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20)
말 달리다.
말 달리다.
VIP 코스메틱과의 계약을 마치고 나와 로펌에서 나오는 길.
호운덕 사장과 나란히 걷던 영수는 얼마지 않아 그대로 멈춰 섰다.
“너무 가격을 매몰차게 깎아서 많이 놀라셨습니까?”
“네?”
호운덕 사장은 도둑질하다 들킨 것 같은 표정을 하며 화들짝 놀랐다.
“김영배 사장이 조금만 양심적인 기업가였어도, 공장 값을 좀 더 쳐줬을 겁니다. 제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이미 거래하기 전에 통장에 예치금 450억 원이 입금된 상태였다.
만일 김영배 사장이 정말 양심적으로 사업했고 사정이 딱했다면?
지금처럼 가격을 매몰차게 깎지는 않았을 것이다.
“VIP 코스메틱 직원 200명 중에서 정직원이 10명입니다.”
“네? 어떻게 정직원이 그것 밖에…”
영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말, 190명이 아웃소싱입니까?”
“네. 연구직과 영업직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직원들을 모두 용역업체를 통해서 고용했더군요. 다년간 용역업체에 뒷돈을 받아서 투자자들 몰래 돈을 착복하기도 했고요.”
“허…”
“젊은 나이에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망하고, 이번에 다시 재기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대우 받아 마땅한 사람이 대우 받아야 하고, 쓰레기 같은 사람에게는 쓰레기처럼 대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제 나름의 기준인데… 제가 좀… 이상한가요?”
영수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호운덕 사장은 머릿속으로 만향당 인수 때의 영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50억 매물을 100억을 주고 산 영수, 자신을 대우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있다는 소리였다.
괜히 호운덕 사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었지만, 오늘 일은 호운덕 사장에게 영수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조금 더 신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호 사장님, 제가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사업 성공의 척도로 돈을 버는 거지, 상대의 어려운 사정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사업하는 게 아닙니다.”
“하하. 우리나라 모든 대기업 경영자들이 한 사장님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호운덕 사장은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활짝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얼굴은 왠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갈 길이 멀군요. 공장은 내일이라도 돌릴 수 있는데 사람이 없으니. 당장에 내일부터 사람들도 모집해야 하고 독신자 기숙사도 알아봐야 하고…”
“독신자 기숙사! 사내 복지의 기본으로 아주 중요한 거죠! 아웃소싱으로 사람 부려먹는 김영배라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하하! 역시 우리 한 이사님!”
‘이 아저씨가 왜 오버를…’
“자금 100억정도 써서 적당한 매물을 알아주십시오. 평수 넉넉한 원룸 건물이랑, 가족이 있는 직원들이 살 수 있는 빌라형 건물로요.”
의식주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주거에는 특히나 많은 돈이 들어간다. 작은 원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주거를 안정시키면 직원들의 생활이 여유롭고 풍족해진다. 이직율도 낮을 것이고 작업 효율도 늘어날 것이다.
거기다 건물은 사두면 웬만해서는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맡겨만 주십시오! 최근에 중국 쪽 시장이 작아져서 기업들이 내놓은 건물도 많을 거고, 임대업이 안 돼서 싸게 건물을 내놓는 건물주들이 많을 겁니다.”
호운덕 사장은 신난 표정으로 영수를 향해 신뢰 가득 담은 눈길을 보내주었다.
‘원래 이렇게 부담스러운 분이었던가…’
“그럼…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가실까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돈이 많아지고 나서 소소하게 즐거운 점이 있다면, 아무리 야간 할증으로 먼 거리를 가더라도 더 이상 말이 달리는 모습을 보며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조수석에 앉은 영수는 여유롭게 휴대폰을 두들기며 내일부터 해야 할 사원 모집 공고를 손보고 있었다.
‘신입이야 이렇게 쉽게 모집한다고 쳐도, 경력직과 고급인력을 구하는 건 또 다른 문제군…’
만향당으로 향수만 팔 거라면 기존의 직원들만으로도 충분할 거다.
하지만, 화장품을 포함해서 고급화 전략을 앞세운 종합 화장품 회사로 거듭나기에는 인력이 너무 모자랐다.
‘고급인력들이 필요해. 지구를 비워둔 사이에 회사를 관리해줄 사람과 연구, 마케팅, 유통, 오프라인 매장 관리 전문가도 필요하고…’
예전에 기업체에 다닐 때와 사업하며 생겼던 인맥 망은 업종이 다르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취업 사이트도 있지만, 서류만 가지고 사람들의 옥석을 가리는 것은 돈도 시간도 더 드는 일이었다.
발품을 꽤 팔아야 할 것 같았다.
‘헤드헌터들에게 연락해봐야겠어.’
최근 경기가 엉망이라 알던 헤드헌터들이 그대로 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이직 시장이 경직된다.
기업들은 새로운 사람을 구하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은 이직을 준비하다 회사에서 잘릴까 눈치를 보며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외교 분쟁으로 화장품 업계가 피해를 본 만큼, 좋은 직원들은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그 좋은 직원을 구해다줄 헤드헌터를 구할 수가 있을지…
‘아무래도 사람들을 모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편집하던 사원 모집 공고를 저장해 클라우드에 올려둔 영수는 번호를 뒤져 알고 있던 헤드헌터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어? 저거 뭐야?”
옆자리의 기사님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핸들을 강하게 꺾었다.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익숙한 로고가 달린 하얀색 차량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트럭?’
끼이이익!
쾅!
세교동에 있는 평택 병원 중환자실.
띠이… 띠이이…
침대 옆 심박측정기의 모니터에는 낮은 진폭으로 파도가 치고 있었고, 링거 걸이에는 두 개나 되는 수액 팩이 매달려 있었다.
한 방울 한 방울, 어느새 가득 차있던 수액 팩이 홀쭉하게 말라버렸을 때쯤.
“수액 갈 시간이네요.”
간호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환자는 괜찮겠습니까?”
“김상우 환자 보호자 되시죠? 충격에 의한 간단한 뇌진탕이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깨실 거에요. 그런데 보호자 분은 괜찮으시겠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영수는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끙…’
손을 저었더니 팔에 난 상처가 따끔거렸다.
하지만 그 상처를 제외하고 영수는 무사했다.
‘강화 덕인가?’
근육과 뼈의 밀도가 예전과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문이 찌그러진 부분에 찔려서 피는 좀 났지만, 부러진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트럭이 정면으로 덮쳤다면서요?”
“아, 예. 경찰분 말씀을 들으니 졸음운전을 하셨다더군요.”
택시를 덮친 건 택배 트럭이었다.
사고 난 시점이 거의 11시 경이었으니까, 그때까지 택배 배달을 했다면 거의 체력이 녹초가 되었을 것이다.
같은 업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이해는 가지만 용서해 줄 생각은 없다.
트럭이 조수석을 들이받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 죽는 거구나.’ 했다.
지구에서는 자신도 언제든지 차에 치일 수 있다는 것을 저 세계에서 몬스터며 적들이며 들이받고 다닐 때 생각이나 했던가?
“그나저나…”
영수는 창밖으로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중얼거렸다.
“트럭에 받혀도 안전할 차가 필요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