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17)
지사 설립.
지사 설립.
“긴장하지 마시고요. 편하게 하십시오. 편하게.”
계약을 마친 영수는 의자에 앉아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긴장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외려 기사들은 오히려 흠칫 놀라며 차려자세를 취했다.
시선은 허공에서 갈 길 없이 유영하고 있었다.
“안심하십시오. 저는 사생활을 흠잡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어진 일을 잘하고 법적으로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꿀꺽…
두 사람의 목젖이 동시에 움직였다.
오히려 그들은 영수의 말을 여차하면 사생활을 걸고 넘어가겠다는 위협으로 들은 것이다.
‘진실을 말해줘도 믿지를 않는군…’
하지만 사람의 신뢰는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차츰 해결할 문제다.
“그럼, 이제 두 분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려드리죠.”
이곳에서 영주가 하는 일은 총 세 개로 나뉜다고 한다.
다른 귀족들과 어울리며 평판을 관리, 계파를 선택하고 줄을 서는 ‘정치’.
병사, 기사의 계약과 훈련 몬스터 퇴치 등, 영지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 ‘안보’.
영지에서 거둬지는 세금의 활용인 ‘재정’.
하지만 영수는 이곳을 새로운 무역지의 전초기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접대’와 ‘경비’, ‘시설관리’였다.
“크히모스 기사님은 이제부터 영지 전체의 병력과 기사를 관리하는 기사단장입니다.”
“저, 저는 젊고 아직 기사로서의 경력도 짧습니다. 제가 어찌…”
크히모스는 손사래를 치며 고사했지만 이미 결정 난 사항이다.
덩치만 봐도 위압감도 있겠다, 경비 임무를 할 때도 병력 관리 업무를 잡음 없이 해냈다고 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골라야 하니 그를 임명한 거지만, 여자 관리를 못 해서 강제 카사노바행인 보잭보다야 낫지 않겠나?
“상비군이 50으로 줄었습니다. 그들로 영내 순찰과 성문 경비, 영주부 경비를 예전 수준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너무… 적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죠?”
“성문에 열, 영주부에 스물, 순찰에는 오십. 그것도 주야간 2개 조로 두 배가 필요합니다.”
“자경단에서 100명 정도 병사들을 뽑을 수 있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충분합니까?”
“그럼 영지의 안전은 확보할 수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영지 진입로를 확보는…”
“영지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면 되었습니다.”
“하, 하지만 주기적으로 진입로 확보를 해주지 않으면 길이 몬스터의 영역이 됩니다. 주기적으로 기사 4인 병사 50명으로 2개 조 이상을 투입해 줘야…”
“제가 누굽니까?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미션이 떴으니…’
미션을 다 깨고 나니 내비에는 새로운 미션이 두 개가 다시 떴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길을 확보하라는 미션이었다.
“아, 맞다. 마법사님이시니까…”
크히모스도 딱히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지 않았다.
마법사라는 오해 덕분에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보잭님에게도 임무를 드리겠습니다.”
“네? 넵!”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어 방심하고 있던 보잭이 긴장하며 말을 더듬었다.
“보잭님은 지금부터 훈련담당입니다. 이제부터 기사를 양성하십시오.”
“종자를 들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제, 제가요?”
보잭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이며 말을 더듬었다.
어리숙해 보이는 보잭이지만, 영수는 그에게 관리 능력은 몰라도 조련 능력은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알려진 것만 거의 수십에 가까운 애인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고 지속적으로 문제가 터져 나왔을 거다.
‘호감이 가는 잘생긴 얼굴을 무기로 사람들을 납득 시키는 것을 잘한다는 말이겠지.’
“보잭은 부단장입니다. 앞으로 두분은 제가 있으나 없으나 자신이 맡은 일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
“넷!”
보잭의 잘생긴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크히모스는 우렁차게 대답하며 예를 표했다.
크히모스는 역시나, 자기 일을 정해주면 딱 자기 일만 하는 스타일로 동료의 어려움까지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영주님. 죄송하지만 기사들은… 훈련으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거기다 기사로서 신체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나이트 스톤 열 알은 필요한데 그 금액이…”
‘기사 전용 홍삼 같은 영양제인 건가?’
“돈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당장 가진 돈은 리자드맨 처리보상과 안전모 판매 대금으로 간트레이그 남작에게 받은 300골드뿐이지만, 자신에게는 팔 물품이 있었다.
그리고 정 돈이 문제라면 여기서 고래 똥 몇 개만 주워가 팔아 와도 쓸 돈을 얻을 것이다.
“더 문제는 없죠?”
“음…”
말을 못 하는 것을 보니 해줄 말은 없나 보다.
“그럼 가서 후보들을 모집해오십시오.”
“얼마나 모을까요?”
“200명입니다.”
“예?”
보잭은 당황스럽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 일 아니라고 조용히 있던 크히모스도 놀란 눈으로 영수를 바라봤다.
“왜요? 기사가 개인적으로 기사를 훈련 시키려면 종자를 들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영주님이 임명할 수 있는 기사는 30명이 한계입니다.”
보잭이 격하게 반응했다.
‘매해 200명씩 뽑게 할 것을 안다면 까무러치겠군.’
영수는 이왕 하는 거, 거의 기사에 근접하는 실력을 병사들로 전군을 가득 채울 생각이다.
현대식 특전사 개념으로 말이다.
거기다 보잭의 특기는 호위와 암살 방지라고 한다.
암살자와 도둑은 한 끗 차이라, 그가 훈련 시키는 사람들이라면 앞으로 이곳에 쌓아둘 물건들을 지키는데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모두 기사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 중 우수한 이는 기사로 그러지 못한 이들을 병사로 임명할 생각이죠.”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을 모집하는 것보다는 각각 따로 뽑는 것이…”
“저는 사람을 많이 뽑아서 경쟁을 시킬 겁니다. 같은 걸 가르쳐도 배움에 차이가 있을 것이고, 경쟁심이 있고 학습능력이 뛰어난 이들은 그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겠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자로 들어간 이들보다 기수제 교육을 수료한 기사들의 수준이 평균적으로 높은 것도 경쟁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듣고 있기만 하던 크히모스가 영수의 말을 거들어주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영주님! 혼자서 200명을 관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외부에서 기사를 한둘 영입해야 합니다.”
“저는 이곳 출신이 아닌 외부의 기사를 영입하는 것이 꺼려서 육성하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부 기사의 영입을 완전히 막을 생각은 없죠. 그 부분은 크히모스님께 맡기겠습니다.”
“네…”
대답은 했지만, 크히모스의 인상은 조금 구겨져 있었다. 괜히 먼저 나서서 일거리만 하나 늘었다고 그러는 것 같았다.
“기사를 추가로 영입하면… 경쟁을 통해서라면 가능성은 있긴 한데…”
기사를 영입한다는 소리에 보잭의 얼굴도 조금 편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고민이 있는 것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면, 음… 마지막에 선택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텐데, 으으…”
‘우유부단하군…’
“훈련만 시키시면 됩니다. 테스트하고 선발하는 과정은 제가 직접 할 테니까요.”
“아! 그럼, 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습니다!”
한결 후련해진 얼굴로 보잭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로써 경비 문제는 끝이다.
‘경비업체를 선정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서 써야 한다니 불편하긴 하군.’
“자 용건은 끝입니다. 앞으로 제가 영지를 자주 비울 테니, 급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영주대리인과 상의하십시오.”
“영주대리인이요?”
두 사람에게 그런 직책을 가진 이가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그게 당연했다. 아직, 임명하지 않았으니까.
후욱, 후욱.
굴곡진 등 근육, 언덕과 언덕 사이에 땀의 강이 흘러내렸다.
이마에서 내린 땀이 볼을 타고 턱 끝에 아슬아슬하게 맺혔다.
“백구십… 팔!”
철봉 위로 올라왔던 영수의 얼굴이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백구십구!”
반동을 이용하는 배치기도 아니고, 완전히 팔을 폈다가 다시 굽히는 정석 턱걸이.
토옥 하고 영수의 턱에 맺혀있던 땀이 땅에 떨어졌다.
“이백!”
영수는 손을 놓으며 땅 위에 착지했다.
턱걸이 이백 개를 했다. 그것도 끊지 않고 한 번에.
전신의 근육이 힘들다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직 턱거리를 더 할 수 있는 체력은 남아있었다.
‘신체 강화의 효능인가…’
온몸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활력과 자신감이 넘쳐났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신체능력으로는 이곳의 기사들을 이길 수가 없다.
자신을 기사들의 체력 단련장에 데려다준 크히모스만 해도 한 손으로 철봉 50개를 장난처럼 했으니까.
비슷한 수준이 되려면 더 강화해야 한다는 소리다.
‘문제는 고통인데…’
고통을 생각하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버티려면 언젠가는 강화를 해야 할 거다.
포인트는 아직 남아있었지만, 몸을 지키기 위한 물품으로 강화 실험을 할 용도로 남겨둔 거였다. 신체 강화를 하는 건 가능하면 최대한 나중으로 미루고 싶은 영수였다.
“영주님, 세리들을 불러왔습니다.”
그사이 세리를 부르러 갔던 보잭이 돌아왔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영수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세리들에게 다가갔다.
“불편하겠지만 앉으시겠습니까? 편하게 있으시면 됩니다.”
영수는 이 세계식 벤치프레스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응접실도 있고 다른 곳에서 만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일부러 이런 곳으로 불렀다.
맨몸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들에게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것이다.
‘기사들이 더 있었다면, 세워뒀을 텐데.’
괜히 사채 하는 사람들이 으슥한 공장이나 땀내 가득한 체육관에 사람 불러놓고 동생들이 문신 자랑을 시키는 게 아니었다.
돈 숨기지 말라고 협박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영수가 이들을 협박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그들의 성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성향에 따라, 누군가는 숨긴 돈을 바로 내놓지만 어떤 이들은 끝까지 그 돈을 숨긴다.
세리들이 하는 것은 회사로 따지면 재무 쪽 일이다.
이쪽은 제대로 감시하지 않으면 횡령이나 비리가 바로 발생한다.
“여, 여기에 앉을게요.”
“편하게 있어도 되면 저는 서 있겠습니다.”
“오, 기사들의 단련장은 처음 와봅니다. 처음 보는 것들이 많군요. 크아! 우리 영주님 마법사 아니셨습니까? 몸이 기사들처럼 너무 좋으신데요?”
‘래제, 하메르, 람찬이라고 했던가?’
세 사람의 반응은 모두 달랐다.
뚱뚱한 래제는 소심했고, 키가 큰 하메르는 담담하게 자신의 소신을 말했다. 작은 키의 람찬은 정말 편하게 호기심 많은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대충 성격은 나왔지만, 앞으로 맡길 것을 생각해서 더 테스트 해보기로 했다.
“한 왕국의 왕자가 결혼할 때가 되었습니다. 신부 후보는 세 명이었죠.”
영수는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대인이라면 어디서 한 번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왕은 누가 왕자와 가장 잘 어울릴지 시험하기 위해 공주들에게 금화를 하나 주면서 왕국의 보물 창고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물건을 사오라고 했다.
가장 먼저 돌아온 공주는 화장품을 사 왔다. 좋아하는 거라고, 돈을 조금 줘서 조금밖에 못 샀다고 변명을 한다.
다음 공주는 천을 사 온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방의 벽을 가릴 수는 있어도 가득 채울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돌아온 공주는 몇 개의 양초를 사 왔고 돈도 남겨서 왔다. 왜 이것밖에 사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이 정도라면 보물 창고를 불빛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이야기 내에서는 양초를 사온 공주가 왕자와 결혼한다.
“그에 왕은 크게 기뻐하며 한 공주와 왕자를 결혼시킵니다.”
영수는 일부러 누구와 결혼시켰다는 말을 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냈다.
“으음…”
그러자 뚱뚱한 래제가 혼자서 끙끙거렸다.
“궁금한 게 있습니까?”
“저, 저기… 그런데 어떤 공주랑 결혼하는 겁니까?”
“하…”
“야 뚱땡아, 형이 모르는 거 있으면 티 내지 말고 나한테 몰래 물어보랬잖아.”
래제의 질문에 다른 두 세리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래제의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보여도, 그는 세리다.
이곳에서는 글을 읽는 사람보다 수를 제대로 셀 수 있는 사람이 더 귀하다고 한다. 복잡한 세금을 계산하는 일을 하는 세리는 그래서 고급인력이라고 한다.
분명, 래제가 세리를 하는 건 그에게 특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해내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단, 이것은 혼자서 생각하고 답해야 합니다. 누구와 그리고 왜 결혼했는가.”
“그게 저희들에게 하는 테스트입니까?”
람찬의 질문에 영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은화 세 개를 꺼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은화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방을 채우라고 하면 무엇을 가져오겠습니까? 우선 래제님 먼저.”
“저는 먹을 걸 많이 사올래요!”
래제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했다.
“왜죠?”
“먹을게 좋아서요. 헤…”
확실히 래제에게는 판단이나 공감 영역에서 문제가 있었다.
“준 은화는 어떻게 할 겁니까?”
“쓰라는 말을 안 하셨으니까, 제 돈으로 사야겠죠?”
맞다. 자신은 돈을 주겠으니 물건을 가져오라고 했지 사오라고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일반적이라면, 당연히 그것으로 사오는 줄 알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귀납적인 추리를 하는데, 래제는 그 부분이 부족하다 보니 정말 들은 대로만 생각한 것이다.
“그럼, 왕자는 몇 번째 공주와 결혼했을 것 같습니까? 이유는 뭐죠?”
“첫 번째! 화장품 좋아하는 공주요. 그냥… 좋아하는 거 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니까요.”
그의 대답은 그로써 충분했다.
“그럼, 하메르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촛불을 사 와서 불로 가득 채우고 남은 돈을 가져왔을 겁니다. 왕자는 세 번째 공주와 결혼했겠지요. 가장 현명하고… 유일하게 돈을 남겨 왔으니까요.”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정석 같은 답이었다.
“저는 썩은 치피 피쉬를 주워왔을 겁니다.”
하메르의 답이 끝나자마자 람찬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직 그에게는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물론, 그의 차례긴 하다.
“치피 피쉬요?”
“1주일 동안 썩으면 냄새가 2주일은 빠지지 않는다는 생선입니다. 딱 자기처럼 썩은 생선을 가져오는군요.”
대답은 하메르가 대신해주었다. 람찬이 턱을 내밀며 으르릉거리는 것이 두 사람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더 답해보시죠.”
“아, 저는 냄새로 이곳을 가득 채우고 돈은 2실버로 불려왔을 겁니다.”
“어떻게죠?”
“공짜로 치피 피쉬를 주워온 다음에, 여기 집사님을 협박해서 체력 단련장 안까지 치피 피쉬를 들고 들어가지 않는 조건으로 1실버 받을 생각입니다. 아, 제가 왕자라면 그냥 가장 예쁜 공주랑 결혼했을 것입니다. 남자는 예쁜 여자가 최고 아닙니까?”
영수는 피식 웃었다.
테스트는 끝났다.
“예상하신 분도 있겠지만… 앞으로 여러분 중 누군가는 세리가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 나 할 줄 아는 거 숫자 세는 거밖에 없는데…”
“영주님, 저희 가문은 8대째 이곳에서 세리를 한 가문으로서 한 번도 장부를 잘못 올리거나 사사로이 돈을 착복한 적이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이렇게 세리를 그만두라고 하시면…”
“저는 좋습니다. 매일 같은 곳을 돌아다니고 같은 사람만 만나니 너무 지루합니다. 아참. 이런 말 하면 지하에 계신 아버지가 슬퍼하시겠구나?”
둘은 소극적으로나마 반발을 해왔지만, 람찬은 다른 일을 하는 것을 격렬하게 찬성해왔다.
“먼저, 래제에게 임무를 주죠. 래제에게는 영지 전체의 세금을 걷는 일과 장부를 기록하는 일을 맡기겠습니다.”
“제가… 영지 전체를 다요?”
“할 수 있죠?”
영수는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래제를 바라봤다.
유난히 그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네! 사실, 숫자는 제 전문이에요. 평소에도 한 달 치 한 시간 만에 다 하는데, 기록하느라 이틀 걸리거든요. 그래서 람찬 일 도와주고 그랬어요.”
“야! 이 뚱땡아!”
“아차, 이거 람찬이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랬는데.”
람찬의 외침에 래제가 입을 가리며 그의 눈치를 봤다.
사실 여기서 눈치를 봐도 자신의 눈치를 봐야 할 텐데 말이다.
‘상황판단과 공감력도 둔해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숫자에 강한…’
래제는 서번트 증후군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뇌 손상으로 일부 영역이 둔해지고 수학이나 암산 쪽으로 능력이 강해지는 특이한 경우를 말한다.
집사에게 알아본 바로는 어린 시절 나무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는데, 후천적인 가능성이 컸다.
“혼자서 다 할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불법적인 일은 저지르지 마십시오. 저는 마법사입니다. 공금을 횡령하거나, 장부를 조작하다 걸리면 어떻게 될지…”
영수는 눈을 작게 뜨고 세 사람을 쳐다봤다.
“네, 네…”
두 사람은 침착하게 가만히 있는데 래제는 혼자 오들오들 떨며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다음으로 하메르…”
“영주님, 저는 저기 있는 람찬처럼 요령도 피우지 않고 제 일을 똑바로 문제없이 처리해왔습니다. 래제에게 모든 영지의 세금 문제를 다 관리하라는 것은 저를 세리직에서 내쫓으시겠다는 말씀으로서.”
“하메르는 이제부터 영주대리인입니다. 제가 있든 없든, 저를 대신해서 영지의 모든 일을 처리하세요.”
“제, 제가 어찌 감히…”
하메르는 그답지 않게 화들짝 놀라며 감정 기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가 가장 적임자였다.
행정 능력도 있었고, 문제 해결에서 가장 정석을 추구하며 보편적으로 사고하고 안정적인 것을 중시했다.
거기다 8대째 한 지방의 세리로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것은, 이곳을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애착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람찬…”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되죠? 영주님 마법사라고 하셨죠? 제가 잘 아는 곳이 있는데, 싼 가격에 마법 재료를 사다 드릴까요? 아니면, 기사 없으시죠? 제가 아는 유랑 기사들이 있는데 기사들을 데려올까요? 돈만 좀 주시면 가장 능력있는 사람으로…”
지목을 당하자 람찬은 눈을 빛내며 하고 싶은 일들을 자신이 먼저 꺼내왔다.
그는 주의력 결핍(ADHD)끼도 조금 있고 매우 외향적인데다가, 단점도 많았다. 하지만, 이중에서는 가장 유연한 사고를 하는 자이기도 했다.
“네게 돈을 맡기라고? 무슨 사고를 낼 줄 알고!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겠다.”
하메르의 말대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맡겨볼 생각이다.
“람찬에게는 앞으로 물건을 맡길 생각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팔아오십시오. 제 이름을 팔아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