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75)
민족대이동의 시작
민족대이동의 시작
사각, 사각, 사각…
영수의 손에 들린 가위가 목탄으로 선을 그려둔 원단을 빠르게 오려 나갔다.
“우선 안감과 겉감 천을 잘라냅니다. 이 사이에 솜을 넣어서 일정한 간격으로 솜이 흔들리지 않게 꿰매고 안감과 겉감을 합쳐서 다시 꿰매면…”
영수는 직접 작업 과정을 설명하며 천천히 시범을 보였다.
처음 보여주는 동작을 할 때는 천천히, 반복되는 동작에서는 빠르게 손을 놀렸다.
어느새 영수의 손에 있던 천은 입을 수 있는 하나의 옷으로 완성되어갔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두 개의 천을 앞뒤로 합치면 됩니다. 다들 망처도 되니 한 번 해보시지요.”
사각, 사각…
그의 앞에는 최근 유랑민으로 영지에 들어온 아낙들이 있었다.
영수가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명천으로 솜옷을 만드는 법이었다.
영지는 겨울에도 눈 구경을 하기 힘든 곳이라 솜 옷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옷은 여기 사는 사람들이 입을 옷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지역에 팔 것도 아니었고.
애초에 재단한 사이즈 자체가, 인간들이 입기에는 너무 컸다.
‘누비옷은 시기상조겠군.’
누비옷은 이보다 더 복잡한 바느질 작업이다.
아낙들이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니 누구 하나 바느질에 익숙한 사람이 없었다.
지구에서 가지고 온 바늘은 작고 뾰족했고 강도도 강했다.
이곳 사람들도 바늘을 쓰긴 했지만, 가죽이나 옷나무잎을 칼로 뚫어서 꿰매기만 하면 되다 보니 바늘 크기가 크고 날카롭지도 않았다.
물론 손재주가 있는 아낙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손은 점점 피투성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들 이해하셨습니까?”
“네!”
영수의 질문에 아낙들은 누구도 빠짐없이 기계처럼 대답해버렸다.
이해가 안 가는 일이 있더라도 영주 앞이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물론, 정말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영수는 그간 돌아다니며 봐뒀던 사람들을 임시로 작업반장으로 만들어 다시 한 번 빠르게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나저나 앞으로 바늘은 이곳에서 나는 철로 드와프들에게 따로 만들어달라고 해야겠군…’
“다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내일까지 새로운 바늘과 손가락을 지킬 수 있는 골무를 만들어 배포할 테니, 오늘 다치신 분은 여기 있는 힐링 포션에 손을 담가 회복하십시오.”
힐링 포션이라는 말에 아낙들이 눈을 빛내며 달려 나와 앞다투어 그릇에 손을 담갔다.
“와!”
아낙들은 상처가 나은 자신의 손을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고급의 모험가들이나 기사들에게는 익숙하지만, 힐링 포션은 원래 고가의 물건이라 일반인들이 거의 접하지 못하는 물건이었다.
“그럼, 하메르 관리 부탁할게요. 주의사항은 써뒀고, 나중에 지시할 게 있으면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어디 가십니까?”
“계약 마감 지으러요.”
영수는 자신이 직접 만든 샘플용 솜옷을 들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영지로부터 얼마 멀지 않은 숲의 한 지점.
영수는 완성된 샘플용 솜옷을 들고 차에서 빠져나왔다.
푸스슥…
예의 큰 트롤이 경계하는 눈빛을 하며 숲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뒤쪽으로 짝이 되는 암컷 트롤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트롤을 끌어안고 경계하며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전에 제가 이야기한 것이 이겁니다.”
큰 트롤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솜옷을 집어 들었다.
“그륵… 이것은…”
그는 큰 손으로 조심스럽게 솜옷을 만졌다.
“옷이라는 겁니다. 제가 입고 있는 것이 보이시죠? 쉽게 말하면 털이 퇴보한 인간들이 체온을 지키기 위해 털 대신 입고 다니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르르…”
그는 미심적은 표정을 지으며 영수를 바라보다 자신의 짝에게 다가갔다.
“그그그그그그…”
옷을 입히려고 잠시 몸에서 떨어트리자, 어린 트롤이 이를 덜덜덜 떨어댔다.
암컷 트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러우면서도 빠른 손으로 옷을 입혔다.
그리고는 바로 다시 품속에 끌어안았다.
“그릇?”
어린 트롤의 떨림이 멈췄다.
“그릉, 어떠냐?”
“글글, 따듯해요.”
“그릉? 따듯하다고?”
“그르릇! 따듯하다니? 진짜니?”
트롤 부부가 반색했다.
“글글글… 정말 따듯해요. 엄마 품보다 더…”
“그륵! 오오오오! 다섯 아이들 중 한 아이밖에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힘든 혹한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따듯하다는 말이 나오다니. 오오오…”
“그릉, 이 옷이라는 것만 있었으면 다른 네 아이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텐데. 크흑..”
큰 트롤이 왈칵 눈물을 터트리고, 뒤이어 암컷 트롤도 눈물을 터트렸다.
“그르… 왜 울어… 으아아앙…”
어린 트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옷을 만지작거리다가, 부모가 우는 것을 보고 자신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부모는 정신을 차리고 웃으면서 아이를 끌어안아 주었다.
‘다행이네.’
콧시울이 살짝 붉어지려고 했다.
성년이 된 트롤들은 털이 풍성한데 아이들은 털이 하나도 없었다.
암컷 트롤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다큐에서 본 황제펭귄이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과 이상하리만치 같은 것처럼 보였다.
큰 트롤이 어린아이들은 추위와 싸워간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자 아프리카 다큐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프리카는 모두 더운 곳이라고 알고 있지만, 일교차 때문에 신생아들이 저체온증으로 많이 사망한다.
어쩌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입을 옷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정답이었다.
“그륵… 이거라면 아이들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는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이것은 거래입니다. 옷 한 벌에 한 병으로 하겠습니다.”
“그극? 그 정도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옷이 찢어질 수 있으니, 한 벌로 버티긴 힘들 겁니다. 생각보다 피 많이 주셔야 할걸요?”
아이들은 어딜 가나 활동성이 뛰어나다.
지금이야 추위 때문에 어미에게 꼭 안겨서 사니까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옷을 입게 되면 이곳저곳을 뛰어다닐 거다.
숲이 괜히 숲인가?
조금만 돌아다녀도 옷이 송송 뚫려버릴테니, 분명 한 벌 가지고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릉…”
큰 트롤은 머리를 써서 계산해봤다.
자신이 보기에도 애가 옷 한 벌 가지고는 힘들 것이다.
찢어지면 바꿔입어야 하니 못해도 여분으로 하나는 필요할 것이고, 혹시 몰라 몇 벌 더 여분으로 가지고 있으면 더욱 좋을 거다.
아이를 많이 낳았다면 그만큼 배로 들어갈 것이고.
하지만, 아무리 해봐야 고작 애 한 명 키우는데 수십 벌 이상의 옷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르르… 아무리 계산해도 우리 종족의 미래를 바꿔주신 분께 그래도 너무 적은 보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트롤은 염치를 아는 종족. 뭔가 더 바라시는 것은 없으신가요?”
“별로 바라는 것은 없는데… 흐음, 그럼 이렇게 해주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그륵? 어떤…”
“다른 동네에 있는 트롤들을 찾아가 이곳의 소식을 알리는 겁니다. 모두 이쪽으로 이사 오라고 권하시면 더 좋고요.”
영수가 눈을 빛냈다.
이곳에 있는 성인 트롤은 수백 쌍이고 아이는 그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아이들이 자라 자신들의 아이들을 낳을 것이고 어른인 트롤들은 또 다른 아이들을 낳을 테니 갈수록 피가 공급되는 양은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피를 얻는다고 해봐야 1년에 1, 2천 병 정도.
오히려 시중에서 힐링 포션을 사는 것이 공급 측면에서는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트롤은 미드랜드의 숲 어디에나 흩어져 있다고 한다.
‘만일, 그들이 다 모인다면?’
“그륵! 그것은 숲의 힘을 사용해 전달한다면 매우 쉬운 일입니다. 거기다 그것은 오히려 제가 청하려던 일입니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됩니까?”
큰 트롤은 오히려 영수의 부탁을 환영했다.
“저야 당연히, 트롤들이 많아지면 피를 많이 공급받을 수 있으니 좋지 않겠습니까?”
“그륵! 정말 감사합니다! 은인이시어!”
그렇게 트롤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말았다.
한 귀족 영지의 응접실.
쾅!
“자네. 이게 무슨 개소린가? 트롤이 극성이라 상단을 모두 되돌렸고, 당분간 상행을 중단하겠다고? 거기다 다음 하기로 한 거래도 당분간 모두 취소? 돌아간 거야 그렇다고 처도, 트롤이 문제면 우리라도 토벌대를 보내면 될 일이 아닌가? 거래를 중단하는 것은 또 뭐라는 건가! 가문과 가문의 약속을 지금 무시하겠다는 겐가!”
중년 귀족이 분노하며 책상을 두들겼다.
-용서하십시오. 리라이트 백작님. 하지만… 저희가 본 트롤들은 백작님의 영지에서 운영하는 토벌단 규모로는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충격 때문에 흔들린 탓에 수정구에서는 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여 들려왔다.
“뭐라? 우리 리라이트 백작가의 정예 토벌단이 고작 트롤들도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하, 하하… 우리 가문의 평판이 정말 땅바닥까지 떨어졌어. 땅까지 떨어졌다고!”
리라이트 백작은 실성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트롤의 숫자가 많았다는 말입니다.
상대가 아차 하는 목소리로 설명을 첨언했다.
“트롤이 많다면 모험가나 용병 길드에 알려서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닌가? 놈들은 돈에 환장해서 트롤의 피를 구할 수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거야. 자네는 후작가의 가신이면서 그런 기본도 모르나?”
-그것 가지고도 안될 정도로 많은 트롤이기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저희가 설마 변경의 호랑이인 리라이트 백작가를 무시하려고 해서 이러는 것이겠습니까?
“아니, 대체 트롤이 몇 마리기 때문에 그러는 건데! 토벌대가 아니라 내 전 병,”
-목격한 무리 중 가장 적은 것이 천 마리였습니다.
“으음…”
전 병력이라도 보내겠다고 하려던 리라이트 백작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트롤이 천 마리면 확실히 너무 피해를 많이 본다.
수정구 넘어 사내도 답답했다는 듯이 목격담을 빠르게 쏟아부었다.
-제가 직접 따라갔다가 목격한 중 가장 많았던 무리는 3천 마리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운행하던 상단 중 하나는 동행하던 기사가 다른 무리들을 못 보고 트롤 피를 뽑겠다면 달려나갔다가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이래도 저희가 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크흠, 그런 사정이 있었다고 하니 이제야 조금 알아듣겠군. 그러게 왜 결과만 간단하게 통보를 하시나. 내 지난 번에 마나석도 넉넉하게 보냈는데…”
-어쨌든,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은 우리측의 잘못입니다. 사과드립니다.
“크흠… 그런데 혹시 트롤들이 갑자기 왜 그런다는지 이유를 아는가?”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정보길드를 통해 전국에 있는 트롤들이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 곳으로 가고 있다고? 그곳이 어딘가?”
-한국령입니다.
콰직!
수정구 위로 리라이트 백작의 주먹이 쏟아져내렸다.
그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버리는 수정구.
“으득… 영수 한! 영수우 하아안! 네에 이노오오옴!”
리라이트 백작은 마치 목청으로 사람이라도 죽일 것처럼 울분을 터트렸다.
부스럭 부스럭…
“그륵… 이건 뭡니까?”
영수는 헌혈 텐트에서 나온 트롤에게 둥그런 정(情)파이를 까서 건넸다.
“정파이라고 합니다. 원래 이건 제가 있던 곳에서 헌혈한 다음에 먹으라고 주는 겁니다.”
부스럭.
“극, 너무 작군요…”
애초에 정파이가 작은게 아니라 트롤들이 너무 큰 거였다.
들고있으니 사이즈가 마치 계란 과자를 든 것 같달까?
대신 영수는 그들에게 오렌지 주스가 출렁거리고 있는 3000cc짜리 피처 잔을 건넸다.
하지만, 트롤이 잔을 들고 있으니 마치 500cc짜리 생맥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쩝쩝.
정 파이를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맛을 보던 트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 했다.
“그륵, 이 맛은…”
입맛을 다시던 트롤은 이내 오렌지 주스가 든 잔으로 고개를 돌렸다.
꿀꺽꿀꺽…
단숨에 잔이 비워졌다.
그러어어어억!
만족스러운 표정.
“더 드릴까요?”
영수는 웃으면서 대용량 주스병을 들어 올렸다.
트롤은 고개를 끄덕였다.
꿀럭, 꿀럭, 꿀럭…
주스를 다시 가득 찼는데 트롤은 머리를 긁적이며 영수의 눈치를 봤다.
“그으으음… 저… 혹시 정파이라는 것도 더 주실 수 있습니까? 제 아이에게도 가져다 주고 싶은데…”
“얼마든지요.”
영수는 트롤에게 한 박스의 정파이를 내밀었다.
“그오오!”
트롤이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는 음료수를 급하게 마시더니, 영수가 준 정파이 박스를 들고 숲으로 달려갔다.
이 트롤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똑같은 반응이었다.
영수가 보기에 트롤들은 자연주의 히피가 아니었다.
단지 그들에게는 문명의 맛을 볼 기회가 없었던 거다.
‘조금씩 익숙하게 만들어야겠군…’
영수는 달려가는 트롤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