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91)
새 영지와 기차와 미션.
새 영지와 기차와 미션.
간트레이그 자작은 이번에도 흔쾌히 자신의 영지를 버렸다.
피 지장을 찍는 것까지, 망설임 없이 일사천리로 뚝딱, 하더니 어느새 그는 기사와 병사들을 데리고 짐을 싸서 새로운 영지로 달려갔다.
성벽에 서서 간트레이그 자작이 영지를 버리고 새 영지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영수.
“와… 저 사람은 진짜 이사 잘한다…”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가 남작이던 시절부터 보긴 했지만,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수도에서 온 영지 없던 계승 귀족이라던가?
그런데 다른 건 다 몰라도 자기 영지 버리고 더 큰 영지로 이사 가는 속도와 솜씨만큼은…
단언컨대 미드랜드에 사는 귀족들 중 최고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성벽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은 영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다음번 열차를 타고 온 하메르도 있었다.
“진짜 저 간트레이그 자작이란 사람은… 정말이지 영지에 대한 애착이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입니다. 너무하군요. 정말로 너무해…”
그는 행렬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평소 하메르를 생각하면 그가 이정도로 강도 높게 귀족을 비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 땅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 성질이 좀 다른 느낌의 사람입니다. 더 큰 땅, 부자가 될 수 있는 땅에 대한 애착이 있다고 해야하나, 성공욕구가 은근히 강하다고 해야 하나…”
“이번에 그와 계약을 해지한 기사가 스물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저렇게 헌신짝처럼 자신의 영지를 버리니… 저런 사람에게 과연 누가 충성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기사 스물을 손쉽게 얻었네요.”
반사이득이었다.
기사 후보생들이 기사가 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실력 탓과 자리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이동이 어려운 사회다 보니 먼저 도착한 자가 기사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동이 어려운 사회다 보니, 돈이 있고 구인광고를 아무리 해도 기사들에게 그 정보가 도달하는 것이 어려웠다.
“언젠가 저 간트레이그 자작은 기반이 없어서 무너지고 말 겁니다.”
하메르는 간트레이그 자작을 향해 거의 저주를 퍼부었다.
간트레이그 자작과 다르게 하메르는 자신이 나고 자란 땅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세리 출신으로 전에 모시던 간트레이그 자작이 다른 영지로 갔을 때도 자신이 나고 자란 땅, 고향에 남아서 그곳을 지키고 가꾸었다.
“귀족들은 항상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관리하고 지키던 땅에 와서는 사람들 다 죽어 나갈 때까지 세금을 걷고 사치와 향락만 일삼다가, 돈 떨어지면 귀족들에게 팔고 수도로 들어가버리던가 아니면 괜한 전쟁을 일으켜서 마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나 하지…”
울분에 찬 목소리였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저 사람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일로 밖에 땅이 생긴다고 해도, 제가 그 땅을 노리고 밖으로 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영수는 웃으면서 하메르를 안심시켜주었다.
“네? 아… 그, 그건 아닙니다. 큰 영지가 생기면 영주님은 가셔도…”
전혀 안심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메르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
이건 나보고 가라는 의미일까?
영수는 말없이 하메르를 바라봤다.
“… 자작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메르가 슬쩍 말을 돌렸다.
하지만, 그도 이미 영수에게는 귀족으로서의 직위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지도 더욱 커지셨군요. 후우…”
영지가 커지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하메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씨익.
영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왠지, 그가 간트레이그 자작에게 짜증 내는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자알 부탁합니다. 영주 대리 하메르 님.”
“하아… 영주님,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두 영지를 다 돌보라니요. 제게는 너무 큰 일이 아닐까요?”
두 영지를 돌봐야 하는 것은 ‘영주대리’인 하메르의 몫이다.
“뭐 별거 있겠습니까? 그냥 보고 올라오는 거 집계해서 법대로 처리하고, 특이한 것만 보고하시면 되는 일인데요 뭐. 아니면 저처럼 사람을 쓰세요. 영주대리의 대리라든가.”
“영주대리의 대리…”
하메르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괴었다.
장난처럼 한 말이지만,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장난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하아… 하지만, 일을 맡길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맡길 만한…. 능력도 능력이고, 믿음도 믿음인지라… 최근 영주님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서,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배신이 걱정되어…”
“믿음 부분은 걱정마십시오. 제가 도와줄 수 있습니다. 아시잖아요? 저 마법사인거.”
영수는 하메르가 좀 더 생각해내기 쉽도록 조건을 좁혀주었다.
실제로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게, 계약서를 쓰게 하면 된다.
배신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충성 서약이 담긴.
웃으면서 그를 바라봤지만, 고민이 많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습니다. 마땅한 사람이…”
영지를 맡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마법으로 충성도를 확보한다고 해도 과연 영지를 맡은 역량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대놓고 영주 대리 대리를 모집할 수도 없고…”
영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두들겨줬다.
“일을 꼭 혼자 다 할 필요가 없으니, 모집해서 작은 일부터 시키면서 조금씩 키울 수도 있겠네요.”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아니, 그래도 하긴 해야겠군요. 하지만, 영지를 맡길 사람은…”
“근데, 하메르는 영주 대리가 되기 전에 뭐했어요?”
“세리를…”
“이쪽 영지에도 세리는 있겠죠? 이쪽 영지에 대해 잘 알고, 하메르 정도로 교육받은 사람들은.”
“아!”
힌트를 주다 보니, 어느새 정답까지 다 주었다.
“저는 이만, 현지의 세리들을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하메르가 바쁘게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이곳 출신 병사들 몇을 대동한 그는 ‘세리들 어디 있습니까?’ ‘여기 세리가 어디 사는…’ 등의 말을 하며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래도 군말 안 하고 열심히 일해주니 좋네.”
영수는 하메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월급을 더 늘려주든가 나이트스톤이라도 먹으라고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원래 있던 곳이 한국령이니까… 거기를 한국령 1, 여기는 한국령 2로 할까?”
정말 성의 없는 네이밍인 것은 알지만, 영수는 애초에 영지를 늘리겠다는 계획이 없었다.
그냥 이곳에서 사업도 하고, 적당히 돈을 벌 만한 기지가 필요했던 거니까.
물론 그 뒤로 가족이 생겼고 자신을 신뢰하고 따라주는 사람들 혹은 유사 사람들도 늘었다고는 해도, 그것 때문에 땅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원래 한국령 1이 후작령이다 보니 개척할 땅이 널려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도 한국령 1과는 지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차로 천천히 달려도 두 시간 과속하면 1시간이나 걸릴까?
거기다 이곳은 한국령1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고.
길목을 틀어막고 관리 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래서 우호적인 영주인 간트레이그 자작을 두고 그에게 1차적인 적들의 선별을 맡긴 거였다.
하지만, 최근 후작이니 대공이니 하는 이들이 영지를 기웃거리는 것을 생각하면 더는 간트레이그 자작 수준에서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직접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기억지점도 하나 추가해야겠군.”
영수는 스마트폰 내비를 켜서 이곳의 영주부에 기억지점을 찍었다.
이로써 미드랜드에 찍힌 경로는 세 개가 되었고 지구에 찍힌 경로가 세 개, 총 9개의 루트가 생겨났다.
<남은 기억지점 포인트 : 5>
이제 남은 기억지점이 다섯 개였다.
우선 결혼하고 집을 사면 거기에 하나 쓸 생각이고 지금 짓고 있는 연구실 건물이 완성되면 거기에도 하나 더 쓸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미션 이후로 한 번도 강화포인트를 사용하지 않았지.’
강화포인트는 6개가 남아있었다.
이번에 미션을 확인해봐서 강화와 관련된 미션이 아니라면 차체를 강화해서 중량도 늘리고, 다희에게 주려고 만든 반지의 효능을 강화하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션 : 기차역을 만들어 손님을 받으시오.>
<보상 : 기억지점 포인트 2>
<미션 : 기차 노선을 신설하고 왕복하시오.>
<보상 : 강화 포인트 2>
“흠… 전부 기차 관련 미션들이네.”
이번 확인으로 슬슬 내비가 주는 미션에 대한 감이 잡히는 영수였다.
지금까지는 계속 랜덤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나, 내가 하는 중 빠트리고 있는 것들, 혹은 내가 하려는 일 중에 숨어있는 무언가를 알 수 있게 미션이 생겨났다.
이번 미션은 완전히 하고 있던 것 중 빠트리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기찻길의 시작과 끝은 있었지만, 기차역은 아직 안 만들었다.
‘차고지도 필요하겠지…’
물론 영지에 있는 드와프 기계 장인들의 작업실겸 연구실이 차고지로 사용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시범용 짧은 구간만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본격적으로 이 대륙에 기찻길을 깔려면 기점마다 역사가 있어야 하고 차들이 쉴 수 있는 차고지도 필요하다.
그것 말고도, 증기기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을 가려면 중간중간 연료를 보급해야 하는 곳도 필요하다.
미션이야 당장에 한국령 1에서 2로 가는 길에 세워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태우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어떤 성질을 가진 기차역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거기다 노선도 생각해보면 복잡한 개념이야…’
노선은 쉽게 말하면 기차가 서고, 가고, 다시 돌아오는 길을 의미한다.
지금이야 구간이 짧고 이용객이 적어서 괜찮겠지만, 나중에 기찻길이 늘어나고 기차가 많아지고, 이용객이 늘어난다면 모든 것은 스케줄대로 지정된 시간에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에서는 정밀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어땠을까?
‘역과 역 사이에 전선을 깔아서 모스부호로 전신을 보내 기차가 언제까지 간다고 알리고 했지…’
이곳은 마법이 있다.
그러니 마법으로 어떻게 알린다고 해도 기본적인 계획은 필요했다.
철길이 갈리는 곳에서는 시간에 따라 철도 노선을 바꿔주기도 해야 하고, 멈춤과 출발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조금의 딜레이까지 고려해서 꼬임이 없이 시간표를 짜야 하는데…
‘컴퓨터라도 들고 와야 하나…’
이쪽은 수학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벌써 컴퓨터를 보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영주님! 여기도 세리들이 있었습니다. 세리들이 있다고요!”
세리를 찾아 돌아다니던 하메르가 영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기뻐했다.
그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마치 엄청난 발견을 한 것처럼 흥분해 있었다.
“그런데, 영주 대리 대리라고요?”
“네. 물론, 시험을 쳐서 여러분 중 한 분만 하시게 되겠지만 일단 세리들 출신으로 이곳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하메르는 뒤따르며 물어보는 이곳 세리들에게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시험 내용이 궁금한데?’
예전에 자신도 그에게 고사를 알려주며, 물건을 사오라고 시험을 내준 적이 있었다.
과연 그는 어떤 시험을 치를까?
“우선 다른 사람들을 찾는 동안 시험을 먼저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정답은 없는 거고요. 한 왕국의 왕자가 결혼할 때가 되었습니다. 신부 후보는 세 명이었죠.”
‘허…’
융통성 없는 하메르답게, 자신이 했던 것처럼 시험문제를 고스란히 내고 있었다.
옛날에 세 사람 시험하던 때를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따듯한 미소가 맺혔다.
“아, 맞다.”
그러다 갑자기 사람 한 명이 머리에 떠올랐다.
마침 있었다.
컴퓨터 이상으로 계산 잘하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