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46)
본 계약은 이집트에서 기원한…
본 계약은 이집트에서 기원한…
카르헤인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영수는 별로 긴장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올 것이 왔군하는 표정이었다.
엘프들이 찾아오는 것은 예상하고 있던, 아니 바라고 있던 시나리오였다.
분명 처음 찾아온 엘프놈은 MSG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만 절박했지 행동은 전혀 절박하지 않았다. 탱자탱자 놀기만 하고, 처음부터 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분명 영지에 첩자로 잠입했다가, 동료들을 모아 MSG를 훔쳐갈 생각이었겠지.’
“영주님, 엘프들의 숫자가 상당합니다.”
“크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
‘저 표정이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얼굴로 ‘사악한 흑마법사님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바로 그 표정.
“엘프가 백이 온들 천이 온들, 제가 질 것 같습니까?”
“그런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가시죠.”
영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밖으로 나왔다.
‘마침 잘 됐어. 식물의 성장을 부스트 하는 기술은 한 번에 여러 개에 못 하는 것 같던데…’
아마도 엘프가 첩자질을 버리고 예상보다 빠르게 다른 엘프들을 불러온 이유는 힘이 달려서일 것이다.
계약서 때문에 세 달에 무조건 한 밭 분량씩을 줘야 하니 말이다.
뿌드드드득…
마당에 도착하자 엘프들이 이쪽을 겨냥하며 화살을 쟀다.
“멈춰라! 인간!”
경고성을 발하는 엘프들만 서른, 경고성 없이 화살을 겨누는 엘프들의 숫자는 한 번에 세어지지도 않았다.
수백이 넘는 엘프들, 이런 위기상황에서도 병사들 중 일부는 넋을 놓고 엘프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엘프들의 아름다움은 종특인 것 같았다.
“무슨 상황입니까? 손님입니까? 아니면 적입니까? 목적이 뭐랍니까?”
“그건 아직…”
“기사님들을 서른이나 고용했는데, 영주부까지 엘프들이 영주부로 들어오는 걸 그냥 두고 보고 있었습니까?”
카르헤인이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빠르고, 성벽을 넘어서 침투하는 통에 발각이 늦었습니다.”
“성벽을 넘어서 침입한 것이 몬스터라면 어떻게 하려고 했습니까? 당장 가서 크히모스를 불러오십시오! 이번 일은 확실히 문책해야겠군요.”
“네!”
뿌드드드득…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려는 카르헤인을 향해 엘프들의 화살이 겨누어졌다.
“영주님, 그런데 저쪽에서 보내줄 것 같지가…”
카르헤인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엘프들을 가리켰다.
“괜찮습니다. 손님들이 놀라셔서 그러는 모양이군요. 손님은 제가 상대할 테니,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영수는 카르헤인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손짓했다.
뻘쭘한 표정으로 있던 카르헤인은 엘프와 영수를 잠시 번갈아가면서 바라봤다.
당장에 화살에 맞아 죽느냐, 아니면 사악한 흑마법사에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쿵!
고민을 마친 카르헤인은 영수에게 군례를 올리며 성큼성큼 엘프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나갔다.
엘프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얼굴 앞까지 화살을 들이댔지만, 카르헤인은 흔들리지 않고 그들의 사이를 유유히 걸어 영주부를 빠져나갔다.
“그래서, 손님들은 용건이 무엇입니까?”
영수는 천천히 엘프들을 향해 다가갔다.
“조심해라, 놈은 높은 수준의 마법사라고 정령이 말해줬다.”
무기를 들고 있음에도, 엘프들은 움찔하며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났다.
“이런, 놀라실 것 없습니다. 제가 감히 고귀하신 엘프님들을 헤치겠습니까?”
‘고급 노동력인데.’
영수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속마음이 살짝 세어나가서 그럴까? 엘프들이 흠칫 놀라며 다른 병사들을 겨누고 있던 화살을 모두 영수에게 겨누었다.
“더 이상 다가오면…”
언제라도 놓으면 나갈 것처럼 팽팽한 활시위.
“멈춰라!”
그때 엘프들 사이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엘프들 중에서도 가장 몸매가 좋고 아름다운 여자 엘프가 무리들 사이로 빠져나왔다.
엘프들이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비켜주는 것을 보니, 이중에서 가장 높은 신분을 가진 것 같았다.
“그대, 사악한 마법사여! 대체 우리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아들이라고요?”
“모르는 척하지 말아라!”
‘애 엄마치곤 너무 젊어 보이는데, 이것도 종특인가?’
영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사악한 미소가 아닌 소위 말하는 ‘영업용 마스크’였다.
“혹시, 목화를 키우기로 했던 그 남자 엘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우리 라무레스에게 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
‘라무레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남자 엘프의 이름조차 모르고 엘프라고만 부르고 있었다.
“내 아들은 자유롭고 느긋한 성격이다. 정령술에 대한 재능이 충분한데도 정령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일부러 계약하지 않던 녀석이다.”
‘아하…’
말로는 정령술로 금방 한다더니, 정령과 계약한 적이 없었으니 그동안 일을 못했던 거다.
“그런데 이곳에 며칠간 있더니 갑자기 마을에 와서 정령들과 계약을 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렇습니까?”
‘앞으로는 밭일을 제대로 하겠군.’
엄마 엘프가 이해가 안 갔다.
자신의 덕분에 기술도 없이 한량으로 살던 아들이 기술이라도 배웠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라무레스가 다른 엘프들에게 생명의 축복을 해달라고 구걸하고 다녔다. 일을 해야 한다고? 내 아들이, 왜?”
‘도둑질할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군. 그냥 한량이었던 거야. 그런데… 내가 마족의 마법을 써서 아들과 계약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군.’
“어떻게 고작 700살밖에 못사는 애를… 어떻게 일을 시킬 수가 있지?”
엄마 엘프는 헬리콥터맘급으로 아들을 과보호했다.
‘한량에 마마보이라니, 최악이다.’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군요. 그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게 된 이유를 혹시 아십니까?”
“이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사람의 성격이 그렇게 한 번에 바뀌는 마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흑마법! 그대가 흑마법을 부렸으니 내 아들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맞는 말이라 조금 뜨끔했지만, 얼굴에 쓰고 있는 영업용 스마일은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페어리 더스트에 대해 아십니까?”
“그걸… 인간인 네가 어떻게 아는 것이냐?”
다른 엘프들까지 모두 놀라는 것을 보니, 라무레스가 그동안 벌인 일은 모두 그의 독단이었던 것 같았다.
계약이나 흑마법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고 온 거다.
정보의 비대칭은 항상 한쪽에 이득을 발생시켜준다.
정보를 더 많이 가진 건 이쪽이다.
‘고맙게도…’
“성인식에 꼭 필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페어리퀸의 고귀한 희생으로, 더 이상 구할 수 없고, 엘프들은 고작 700살밖에는 살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나와 몇몇 엘프들만 남은 페어리 더스트로 성인식을 치렀지. 하지만, 내 아들 같은 엘마 전쟁 이후 세대 아이들은 아무도 성인식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드님이 하는 일과 관련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아드님이 왜 일을 하기 시작했는지 아십니까?”
“페어리 더스트… 때문이라는 것이냐?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페어리 더스트라니…”
“설마, 그게 사실이라면 2세대도 성인식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엘프들이 술렁거렸다.
“아드님은 저와 정당한 거래를 했던 겁니다. 영웅적이지 않습니까? 아드님은 엘프의 미래를 위해서 혼자 희생하려고 한 겁니다.”
“우리 아들이 엘프의 미래를 위해서? 역시 내 아들은…”
히말라야 만년설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만 있던 헬리콥터 엘프맘의 표정이 눈에 띄게 풀어졌다.
“그런데 인간은 물건을 거래할 때 돈이나,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아시죠?”
“페어리 더스트를 받기 위해서 일한다는 말이냐?”
“맞습니다. 스스로 고귀한 희생을 하겠다더군요.”
“내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엘프맘.
“그런데, 이거 사기 아닌가? 인간이 페어리 더스트가 어디에서 나서? 페어리 더스트가 뭔지 구분도 하지도 못할텐데…”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영수는 웃으면서 영주부의 주방을 향했다.
뒤에서 엘프들의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페어리 더스트라니, 인간이 그것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페어리 일족은 마왕 디오디몬 발락을 역소환하기 위해 일족을 희생했습니다. 정령들조차 존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는데 페어리 더스트가 따로 있을 리가…”
“분명 인간이 우리 엘프를 기만하는 겁니다. 페어리 일족의 희생을 이용하다니…”
“사실, 라무레스에게는 약간 말을 과장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혹시 어쩌면 우리 모두가 라무레스와 인간에게 속고 있는 것이…”
“노옴! 지금 내 아들을 무시하는 것이냐? 내 아들에게는 원래 날 때부터 영웅으로서의 풍모가 있었다! 너희 놈들 중에 정령과 계약하지 않고도 정령의 말을 들어본 놈이 있었더냐? 성인식을 하지 않고도 정신 감응이 가능한 유일한 아이다. 인간에게 속아 넘어갈 아이가 아니다!”
“물론, 대모님의 외동아들이신 라무레스군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엘프이긴 한데…”
엘프들은 라무레스의 엄마라는 엘프를 ‘대모’라고 불렀다.
엘프 사회에서 크게 한자리 하고 있는 듯했다.
‘외아들이라고 너무 오냐오냐 키웠네…’
버르장머리 없는 한량 엘프였지만, 라무레스라는 엘프는 그래도 나름의 쓸모가 있었다.
이쪽으로 다른 엘프들을 끌고 와줬다는 것.
영수는 웃으면서 주방에 있는 100그램 짜리 MSG 봉투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엘프들이 영수의 손을 주목했다.
“설마 저 결정 모양은…”
대모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다시 술렁이는 엘프들.
“확인해보시죠.”
영수가 봉투를 뜯어 대모, 라무레스의 엄마라는 엘프에게 건넸다.
그녀는 손가락을 봉투 안에 담갔다.
“페어리 더스트는 사실 신들이 즐기던,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조미료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인간. 모양은 비슷하게 흉내 냈다만…”
손가락을 빼 MSG 맛을 본 대모는 그 상태 그대로 눈을 깜빡였다.
“어떻습니까?”
“정말 페어리 더스트야…”
“대모님이 인정하셨어!”
“오… 정말 페어리 더스트라니…”
엘프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는 분위기로 술렁거렸다.
이로써 페이스는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왔다.
“성인식을 위해서는 이게 꼭 필요하시죠?”
“그렇다.”
대모는 당당했다.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당당하게 내 거니까 달라고 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제가 알기로, 엘프님들은 식물이 빠르게 성장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땅과 물의 정령을 사용하고, 엘프의 고유 능력인 생명의 축복을 사용한다면 가능하지.”
“해서, 제안이 있습니다.”
“제안?”
대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시겠지만, 페어리 더스트의 가치는 상당히 비쌉니다. 이것 하나에 무려 20골드죠.”
“돈이라면 나에게도 있다!”
아직 말이 끝나기도 전인데, 성급한 대모가 가슴 게에 손을 넣더니 커다란 돈주머니를 꺼냈다.
쩔그렁.
다른 엘프들도 돈을 꺼냈다.
쩔그렁, 쩔렁…
엘프 모두가 한량이 종특에 감정 호소가 특징인 줄 알았더니, 확실히… 라무레스라는 놈만 한량이었다.
‘먼저 꺼낸 게 너희들의 실수다.’
영수가 가격을 먼저 부른 이유는 어차피 알아본다면 발각될 사실이기 때문이다.
뻔히 발각될 일로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없는 정보를 진실에 섞는다면?
“하지만 그건 인간들끼리 판매하는 가격이고, 엘프와 거래할 때는 그 10배의 가격을 받아야 합니다.”
“설마, 한 봉투에 2플레티넘이라는 겁니까?”
엘프들이 술렁거렸다.
그들이 주머니를 뒤졌지만, 나오는 것은 은화나 금화밖에 없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대모가 눈에 힘을 주며 영수를 노려봤다.
“나 또한 인간과 거래를 했었다. 정체를 숨기고 인간 세상을 경험한 적도 있었고. 그런데 다른 종족과의 거래에서 10배를 더 받는다고? 그런 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모는 앙칼지게 소리치며 손가락질했다.
“네. 맞습니다.”
영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를 내는 대모를 안심시켰다.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이건 페어리 더스트입니다. 세상의 전쟁을 관장하는 높으신 분들 알죠? 그분들이 엘프에게는 특별히 10배의 가격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왜냐?”
영수는 점점 목소리를 낮췄다.
뭔가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액션은 덤이었다.
꿀꺽.
대모가 침을 삼키며 큰 귀를 점점 가까이 가져왔다.
“높으신 양반들이, 고귀한 엘프 종족을 견제하는 것이죠.”
“그런!”
대모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700년만 사는 엘프와 1400년을 사는 엘프… 어느 종족이 다루기 편하겠습니까? 오래 사셨다면, 인간이 어떤지는 잘 아실 것 아닙니까?”
영수의 마지막 말에 대모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오크와 구분되지도 않던, 미개한 인간 놈들을 희생해서 마족에게서 구해줬더니, 오크처럼 번식해서는… 이제 우리 엘프들을 넘을 정도로 힘을 쌓았다 이건가?”
뿌드드득!
대모가 이를 갈았다.
“크윽! 그때 마족들이 인간을 멸종시키게 두었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족들에게 연락을 하겠습니다.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대모님!”
‘워워, 그건 아니지.’
“하하. 인간과 전쟁을 하시라고 이런 말을 해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엘프들은 강합니다. 부딪치면 서로에게 큰 피해가 나겠죠. 그러나 저도 눈치는 봐야 하니, 조금 돌려서 거래 하자는 겁니다. 돌려서……”
영수가 말꼬리를 길게 끌며 대모를 바라봤다.
영수와 눈을 마주친 대모는 뒤로 손짓해 엘프들을 조용히 시켰다.
“마법사는 똑똑하다고 하던데… 좋은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군.”
“네. 맞습니다. 저는 엘프분들게 페어리 더스트를 돈을 받고 팔지 않겠습니다.”
“그럼… 공짜라는 말이냐?”
‘아들이나 엄마나…’
“아닙니다. 저도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죠.”
“대가라…”
“다른 게 아니고 아드님이 하시는 것과 같은 조건입니다. 최근 목화라는 식물을 키우고 있는데, 그 식물을 키우는 것을 도와주는 조건입니다.”
“그래서였나? 내 아들이 엘프들에게 생명의 축복을 구걸하고 다녔던 이유가?”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건이 어떻게 되지?”
“한 밭에서 목화가 솜을 피워내고 그것을 거둬오면, 그때 이것 한 봉투를 드립니다.”
“그것밖에 안 준단 말인가? 성인식에는 그 엘프의 몸무게만큼 페어리 더스트가 들어간다! 고작 이것으로는!”
대모가 화를 버럭하고 냈다.
하지만 영수도 지지 않고 화를 내버렸다.
“페어리 더스트입니다! 고작이라니요! 제가 어떤 희생을 해가면서 이것을 구해오는지 아십니까?”
“그, 그건…”
계속 웃던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니 대모도 당황했다.
“그 부분은 잘 모르겠으나…”
“됐습니다. 어차피 말해야 이해할 수도 없고, 말하면 저의 목숨도 위험하니… 후우… 그냥 없던 것으로 하죠. 앞으로는 깔끔하게 봉지당 2플레티넘으로 받겠습니다.”
영수는 고개를 저으며 아예 대모를 등지고 돌아서 버렸다.
“미안하네. 희생은 고결한 것이지. 자네가 그렇게 희생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대모가 걸어와 영수의 앞에 서서 두 손을 붙잡았다.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아들보단 연기를 잘하는군.’
“하지만, 우리 엘프들도 희생을 했다네. 지금 있는 이 세계를 마족의 손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하지만 그 탓에 이제는 우리 종족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네. 부탁이네. 700살 밖에 살지 못하는 가여운 엘프들을 딱하게 여겨주시게…”
말투가 많이 순화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애초에 영수는 저 700살밖에 살지 못한다는 부분에서 공감이 전혀 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사정이 딱하다니…”
영수는 연민 가득한 눈을 하고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대모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 밭당 하나씩은 턱없이 부족하네. 엘프들의 부족은 세상 곳곳에 퍼져있네. 엘마 전쟁 때 많은 엘프가 죽었다고 해도, 살아있는 엘프들의 숫자는 못해도 100만은 넘을 걸세.”
“흠…”
영수는 고민하는 척 턱을 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떠신가요?”
“어떤…”
“계약을 한 엘프가 다섯 명의 엘프를 데려와서 계약을 시키면, 한 봉지를 드리겠습니다.”
“고작… 한 번 말인가?”
“아니죠. 한 밭의 경작이 끝나면 다시 계약하는 것으로 쳐서 페어리 더스트를 다시 한 봉지 드리겠습니다.”
“만일, 그 다섯 엘프들이 각각 다섯씩을 데려온다면?”
“만일 그렇게 되면, 그분들께도 한 봉지씩을 드리고 처음 다섯을 데려온 엘프 분께도 한 봉지 드리겠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처음 소개한 엘프가 유리하겠군.”
“많은 엘프를 데려온다면, 정점에 있는 엘프는 굳이 일하지 않더라도 페어리 더스트를 계속 얻을 수 있겠죠.”
“흐음…”
“가령 지금 여기서 대모님이 가장 먼저 계약하시고, 뒤에 있는 분들 중 다섯을 데리고 온 것으로 치면 당장에 한 봉지가 생깁니다. 그리고 다른 다섯분이 또 뒤에서 다섯 분씩을 데려와서…”
“엘프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페어리 더스트가 늘어나겠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대모님까지 일하실 필요는 없겠죠?”
“흐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대모의 눈빛이 많이 흔들렸다.
씨도둑질은 못한다고, 라무레스가 한량인 것은 아무래도 모전자전인 것 같았다.
그녀는 뒤돌아서서 엘프들을 바라봤다.
손가락을 허공에 휘젓는 것을 보니, 엘프들의 숫자를 세고 있는 것 같았다.
“빠르시면 빠르실수록 좋습니다. 그럼 더 많이 쌓일 테고, 계약을 먼저 하면 먼저 할수록 이득을 얻으니까요. 그럼… 누가 먼저 계약 하실 겁니까?”
영수의 질문에 대모가 빠르게 돌아섰다.
“내가 먼저 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