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96)
낙오 마족 카르모포
낙오 마족 카르모포
펄럭, 펄럭, 펄럭…
검은 깃털로 덥혀있는 거대한 날개를 홰치며 천천히 영주부 앞 광장에 마족이 내려섰다.
파란 피부와 인간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키 그리고 팔꿈치에 달린 기다란 뿔이 인상적이었다.
마족은 여유로운 태도로 팔짱을 꼈다.
마치, 충분히 준비하라는 듯이.
뿌우우우우…
깊은 동굴 속에서부터 올라와 퍼지는 것 같은, 중후하고 깊은 뿔 나팔의 소리가 영지 전역을 향해 울려 퍼졌다.
잘그락, 잘그락…
오른손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비비탄 총, 왼손에는 정글도를.
전신을 덮는 검은 탄소섬유 방검복 수트를 입고 오토바이용 헬멧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려버린.
미드랜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색있는 복장을 한 한국령의 기사들이 영주부 앞으로 달려왔다.
영주부 안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단장 크히모스만 홀로 안전모만 쓰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그는 마족에 겁먹지 않고 당당했다.
“네 이놈! 마족 따위가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날뛰는 것이냐!”
크히모스는 당당하게 마족의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기사들은 총구의 끝으로 마족을 겨누었다.
<크크큭, 고작 인간 기사 따위들이 내 앞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냐?>
마족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누가 인간 기사들밖에 없다고 했지?”
크히모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마족의 뒤를 가리켰다.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의 뒤로, 짧은 발을 놀리며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는 드와프들.
“뭐야?”
“웬 미친 뫄족이 이곳으로 쳐들어온 거야?”
“『여기가 어딘지 모르나 본데?』”
“『마족의 가죽과 뼈로 무기를 만들면 어떤 놈이 나올까?』”
자신들이 만든 각종 무기로 무장하고 등장한 드와프들.
<드와프… 큭… 그래봐야 머시너리골렘도 없고 마법도 쓰지 못하는 놈들 따위에 마왕군 마수3병단 소속! 나 카르모포가! 겁먹을 줄 알았나?>
마족은 크히모스를 보며 여전히 여유롭다는 듯이 웃었다.
팔짱도 풀지 않았고.
그런데, 거기서 자신의 예전 소속과 이름을 밝혀야 했을까?
그 모습 자체로 마족 카르모포는 자신이 조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도망갈 기회를 주겠다.”
크히모스가 나지막이 경고했다.
<크크크크…>
파르르…
어깨를 들썩이며, 날개를 떨어대며 비릿한 미소를 흘리는 카르모포.
그때였다.
“네에 이노오오옴!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 이 어둠의 종자야아아아아아!”
파파파팟!
빠르게 가까워지는 한 여성의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린엘프의 대모.
레이피어를 앞세운 그녀는 땅을 한 번 밟을 때마다 한 번에 6, 70미터를 날아왔다.
바람의 정령이 그녀의 발밑을 바쳐주고 있었다.
두두두두…
그리고 그녀의 뒤로 화살을 든 엘프들이 따라왔다.
화살, 정령, 레이피어 그리고 요정에게 배운 요술로 무장하고 있는 엘프들.
움찔.
카르모포가 처음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 이거 조금 생소한 조합이군. 드와프와 엘프, 인간의 조합이라… 큭, 큭, 큭… 그런다고 해봐야 성인식도 못한 풋내기 엘프들 뿐이다. 세계수와 페어리퀸이 죽었지 아마? 큭, 큭…>
카르모포의 도말에 엘프들은 발끈했다.
“그 더러운 입에 세계수님과 페어리퀸님을 담지 말라!”
여유로운 표정의 카르모포.
‘어우 씨, 뭐가 이리 많아… 아오… 그냥 협박해서 흑마석 두 개 정도만 가져오려고 했는데… 방어마법부터 준비해야 하나… 큰 공격을 한 방 하면 도망칠 수 있겠는데…’
하지만 그는 내심 속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든지 마법을 펼치기 위해 속으로 준비를 했다. 물론, 그래도 자신이 질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드와프들은 끽해봐야 1천 명가량이었다.’
카르모포에게는 다행히도 다들 작업실이다 광산이다 나가 있어서 영지 내에는 얼마 없었다.
‘그리고 엘프는 고작 200명 정도.’
그는 앞서 달려오는 엘프가 엘프들 중 가장 나이 많고 강한 대모인지도 몰랐고, 그녀의 뒤를 따라오는 엘프들이 모두 성인식을 마친 엘프라는 것도 몰랐다.
‘거기다, 기사들? 무장만 특이하지 실력은 별로 같군…’
아니, 그는 기사들이 가지고 있는 무장이 얼마나 강력한 건지 몰랐다.
“사격 준비!”
<크크크큭… 쏴 보거라, 필멸자들이여.>
오히려 팔을 벌려버리는 카르모포.
‘그래 봐야 엘프들의 미스릴 화살만 조심하면 된다. 흑마력을 몸에 돌리고 있으니, 정령을 실어 날리는 화살만 조금 따끔거릴 정도겠지.’
“장전!”
철컥.
그런데, 막상 사격을 준비하는 것은 엘프들이 아니라 인간들이었다.
그들이 무기를 장전하자, 엘프들은 오히려 사선에서 멀찌감치 물러났다.
‘뭐지? 저 작은 물체가… 화살이라고? 매직 아이템인가? 설마,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데…’
“발사!”
퐁! 퐁! 퐁!
하나도 위력적이지 않게 들려오는 발사음.
그것도 고작 세 발뿐이었다.
힘을 빼려고 하다가, 혹여 이게 자신을 방심하게 하고 엘프들이 화살을 쏘려는 작전인 건 아닌가 하여 힘을 풀지 않았다.
퍼퍼퍽!
‘크윽!’
가슴에 하나, 왼팔에 하나, 다리에 하나.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팠다.
작은 동그란 알갱이가 자신의 몸을 때리는 순간 뭉친 흑마력이 거대한 힘과 부딪혀 소멸해버렸다.
흑마력을 몸에 두르고 있지 않았다면, 팔다리가 뜯겨져 나갔을 것이다.
카르모포는 이제야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크크큭… 그게 다냐?>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러나 여유 있는 척, 쎈 척을 하며 다시 팔짱을 꼈다.
사실 팔짱을 낀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왼팔이 축 처지려고 하고, 다시 한 번 가슴에 공격을 허용하면 죽을 것 같아서 가드를 한 것이었다.
‘그림자 속의 어둠, 어둠 속의 추악함, 마신 그류네드 말타의 권능을 빌어…’
이미 속으로는 언제든 방어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자신은 그저 흑마석의 기운을 느꼈을 뿐이다. 마계로 가기 위해서.
1200년 전, 순찰 중이던 카르모포는 게이트를 통해 마계로 가지 못하고 중간계에 남게 되었다.
마족임을 숨기고 살았다.
계속 인간인 척, 상인으로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마족이라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상인으로서의 삶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최근 ‘면’이라는 새로운 옷감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조사를 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도 느껴지는 다량의 흑마석이 내뿜는 기운…
그 흑마석의 기운에서 희망을 봤다.
다시 마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이곳은 시골 영지니까, 협박하면 쉽게 뺏어올 수 있을 줄 알았다.
‘젠장…’
끼이익…
그때, 영주부의 문이 열렸다.
자박, 자박…
작은 아이, 크히모스와 똑같은 노오란색 안전모를 쓰고 있는 검은 머리의 작은 아이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소영주님, 이곳은 위험합니다.”
“나 쟤 싫어. 마족, 어두운 느낌 싫어.”
아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귀여운 아이였다.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다.
카르모포는 마계에 있을 때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다.
이상한 쪽으로 좋아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아이들은 미래니까…
그들이 커나갈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응원해주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인간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버는 돈으로는 고아원을 운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마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이에게 이렇게 미움을 받아야 하다니…
조금 씁쓸하다.
<크큭, 아가씨. 이곳은 위험하다고. 어린이는 들어가서 코 자라. 이곳은 어른들의 공간이니까. 아니면 우왕 잡아먹고 말겠다.>
카르모포는 흑마석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자신의 역할인 악역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가 다치면 안 되니까.
“마족… 시져!”
쿠오오오오…
<응?>
카르모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여운 아이가…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숨을 크게 들이키는데, 입 주변에 불길이 넘실거리지 않나 짙고 검은색 기운이 감돌지 않나…
탈칵… 툭.
머리에 쓰고 있던 노란 안전모의 끈이 풀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헉!>
갑작스럽게 기운이 느껴졌다.
바닥에 냉큼 엎드리는 드와프들.
카르모포는 강한 기운에 압박감을 받아, 좀 전에 비비탄 총알에 맞은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이건 죽음의 기운이었다.
<이건 마치 마왕님 애완동물이자 평생 친구였던, 마룡 헬스타의 기운과 똑같지 않은가?>
그때, 한 남자가 영주부의 열린 문틈 사이로 걸어 나왔다.
그 또한 검은색 머리였다.
“안단테. 그만해. 아빠가 알아서 할게.”
쿠우우우우웅…
사앗.
거대한 기운이 일시에 사라졌다.
“응! 알았어. 아빠!”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사내에게 달려갔다.
똑딱.
사내가 다시 안전모를 씌워주자, 거대한 기운이 사라졌다.
“영주님, 현재 시각 오후 3시 40분. 갑작스럽게 마족이 비행으로 영지에 떨어져 경계태세로 전환했고, 적을 제압하기 위해 세 발의 탄환을 사용했습니다.”
“잘 보고 있었습니다. 크히모스님 지휘 잘하시더군요. 엘프님들도 사격 전에 비비탄 총의 사선에서 물러나는 거 일사불란해서 보기 좋았습니다. 그럼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맡을 테니, 모두 돌아가 보십시오.”
“명을 받듭니다.”
타탓.
크히모스와 기사, 병사들은 빠르게 원래 있던 곳으로 뛰어 돌아갔다.
바로.
뿌우우우… 뿌우우우… 뿌우우우…
경계를 해지하는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다시 돌아가 수확을 한다.”
“네! 대모님!”
“『작업실로 돌아갑시다!』”
“『하필 이런 곳을 쳐들어오는 마족이라니. 크크큭, 성인식 하기 잘했습니다.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군요.』”
엘프들과 드와프들도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영주부 앞의 공터.
<이게 무슨…>
카르모포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돌아가는 기사들과 엘프, 드와프들을 바라봤다.
고작 사내 한 명이 나왔다고 모두 돌아가다니…
꿀꺽.
하지만, 방심하는 마음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족의 본모습으로 돌아왔을 때는 잠시 해방감에 취해 이성이 날아갔었다.
그러나 이제는 1200년간 상인으로 살수 있게 해주었던 판단력이 완전히 돌아왔다.
<아, 이곳 영주라고 하셨나요? 저는 그냥 흑마석만 좀 얻어갈까 해서 온 건데… 그냥… 그냥 가도 될 것 같습니다.>
“네. 저는 이곳 영주인 한영수입니다. 그런데 그냥 가시게요?”
사내, 영수는 웃으면서 카르모포에게 다가갔다.
움찔.
<그… 하하… 그냥 겁만 주려고 한 겁니다. 절대 인간을 해칠 생각은 없었고요…>
“안타깝군요. 다른 영지에는 없겠지만, 우리 한국령에는 각종 범죄의 미수에 대해서도 처벌을 하는 편이라서요.”
<그냥 가면 안 될까요?>
씨익.
영수가 웃었다.
화르륵…
어느새 집체만한 거대한 불덩어리가 허공에 생겨나 있었다.
무영창, 그정도는 카르모포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화르륵, 화륵, 화륵, 화륵, 화륵…
무영창 화염 덩어리가 순식간에 40개가 넘게 생겨났다.
절반은 백마법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절반은 흑마법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저런 건, 나도 못 한다고…’
“하하. 혹시 도망가실까 봐, 저도 그냥 겁을 주려고 띄워놓은 것뿐입니다.”
이런 마법을 유지하면서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을 하고 있는 영수.
‘마법의 조종인가…’
경악스러운 모습이었다.
끼이익…
그때, 다시 영주부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영수의 뒤에 다가와 섰다.
“흐음… 보아하니 어릴 때부터 몸속에 마수를 넣어 같이 살며 마수의 특징을 이용할 수 있는 진트라족 마족인 것 같군요. 보자, 크로울라와 결합한 마족이면, 나도 아는 마족이 몇 있긴 한데…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중년인은 다짜고짜 카르모포의 이름을 물었다.
<진트라족인 건 어떻게… 나는 카르모포… 근데 그쪽은 누구…>
“아하! 너 애들 좋아하는 카르모포구나? 나다. 로빈나르. 너 후방에서 보급품 나르고 그러더니, 마중전쟁 끝나고 마계로 안 넘어간 거였냐?”
<로빈…>
“…나르? 당신이 로빈나르라고?”
카르모포는 마법을 써서 다시 인간으로 변신했다.
마중전쟁에 참여했던 마족들 중에 쌍방향 게이트를 만든 로빈나르의 이름을 모르는 마족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 카르모포는 로빈나르와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다.
“나는 당연히 이곳에 남아서 차원 게이트를 만들고 있었지. 물론, 지금은 그만두고 이분을 모시고 있지만.”
“이분?”
“만마의 정점에 서 계신 분의 환생이다.”
“뭐?”
카르모포가 놀란 눈으로 영수를 바라봤다.
그런데…
영수가 눈에 불을 켜며 카르모포를 노려보고 있었다.
“애들을… 좋아한다고?”
콰콰콰콰콰!
허공에 태양보다 더 큰 거대한 불꽃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