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 who drives a Benz RAW novel - Chapter (99)
내 조건은
내 조건은
성삼봉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는 큰 소리로 사과했다.
고개를 조아리고 눈치를 보는 성삼봉.
제법, 어색하지 않은 연기였다.
“제가 시간 맞춰서 정비를 다 끝내놨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마치 누군가 들으라는 듯한 큰 소리.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하지만, 얼굴에는 검은 기름때가 묻어있었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출장할 때 정비도구를 하나 깜빡하고 오는 바람에, 죄송하지만 정비소까지 같이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영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사장님, 한 번만 봐주십시오. 저희 사장님이 아시면 저 죽습니다! 조금 맞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까? 여기는 회사 근처라, 보는 눈이 많아서…”
성삼봉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우…”
영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해지는 성삼봉의 얼굴.
빡!
순식간에 머리를 덮친 영수의 손.
제법 강했다.
성삼봉이 쓰고 있던 모자가 벗겨지고, 일순 휘청였을 정도였으니까.
“너 정신머리 똑바로 안 차려? 내가 얼마를 냈는데? 일 이따위로 할 거야? 아우, 어쨌든 알았으니까 앞장서기나 해! 사과한다고 해서 뭐가 변해?”
영수는 신경질을 내며 차에 올라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쓴 성삼봉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얼얼할 정도로 맞았는데, 고개 숙일 때마다 그의 입꼬리가 옆으로 찢어졌다.
“그, 그럼 저희 카센터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꾸뻑 숙이고는 주차장에 있는 구형 프라이트 차량으로 뛰어갔다.
굳이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지금까지 모두가 양아치에 생각도 미래도 없이 막사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나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노출 시킬 리스크를 건다라…’
가장 잃을 게 많은 그가 먼저 직접 움직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동하는데, 원래 그도 만나려고 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부우웅…
영수는 출발한 프라이트 차량의 꽁무니를 바짝 따라붙었다.
털털거리며 가는 카센터 스티커가 붙어 있는 프라이트.
생각보다 더 꼼꼼하다.
서울을 한참 벗어난 광명시.
밤일 사거리 근처 골목에 있는 허름한 카센터.
한산한 동네였다.
아직 개발되기 전이라 그럴까?
주변에 건물은 없고 공사부지 터만 있었다.
부지지직…
자갈이 가득한 주차장에서 두 차가 멈춰 섰다.
철컥. 탕!
자박, 자박…
성삼봉은 먼저 차에서 내려 영수에게 다가왔다.
“정말,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는 일단 모자를 벗으며 허리 숙여 영수에게 사과했다.
철컥.
문을 열고 나오는 영수.
“머리는 괜찮으십니까? 다른 가족분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감정이 조금 들어갔네요.”
“하하하… 조금 아프긴 했습니다. 이게 남의 가족 이야기였다면 재미있었을 텐데, 제 가족이다 보니 씁쓸하군요.”
피곤한 표정의 성삼봉.
“대놓고 피곤한 스타일이나, 은근히 피곤한 스타일이냐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둘 다 피곤한 스타일인 건 확실하더군요. 그래서, 성삼봉씨는 어떤 쪽이죠?”
“본인 스스로만 대놓고 은근히 피곤한 스타일이죠. 남에게 피해는 잘 끼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영수는 자신들이 타고 온 차를 번갈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성삼봉을 빤히 바라봤다.
“스스로에게만 대놓고 은근히 피곤하려고 노력하는데, 은근히 피곤한 스타일이군요. 저도…”
“어쨌든,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한 이유를 알고 싶군요.”
“그건… 제가 세 사람 중 가장 지지기반이 약하고, 힘이 가장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건 아무르파스텔 내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겠죠. 성삼봉 씨를 말할 때 외가인 가람 기업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아무르파스텔의 재계 서열은 13위, 그리고 가람 기업은 17위였다.
비록 서열에서는 가람이 아무르파스텔에 밀렸지만, 현금 동원력이나 지배구조의 투명성 면에서는 아무르파스텔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 가람 기업이 굳이 아무르파스텔의 복잡한 경영 싸움에 참여를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있지만, 두 기업 모두 문어발식으로 사업 파트를 확장한 대기업이었다.
주요 사업분야를 제외하면 두 회사는 화학품, 의약품, 제지, 전기/가스/발전업 등…
공통분모가 많았다.
영수의 일침에 성삼봉은 쓰게 웃었다.
“그래 봐야 외가고, 저는 남이지요. 저를 낳고서 어머니도 바로 돌아가셨고…”
씁쓸하고 쓸쓸한 표정.
그러나 영수는 그 표정에 속지 않았다.
저 표정 또한 자신을 속이려는 제스쳐다.
스스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하지만, 영수는 만나본 형제들 중에서 그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훗날의 출세를 위해 모욕을 참고 명예도 버리며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갔다는 한신의 고사처럼, 그는 목적을 위해 가족들과 세상을 수십 년째 감쪽같이 속이고 있는 사람이었다.
“가식은 그만 떨고 본론으로 가죠. 그쪽은 제게 원하는 것이 뭐고, 해주려는 것은 뭡니까?”
“제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거나, 뭔가를 드린다고 약속을 드릴 수 있는 위치는 아닌데…”
성삼봉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을 끄나 싶더니.
“바라는 게 있다면 그냥 이 모든 상황에서 손 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색하며 영수를 쳐다봤다.
“손을 떼라?”
“이쪽은 모든 작전을 끝내 놨습니다. 한영수 이사님이라는 변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오래 준비했다는 소리군요. 하지만, 차라리 제가 성삼봉씨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좀 더 도움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다른 형님 누나들처럼 회사를 먹고 싶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저는 애초에 그 더러운 성가의 지분 싸움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회사가 분해되거나 망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건 제가 바라는 바죠.”
성삼봉은 처음 보여주는 잔인하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그의 관심사는 뭘까?
뭔진 몰라도, 다른 어떤 사람의 제안보다 그의 이런 태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영수에게도 아무르파스텔의 경영권 따위가 어떻게 되든 큰 상관은 없으니까.
“손을 떼주겠습니다. 대신 가람 에너지, 파스텔 그린 에너지.”
갑작스럽게 영수의 입에서 두 회사의 계열사 이름이 튀어나오자 성삼봉이 움찔했다.
“…”
“현금 1조 5천억.”
“흐음… 그 정도 돈으로는…”
성삼봉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지금 영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는 아니다.
일이 끝나면, 1조 5천억에 두 사업체를 넘기라는 소리였다.
“그 부분은 제 마음대로 하기가 어렵군요. 그런데 그보다는 망가진 박 상무를, 이전으로 돌려주실 수는 없습니까? 제 측근인데다가, 작전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인데 나사가 빠져 버려서는…”
성삼봉은 슬쩍, 불공정계약 마법이 꼬이는 바람에 망가져 버린 박 상무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돌려버렸다.
물론, 그에 대한 문제도 성삼봉의 입장에서는 중요하긴 할 것이다.
그는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이니까.
“제가 왜 그렇게 해줘야 하죠? 그쪽에 당한 게 있는데요?”
“보답하겠습니다.”
“어떻게요? 보아하니, 가람에 계열사를 갖다 바치고 그 대가로 아무르파스텔을 갈기갈기 찢어서 해체할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
성삼봉은 말을 하지 않았다.
즉, 부정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른 분들을 만나봤지만, 사실 성삼봉씨의 계획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저로서는 가장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게 이득이 없다면, 제가 굳이 참여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하. 이거 그냥, 노선을 바꿔서 아무르파스텔과 가람을 둘 다 먹어버리고 회장이라도 될까요? 제가 회장이 되면 다 가능합니다. 그냥 다 가능합니다.”
영수가 피식 웃었다.
대통령이 되면 다 하겠다고 말하는 허언 같은 건가? 아니면 최부자를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봉이 김선달이 이럴까?
“성삼봉씨가 마음에 들어 충고해드립니다. 어차피 저는 에너지, 발전 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손대면, 국내 발전소 사업은 모두 망합니다. 그냥 다 망합니다.”
영수는 성삼봉의 말투를 빌려 그대로 그에게 경고해주었다.
이것은 진담이었다.
지금 연구 중인 일정한 크기의 열에너지를 꾸준히 공급하는 방법만 표준화를 끝내면 바로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 수 있을 거다.
마나석과 흑마석은 마나/흑마나를 가지고 있는 돌로 부족한 마력을 대체하거나 마법 아이템 아티팩트에 쓰이는 마력을 공급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마나석과 흑마석이 마나와 흑마나를 영구히 생성하는 돌이기 때문이다.
즉, 발전기가 돌아가게 되면 최초에 사용된 마나석이나 흑마석 외에 아무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1조 5천억에 넘기도록 하지요.”
“아니, 1조로 하죠.”
“1조…”
“대신, 그렇게 된다면 만일 그쪽이 투자가 필요하다면 1조 정도 지원해줄 수 있습니다.”
“흐음… 계획을 많이 바꿔야겠군요. 하지만… 좋습니다. 다만, 그것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박 상무님을 예전의 박 상무님으로 돌려주십시오. 최면을 쓰신 건지, 아니면 대체 어떤 일을 하신 건지… 예전의 박 상무님이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영수는 성삼봉에게 손을 내밀었다.
성삼봉은 기름때가 묻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 씨익 웃으며 영수의 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정말 회장이 되실 생각은 없습니까? 사실 제게는 지분도 얼마 필요 없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영수가 성삼봉을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저는…”
[특종, 아무르파스텔 성추행 파동, 회장 성일도 법정에 서나?] [A기업 S 회장 미성년자 성매수 의혹 정리] [이혼 두 번, 사별 한 번, 회장님이 정력을 위해 먹는 음식은?] [새로운 여자를 위해 부인의 살인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 S회장, 증거 추가로 발견돼나?]아무르파스텔에 난리가 났다.
회장 성일도에 대한 추문과 의혹이 하루 만에 연달아 언론에서 터져 나왔다.
가뜩이나 지난번 인천 공장 고의 방화 사건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아무르파스텔이었다.
그런데 최고 경영자 성일도 회장에 대해 연신 안 좋은 일이 터져 나오니…
-나 성일도 네 키스하고 xx 때문에 산다.
-야, 두 명은 나를 부축해야지. 내가 xx만 빼고는 다 xx이잖아.
-오늘 수고했어. 씻고 와서 xxx에서 다시 보자.
결정적으로 터져 나온 동영상.
성접대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과 접대가 끝났을 때의 장면, 거기에 실제 행위를 하고 있는 장면이 찍혀 있는 동영상이 공유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져 나왔다.
편집되어 언론에까지 공개되어버린 동영상.
영상에 나온 사람은 누가 봐도 성일도 회장이라, 아니라고 발뺌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주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주주들이 소집되었다.
일부는 기관을 대표로 나왔지만, 대부분은 성일도 회장과 같은 성을 쓰는 일가친척들의 얼굴이 더 많았다.
그들 중 직접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들도 있었지만, 순환 출자되어 지분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일도 회장이 아무리 아무르파스텔 지주회사의 주식을 단일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해봐야, 4.7퍼센트.
이미 그가 회장이 축출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다음이다.
여기 모인 이들의 결정에 따라 회장이 바뀐다. 즉, 아무르파스텔의 미래가 바뀐다.
대 회의장을 향해 매우 젊은, 한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회의 시간은 오후 다섯 시인가…”
영수가 아무르파스텔의 로비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