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145)
기사 말고요.
기사 말고요.
빠바바빠 빰빰 빠바바빠 빰빰, 빠라밤.
척, 척!
“『받들어! 총!』”
영수는 우렁찬 함성으로 시작된 근위병들의 경례 행렬 사이를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실내를 지나, 어느새 영수는 금박과 노란색으로 장식된 유리 달린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끼이익.
문이 열리자 하얀 식탁보와 큰 식당 테이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붉은 카펫이 눈에 띄고, 차례로 금박 칠해진 붉은 쿠션 달린 나무 의자들과 붉은 천이 붙어 있는 벽, 그 벽에 걸린 영국 왕들의 초상화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영국 국기의 주된 색이기도 한 붉은색과 백색이 대비를 이루었고, 고급진 느낌을 내기 위해 금색 혹은 금장식을 많이 두었다.
보통이라면 이런 자리에서 위축될 법도 한데.
“음… 그러고 보니까, 가족끼리 사진 찍어서 이렇게 걸어두면 예쁘겠는데?”
영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담담하게 초상화를 구경하면서 안내해주는 후퍼의 뒤를 따라갔다.
이곳에는 여러 예술품들과 세공품들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드와프들이 만드는 예술품과 세공품을 매번 보는 영수에게는 수준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뿐이었다.
“『앉으시죠.』”
영수는 후퍼가 내준 의자에 앉아 여왕을 기다렸다.
끼이익.
“『여왕님 나오십니다.』”
영수가 들어왔던 문 반대편에 있던 문이 열리고, 비로소 안으로 영국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 퀸 엘리즈베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후퍼가 예법 등에 대해 해준 이야기는 아직도 머릿속에서 기억나고 있었지만, 영수는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한국식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영수라고 합니다. 영국식으로는 영수 한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호. 호. 당돌하십니다. 앉으세요.』”
영수는 여왕의 말대로 자리에 앉았다.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아주 거친 시대를 살아온 국가 원수로서의 위엄 같은 것이 살짝 느껴졌다.
그녀는 왕가의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또한 현재 남은 국가 원수들 중 유일하게 전쟁을 직접 참여하고 나서도 살아남아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드럼프나 부틴이 주지 못하는, 정말 ‘귀족적인’ 위엄이 넘쳐난다고 할까?
“『바쁘실 텐데, 식사는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최근 입맛도 별로 없으시다면서요.』”
“『호오. 식욕이 없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오해하지 마세요. 나이 먹으면 좀 그렇습니다. 본론을 바로 말하면 저야 좋죠. 그래도, 차는 한 잔 하실까요?』”
여왕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후퍼에게 다기를 가리켰다.
후퍼는 자신이 차에 타고 오며 가르쳐준 것을 모두 어기는 영수를 불만스럽다는 듯이 살짝 째려봐준 후, 다기를 가져와 여왕의 앞에 공손하게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신통하기도 하군요. 제가 식욕이 없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정말 아프리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신기라도 있는 겁니까?』”
그런 건 당연히 아니었다.
영수는 왕궁에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귀를 열고 여왕이 누군가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에 그녀가 식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었다.
“『예전에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딱 입맛이 없으실 때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호오. 티가 났나보군요. 다음번에는 조금 더 표정 연기에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살짝 비장한 표정.
꼬장꼬장하면서도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것이 얼굴에 드러났다.
‘저렇게 살면 피곤하다고…’
영수는 왕족으로서 저렇게까지 피곤하게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제 조건부터 말씀드리는 게 낫겠군요. 저는 언론 공개는 필요 없습니다. 아니, 무조건 싫습니다.』”
“『그 때문에 1등급 훈장을 취소할까 고민을 했었지요. 하지만 이번에 아프리카에서 하신 일이 있으니,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주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이 났다는군요.』”
여왕의 너무 솔직한 대답에 후퍼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솔직하고 호탕하게 대답해주니, 영수로서도 상대하기가 매우 편했다.
거기다, 나이 드신 분이라 더 편했다.
‘사실, 나이 들면 남성 호로몬이 더 분비돼서 할머니들은 강해지신다고. 할아버지도 나이 드시고는 할머니를 이기지 못하셨지…’
영수는 옛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좋은 기분으로 미소를 지으며 여왕을 바라봤다.
“『그리고 저는 그 1등급 훈장을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
여왕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찻주전자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렇다면. 이 자리엔 왜 온 겁니까?』”
영수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뭔가 주신다기에 받으려고 왔습니다. 다만 백작 이상의 귀족작위와 봉토를 주시지 않는다면 받지 않겠습니다.』”
쨍그랑.
여왕의 손에서 찻주전자가 떨어져 깨졌다.
영수는 염력 마법으로 쓸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호호호호호호!”
입은 가렸지만, 가린 손 사이로 터져 나오는 시원시원한 웃음소리.
‘호탕하시구나…’
“『정말, 그걸 조건이라고 하는 건가?』”
“『물론, 세부적으로 말하면 국적은 한국 그대로 명예 귀족직에 봉토만 받는 것이 조건입니다.』”
“『호호호호호호! 대단한 배짱이군. 정말 마음에 드는 남자야. 알겠네. 그 조건을 들어주지.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여, 여왕님이시어…』”
호프가 당황하며 여왕의 앞에 엎드렸을 때.
“『영수 한은 들으시오. 그대에게 런던 버클리 스퀘어 인근 왕실 소유 빌딩과 그 주변 20피트(6미터)를 봉토로 수여한다. 또한 앞으로 그대를 영수 한 버클리의 백작(the earldom of Berkeley)이라 칭하도록 한다.』
여왕의 선언은 떨어졌고, 졸지에 영수는 백작이 되었다.
무리에 가까운 부탁을 해서 일부러 피하려고 했더니, 여왕은 봉토를 달라고 했지 큰 땅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파고들었다.
건물과 그 주변을 봉토로 백작이라니…
“『아… 이거 한 방 먹었습니다.』”
그것도 제대로.
이건 영국 왕실에는 부담도 되지 않으면서 실리와 명분은 챙긴, 아주 노련한 처사였다.
“『하, 하지만 여왕이시어 이런 근본도 없는 자를 백작에 임명하는 경우는 역사상 전례에 없는…』”
물론 영국 왕실 측에서야 문제가 있는 것 같다만…
“『후퍼, 그대는 공훈 심사단 및 왕실 가족구성원에게 나를 대신하여 알리도록.』”
여왕은 후퍼의 말을 무시하며 선을 그어버렸다.
“『차를 다시 내오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여왕이시어…』”
강력한 카리스마에 강력한 통치.
물론, 영국의 왕실과 정치는 분리되어 있고 그녀는 고령이기에 할 수 있다 하여도 지금은 크게 관여를 할 수 없었다.
“『그대같이 무서울 게 없는 사람에게 기사란 딱히 의무도 없지만, 권리도 없는 직책이지. 실리를 원한다는 거지? 이번에 내린 백작위는 그대가 죽을 때까지만 효과가 있는 종신작이야. 그대에 한해서는 타국에서 죄를 지어도 왕실의 이름으로 면책의 특권이 있네. 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사업이 크다고 들었는데, 유럽에서 할 일이 있으면 그 건물을 중심으로 하는 게 어떻겠는가?』”
“『큭, 저야 어차피 법하고 거리가 먼 사람 중 하나인데… 거기다 이곳에 지사를 세우면, 그곳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영국에 세금이 귀속되겠군요.』”
“『물론, 하지만 그대에게는 특별히 공작과 같은 세금 우대 혜택을 줄 것이야. 보조금이라는 형태로, 내야 할 세금의 절반을 되돌려 주는 것이지.』”
그녀의 말에 후퍼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여왕님, 그런 특례를 주다니 귀족 사회에서…』”
이건 임명식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 거래에 가까웠다.
영수에게는 공짜로 건물이 생겼고 영국의 귀족 작위도 생겼다. 또한, 귀족으로서 특혜도 얻게 되었다.
대신 여왕은 만향당의 지사를 세워주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절반을 깎아준다고 해도 그 규모가 클 테니, 세수를 늘려 실리를 찾겠다는 소리다.
물론, 유럽에 화장품만 파는 것이 아니었고 발전소와 그 외 상품들도 팔고 있고, 현지에서 관리도 해야기 때문에 지사 설립은 필요했다.
거기다 영국은 법인세가 15%로 유럽 국가 중에서도 싼 편에 속했는데, 거기서 절반을 되돌려준다니…
“『여왕님의 사업적 센스에 대해서는 제가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백작도 되고, 이곳에 지사도 세우겠습니다.』”
딜은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만족스럽게 악수를 했고 얼마지 않아 후퍼가 차를 가져왔다.
“『이것은 오늘을 기념하기 위한 작은 선물입니다.』”
영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아공간 주머니에서 한 상의 귀걸이를 꺼냈다.
“『호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장신구이군요. 누가 만든 겁니까? 이런 식의 세공이라니 어느 장인인가요? 이제껏 지구에서 본 적이 없는 형식의 세공입니다.』”
여왕은 귀걸이의 예술성을 한 번에 알아챘다.
많은 명품들을 보아왔던 여왕으로서 내공이 쌓였기 때문일까?
‘드와프들이 들으면 좋아했겠군.’
“『하지만, 이 악세서리에 박힌 보석은 어떤 종류인지 모르겠군요. 트리플릿 같은데 빛이나 광택이 어떤 보석과도 달라서…』”
물론, 아무리 많은 명품을 보아온 여왕이더라도 마나석과 흑마석이 압축된 보석의 종류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가 취급하는 상품 중에,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것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머리 자라나는 부적이나, 피부 재생을 돕는 화장품, 연료가 필요 없는 발전소 같은 것 말인가? 잘 알고 있지. 관심도 많고.』”
“『이 악세서리에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설마, 이번에 수르 왕자의 비행기가 폭발했을 때 그의 일가족이 살아남았던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인가?』”
눈치도 빨랐다. 영국의 여왕님은.
“『그렇습니다.』”
“『호오! 이것은 왕실의 국보로 지정해야겠음이야.』”
여왕은 바로 자신이 차고 있던 귀걸이를 떼고 영수가 준 귀걸이를 착용했다.
“『꼭 한 쌍을 다 차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영수는 여왕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매우 고맙네. 예전의 일이지만, 한 번은 내가 저격을 당한 적이 있었네. 그때는…』”
여왕은 차를 마시며 영수에게 옛날에 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옛날에 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눈치 있는 어르신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옛날이야기를 한다.
영수는 여왕이 하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들어주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났기 때문일까, 옛날 생각도 나고 좋았다.
“『그런데…』”
한 이야기를 끝낸 여왕은 귀에서 귀걸이를 떼 영수의 손에 쥐여주었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나보다는 백작에게 더 필요할 것 같군요. 당분간은.』”
“『제가요?』”
“『1주일 뒤 총리가 UN 상임이사회의 회원국 정상들과 함께 뉴욕에서 만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백작을 뉴욕으로 와달라고 초대할 거라 들었습니다.』”
“『총리가 직접 말해준 겁니까?』”
“『그 부분은 말 할 수 없으나, 최소한… 그 초대에서 돌아올 때까지만, 이 귀걸이는 그대가 맡아두는 것이 어떨까요. 돌아가는 분위기가, 백작에게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여왕은 귀걸이를 영수의 손에 쥐여주고 두 손으로 꼭 감쌌다. 마치 다 큰 손자가 집에 가보겠다니 먼 길 가는데 밥 사 먹으라고 주머니 속 쌈짓돈을 꺼내주시는 것처럼.
손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고맙지만, 이건 돌려드리겠습니다.』”
영수는 웃으면서 귀걸이를 식탁 위에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걸, 세상의 어느 누가 직접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는 엄지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여왕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다이닝룸에 걸려있는 그 어떤 왕족의 초상화들보다도 더 당당하고 멋있어 보인 것은 여왕만의 감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