤하게 택해진다.
과연 블랙이나 골드 일족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살아남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드래곤이라니…
‘그린 일족이라고 했던가? 그린이면… 그놈들은 삼각관계가 되는 건가? 로드가 징계를 하게 되면… 그린이 놈들은 마음이 약해서 모성애 부성애가 있으니, 오히려 약한 드래곤에게 끌릴지도?’
머릿속으로 멋대로 삼각관계를 그리고 상상을 하다 보니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쪽으로 열기가 들어찼다.
에스토비톤타의 머릿속에서 스쳐 가는 흐뭇한 생각들.
그의 나이는 900살, 긴 용생에서 한창 피 끓을 때의 나이였다.
<아, 아, 본 열차는 이시간부로, 한국1, 한국1령에 도착할 예정이니, 내리실 때 잊으신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반복드립니다. 이 열차는 본 기찻길의 종착점인 한국1, 한국1령에 도착하오니…>
“어우, 집중만 하려고 하면 계속 방해하네… 침대칸으로 샀어야 하나…”
에스토비톤타는 툴툴거리며 불만을 토해냈다.
그곳은 방음도 잘 되고, 내려야 하면 사람들이 직접 와서 알려준다는데.
하지만, 돈이 없어서 못 샀다.
예전 드래곤들은 부자였다고 한다. 돈이 없거나 예술품이 모자라면 드와프를 핍박하고, 정 안되면 인간들의 왕국에 찾아가 협박을 하면 됐다고.
당시에는 레어에 항상 금은보화가 가득했고, 유희를 나와서도 한 번도 궁상스러운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유희 자체가 기쁘자고 하는 것인데, 궁상이 기쁜가?
그런 궁상스러운 유희를 마음 깊숙이에서부터 허락할 드래곤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을 사는 드래곤들의 현실은 상당히 궁상스럽다.
로드는 블랙 일족답지 않게 쫄보였다.
인간은 물론이고 드와프를 털지도 말란다.
우선 몇천 년간은 종족 보존에 힘을 쓰자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드래곤들은 여덟이나 살기에는 조금 좁은 로드의 레어에서 좋게 말하면 오순도순, 나쁘게 말하면 버둥버둥 살을 맞대고 부대끼며 살고 있었다.
유희 나오면 돈을 벌기 위해 일부터 시작하고.
‘이게 무슨 궁상이람…’
다시 뱃속에서 화가 끓어오르던 찰라.
끼이이이이…
기차가 브레이크를 잡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최종 종착점인 한국1령에 기차가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시작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에스피톤타는 주위를 한 번 훑었다.
지금까지 지나쳐온 기차역들처럼 이곳 또한 붐비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들의 붐빔은 이곳에 비하면 붐빔이 아니었다.
“많기도 하네…”
내리는 사람도 많았고, 옆 라인에서 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화물칸에 가져다 싣는 사람들도 많았고 짐 자체도 많았다.
저 북적거림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와락 인상이 찌푸려지는 에스피톤타였다.
“사람들 많은 곳은 싫은데…”
침대칸으로 구매를 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그곳은 매우 비싸긴 했지만, 귀족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 타는 전용칸이라 그런지 사람도 적게 내렸고 전용 출구가 있어서 북적거림을 피할 수도 있었다.
통통통…
계단을 내려가자.
와글와글…
“여기야!”
“형! 형도 왔구나!”
사람들은 왜 역사 밖에서 해도 될 가족 상봉을 플랫폼에서 하고 있는 걸까?
마법으로 한 방 팍 질러버리고 싶던 에스토비톤타는 화를 참기 위해 사이다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나는 일 때문에 도착한 거다. 고작 10년밖에 없는 유희 시간이다. 할 일만 하고 간다…’
그는 몸을 비틀며 인파 사이를 간신히 헤쳐나왔다.
바로 영지로 들어갈까 했는데…
“거, 새치기하지 맙시다!”
“여기요! 경비병 여러분! 이 사람이 새치기했어요!”
성문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을 보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에스토비톤타는 고개를 저으며 역사 근처에 있는 가게들을 쳐다봤다.
영지 내부의 활성화를 위해 밖에는 여관이나 식당 같은 편의 시설만 설치되어 있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
‘여관이나 식당의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기차에서만 먹을 수 있는 사이다 말고도, 차가운 콜라라는 것이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유희에 들어가는 돈도 직접 벌어서 써야 하는 드래곤 에스토비톤타, 그의 유일한 낙은 식도락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듯, 저절로 발길이 여관으로 끌렸다.
“우선, 거기부터 가보실까…”
[원조 할머니 피자 전문점 여관]끼이이익.
문을 열자 급사가 다가왔다.
“어섭셔! 혼자 오셨습니까? 한 명 자리로 드릴까요?”
에스토비톤타는 허리띠를 풀르며 급사를 똑바로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틀리셨습니다. 혼자냐고 묻는 것보다는 몇 인분을 먹냐고 묻는 것이 예의 아니겠습니까?”
“네?”
콤비네이션, 불고기, 버섯, 치즈, 치킨, 바비큐, 포테이토, 한스페이버릿, 올미트, 프리미엄직화, 스파이시, 할머니손맛, 소시지판타지아.
현재 8인 ~ 10인용 대형 테이블에 펼쳐져 있는 피자들의 메뉴 이름이었다.
테이블에는 붉은 머리의 사내 한 명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쩝, 쩝, 쩝, 쩝. 꿀꺽, 꿀꺽.
“오! 딱 네 번 씹고 넘겼어!”
“다섯 조각 째지? 그럼 이제 입가심 타입인가?”
주변에서 사람들이 술렁였다.
꿀꺽, 꿀꺽, 꿀꺽.
“키아! 여기 얼음 콜라 한 잔 더요!”
세 번의 목 넘김으로 톡 쏘는 콜라 1리터를 원샷 해버리는 괴물.
“대단하다…”
사람들이 놀라워 하는 사이, 사내는 다시 피자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가 피자를 먹고 있는 시간이 벌써 몇 시간째인지 모른다.
그는 가지고 있던 돈주머니를 주방으로 넘겼고, 그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여기 있는 피자 메뉴 전부와 콜라를 리필해달라고 했다.
얼마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후에 영지에 방문했다가 다음날 아침에 가려고 여관에 들린 사람이 아직도 그가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주머니에는 상당한 금액이 들어있을 것이라 추측이 나돌고 있었다.
쩝쩝쩝쩝, 꿀꺽, 꿀꺽.
그에게는 규칙이 있었다.
피자는 정확히 한 조각씩만 먹는다.
그리고 딱 네 번 씹는다.
그 사이 얼굴이 네 번 변하는데, 향, 식감, 맛을 즐기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까지 끝난다.
그럼 바로 한 조각을 더 집어 든다.
몸에서 가까운 쪽부터 먼 쪽으로 시계 돌아가는 방향으로.
그는 마치 오늘 피자를 다 먹어서 이 세상에서 없애려고 싸우는 사람 같아 보였다.
“크… 정말 복스럽게 잘 드시는구만!”
“마치 음식의 신이 강림시킨 전사 같다.”
“푸드 파이터…”
하루 만에 칭호가 생겼다.
명성을 쌓았다는 말이다.
음식의 신이 땅으로 내려보낸 전사, 푸드 파이터.
‘인간놈들은 대체 뭐라고 떠드는 거야?’
속으로 싫은 척했지만, 내심은 기뻤다.
에스토비톤타는 드래곤이다.
드래곤들은 은근히 인간들 사이에 명성이 쌓이는 것을 즐긴다.
비단 악명이라고 하여도.
아직 유희 기간이 남았기에 에스토비톤타의 머릿속에서 임무는 저리가라였다.
‘갈 때는 뭘 먹을까… 여기 동족이니까, 갈 때 돈 좀 챙겨주겠지? 영주라는데…’
2년간 모은 돈이 제법 있어서, 끊임없이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테이블에 깔려 있는 피자가 마지막이었다.
에스토비톤타는 이제 빈 털털이다.
그래서 돌아갈 때는 로드에게 잘 말해준다며, 동족에게 용돈을 좀 뜯어낼 생각이었다.
‘인간이나 이종족의 돈을 뜯지 말라고 했지 같은 드래곤의 돈을 뜯으면 안 된다고는 안 했으니까.’
꿀꺽, 꿀꺽, 꿀꺽.
“쩝… 이만 일어나야 하나…”
에스토비톤타는 그릇과 콜라를 마저 비우고,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일어났다!”
“푸드 파이터, 대단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싫지만은 않은지, 에스토비톤타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종업원들이 에스피톤타를 흐뭇한 표정, 한편으로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혼자서 매상을 많이 올려주었고 거기다, 몇몇 손님들이 그를 따라 한다고 평소보다 더 많은 음식을 시키면서 주머니가 두둑해진 덕에 그를 보면 흐뭇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피자를 만드느라 야간 근무자가 아직도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표정이 될 수밖에.
‘근데 쟤들은 왜 저렇게 보지? 설마 드래곤인 걸 들킨 것은 아니겠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드래곤으로서의 기운을 숨기는 것은 해츨링 때부터 로드에게 지겹게 배워왔으니까.
“크흠… 이보시오. 급사. 이 영지에 피자말고도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시오?”
“아, 아직 피자만 맛보셨군요? 이 영지에는 다양한 종류의 햄버거와 핫도그 그리고 세트로 먹으면 맛있는 치킨과 맥주, 치맥이라 부르는 것도 있습니다. 맛들도 다양하죠.”
‘햄버거, 핫도그, 치킨에 맥주라… 체크다.’
끼이이익…
“화화화. 여기과 은근히 뫗집이롸고.”
‘드와프들이군.’
급사에게 질문하던 에스토비도톤타는 더욱 드래곤의 기운을 숨기며 드와프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자신을 느끼고 엎드려 절하면, 로드의 규칙에 걸린다.
그럼 자신의 유희는 쫑난다.
‘안 그래도 이번에 로드가 레어 짖겠다고 드와프들을 찾던데… 드와프들이 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군? 이것도… 체크다.’
잠시 드와프들을 노려보던 에스토비도톤타는 여관을 나와 영지 안으로 들어가는 줄에 가 섰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어느새 줄이 줄어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
‘이제 임무만 생각해야겠다. 정신 차리고 음식은 나중에…’
“정지!”
경비병들이 방패로 앞을 막아서며 에스토비톤타를 세웠다.
“기차를 타고 오신 분이라면 타고 오신 기차표를 보여주시죠.”
에스토비톤타는 순순히 경비병들에게 기차표를 내밀었다.
뒤쪽에서 경비병들이 확인에 들어갔다.
“성함과… 방문하신 목적이 뭡니까?”
“톤타라고 합니다. 그냥, 먹을 걸 좀 좋아해서 이곳저곳 여행을 하고 있는데…”
“어? 이봐. 이거 어제 거야.”
“어제 거라고? 죄송하지만, 하루 동안 대체 밖에서 무엇을 하신 겁니까?”
경비병들의 말투가 날카로웠다.
“여관에서 식사를 하고 하루 묵었습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도착 시간이 어제 오후 한 시 경인데, 여관에서 하루를 묵었다고요? 안에 더 싸고 맛있는 곳이 많은 데다가, 거긴 새벽 기차를 타고 도착했거나, 타려 하는 사람만 머무는 곳인데…”
“왠지 수상한데?”
경비병들은 무기를 꺼내 에스토비톤타를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