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13)
여러분의 머리는 안전하십니까?
여러분의 머리는 안전하십니까?
처음 봤을 때는 제법 통통하던 간트레이그 남작이었다.
그러나 고작 며칠 만에 다시 본 간트레이그 남작은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얼굴에 낀 다크서클 하며, 눈이 퀭하게 들어가 있었고 볼도 홀쭉했다. 거기다 살도 많이 빠져서 병자 같은 몰골이어서 거의 부축 당하다시피 하며 나오고 있었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영수도 거의 못 알아볼 뻔했다.
“이게 다 제가 못난 탓입니다. 용서해 주시지요.”
“애초에 용서를 구할 일을 하지 않았으면 되지 않습니까?”
영수는 매몰차게 남작을 몰아붙였다.
그의 외모는 못 알아볼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뭐?’
영수는 그가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 땅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땅의 주인으로서 리자드맨 같은 몬스터로부터 자신의 땅에 사는 사람들을 지키는 당연한 일을 말이다.
“저도 남작님처럼 눈이 있어서 도중에도 병사가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올 수 있었는데, 안 오셨죠? 왜 그러셨습니까?”
웃고 있었지만, 누가 듣기에도 영수는 차분하게 화가 나 있었다.
“마, 마법사님, 그건 마법사님께서 리자드맨을 직접 처리하시려고 한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혹시나 저희가 끼어들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쿠아멘트라는 기사가 다급히 변명을 늘어놨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지금 끼어들래! 지금, 남작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안 보여?”
“그건…”
“뒤로 가 있게 쿠아멘트 경. 제 불찰입니다. 마법사님…”
남작은 기사들과 쿠아멘트를 완전히 뒤로 물렸다.
드디어 방벽들 뒤에 숨은 협상 대상의 등장이다.
처음에는 약한 척을 했지만, 두 발로 걷는 것을 보니 체력은 여전하다. 보아하니 그의 부하들은 의도적으로 그를 뒤에 숨기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지난번 그가 보여준 호구기질 때문이지 않을까?
“잠시 둘이서 걷죠.”
일단 그를 무리로부터 떨어트려 놓아야 했다.
호위기사라는 양반들과 같이 있으면, 멋대로 주무르기도 그렇고, 툭하면 칼을 뽑아 들기 때문에 이쪽도 위험했다.
아니나 다를까, 쿠아멘트가 다시 발끈하며 치고 나왔다.
“영주님의 안전상 그것은,”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지? 그것도 남작님 자신의 영지에서.”
영수가 정색하자 상대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건…”
불안한 눈빛만 봐도 뭔 말을 하는지 알겠다.
제일 위험한 건 너다, 하는 눈빛.
‘그러게요. 저도 몰랐습니다. 배터리가 이렇게 위험한 건지.’
피식하고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러자 간트레이그 남작이 움찔했다.
“그만하시게! 마법사님을 더 이상 모욕한다면 아무리 내 충실한 가신이라도 용서하지 않겠네!”
남작이 돌아서서 호통을 치자 쿠아멘트라는 기사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내 남작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물러갔다.
‘뭐야, 저쪽도 눈으로 말하나? 뒤치기라도 준비하려고?’
기사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우선 협상하기 전에 일단 이쪽의 안전 확보가 먼저다.
“리자드맨들에 관해서 말씀드릴 것도 있고 보여드릴 것도 있습니다. 같이 제 마차까지 가시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실까요?”
트럭으로 가는 동안 리자드맨과의 거래나 처분 등에 대해서는 모두 설명했다. 아니, 형식만 설명이었지 거의 통보였다.
하지만 간트레이그 남작은 밉보인 게 있었기에 군말 없이 모든 조건을 잘했다며 수용했다.
거기다 개인적인 일인 용연향 창고를 만든다든가 하는 것도 리자드맨과 엮어서 술렁술렁 넘어갔다.
간트레이그 남작이 따로 사례를 하겠다고 하는데, 너무 티 나게 아까운 척을 하기에…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어찌나 연구비가 많이 들어가는지, 주시면 감사히 받아야죠. 제가 가난한 마법사다 보니.”
“아, 네…”
씁쓸한 표정을 짓는 간트레이그 남작과 영수는 어느새 트럭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영수는 주변과 천장, 바닥을 살피며 혹시나 병사나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폈다.
‘여차하면, 차에다가 전류를 흘려서 사방으로 방사 시킨다…’
안전이 확보되자 영수는 간트레이그 남작을 돌아봤다.
“지난번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제가 제대로 들은 거라면 해충은 같은 귀족이고, 그가 남작님의 땅을 노리고 있다는 소리겠지요?”
“불행하게도… 잘 보셨습니다.”
“이번 병사들의 파견이. 늦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까? 전쟁 때문에 병사들을 하나라도 아끼려고?”
남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법사님에 대한 믿음도 있고… 예전이라면 이러지 않았을 겁니다. 영지민이 영지의 근간이라는 것을 아니까. 하지만, 지금 그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습니다. 영수 마법사님이 화내시는 것도 당연하죠.”
“끝까지 제 핑계를 대시면서도, 제가 가진 불만의 핵심이 영주가 자신의 영지민을 외면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시군요.”
“후우… 그 점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예 그 점에 대해서 몰랐다면, 절대 도와드리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상황이 급하면 사람은 나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현실을 외면해버린다.
남작은 합리화는 했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작은 시험은 통과했다.
“그… 그말은?”
간트레이그 남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동안 채찍으로 후려갈겼으면, 이제는 잠시 당근을 줘야 할 차례다.
‘그 전에 상황 파악을 더 하고.’
“그런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리라이트 백작은 자신의 세 아들 모두에게 땅을 주려고 합니다. 큰아들이 가문을 이을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영지는 두 개죠. 그중 하나가 쟈쟈슬리피 자작령이고, 남은 하나가 제 영지입니다.”
“그럼 두 영지가 힘을 합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곳은 리라이트 백작의 가신인 쟈쟈슬리피 자작이 임시로 다스리는 꼭두각시 영지입니다. 이미 6년 전에 영지전을 걸어 병합했죠. 어제부터 그 자쟈슬리피 자작이 무력정찰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쟈쟈슬리피 자작에게 영지를 자기 것으로 하고자 하는 야욕이라든가…”
“쟈쟈슬리피 자작은 슬하에 딸만을 두었고, 그 딸 중 하나가 리라이트 백작의 차남과 결혼했습니다.”
“흐음… 그럼 주변에 다른 귀족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그를 거스를 사람이 없습니다. 그가 섬기는 백작은 이쪽 서남부에서 변경의 군사 요새와 자신의 본 영지를 다스리는 방대한 군사력을 다스립니다. 주변에서 리라이트 백작을 거스를 사람은 없죠.”
“재수 없게 찍힌 겁니까? 아니면, 사건이라도.”
“막내가 자신은 바다가 보이는 곳이 좋다고 했답니다. 후우…”
‘쯧쯧… 이간질이나 다른 평화로운 해결책을 쓰기는 물 건너갔군.’
간트레이그 남작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이곳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영수에게 그를 도와준다는 것은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위험이 큰 만큼 보상도 크겠지…’
“군사력 차이는 어느 정도 납니까? 백작이 직접적으로 이곳을 칩니까? 수비만 할 생각입니까? 공격 계획은 있겠죠?”
“죄송합니다. 대부분의 공격과 수비 계획은 기사단장이 짜기 때문에 그 부분으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작전은 비밀이다… 이건가?’
“하지만… 전력면에서는 비등하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어째서죠?”
“왕국에서는 소 영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두 단계나 낮은 계급의 귀족이 다스리는 영지를 직접적으로 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럼, 간접적으로는 친다는 소리군요.”
“네. 바로 아래 단계의 가신들을 이용한 대리전 양상으로 갑니다.”
“그런데 어째서 전력이 비등하다는 거죠? 이곳의 기사나 병사들이 그렇게 강합니까?”
“영수 마법사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신 첫날 몬스터에게 점령당한 몬스터 로드를 통해 오셨으니 아시겠지만, 이곳 주변에는 몬스터가 많이 삽니다. 영지 중에 가장 외진 영지라, 살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죠.”
‘그건 그쪽이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군. 애초에 남자들은 뻥이 심하니까. 결국, 믿을 건 숫자와 상태지.’
“그보다 병사와 기사의 명수 차이가 정확히 어느 정도 납니까?”
“병사와 기사의 수적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직접계승 영주이고, 쟈쟈슬리피 자작은 간접 계승 영주이기 때문에 보유할 수 있는 병력의 숫자가 같죠. 단…”
“단?”
“이쪽은 병사와 기사가 죽으면 끝이지만, 저쪽은 리라이트 백작에게 지원을 받습니다. 아니, 지금 있는 병력도 리라이트 백작의 기사와 병사들이죠. 그것이 바로 간접적인… 방법이죠.”
결국, 등 뒤에 모기업을 업은 회사인데 계열사 이름만 쓰지 않지 모기업 이사가 내려와 운영하고 모기업에 돈을 바치는, 명목상 타회사인 자회사라는 말이다.
“그렇군요.”
영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결국, 같이 100의 병력으로 싸우지만, 이쪽은 잃으면 90, 80이 되지만, 저쪽은 잃어도 계속 100이라는 소리다.
전략을 세워도 이건, 수비만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케이스였다.
공격해서 한 번에 점령하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경영권만 해도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방어자보다 공격자가 더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지금 가진 정보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특별한 상황을 연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고작 이거 가지고 도움이 될까?’
물론 수량은 2천 개가 넘었다. 부서지는 것도 생각해야 하니까.
그래도 이거라면 남작의 병력 전부가 사용할 수 있을 거고, 가죽 모자 같은 것 보다는 낫겠지.
“일단… 제가 남작님께 도움이 될까 해서 가져온 것이 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끼릭. 철컥, 끄그그긍… 끼이익…
영수는 화물칸 안에 들어가 박스에서 뭔가를 꺼내왔다.
노란색 플라스틱 모자에 초록색 십자가를 둘러싼 [안전제일]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모자.
전형적인 작업용 안전모였다.
“그것은… 모자인 것 같군요. 아니, 헬멧.”
“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위 중 하나가 머리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제가 보니, 이곳 영지의 병사들은 모두가 가죽으로 된 벙거지 같은 것을 쓰고 다니더군요. 그걸 쓰면 화살이나 칼, 낙석 한 번이라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빗맞으면 화살 한 발 정도… 사실 몽둥이로만 때려도 충격이 전해질 겁니다. 그냥 구색 맞추기인 물건이니…”
영수는 시무룩해 하는 간트레이그 남작을 향해 활짝 웃으며 믿음직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이 세계에는 없는 물질로 만든 투구입니다. 쇠보다 가볍지만, 강도는 거의 비슷하죠! 화살은 물론, 낙석! 칼! 조차도 방어할 수 있는 바로 그 투구!”
바이어들을 만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것은 결국 자신감 있는 표정과 적당한 쇼맨십이다.
‘아우… 간만이라 너무 장사꾼 톤으로 말했는데?’
영수는 스스로의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짧은 평을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예? 죄, 죄송합니다. 마법사님. 사실 전쟁 준비 때문에 그런 거창한 물건을 구입할 정도의 돈은…”
간트레이그 남작이 바로 부담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었다.
“수량이 많고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단 한 번, 얼마나 강한지 지켜보시죠.”
영수는 안전모를 들어 바닥에 있는 커다란 돌을 향해 힘껏 내리찍었다.
빠각!
간트레이그 남작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뭘 그렇게 놀라는 거지?’
영수는 안전모를 뒤집어 부딪힌 부분을 보여줬다.
안전모도 이렇게 계속 내려치다 보면 깨지긴 한다. 하지만, 한두 번 정도? 해봤자 기스 살짝 나고 말뿐이다.
‘멀쩡하네?’
“어떻습니까? 전혀 깨지지 않았습니다. 흠집도 없죠. 그 말은 웬만한 충격은 견딘다는 말입니다. 화살이나 칼은 물론, 낙석까지도.”
“마법사님, 제가 한번 해 봐도 되겠습니까?”
한 번의 시범에 눈이 휘둥그레져 있던 간트레이그 남작이 홀린 듯 영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마든지요.”
영수가 웃으면서 안전모를 넘겨주자 간트레이그 남작은 안전모를 손에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사람 머리만 한 돌 앞에 섰다.
‘으음… 당장에 괜찮겠지. 하지만, 계속 내리치다 보면 기스가 나긴 할 텐데…’
살짝 걱정되는 영수는 속으로 변명거리가 아닌 포장거리를 찾았다.
그때 높이 안전모를 쳐올린 간트레이그 남작이 사정없이 손을 끌어내렸다.
후우욱!
바람을 가르는 소리.
빠각!
그리고 마치 뭔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
“으음…”
영수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안전모로 돌을 깐 간트레이그 남작도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확실히 깨져버렸다.
돌이.
‘망치야?’
영수는 당황스러웠다.
처음에 영수는 내리찍느라 못 봤지만, 그때도 돌이 깨졌다. 간트레이그 남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간트레이그 남작의 눈에서 당황함이 사라졌다.
대신 그의 큰 눈에는 희열이 가득 차 있었다.
“이 투구… 가격이 얼마라고 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