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9)
바다를 가르고 등장!
바다를 가르고 등장!
도둑은 항상 제 발이 저렸다.
“저, 저 도둑 아닙니다. 오늘 막 이사를 와서…”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어색한 변명이었다.
“우리 아찌 도둑 아니야! 훌륭한 택배 선생님이야!”
가희는 쪼르르 달려와 영수의 앞에 서서 고모에게 이마를 들이밀며 두 팔을 벌리고 섰다. 대신 변명해주는 것이다.
“호호호.”
가희의 당돌한 모습 때문인지 그녀의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어렸다.
“아, 이런… 이렇게 웃으면 안 되는데.”
“아닙니다. 서로 웃고 살면 좋죠. 보기도 좋고…”
영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색해서 그러는게 아니다. 좋아서 그런 거다.
그냥 같이 말을 섞고 있는 것만으로도 계속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런 걸 그리워하고 있었다.
“호호, 오늘 이삿짐센터에서 오는 걸 보긴 봤는데, 선생님이 오시는 건 줄은 몰랐어요.”
“주머니 사정이 나아져서, 막 이사를 왔습니다.”
“선생님이라 다행이에요. 옛날에 여기 살던 사람은 술만 마시면 이상해지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녀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어려있었다.
좋게 봐준다는 말이라 영수도 기분이 좋았다.
“아찌 여기 사는 거야?”
“응. 그래.”
“헤헤.”
가희는 얼굴을 가리며 웃더니 다시 그녀의 뒤로 가서 치맛자락을 붙잡고 얼굴을 파묻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얘, 얘는… 너무 잡아당기지 마. 치마 벗겨진단 말이야.”
‘그, 그래 주면 오빠가 아이스크림을 사주마!’
왠지 붉게 상기가 되는 영수의 얼굴.
“히힛.”
가희가 이쪽을 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입가에 아빠 미소가 어렸다.
조건 없이 아이스크림을 사줘야 하는 미소였다.
“그런데, 이사 오셨는데 떡은 안 돌리시나요?”
“아? 아차…”
영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호호호. 농담이에요.”
“휴우… 너무 오래 혼자 살아서 이웃하고 교류하는 법을 까먹었네요.”
“괜찮아요. 저도 얼마 전에 이사 와서 떡을 돌리려고 돌아다녔거든요? 근데, 다들 문도 안 열어주더라고요.”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
“옛날하고는 다르죠? 저 어릴 때만 해도 이사 오면 떡을 돌렸는데, 그러면서 얼굴도 익히고…”
“예…”
영수의 어릴 때도 그랬다.
옛날, 사람들이 정 많던 시절들의 기억이었다.
‘나랑 연배가 비슷한 건가?’
“어릴 때, 시루떡이 상에 오르는 날이면 누가 이사 왔냐고 어머니께 묻고 그랬는데…”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만이 공감할 아늑한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저 어릴 때도 그랬습니다. 이사 오면 다들 시루떡 돌렸죠. 그러고 보니 동네에 도로랑 전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도 시루떡을 돌렸네요. 구멍가게가 생기면 팥죽도 쒀서 줬는데.”
조금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영수는 신나게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 정말요? 전기가 들어올 때도 돌렸구나…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신가 봐요? 저희 동네는 어릴 때부터 전기가 들어왔거든요.”
그녀가 신기하다는 듯이 영수를 바라봤다.
“아…”
긁적긁적.
이래선 괜히 나이 차만 더 나는 것 같지 않은가?
“후후. 제가 어릴 때부터 서울에 살아서 그런가 봐요.”
“아, 저는 강원도 촌 동네에 살았습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할 때 그 인제가 바로 옆 동네였습니다. 도로도 전기도, 아주 늦게 들어왔죠.”
‘인제 가면 언제 오냐니, 이 멍청아! 거의 아재 개그잖아!’
말해놓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영수였다.
그런데 그녀는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킥…”
입꼬리가 웃고 있었다.
‘헤…’
그러면 됐다.
웃어준다면야.
영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부스럭.
그제야 그녀의 손에 들린 쓰레기봉투가 보였다.
“아차, 죄송합니다. 무거우실 텐데 너무 오래 붙잡아 뒀습니다.”
“괜찮아요. 애 키우는 사람은 강하니까요.”
그녀는 웃으면서 반대편 팔로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자신과 비교하면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수준이다.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고모, 나 매달릴래.”
그때 치마 뒤에 숨어있던 가희가 갑자기 앞으로 빠져나와 점프를 뛰어 그녀의 팔뚝에 매달렸다.
“어머!”
순간 휘청거렸다.
영수는 다급한 표정을 하며 가희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어이쿠. 우리 가희가 생각보다 무거운가 보구나?”
영수는 가볍게 가희를 안아 들었다.
“우우… 가희 돼지 아냐!”
가희는 볼을 부풀리며 삐친 듯 고개를 돌렸다.
영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다.
“응. 그래 가희 돼지 아냐. 엄청 가벼워. 이렇게 날아갈 수 있는 걸?”
훅!
영수는 두 손으로 가희를 허공에 띄웠다.
“꺄하하하.”
언제 삐졌냐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영수는 눈짓으로 그녀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녀는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갔다.
암묵적으로 그녀를 따라가며 계속 가희를 들어 올리며 놀아주었다.
어느새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다시 3층에 도착하게 된 세 사람.
“어디까지 갈까? 런던 갑니다!”
후웅!
“꺄하하!”
가희가 해맑게 세계여행을 하는 사이 그녀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제 괜찮아요.”
이쪽도 괜찮았다.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그녀와 가희의 해맑은 미소를 봐서 그런지 하나도 힘이 들지 않는 영수였다.
하지만,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는 법.
“치익. 비행기가 착륙합니다.”
“이잉, 나 더 타고 싶어!”
“가희야. 선생님도 들어가셔야지.”
“이잉…”
“나중에 또 볼까?”
“그때도 붕붕이 해주꺼야?”
“그래. 아저씨는 가희가 원하면 붕붕이 언제든지 해줄 수 있어.”
“히힛! 그럼 가. 감다함미다.”
가희는 어디서 배웠는지 두 손을 배에 가지런히 올려 꾸뻑 인사하고 집안으로 쪼르르 달려서 들어갔다.
가희의 퇴장으로 어느새 복도에는 그녀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선생님 정말, 매번 감사합니다.”
“뭘요…”
영수는 더 말을 꺼내려다가 머뭇거렸다.
물어보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거기다 자신이 사람 상대하는 일 한두 번이던가? 말을 이어나가자면 더 이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머뭇거리는 모습.
하지만,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결국 두 사람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뒤로 돌아섰다.
철컥.
자신의 집 앞으로 온 영수는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을 집으로 통하는 문을 다시 열었다.
‘나중에 또 대화할 기회가 있겠지…’
영수는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갔다.
탕.
…
탕.
탕!
트럭에 오른 영수는 내비 옆에 있는 단말기를 꺼내 어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사온 물건들과 가지고 가는 물건을 등록했다.
어제는 바쁜 하루였다.
택배 회사를 관둬서 차체 도색도 다시 했고, 물품들도 사 왔다.
거기다 호신용으로 가스총을 사고 비싼 돈을 주고 방검복 장인에게 물품도 하나 주문했다.
차가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장비들과 가서 3일 동안 먹고 마실 것까지 모두 등록했다.
택배 기사를 1년 정도 하다 보니 정리벽 같은 강박관념이 생긴 것이다.
“됐다.”
등록을 마치고 내비 옆자리에 다시 단말기를 붙이려고 하는데, 화면에서 글이 반짝이고 있었다.
<물품 등록을 마쳤습니다.>
<강화정보 – 물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단말기에 등록한 물품만 강화할 수 있다는 건가?’
꾹, 꾹, 꾹.
메뉴, 강화정보, 물품을 누르자 오늘 등록한 물건들의 이름이 주륵 떴다.
<삼용라면 5+1 : +0 강화>
<삼용라면 5+1 : +0 강화>
<닥터뉴 에너지바 : +0 강화>
<Ultra LED 후레쉬 : +0 강화>
.
….
.
<작업용 방수 옷 : +0 강화>
<초크 그물망 : +0 강화>
물품들에는 전부 ‘+0 강화’라고 쓰여있었다.
‘아직 강화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건가?’
이번에 가서 미션을 깨고 강화포인트를 2개 더 얻으면 물품도 강화해볼 것이다.
가진 것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가스총을 강화할 생각이지만, 아꼈다가 1주일 뒤에 방검복 장인에게 주문한 강화수트를 강화하는 것이 이득일 거다.
‘오크니 족장이니 하는 애들을 받아놓고도 차가 멀쩡했으니까…’
이번에 맞춘 강화수트는 마스크만 쓰면 거의 미국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물의 주인공이 입는 복장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탄소나노튜브 특수섬유가 방검/방탄 역할을 하고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인공 가죽은 방열/보온/단전 기능을 한다고 한다.
가격 딱 5억 들었다. 그것도 개당 5억으로 세 벌.
히어로 복장식 쫄쫄이, 양복 형식, 내복 형식으로 세 개의 타입이 있기에 모두 질렀다.
그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히어로 복장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오늘은 방검복 장인이 기성품으로 만들어두고 파는 조끼식 방검복으로 만족해야 했다.
‘안전하겠지. 나름 천만 원이나 하는 거니까…’
치익, 치익.
찍찍이로 이음새를 타이트하게 조인 영수는 크게 심호흡했다.
“후우…”
이제 준비는 끝났다.
꾹, 꾹, 꾹.
<경로 : ‘<지구>-이름없음’에서 ‘<???>-이름없음’으로 가는 경로>
꾹!
<목적지가 선택되었습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 Y/N>
<Y를 선택하셨습니다.>
트럭이 빛에 휩싸였다.
이미 한 번 경험해봤던 일이라 이번에는 눈을 가려서 시야를 잃는 것을 방지했다.
“마지막이… 바닷가였던가?”
영수는 손을 내려 창밖을 느긋하게 바라봤다.
해가 뉘엿뉘엿 바닷속으로 침몰하며 피처럼 붉은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분명 아침이었는데, 여기는 저녁 무렵의 시간이었다.
‘대략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차이 나는 건가?’
그런데, 그때였다.
촤아악!
쉬리릿…
바닷속에서 뱀의 머리를 가진 파충류 사람(?)들이 산호초로 만든 창을 들고 잔뜩 물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지난번엔 돼지 머리 인간도 있더니…’
“으악! 피해라! 리자드맨이다!”
부둣가에 있던 어민이 놀라서 손질하고 있던 그물을 내던지며 뭍으로 도망쳤다.
‘리자드맨?’
“꺄아아악!”
“서, 성안으로 신호를 보내!”
“병사들을 불러!”
“제발… 단테 신이시어 우리를 굽어살피소서…”
어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도망치는 사람, 신을 부르는 사람, 그 와중에 쟁기 같은 것들을 꼬나쥐고 경계하는 사람들까지.
영수는 도망치는 어민들 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엇! 마법사님이다!”
“도와주십시오! 마법사님!”
‘도와달라고 해도…’
상황 파악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었다.
쉬리릿…
그때 한 리자드맨이라는 놈이 이쪽을 바라봤다.
뿌드득…
놈은 산호초 창을 꼬나쥐더니 혀를 낼름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타탓…
“으, 으악! 온다!”
어민이 비명을 지르며 트럭을 스쳐 갔다.
‘뛴다!’
리자드맨이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끼릭.
열쇠를 돌렸는데 갑자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중고 고물 같으니!’
쾅!
끼리리리리리리릭, 부다다당…
주먹으로 계기판 위를 두들기자 시동이 걸렸다.
하지만, 어느새 리자드맨은 고작 10미터 남짓.
차는 수동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사이드를 내리고 클러치 밟아서 기아를 바꾸고 엑셀을 밟으려는 순간.
쉬릿!
몸을 위로 날린 리자드맨과 불과 1미터를 남겨두고 눈이 마주쳤다.
노란색 홍채와 검은색 세로 동공, 정확히 얼굴은 노리고 날아오는 산호초 창까지…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부아아앙!
쾅!
쉬엑!
끼익!
액셀에서 발을 떼고 바로 브레이크를 밟자 안전벨트에 메인 몸이 앞뒤로 출렁거렸다.
“놈은?”
다행히도 한방에 저 멀리 날아가는 리자드맨.
‘그러고 보니 비슷한 모습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시감(Dejavu)으로 잠깐 멈칫했던 영수는 서둘러 차를 살폈다.
분명 창과 앞유리창이 부딪쳤는데…
‘멀쩡해!’
차는 멀쩡했다.
‘지난번에도 멀쩡하더니…’
“후우…”
다소 안도감이 드는 영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쉬릿?
스스스스스스…
물가로 나온 리자드맨이 모두 이쪽을 보며 흥분했는지 근육을 부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괜찮아, 나에게는 방탄트럭이 있으니까. 다 한방이면…’
영수는 기어를 바꿔 후진을 선택했다.
부아아앙! 부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앙!
액셀을 밟는데 차가 나가지 않았다.
부드드드, 부드드…
차가 좌우로 요동치고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다.
“젠장!”
바퀴가 모래에 박히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용연향을 줍느라고 마지막 주차 지점이 모래사장 앞이었다.
다시 기어를 바꿔서 전진을 선택해봤지만…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사방으로 모래만 튈 뿐이었다.
“오오! 마법사님이 흙과 관련된 마법을 쓰시려나 봐!”
‘그런 거 아니라고!’
난감했다.
쉬릿!
싀야아!
요란한 소리에 멈칫했던 리자드맨들은 다시 혀를 낼름거리며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모두 창을 앞세운 채로.
“제길, 움직이라고!”
부아아아아아아앙!
씌얏!
정면에서 달려오던 리자드맨들이 날아올라 창문을 향해 창을 뻗었다.
‘방탄이니까 괜찮을 거야!’
쨍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