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78)
마법사, 파편, 검은 그림자
마법사, 파편, 검은 그림자
그륵…
부스럭, 부스럭…
거대한 손이 움직여 앙증맞은 무언가를 뜯고 있었다.
찌익.
작고 동그란 검은색의 물체, 그것의 이름은 정파이.
글글글…
털북숭이 덩치 큰 트롤은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그려졌다.
아앙…
뭐든지 씹어 삼킬 수 있을 것 같이 거대한 입에 정파이가 들어갔다.
으음…
맛을 음미하는 트롤, 아니 트롤들.
그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새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좍업 시좍!”
그릇! 그워어어!
드와프의 신호에 트롤들이 근육을 부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러 다니는 연장을 주워들어 어깨에 얹는 트롤들.
일반인이라면 그 모습만 보고도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것이다.
“『자네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그리고 자네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하지만, 드와프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들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작업을 지시하고 있었다.
쿵! 쾅! 쿵! 캉! 깡! 콰직!
가진 도구로 둔덕을 부수고, 돌을 깨고 삽질해 빈 곳을 메우고.
트롤들은 군말 없이 열심히 일했다.
그 행렬은 간트레이그 자작령까지 가는 길에 있는 산이 있는 곳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하메르의 보고를 받은 영수는 토목 작업 현장을 지시하고 있는 건축 장인 드와프 비치를 찾아갔다.
“일꾼이 필요하다고?”
“『그렇습니다. 드래곤, 아니 영주님이시어.』”
“마침 잘 됐군요. 안 그래도 좀 남는 손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인간이 아닌 종족과 작업,”
“『아! 그렇게 해주시는 겁니까? 당연히 힘이 강한 몬스터들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드래, 아니 영주님께서 영지에서 오크들과 리자드맨, 트롤을 부리시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렵게 꺼낸 말에 비치는 오히려 반색했다.
“『아무래도, 육식 위주인 오크나 리자드맨 같이 폭식하는 놈들 보다는 채식에 소식하는 트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다 그들은 다른 두 종족들 보다 더 강해서 드와프들이 따로 경비를 설 필요도 없습니다.』”
“트롤이요?”
비치의 입에서 먼저 트롤이 나와 내심 반가운 영수였다.
안 그래도 그들에게 트롤을 소개시켜주려던 영수였다.
오기 전 확인한 어플로 드디어 트롤 인구가 2만 인구를 가진 드와프들을 넘어서, 엘프 인간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은 종족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여론란의 세 번째에 ‘정파이 맛있다.’라는 말이 올라와 있었다.
“드와프들은 트롤에 대한 거부감은 없습니까?”
“『트롤은 원래 숲의 일족입니다. 숲의 일족들은 본디 정령에서 파생된 이들로 따지고 보면 귀쟁이나 드와프들이나 트롤과 뿌리는 같죠.』”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숲의 일족이라든가 드루이드라든가 하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긴 했었지.’
“『문제는 그들이 겉은 저주받고 속은 축복 받은 종족이라는 겁니다.』”
“겉은 저주받고 속은… 축복을 받았다고요?”
“『생김세가 워낙 흉악해서 숲의 일족, 다른 정령들족 사이에서도 사실 기피하는 이들이 많았죠. 그들을 불쌍하게 여긴 고대 숲의 신 하나가 그들에게 축복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겉모습은 바꾸지 못했고 그 축복이 모두 피로 가버렸습니다.』”
“치유력…”
“『네. 사실 그것은 신의 축복의 산물이죠. 하지만 그로 인해서 다른 종족들에게 사냥을 당하기 시작했으니, 어떻게 저주에 가깝겠네요. 그들의 피를 노리는 것은 욕심 많은 종족들과 몬스터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정령일족들조차, 부상자가 생기면 그들에게 피를 구걸했죠. 그에 환멸을 느낀 트롤들은 같은 정령일족들과의 연락도 끊고 숲으로 들어갔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몬스터 취급을 당하고 언어도 완전히 달라졌지만, 사실 뿌리는 같죠.』”
“서로 친척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 서먹하고 먼 친척 같은 관계군요.”
“『그런 셈입니다.』”
드와프들의 거부감이 없다니 마침 잘됐다.
트롤의 숫자는 지금도 계속 늘고 있었다.
그들이 너무 늘어나는 바람에 최근에는 헌혈을 2주에 한 번만 할 수 있게 신분 등록을 시키고,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피의 공급이 너무 많았다.
트롤의 피에는 독성이 있기에 힐링포션을 만들 때는 알콜과 여러 약초를 넣고 가열해서 독을 뺀다고 한다.
지구에서 분리하면 될 거라 생각해서 트롤의 피를 가지고 갔지만, 지구에서의 트롤 피는 그냥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나의 성분이었다.
힐링 포션으로 만들면 될지 알고 미드랜드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가열해봤지만, 얻어지는 것은 여전히 하나의 미지 성분이었다.
즉, 힐링 팩터와 Q요소 등을 얻기 위해서는 지구로 가져오기 전에 미드랜드에서 힐링 포션으로 가공을 해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현재 영지에 힐링 포션 공장을 차렸지만, 물량을 소화하지 못해 트롤 피가 썩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정파이 공급 수량이 트롤들의 욕구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 영수는 정파이를 도매상에게 사다 못해, 아예 공장에 대량 주문해 직접 떼와야 할 정도가 되었다.
이미 트롤들 사이에서 헌혈의 주목적이던 솜옷은 사은품으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였다.
트롤의 헌혈의 주목적은 정파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맛을 본 이후로는 하루에 하나는 먹어야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할 정도였고, 최근에는 그들 사이에서 화폐처럼 사용되는 장면이 포착됐다.
헌혈 한 번에 12개짜리 한 박스를 주는 것을 줄여보려고 했는데, 트롤들의 반대가 심해서 할 수 없이 헌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여버리는 것으로 수량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계속 트롤이 늘고 있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오죽했으면 영수는 미드랜드 현지에서 정파이를 만들기 위해 카카오 등을 가져와 재배할까 하는 것도 고민 중이었다.
‘일단 지구에 정파이 공장을 차리는 것으로 해결했으니, 지구 특유의 작물을 가져오는 것은 좀 더 봐야겠지…’
공장을 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파이 만드는 기술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특허가 다른 회사에 있기에 만들어도 상품으로 판매를 하지 못한다뿐이지, 애초에 미드랜드에서의 소비가 목적인 영수에게는 거리낄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일할 트롤은 어느 정도 필요합니까?”
“『간트레이그 자작령 방면 뿐만 아니라, 라이트딜레이 후작령 방면도 이제 슬슬 작업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비치와 필요한 작업자의 수에 대해 의논한 영수는 그 길로 트롤들을 만나러 갔다.
“드와프들이 하는 일을 돕기 위해서 일손이 좀 필요한데, 혹시 트롤들 중에서 일을 도와줄 수는 없겠습니까?”
“그륵… 숲의 일족인 트롤은 정령 일족과 친했지만,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
“참가하는 분들께는 일당으로 정파이 네 봉지를 줄 생각입니다.”
“그긋! 참가하겠습니다!”
“글릇! 참가하겠습니다!”
트롤들은 귀가 밝았다.
줄지어 참가지원 행렬이 줄을 이었다.
트롤은 그렇게 큰 일꾼이 되었다.
야심한 밤, 라이트딜레이 후작의 집무실.
-……해서 아로네 국왕이 조금 전 종전 협정에 인장을…
“젠장!”
콰당! 쨍그랑!
라이트딜레이 후작이 책상을 엎는 바람에 수정구가 땅에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쾅! 콰직!
그럼에도 분노가 풀리지 않는지 라이트딜레이 후작은 책상과 잔해를 발로 사정없이 차버렸다.
수정구로 통신을 지원하고 있던 초청마법사 카퍼필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안 그래도 지난번 리라이트 백작가로 보냈던 수정구를 상대방이 깨버리는 바람에 값비싼 수정구 세트를 통째로 버려야 했다.
만드는 데 드는 돈이 라이트딜레이 후작이 다달이 후원해주는 금액보다야 싸다고 해도, 들어가는 재료를 모으는 게 매우 귀찮은 과정이다.
거기다 최근 영지들 사이에 난 도로의 운행이 마비되는 바람에, 원하는 재료를 모두 모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라이트딜레이 후작은 좀 전 깨 먹은 수정구를 다시 연결해달라고 할 거다.
못 한다고 하면 마법사면서 그것도 못하냐고 하면서 자존심을 살살 긁을 테고.
‘더럽고 치사해서… 돈을 많이 주니까 한다. 많이 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일이 벌어질지 알고 수정구를 미리 하나 더 보내놨다는 것이다.
“대체 전 세계에 있는 트롤 놈들이 왜?”
라이트딜레이 후작이 중얼거림에 카퍼필드는 고민했다.
‘대답을 해야 하나…’
방 안에는 후작과 단둘이 있었다.
대답을 하기에도 안 하기에도 어색한 상황.
“묻는데 왜 말을 안 하시오?”
“아, 그…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마법사에게 내려오는 고대의 문헌에 적혀있는 것이라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는 사항이라…”
당황한 카퍼필드는 가장 마법사들이 곤란할 때마다 흔하게 하는 핑계인 ‘고대의 문헌’을 팔았다.
마다르시아의 마법사들은 ‘고대의 문헌’ 앞에서 문헌에 나왔던 것들을 마다르시아의 마법사들이 아닌 이들에게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다.
대륙의 마법사들에는 학파가 존재했는데, 가장 많은 이들이 마다르시아파였다.
카퍼필드는 마다르시아 출신 스승에게 마법을 배웠고, 마다르시아 왕국에 가서 실제로 고대의 문헌을 두 페이지 가량 볼 수 있었다.
그의 실력은 떨어졌지만, 나름 마다르시아파 마법사인 것이다.
“고대의 문헌? 이 현상이 거기 쓰여있다는 건가?”
라이트딜레이 후작이 눈을 빛내며 카퍼필드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아시다시피 그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언급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라이트딜레이 후작은 카퍼필드의 어깨를 잡고 강하게 흔들었다.
“크윽… 아프옵니다.”
카퍼필드가 고통을 호소했다.
“말하게! 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지만, 라이트딜레이 후작은 오히려 더 강하게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끄응… 그렇다면 제가 알고 있는 시를 읊어보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시라니?
그러나 라이트딜레이 후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놔주었다.
‘시를 읊는다.’ 라는 말은 고대의 문헌에 나온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면 벌을 받으니,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게 알려준다는 마다르시아파 마법사들의 표현이었다.
“크흠, 크흠…”
‘젠장… 뭐라고 해야 하지?’
거짓말을 짜내려니 카퍼필드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원래 마다르시아의 마법시민권을 따기 위해서는 최소한 20페이지 법사, 20페이지까지는 책을 읽을 수 있는 마법사여야 한다.
하지만, 자신은 고작 2페이지 법사, 마다르시아에서는 마법사 소리도 못 붙이는 정도의 수준이다.
시민권을 따지 못한 마법사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마다르시아에 남아 공방에 취직해 마력 제공 일을 하다가, 돈을 모아 이물들의 도움을 받아 마법시민권에 다시 도전하거나…
아니면 자신처럼 이런 마법 오지에 와서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놈들 앞에서 ‘마법사님’ 소리를 들으며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
“음, 그러니까…”
자신은 후자다.
마법시민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마법사들의 이상향인 마법왕국 마다르시아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트롤들이 왜 모이는 거지? 하아…’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네, 왜 말을 하다 마는겐가?”
“이유가 있으니 모이겠지!”
‘아차.’
머릿속에 생각이 많다 보니, 속마음으로 해야 할 것을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떠들고 말았다.
라이트딜레이 후작의 표정이 싸늘하다.
‘생각해라! 생각해!’
카퍼필드는 태어난 이래로 가장 빠르게 뇌를 굴렸다.
아무거나, 아무거나 뱉어야 한다.
시처럼, 어떻게든 시처럼.
“이유가 있으니 몬스터겠지! 이유가 있으니 마법사겠지!”
“흠… 반복된 어구를 사용하여 운율을 준 시구인가…”
어떻게 대충 얼버무리는 것은 성공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걸 이어나가야 하다 보니, 그냥 떠오르는 말을 아무거나 내뱉게 됐다.
“이유가 있으니 마법사가 몬스터를 모으는 거겠지!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몬스터를 모으는 마법사만 아는 거겠지! 이유가 있으니 파편이 나왔고,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는…”
끝을 내야 하는데, 어떻게?
“그 이유는?”
라이트딜레이 후작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고…’
카퍼필드의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다.
눈알을 굴려봤지만, 이곳은 라이트딜레이 후작의 비밀 통신실이었다.
어두운 실내에는 촛불과 책상, 수정의 파편, 흔들리고 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 말고는 참고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 검은 그림자만이 알겠지!”
“검은 그림자?”
라이트딜레이 후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든 완성된 시구.
몬스터가 모이는 것은 마법사가 모종의 이유로 모으는 것인데, 뭔진 모르겠지만 파편이 연관되어 있고 어쨌든 그 이유는 ‘검은 그림자’ 때문이다.
이거 뭔진 모르겠지만, 제법…
‘그럴싸한데?’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죄송합니다. 이 이상 말했다간 제 목숨이…”
카퍼필드는 힘겨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평생 할 두뇌 회전의 절반은 써먹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정말로 힘겨워 하는 것처럼 보였다.
“흐음… 생각 같아서는 목숨이라도 내걸면서 말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자네는 초청마법사였지…”
카퍼필드는 속으로 엄청 뜨끔했다.
그는 자신의 가신들에게 하는 짓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몬스터… 트롤이 모이는 곳에 무언가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그럼 이만…”
“알겠네. 내 이것은 따로 사례하지.”
카퍼필드는 고개를 숙이며 통신실을 빠져나갔다.
마법사와 헤어진 라이트딜레이 후작은 오랜 시간 동안 시구를 해석하기 위해 머리를 감싸 맸다.
“파편, 검은 그림자… 마법사와 검은 그림자… 마법사와 파편, 마법사와 파편의 검은 그림자, 마법사와 검은 그림자의 파편, 몬스터들이 모이는 곳에 답이 있다…”
고민하던 라이트딜레이 후작은 긴급한 국제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가신들을 소집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집무실로 왔다.
마침 그의 눈에 벽에 걸려 있는 지도가 보였다.
지난번 회의 시간에 이번 트롤 이주 사태를 알아볼 수 있게 지도에 미리 표시를 해놨다.
트롤들의 목격된 곳이 어딘가, 그들이 향해 가는 곳은 어딘가 하는 것들…
이미 한 번 가신들과 이야기했던 거지만, 트롤들의 목적지는 왕국의 남부, 한 영지 인근의 숲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 남작은 대단한 마법사였지?”
생각이 그곳에 이르자 머릿속이 왠지 환해지는 라이트딜레이 후작이었다.
벌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