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69)
깨끗하게, 풍성하게, 자신 있게!
깨끗하게, 풍성하게, 자신 있게!
지구로 돌아온 영수의 옆구리에는 못 보던 주머니가 하나 있었다.
‘마왕의 아공간 주머니라고 했던가…’
로빈나르에게 받은 선물로, 부피나 무게에 상관없이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아티팩트다.
그 외로도 물품을 생각만 해도 찾아서 손에 쥐여준다든가, 물품을 급속수납하는 등의 기능이 있다고 한다.
고마워하며 받고서 지구로 돌아오려고 내비를 찍었더니, 무게 초과라며 처음으로 이동이 거부되었다.
아무리 마법으로 무게가 줄었다고 해도, 내비는 그대로를 무게로 치는 것 같았다.
물건 정리를 할 겸 안에 있는 것들을 다 끄집어냈더니, 영주부 창고는 물론 마당도 부족해서 영주부 앞 길가에 가득 널어둘 정도로 잡동사니가 한가득 나왔다.
쌍방향 게이트라는 것의 부품들은 일부에 불과했고 아르마겟디움, 흑마석 같은 각종 광물들과 마족들이 사용하던 무기, 방어구, 마법 아이템, 아티팩트들까지…
주머니에서 나온 물건들은 눈으로 대충 보기에도 중량이 수백 톤은 넘어 보였다.
로빈나르가 비싸고 귀하다고 알려주는 것 위주로, 또한 원래 가지고 가려던 것으로만 해서 채워넣었더니, 대략 6, 70톤 정도가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물건이 챙겨졌다.
‘아무래도 차체 중량 96톤만 가지곤 부족하겠는데…’
차체를 하나 더 강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은 강화포인트를 조금 더 모으고 나서 하기로 했다.
무게까지 줄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는 이것만 있으면 미드랜드와 지구를 오갈 때 부피의 구애를 받지는 않고 물건을 챙길 수 있으니 큰 이득이었다.
“그나저나…”
영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이번에 미드랜드에서 지구로 가지고 온 것을 하나 꺼내 들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고 어떻게 팔아야 하지?”
영수의 손에 들린 것은 스크롤이었다.
원래는 마법을 저장할 수 있던 공주문서였던 것이지만, 지금은 마법이 담겨있는 스크롤이었다.
라브카브라슴.
마케팅팀의 젊은 오성무 대리의 머리카락이 자라나도록 했던 바로 그 마법이 담겨있는 주문서가 아공간 주머니에 한가득 있었다.
1차분으로 가져온 것은 만 장이었다.
파타피시는 고작해야 하루에 100장 정도밖에는 만들지 못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남은 주문서를 만든 것은 바로 로빈나르의 공이었다.
그에게는 자동필기라는 마법과 수천 년간 마법 관련 물품을 만들어내던 노하우가 있었다.
재료를 공수해주자 파타피시가 하루 100장을 간신히 만들던 저장용 스크롤이 단지 한 시간 만에 7천 개 정도 완성되었다.
미드랜드에는 지금 가져온 주문서 만 장 말고도 빈 스크롤이 1만 장 정도 더 쌓여 있었다.
로빈나르가 주문서를 만들어내는 속도를 영수가 마법을 저장하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파타피시가 덕분에 붕 떠버렸지…’
물론, 흑마법사로서의 활용도가 완전히 붕 떠버렸다는 것이지 완전히 아무것도 안 하는 잉여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파타피시는 로빈나르의 잔심부름꾼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양피지를 스크롤 규격에 맞춰 자르고 재료를 날라다 주는 일은 그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징계 차원에서 일을 시키는 것이기에 그를 허투루 놀릴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주문서는 가져왔는데…”
산적해 있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탈모 클리닉을 차리기 위해선 전문의가 필요하다.
물론,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겠으나 이름은 달라도 병원기관이기에 영리 추구는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는 탈모 클리닉 같은 병원에 의약품으로 공급하고 약국에서 파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 또한 문제가 있다.
“마법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인체에 무해한 의약품으로 승인받느냐는 건데…”
헤어샵, 즉 미용실을 차려서 해보는 방법도 생각해봤다.
사람들이 몰리는 순간, 분명히 의료인협회로부터 태클이 들어올 것이다.
자신들의 밥줄을 지키는 부분에는 칼 같은 곳이니까.
“결국… 윗선을 등에 엎고 법을 새로 만드는 수밖에 없는 건가?”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가지고 있는 현금만 수천억이고 현재 만향당에서도 수익이 점점 쌓이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권력이다.
자신에게는 권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돈으로 해결할 것은 아니었다.
“도준이가 잘 있으려나…”
영수는 휴대폰을 꺼내 임도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우… 뚜우우…
-매니저 임도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아! 잠시만요. 저기, 중요한 고객님이라 밖에 나갔다오겠습니다…… 왜 임마?
“요란하게도 받는구나.”
-네가 출퇴근 대충 한다는 소문은 들었다만, 네놈과 다르게! 직장인인! 이 몸은! 회의 중이란 말이다!
일에 찌들어 짜증난 듯한 도준이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적당히 돈 벌면 회사 나오라고 해서 돈 관리나 맡겨야겠네…’
“다름 아니라, 내가 전화한 이유는 새로운 사업 하나 할까 하는 데 네 도움이 필요해서 말이야.”
-사업? 또 하게? 뭐 하긴 만향당이 잘 나가긴 잘 나간다만… 아 맞다. 그런데 너네 기업은 상장 안 하냐? 내가 투자자 잘 물어다 줄 수 있는데 말이야. 너한테 우호적인 지분을 조건으로 해서.
예전부터 도준이는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았다.
만향당이 돈이 된다고 느껴지니, 상장과 투자를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수는 만향당에 남들 돈을 받을 생각이 없다.
‘주주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사양이다.’
“그건 됐고. 너 혹시 네가 알고 있는 힘 있는 정치인들 중에…”
-로비… 로비라도 하려고?
도준이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으며 작아졌다.
수화기 너머로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로비라면 로비인데, 뭐 돈으로 하는 그런 로비는 아니고…”
-그런 게 어딨냐? 로비면 다 돈이지.
“어쨌든 네가 아는 정치인들 중에서 특정한 조건에 맞는 사람이 있으면 식사 좀 하게 다리나 놔줘라.”
-조건? 조건이 뭔데?
“현직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힘 있고… 대머리인 사람은 누구냐?”
-대… 머리?
정치인 최승규.
그는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도 정력적이고 열성적이며, 마초적이고 헌신을 다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으로 평가를 받는 좋은 정치인이었다.
그것은 모두 머리 덕이었다. 아니, 탓이었다.
최승규 자신은 절대 정력적이고 열정적이며, 마초적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실제로도 젠틀하고 외유내강한 스타일로, 아는 사람들은 그의 인상을 보고 쉽게 생각했다가 말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정치가였다.
최승규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서 3대째 정치를 하고 있었다.
나이는 40세이나 마치 50대와 같은 중후한 외모가 있어 연배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는다.
최승규가 노력을 많이 해 노련한 정치인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외관만 봐도 노련한 정치인으로 생각하고 조심한다.
또 친척들 중에도 몇몇이 정치를 하고 있다 보니, 정계에서 파워도 강하고 나름 정치인으로서는 만족스러운 삶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던 삶은 이게 아니다.
‘내게 머리카락만 있었으면…’
최승규의 어린 시절, 그는 제법 잘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다.
나이가 먹고도 외모는 유지 되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연예인이나 하는 게 어떤가 하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 지겹게 겪은, 사람들 말로 죽이는 정치인 따위보다는 더 생산적이고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할아버지도 대머리고 아버지도 대머리라 불안하긴 했다.
그런데…
결국 자신도 대머리가 되었다.
그때는 군대에 다녀온 이후, 24세가 되었을 때였다.
연기자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있었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때 보다 더 빨랐다.
그 뒤로는 걷잡을 수 없이 급속도로 탈모가 진행되었다.
25세에 소위 말하는 소갈머리가 되었고, 더 이상 가발로 자연스럽게 커버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최승규는 이후 연예계의 꿈을 접고 말았다.
연예인이 되겠다고 등한시했던 공부를 다시 했다.
정말 독하게 공부해 일류 대학에 들어갔다.
그 뒤 부모님의 힘을 빌어 유학도 다녀왔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좋은 직장에 가서 경험을 쌓았다.
30세에 사시에도 합격하고 32세에 행시에도 합격했다가, 33세에는 정치에 입문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은 벌써 3선에 당선된 거물 정치인이 되었다.
‘그래 봤자야, 그래 봤자…’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빈 머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트레스로 주변머리까지 더 빠져나갈 뿐…
“후우… 비서, 오늘 스케줄 어떻게 되나?”
스케줄을 마치고 차에 올라탄 최승규 의원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서에게 물었다.
“마지막 남은 스케줄은 이번에 제법 유명해진 만향당이라는 회사의 공동대표 겸 대표이사와의 저녁 식사입니다.”
“신규 기업가인가?”
“네.”
“내가 말했지? 난 그런 놈들하고 엮이는 것 싫다고. 나는 기업가 놈들의 후원 따위 없어도, 우리 가문이 가진 재력과 세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비서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짧고 굵게 끄덕였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만나는 만향당의 공동 대표는 실제로 만향당을 소유주인 인물로서, 정체를 알 수 없고 베일에 싸인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같이 공동으로 전선을 펼치신, 상 의원님의 리스트에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 분이 같이 만나시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습니다만… 취소할까요?”
“후우… 상 의원의 리스트에 있다라…”
최승규 의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도 모르게 머리 앞을 쓸어넘겼다.
어릴 때 생긴 습관이다.
고민이 생기면 머리를 쓸어넘기는 것은.
하지만, 손에는 공허함만이 남았고 최승규에게는 현자처럼 침착한 자신만의 시간이 왔다.
“그래. 상 의원의 리스트에 있다는 것은 당적인 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말이군. 그럼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선을 그어. 어디서 먹든 식사비는 더치페이로 하자고 하게.”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어디론가 연락을 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후우…”
피곤해서 쉬고 싶었다.
식사라도 하며 쉬고 싶은데, 누군가와 만나서 식사한다는 것은 그마저도 공식적인 자리가 되는 것이다.
먹어봐야 밥맛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싫어도 만나야 한다.
정치는 군집생물이다.
혼자만 잘 나갈 수 없다.
상생.
특히나 자신이 속한 정당과 상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당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때로는 자신이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당을 위해서라도 뇌물은 싫다.
짧게 보는 이들은 그것을 못 본다.
길게 정치 생활하기 위해선, 언젠가 그것이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거기다 대가성 없다는 뇌물은 더 싫다.
공짜니까.
‘뒤에서 공짜 좋아하니 대머리 된다는 소리나 해대겠지…’
최승규는 고개를 저으며 좌석에 깊게 파묻혔다.
한 끼에 2만9천9백 원짜리 정식이 존재하고 독립된 방이 많아 정치인들이 많이 찾는 여의도의 한 한식집.
“여깁니다. 최 의원님.”
한 사내가 방 앞에서 최승규를 기다리고 있었다.
“흠… 자네 이름이 임도준이었지? 자네가… 만향당의 대표 이사와 만남을 주선한 건가?”
최승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임도준과 악수했다.
“이름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친구랑 대학 동기거든요. 최 의원님을 만나고 싶다고 사정 사정을 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최승규의 눈이 슬쩍, 임도준의 머리를 스쳤다.
‘얼마 멀지 않았군…’
그에게 호감이 가고 이름을 기억한 이유는 비고 있는 바로 저 비어가고 있는 머리 때문이다.
“들어가시죠.”
“그러지.”
최승규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구, 이거 최 의원님 아니십니까? 선거 끝나고 개인적으로는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그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상 의원.
그의 말 속에 칼이 있었다.
“지역구가 다르다 보니 만날 일이 적더군요. 당선 초반이다 보니, 최대한 제 지역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허허… 아, 이쪽은 이번에 우리를 만나고 싶다고 한 친굽니다. 이름이…”
“만향당의 대표 이사 한영수라고 합니다.”
영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승규 의원에게 인사하고 악수를 청했다.
“최승규네.”
최승규 의원은 영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짧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소개를 마쳤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다.
무리한 부탁을 할 수도 있고, 파파라치나 카메라를 숨겨놨다가 뇌물을 쓰는 모습으로 자신을 엮을 수도 있다.
최승규 의원은 주변을 돌아봤다.
‘눈에 보이는 카메라는 없군.’
“제 명함입니다.”
“음, 내 명함은 비서가 가지고 있는데 좋은 만남 자리였다면 비서가 자네에게도 내 명함을 줄걸세.”
“허허, 최 의원은 깐깐하기로 유명하지. 생긴 거랑 다르게 말이야… 하하하! 다시 자리에들 앉지.”
상 의원이 호탕한 척 웃으며 두 사람을 앉혔다.
최승규 의원은 상 의원을 살짝 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오늘의 탐색 대상인 영수를 바라봤다.
‘그놈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눈이 계속 그의 탐스러운 머릿결에 머물렀다.
‘부럽다…’
그러다 영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드릴까요?”
영수의 입이 열렸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최승규 의원.
갑자기 머리까지 붉히며 인상을 와락 썼다.
“뇌물? 허… 내가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소리를 못 들었는가? 안 되겠군. 김 비서!”
최승규 의원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네? 아… 하하하!”
잠시 벙쩠던 영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이거 참… 죄송합니다만 저는 최 의원님께 돈 같은 건 저도 드릴 생각 없습니다. 제가 지지하는 분도 아니고 같은 지역구도 아닌데, 정치 후원금 한 푼 드릴 생각도 없고요. 제가 번 피 같은 돈을 왜 줘야 하죠? 제가 내는 세금에서 국회의원님들은 월급 다 받아가시잖아요?”
“헛…”
영수의 말에 상 의원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의 얼굴을 본 영수와 최승규의 입가에 피식하고 미소가 맺혔다.
“그래. 내가 오해했군. 나는 국민들에게 받는 세금만으로도 충분하네. 좋은 생각을 가진 젊은이군… 내 오해한 부분을 사과하지.”
최승규는 사과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뭘 준다는 건가?”
“머리카락이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