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21)
1년에 얼마면 되죠?
1년에 얼마면 되죠?
현대인들에게 차(車)란 사람과 짐을 안전하게 실어나르는 기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차가 곧 자신의 직업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차가 집이고 누군가에게는 애인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차가 성공의 이정표, 열정의 상징으로 남들에게 과시하고 자신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새 차를 사려는 영수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차의 본래의 의미인 기능이었다.
‘받혀도 안전하고, 받아도 안전해야 한다…’
어차피 돈이 문제가 되지 않으니, 차의 출력이나 스피드, 내부장식이나 편안함 같은 것은 상관없었다.
남자들의 모스트 원티드 카라는 스포츠카도 소용 없고 투박해도 좋으니 무조건 강하고 튼튼해야 했다.
탁닥타닥…
영수는 키보드를 두들겨 국내 최대 규모의 차량 관련 웹사이트인 보베두림에 사연을 남겼다.
형님들이라면 어떤 차를 타시겠습니까?
형님들 덕분에 최근 들어 잘 풀려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어요. 트럭이 조수석을 쳤는데 조수석에 앉아있었습니다.
완전히 죽을 뻔 했고요. 안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격은 몇억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안전이 최우선이고요.
트럭이 아니라 총폭탄을 갈겨도 멀쩡할만한 차 추천 부탁드립니다.
승용차도 좋고요. 오프로드 차량이나 SUV면 더 좋습니다. 내부에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으면 더 좋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추천 부탁드리겠습니다. 형님들.
딸칵.
이제 등록을 마쳤으니 댓글을 기다리면 된다.
예전에 트럭을 살 때도 이곳을 이용해서 매물을 알아봤다.
확실히, 국내 자동차 커뮤니티 중에선 보베두림의 유저들을 따라갈 곳이 없었다.
얼마지 않아 첫 번째 댓글이 바로 달렸다.
남자라면벤츠:
아이디가 곧 내용!
‘벤츠라…’
예전이라면 가격이 부담돼서 생각도 못 해봤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영수에게는 좋은 옵션 중 하나였다.
타다다닥…
ㄴ영구아니라영수 :
감사합니다. 바로 매장으로 달려가 보겠습니다.
앙기모로만든띠 :
이 양반 지난번 트럭 산다고 글 올렸던 분 아니던가?
로또라도 맞으셨나보네요. 축하드립니다. 뽀찌 좀 주세요. 제 계좌는요. 군민은행 837601-00-000000
옥타곤의황자 :
벤츠 매장 가시는 중? 마이바흐 풀만 가드를 사세요! VR9등급임!
ㄴ옥타곤의재앙 :
마이바흐 풀만 가드 국내에서 안 팔지 않나? 주문해야 올걸요? 정말 돈 정말 많으면 독일에 주문해서 사는 것도 추천하지만, 그 차는 리무진이라 운전자 필요할 겁니다. 길어서 불편한데 풀만 가드보다 그냥 가드 타는 게 나을 겁니다. 이것도 VR9등급입니다.
ㄴ옥타곤의황자 :
돈 많이 벌었다잖아요. 운전사 넣고 풀만 가드가 좋지 않겠나요?
ㄴ옥타곤의재앙 :
직접 운전하는 손맛도 손맛도 있어야죠.
네아들아빠 :
오프로드도 달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G바겐 괜찮지 않을까요? 운빈도 그거 탄다던데.
쉰살임당 :
놀드형 차를 타세요. 벤츠 유니목! 트랙터랑 트럭 중간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개꿀임!
반포반파차량주 :
유니목 오바 아님? 차라리 아트록스나 아록스, 아테고 같은 트럭을 타고 다니라고 하지?
ㄴ쉰살임당 :
오, 괜찮을 듯?
영수는 스마트폰으로 보베두림의 댓글을 확인했다.
첫 댓글이 벤츠로 달려서 자신이 벤츠 매장으로 달려왔듯이 다음 댓글들도 벤츠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예전에 대학을 다닐 때 독일 유학파 출신인 한 교수님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김치는 한국이 제일이고, 차는 독일이 최고다.’
교수님은 스스로 언행일치를 실행하셨다.
비록 집이 없어서 대학의 교직원 기숙사에서 생활하셨지만, 차는 대학에서 제일 비싼 S클래스를 타고 다니셨다.
그걸 보면서 나는 저런 카푸어(Car-poor)는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벤츠 전문 매장이었다.
딸랑!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권동일 딜러입니다.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문이 열리자 입구 앞에 대기하고 있던 딜러가 다가왔다.
귀여운 인상에 입에 가득한 미소,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친한 동생처럼 느껴지는 젊은 딜러였다.
그런데 그의 뒤편으로, 유리로 둘러싸인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딜러들이 이쪽을 보며 뜨악 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추리닝을 입고 그냥 나왔던가?’
옷이 늘어지고 닳아 헤지기 일보직전인 메이커도 없는 추리닝, 아무래도 고급차를 사러 온 복장치고는 상당히 떨어지는 옷들이었다.
“안쪽에 방에서 고급 차라도 한 잔 하시면서 차를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후후.”
하지만 권동일 딜러는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농을 걸었다.
그는 영수를 가까운 방으로 안내하며 먼저 움직여 자연스럽게 뒷방 사람들을 몸으로 가렸다.
‘센스 있네.’
영수가 커피 테이블에 앉자 그는 한쪽에 놓인 정수기를 향해 다가갔다.
“어떤 차로 하시겠습니까? 커피? 아이스티? 아니면 녹차로 드릴까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타는 차 이야기로 넘어갈까요?”
권동일 딜러는 웃으면서 커피 테이블 밑에서 팜플렛을 꺼냈다.
“어떤 차를 원하시나요? 매장 내에는 세단, SUV, 스포츠카 등 다양한 차종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당장에 사서 타고 갈 수 있는 차도 있나요?”
“물론이죠. 매장에 전시된 상품은 바로 인도가 가능한 물품입니다. 여기 전시되어있지 않아도 차고에 입고되어있는 차종이라면 2시간 안에 받아가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원하시는 차종이 있으신가요?”
“잠시만요.”
영수는 게시판에 달린 댓글을 읽으며 떠듬떠듬 말을 이어나갔다.
“이 매장에 마이바흐 풀만 가드 하나랑… S600 마이바흐 가드, G65 G바겐이랑 유니목? 아트록스랑 아록스, 아테고… 있습니까?”
“아, 승용차가 아니라 트럭도 보시는군요?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벤츠에서 나오는 트럭과 승용차를 동시에 다루는 곳이 바로 저희 매장입니다.”
“제가 말한 물건들은 다 있는 건가요?”
“현재, 풀만 가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곳에 진열되어있거나 차고에 있습니다. 그런데, 차와 트럭을 세트로 구하시려는 겁니까?”
“아니요. 지금 말한 거 전부 다 풀옵션으로 사겠습니다. 풀만 가드도 하나 주문해주시고요.”
“전부요?”
“네.”
땅땅!
그때 밖에 있던 딜러 중 하나가 차 키로 사무실의 유리문을 두들겼다.
아까부터 유리에 슬쩍 귀를 가져다 대고 듣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손짓해서 권동일 딜러에게 나오라고, 하며 뒤쪽의 안전요원들을 가리켰다.
딱 보기에도 자신이 돈이 없어 보이니 내쫓으려는 거였다.
물론 당연한 의심이겠지만, 기분은 나빴다.
영수가 막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려는 찰라.
“아이고 이거, 저희 상사께서 귀인을 알아보고 제게 공을 뺏어가시려고 하나 봅니다.”
권동일 딜러가 다급히 문앞을 가리며 밖을 향해 가라고 손짓을 했다.
“고객님, 제발… 제가 이제 막 이직해와서 실적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분 말고 저랑 계약해주실 거죠?”
권동일 딜러는 호들갑을 떨면서 두 손을 비볐다.
눈이 가는 귀염상인 데다가 그의 입가에는 항상 상대방에게 전파성이 강한 기분 좋아지는 미소가 맺혀있었다.
“이제 막 이직하셨다고요?”
“네. 이제 막 2주일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중고차를 3년정도 팔았는데, 정말 차다운 차를 팔고 싶어서 벤츠로 이직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성사만 되려고 하면 저렇게 와서 자기 손님으로 만드는 바람에 아직 실적이 하나도 없지 뭡니까? 헷…”
“흠…”
‘판매 경험도 풍부하고…’
영수는 권동일이라는 딜러를 자세하게 훑어봤다.
잘생겼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귀염상으로 친근한 이미지의 마스크였다.
거기다 스스로 그 부분을 잘 알고 있는지, 위기에 대처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것이 꽤 프로다웠다.
“그런데 전부 사시겠다고 하셨죠? 차는 어떻게 가져가실 겁니까? 혼자서 다 가져가시지는 못할 테고 장소를 지정해주시면 그곳으로 차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딜러님 눈에는 제가…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까?”
“네.”
권동일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제가, 추리닝을 입고 있는데도요?”
“보통 자신감이 아니라면, 벤츠 매장에 추리닝을 입고 오시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예전부터 귀한 분을 보면 눈이 초승달처럼 변하는 특성을 타고났습니다.”
권동일은 이쪽을 바라보며 초승달처럼 얇아진 눈으로 눈웃음을 보였다.
“보셨죠? 그런데 다른 곳 가셔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나사 같은 곳에 저 끌려가요.”
권동일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그가 한 말이 진짠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진짜 타고났군…’
“아, 마침 조회해보니까 마이바흐 풀만 가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차고에 있다고 하는군요. G바겐이나 마이바흐 S 가드는 매장 내에서 바로 픽업해 가실 수 있습니다.”
“혼자다 보니 한 대밖에는 못 끌고 가겠군요. 우선 G바겐으로 끌고 가겠습니다. 명함을 드릴 테니 나머지는 제 공장으로 배송해주십시오. 그리고… 여기 계좌이체 됩니까?”
“네. 당연하죠.”
권동일 딜러는 신나게 웃으면서 커피 테이블 밑에서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영수는 그가 계약서를 챙기는 사이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을 커피 테이블 위로 쓰윽 밀었다.
“이곳으로 배송하면 되는 건가요?”
“1년에 얼마면 됩니까?”
“아, 연비요? 잠시만요 차가 많아서 계산을 해봐야…”
“아니, 연비 말고요.”
“네?”
“권동일 씨를 스카웃하려면 1년에 얼마 드리면 되는지 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