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29)
역사의 터닝 포인트
역사의 터닝 포인트
내비에 미션이 완료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역시…’
한두 번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몬스터 로드를 진정으로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로 확보하는 거다.
앞으로도 이곳을 계속 이곳을 지킬 수 있으려면 병력을 상주해야 했는데, 당연히 영지에는 그 정도의 여유 병력은 없었다.
그 병력이 꼭 인간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었으니 오크가 딱이지 않은가?
“그런데 영주님. 대체 저 오크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기에 저들이 무릎을 꿇는 겁니까? 혹시, 마법 같은 걸 부리신 겁니까?”
조수석에 타고 있던 이사이온이 궁금증을 가지며 물어왔다.
“앞으로 이 길을 순찰하고 인간들을 지켜주면 먹을 것을 준다고 했더니 제 밑으로 들어온답니다.”
영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해주었다.
“네에? 아, 그, 그렇군요. 아, 하, 하…”
영수가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이사이온이었지만, 이번 일로 또다시 큰 이질감을 느꼈다.
‘역시, 괴팍한 마법사…’
하지만, 어쩌랴?
영수는 자신의 주군이고 기사 준비생으로 6년을 떠돌았다.
영지의 이전 등 계약 해지 사유가 생기더라도, 참고 섬기는 수밖에 없었다.
“영주님이 돌아오셨습니다!”
“길을 비키시오!”
성문 앞이 소란스러웠다.
말이 끌고 있는 마차들과 보따리 짐을 짊어진 사람들은 서둘러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비켰다.
그 사이로 한 대의 트럭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거 봐, 말도 안 달린 마차야…”
“자네는 이곳이 처음이군? 저건 이곳의 영주님이자 마법사이신, 한 남작님의 마차라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다음에는 이렇게 오버하지 말라고 말을 해놔야겠군…’
“충!”
성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덜덜 떨며 이쪽을 향해 예의를 차렸다. 마치 군대에 방문한 정치인이나 별 많이 단 장성을 대하는 것처럼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마음에 안 들어…”
영수의 중얼거림에 이사이온이 움찔거렸다.
“누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말씀만 해주시면 제가 재교육을 확실하게 시켜 놓겠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을 비켜나게 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만 하라고 하십시오. 평소 어떻게 근무하는지 상태를 점검하는 거라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알았다고 대답하는 이사이온의 얼굴은 살짝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역시 마법사군 하는 표정이다.’
영수도 이제는 저 표정을 너무 자주 봐서인지, 말로 안 해도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온 게 다르다 보니, 자신이 내리는 명령은 그들에게는 이해가 불가능한 것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다들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역시 마법사는 다르군.’ 하면서 넘어가 버렸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이쪽은 편하지만…’
문제는 최근 들어 이사이온이 ‘역시 괴팍한…’, ‘역시 사악한…’ 따위의 말을 중얼거린다는 것이다.
못 들은 척했지만, 지난번 신체 강화 이후로 군대에서 얻었던 난청이 사라지고 이전보다 더 작은 소리도 잘 듣게 되었다.
이사이온은 무려 이틀 동안 같이 지냈다.
영지 사람 중 자신과 가장 오랫동안 있던 사람이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어떨까?
‘이미 최고 권력자 중 한 사람의 영지를 박살을 내놨으니, 좋은 이미지를 기대하는 건 무리이려나?’
어차피 이곳에서 이미지 가지고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마케팅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이보다 제대로 된 노이즈 마케팅도 없었다.
‘구설수에 오르면 바이럴 마케팅인가?’
피식.
그때 조수석에 눈치 보며 앉아있던 이사이온이 창밖을 보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허어… 영주님 가시는 길에서 이게 뭔 짓인지… 경비병이 너무 적어서 제대로 역할을 못 한다는 건가?”
‘뭔가 영지에 문제라도 발생한 건가?’
창밖을 두리번거리니 이전과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길가에 있는 건물의 옆, 골목의 그늘진 곳이나 건물 때문에 그늘진 곳에 천 쪼가리나 옷 등을 깔고 누워있거나 구걸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노숙자?’
영지에 와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노숙자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곳은 농사가 잘된다고 들었다.
잉여 생산물이 넘처나 곡물의 가격은 다른 영지보다 더 쌌고, 이곳의 상인들은 모두 곡물을 가져다 다른 영지에 판다고 했다.
거기다 바다를 끼고 있어서 누구나 허락 없이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었기에 곡물이 아니라도 누구나 배 굶지 않을 정도인 곳이었다.
‘분명 세금도 40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줄였는데…’
거기다 노숙자들 중에 간혹 보이는 남자들은 청년이 아니라 대부분 노인이거나 어린아이들이었다.
연례행사처럼 단체로 이혼한다거나, 가족이 해체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고는 이런 식으로 노숙자들이 다량으로 발생하는 일은 불가능할 거다. 그게 말이나 되는가?
“영주님 잠시만 마차를 세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차를요?”
끼이익.
차를 세우자 이사이온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내렸다.
그는 허리춤에 들고 있던 검을 뽑아 들더니 빠르게 노숙자들을 향해 달려갔다.
“네 이놈들! 이곳은 영주님이 다니시는 중앙대로이다! 너희 같은 놈들이 있을 곳이,”
빠아앙!
영수는 클락션을 울려 그를 제지했다.
“멈추십시오!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아, 저는 영주님 가시는 길에서 유랑민들을…”
“칼 집어넣고 타십시오. 명령입니다!”
“명!”
스르릉…
딸칵.
이사이온은 전속력으로 뛰어 빠르게 차로 복귀했다.
화가 난듯한 영수의 표정을 본 탓이다.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겁니까?”
“그, 그냥 저는 영주님 가시는 길에 유랑민들이 있어서 그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려고 한 겁니다.”
마치 당연하다는 말투와 표정,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제스쳐였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영수도 마찬가지였다.
거지, 유랑민이 눈에 보인다고 칼부터 뽑아 든다.
생명 존중 윤리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세상이라니 대체 어떻게 돼먹은 곳인지…
하지만, 분명 이것은 이사이온만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닐 거다.
“후우… 일단 사태를 파악할 때까지, 사고를 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계속 내버려두십시오. 영주부에 도착하면 다른 기사나 병사들에게도 전파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우선 영수는 사고나 희생이 벌어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돌아가기 전에 제대로 해결해 놓고 가야겠군.’
그런데 고작 이틀 영지를 비웠을 뿐인데, 없던 유랑민들이 늘어났다니…
“혹시 이 유랑민들이 어디에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난 건지 아십니까?”
“아마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전쟁 때문일 겁니다.”
‘아로네 왕국과 전쟁 중이라고 했던가?’
전쟁이 나면 사람들은 당연히 피란을 간다.
그중에서도 돈이 많은 이들은 이주를 할 테고, 돈이 없는 이들은 이렇게 유랑민이 될 텐데… 분명 분쟁 지역은 왕국의 북쪽 끝이었고 이곳은 남쪽 끝이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꽤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유랑민이?
이곳은 영지마다 인간이 다니는 길이 이어져 있긴 하지만 간혹 몬스터들이 출몰한다고 한다.
특히 밤에는 몬스터가 많이 나와서 사람들은 무력을 갖추거나 용병을 고용하지 않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설마, 이 근처에 있는 영지까지 전쟁의 여파가 끼친다는 건가?’
“전쟁이 생각보다 규모가 큰가 보군요.”
“전쟁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유랑민이 발생한 것을 보니, 그마저도 끝나겠군요.”
“유랑민이 발생하면 전쟁이 끝난다고요?”
“네. 저렇게 노인이나 어린아이, 여자들로 이뤄진 유랑민들이 바로 전쟁이 끝난다는 증거입니다.”
“왜죠?”
“전장으로 나가는 징집병들은 훈련이 끝나면 대부분 무기를 외상으로 사게 됩니다. 살아 돌아온다면 대부분 빚을 갚습니다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에는 남은 가족들이 빚을 갚아야 합니다.”
“허… 전쟁터에 내보내면서 무기를 주는 게 아니라 외상으로 사게 만든다고요?”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전쟁을 하는데 무기도 제대로 쥐어 주지도 않고 싸우라고 하다니, 이기려는 생각은 있는 걸까?
“징집병들에게 주어지는 무기는 나무창과 아군임을 구분할 수 있는 색깔천뿐입니다. 그들은 비싼 가격인지는 알지만,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외상으로 무기를 사죠. 아주 치사한 짓이지만… 예전부터 계속 그래 왔고, 심지어 기사들의 병력 관리 교범에도 실려있을 정도입니다.”
“대체… 대체 어떤 놈들이 병사들을 징집해 놓고 무기를 파는 겁니까?”
“대부분이 전쟁상인들이지만, 그 전쟁상인들을 움직이는 것은 영주들이죠. 전쟁에는 큰돈이 드니, 그것을 벌충하는 차원이라고…”
“허… 그럼 지금 여기에 있는 유랑민들은, 빚을 갚지 못해서 야반도주한 사람들이라는 겁니까?”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아니면 빚을 갚으려고 하다가 집까지 팔아서 유랑민이 되었거나, 귀족에게 독촉을 당해서…”
영수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세계의 귀족들은 전쟁을 마치 사업의 기회처럼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다 있어?”
“…”
영수의 분노에 이사이온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눈치를 살폈다.
이틀 동안 이렇게까지 감정 표현을 격하게 하는 것을 처음 봤다.
심지어 라이트딜레이 후작을 상대할 때도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짓던 영수가 아닌가.
꿀꺽.
이사이온은 조심스럽게 침을 삼키고 다소곳이 앉아 조수석 손잡이를 붙잡았다.
영수는 이후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끼이익.
그러는 사이, 차는 영주부에 도착했다.
“충!”
“모든 가신들에게 회의를 소집한다고 전해주세요.”
한국령 영주부 회의실.
원탁 테이블을 둘러싼 의자에는 가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들과 관리자들이 착석하고 있었다.
철컥.
“늦어서 죄송합니다. 상행을 준비하느라…”
상행을 준비하던 람찬이 가장 늦게 도착해 한쪽에 앉았다.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영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오면서 보셔서 알겠지만, 오크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임무는 모두 이사이온 기사님께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당장에는 먹을 것을 전달하는 것과 인간의 말을 쓴 팻말을 전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 몬스터로드를 통과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안내만 하시면 될 겁니다.”
이사이온은 덜컥 놀랐다.
오크들을 상대하라니, 충성맹세를 철회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떻게 된 기사란 말인가? 거기다 차에서 완전히 열 받은 영수의 모습을 봤었다.
거절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 밖이었다.
“느, 능력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맡기시면 행하겠나이다.”
“크히모스.”
“넷!”
“기사들의 숫자제한 말입니다. 그건 왕법에 있는 거죠?”
“네.”
“기사들을 더 뽑도록 하겠습니다. 기사 모집 공고를 내려서, 신분과 경력만 확실하다면 누구라도 뽑으십시오. 일차로 500명 정도, 우리는 앞으로 병사 대신 기사만 뽑을 겁니다.”
병사 대신 기사라니, 놀라운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왕법을…”
“좀 전에 라이트딜레이 후작령에서 성을 반파시키고 오는 중입니다. 이런 제가 국왕 눈치를 봐야 할까요?”
“…”
크히모스는 영수를 따라갔던 이사이온을 바라봤다.
그가 창백한 표정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사들의 훈련을 게을리하지는 마십시오. 기사를 외부에서 수혈하는 것은 어쨌거나 임시방편입니다. 훈련 총 책임자는 보잭임을 잊지 마십시오.”
영수는 보잭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더 이상 부담스러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보잭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하메르.”
영수는 영주대리인 하메르를 불렀다.
“이제부터 라이트딜레이 후작령 쪽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이 뚫렸다고 사람들에게 알리십시오. 람찬이 운용하는 상단이나, 개인 상인들도 그 길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몬스터 로드를…”
“확보했습니다.”
“헛! 언제… 아니 어떻게? 주군, 길은 그렇게 쉽게 확보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그렇게 긴 거리는…”
군사 총책임자인 크히모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가며 여러 사정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이사이온에게 물으십시오. 이제부터 그가 몬스터 로드의 관리자입니다.”
“네?”
이사이온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크히모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주님께서 확보하셨다고 해도,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그리로 가면 호위병력이 배 이상 필요할 것이고 살아서 도착할지도 의문입니다.”
“제가 누굽니까?”
“영주님은 마법사…”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말에 모두가 ‘역시나 마법사’라는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메르, 최근 생긴 문제라거나, 어려운 일… 제게 보고할만한 사항은 없습니까?”
“큰 문제는 없습니다.”
“유랑민이 늘었더군요.”
“아, 그 부분은 아무래도 제 소관이라기보다는 경비나 군사문제를 총괄 책임지는 크히모스 경의 소관으로서,”
쾅!
영수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쩌적.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테이블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다.
“영지 전체의 문제는 하메르의 소관입니다. 잊으셨습니까? 하메르가 영주 대리라는 사실을? 제가 없어도 영지의 전체적인 부분을 다 파악하고 관리하라는 의미입니다. 군사 부문까지도요.”
“죄, 죄송합니다.”
하메르는 당황해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후우… 죄송해 하실 건 없습니다.”
‘수동적인 태도가 만연한 이 사회가 문제지…’
“여러분들 앞에서 화를 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께 화낸다고 될 일이 아닌데… 그리고 하메르님. 유랑민이 늘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모두 죽이거나 내쫓게 하겠습니다.”
“후우… 역시나…”
영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사람들이 하는 생각은 비슷했다.
퍼주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생명에 대한 존중 의식과 측은지심이라는 것은 있어야 하는데, 생명을 너무 경시한다.
아마 신분제에 기반을 둔 선민의식 같은 생각들이 뼛속까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귀한지 모르고 저런 말을 하는 거다.
영수는 그래서 화가 났다.
이들의 생각이 아니라,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이곳 전체에 대한 분노였다.
“앞으로 유랑민들이 오면 그들이 살 수 있는 주거지를 만들도록 도와주십시오. 필요하다고 하면 최대 은화 다섯 개까지 빌려주고요.”
“공짜로 말입니까?”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2년의 기한을 줄 테니, 여섯 개로 갚으라고 하십시오. 집터도 공짜는 아닙니다. 은화 여섯 개로 5년 안에 갚으라고 하십시오.”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낚시를 가르치든 조개 따는 칼을 주든, 그들이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은 없도록 교육하십시오. 다음번에 다시 올 때 일거리를 마련할 것이긴 하지만…”
예전에 섬유 업계에서 사업을 했던 영수에게는 이곳에 와서 어민들이 만들던 어설픈 그물과 그들이 입고 다니던 옷을 봤을 때부터 머리에 바로 떠오른 사업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방직업이다.
현대식의 방적기나 직조기를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산업혁명 시절에 사용하던 방적기와 직조기의 설계도와 샘플 기기 몇 개를 만들어 오는 것은 가능할 거다.
방직업은 크게 교육도 필요 없고, 단순 반복만 하면 되는 노동력 집약적 사업이다.
유랑민들은 그곳에서 일하게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영주님, 그렇게 하게 되면 소문이 퍼져서 많은 유랑민들이…”
“상관없습니다. 저는 이곳을 기점으로 많은 것들을 벌일 거고 사람은 많으면 좋습니다. 이건 하메르에게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들 제 말을 아시겠습니까?”
“뜻을 따르겠습니다.”
가신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영수는 이사이온이 유랑민들을 대하는 것을 보고난 이후, 어쩌면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짐했다.
이곳을 기점으로 이 세계에 산업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삶이 윤택해지면, 사람들의 의식은 알아서 성장한다.’
방적기와 직조기는 그 시작에 불과했다.
“혹시 여러분은 돈과 신분, 군사력이 권력의 전부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하메르가 가신들을 대표해 대답했다.
다른 가신들을 둘러봤지만 모두 같은 뜻인지, 아니면 눈치를 보는지 말이 없었다.
“아닙니다.”
영수는 고개를 저었다.
“권력은 인구 수에서 나옵니다.”
중국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기술력과 개방이 뒤따라야겠지만, 중국은 경제 개방 이후에 그들의 많은 인력을 활용하여 짧은 시간 내에 전 세계의 공장이자 힘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다.
그게 다 인구가 많아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앞으로 영지에 들어온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 마십시오. 만일, 제 허락 없이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은 저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가신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벌컥!
그때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렸다.
“허억, 허억, 크, 큰일입니다!”
병사가 문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크히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사를 확인했다.
“자네는 수문장 아닌가? 대체 무슨 일이기에 영주님이 소집한 회의를 방해한 건가?”
“지금, 성문에, 헉 헉… 갑자기, 엘프가 영주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