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14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14화
에스카와 통신한 이후로, 지크는 꽤 한가한 나날을 보냈다.
토드로 위장하면 이것저것 바쁠 것 같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인수인계를 받았을 땐 할 일이 많아 보였었는데…… 막상 불법적인 일을 안 하기로 하니 할 게 없네.’
일의 대부분이 아이 납치, 관리, 마을 탐색, 몰살, 리스트 작성, 실험체 확보 등.
인간적으로 해선 안 되는 짓거리들이었기에 모두 배제하다 보니 할 게 없는 것이다.
‘거짓 보고를 하다 보면 언젠가 발루두크가 찾아올 거라 예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발루두크의 심복이라길래 기대했건만 의외로 서로 간에 통신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토드로 위장한 지 일주일이 됐는데 아무 연락도 없는 걸 보면.
‘좀 더 기다려봐야겠지.’
새로운 영지전이 잡힐 때까지 아직 시간은 있다.
그동안은 토드인 척 위장해서 발루두크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간간이 크리오스와 대련하며 오러도 쌓고 말이다.
그때 지크의 통신구가 빛을 발했다.
에스카가 기다리던 정보를 물고 온 모양이다.
“어, 무슨 일.”
-전에 지시하신 일 있잖습니까. 알아냈습니다.
“풍신의 리타 말이야?”
-예. 제가 의심받지 않게 넌지시 물어봤거든요. 풍신의 리타가 데칸에는 무슨 일로 가냐고요.
“그랬더니?”
-1년 전에 못다 한 위업을 달성하러 간다고 하더라고요.
‘1년 전?’
1년 전에 데칸 왕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하니 한 가지가 떠오른다.
‘국왕 암살?’
당시 요리사를 이용해 독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로 일을 방해한 자신을 처리하려던 거였고.
“리타를 이용해 국왕을 암살하려는 건가?”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더 물어보기엔 저도 눈치가 보였던지라…….
“언제 시행하는지도 모른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더 알아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알았다. 그러면 또 다른 지시를 내리지.”
-옙! 명령만 내리십시오.
“그 암살, 너도 돕는다고 말해.”
-예? 저, 저도 끼라고요?
“왜, 못하겠어?”
갑작스러운 지시에 당황했는지 한동안 통신 너머에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대답이 늦네?”
-조금 놀라서요. …하겠습니다.
“이유는 알아서 만들고. 어떻게든 암살에 끼워 달라고 해. 네가 동행해야 위기의 순간 암살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아, 연락할 거면 내 쪽으로 와서 해. 발루두크와의 통화를 듣고 싶으니까 말이야.”
-예. 지금 그리로 가죠.
* * *
어둠이 깔린 공동.
횃불 하나가 일렁이며 그림자를 만드는 가운데, 두 명의 인영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처리해야 하느니라. 지난번처럼 방해도 없을 테니.”
“그럼요. 누구의 명령인데요.”
리타 로즈는 중립 왕국 베르 출신의 선구자다.
풍신의 리타라고 더 알려진 그녀는 대외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번 습격으로 국왕은 너의 정체를 눈치챌 것이다. 중립을 표방하는 왕국에서 암살을 주도했다고 여기겠지.”
“그렇게 되면 베르는 중립국에서 벗어나 데칸과 척지게 되는 거고요.”
발루두크가 어둠 속에서 씨익 미소 지었다.
“그렇지. 데칸을 지금보다 더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작전을 수행하는 거예요? 좀 더 빨리할 수도 있었잖아요.”
“실행 날, 국왕이 특별한 손님을 맞이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날짜를 지금으로 잡은 것도 그 때문이고.”
“아항.”
이미 전달받은 명령이 있기에 납득하는 리타였지만 의문이 모두 해소된 건 아니었다.
“어차피 약소국인데 이렇게 몰아붙여서 좋을 게 있어요?”
“네가 뭘 모르는군.”
발루두크의 핀잔에, 리타는 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서열 11위인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필요할 때 말곤 정보도 알려주지 않으시잖아요.”
“네 불만은 이해한다. 그러나 모든 건 그분의 뜻이니 이해하길 바란다.”
“칫, 알겠어요. 말단인 저야 시키는 대로 해야죠, 뭐.”
“이제 말단도 아니지 않느냐?”
“아, 맞다. 에스카 로빈스를 받으셨다고 했죠?”
새로운 신입 선구자를 떠올린 리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 녀석이 우리랑 오랜 기간 작업해 왔다는 건 알겠는데 너무 빨리 먹이를 준 거 아니에요? 희망 고문하면서 쭉 이용하시지 왜 벌써 선구자 자리에 올려주신 거예요?”
“희망 고문도 적당히 해야 하는 법이다. 인간이란 자고로 불만이 쌓이면 다른 생각을 품기 마련. 그대로 놔뒀다면 아즈라힐처럼 반역을 품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만하면 이젠 올려줄 때도 되지 않았느냐?”
“그야 그렇죠. 그런데 아즈라힐은 왜 배반한 거예요?”
“뻔하지 않느냐? 서열 최하위로서 명령만 하달받는 자신의 위치가 불만족스러웠겠지.”
“하긴. 이해는 가요……. 아! 그렇다고 저도 불만이 있다는 소리는 아니구요. 제 마음 아시죠?”
눈을 찡긋거리며 황급히 수습하는 리타의 모습에, 발루두크는 헛웃음만 지을 따름이었다.
“시킨 일이나 제대로 하거라.”
“알겠… 음? 발루두크 님. 통신이 왔나 봐요.”
리타의 말처럼 발루두크의 로브 자락 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통신구를 꺼내든 그가 주저 없이 연락을 받았다.
“에스카. 무슨 일이냐?”
-안녕하십니까, 발루두크 님! 잠깐 시간 좀 괜찮으신가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 그게…… 제가 이번에 선구자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여러모로 생각해 봤는데요…….
“빙빙 돌리지 말고 용건만 간단히 말해라.”
-그…… 풍신의 리타 님 말이에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리타가 눈동자를 키웠다.
-그분이 조만간 데칸에 위업을 달성하러 간다고 하셨는데 저도 따라갔으면 해서요.
“너도 낀다고?”
-예! 같이 가면 분명 도움 될 겁니다. 허락해 주시면 선구자로서의 첫 임무이니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
목소리만으로도 에스카가 얼마나 열의를 가졌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지난번에 실패한 수모를 갚고자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위업.
그런 중요한 일이었기에 리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에스카는 데려갈 수 없어요, 발루두크 님. 저런 짐덩이를 끼는 것보단 저 혼자 일하는 게 달성률이 더 높아요.”
-어? 옆에 리타 님도 계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신입 선구자, 에스카 로빈스라고 합…….
“더 들을 것도 없어요. 그냥 통신 끊으세요, 발루두크 님.”
“흐음.”
발루두크는 고민에 빠졌다.
에스카가 임무에 참여하게 해달라는 저의야 이해는 된다.
‘그토록 원하는 선구자도 됐겠다, 이참에 성과를 올려서 다른 선구자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거겠지.’
자신의 권한으로 선구자 자리에 놓긴 했지만, 에스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선구자도 여럿 있었다.
아니,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실정.
그도 그럴 것이 수십 년간 12인의 선구자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그들이다.
그런 마당에 새로운 선구자를 받아들인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달가울 리 없다.
물론 에스카를 가장 가까이에서 봐온 발루두크야 믿고는 있었지만.
‘이제 막 선구자가 된 에스카가 다른 동료들의 신임을 얻기는 힘들겠지. 하지만…….’
이번 일을 제대로 완수하면 보는 눈이 달라질 수도 있다.
생각을 마친 발루두크가 결정을 내렸다.
“좋다. 너도 끼워주마.”
-감사합니다! 발루두크 님!
“안 돼요! 발루두크 님!”
양쪽에서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발루두크의 고개가 리타에게 돌아갔다.
“너무 빡빡하게 굴지마라, 리타. 녀석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느냐?”
“저 혼자서도 충분하다고요. 저 녀석이 끼어봐야 방해만 될 뿐이에요!”
“방해가 되는지 아닌지는 써보면 알 게 아니냐?”
“하지만……!”
“더는 왈가왈부하지 마라. 이미 그리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독단적인 결정에, 리타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더 말해봐야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에스카. 말했듯이 리타와 함께 일을 준비하도록 하라. 자세한 건 그녀가 알려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셔서!
“너를 믿기에 특별히 기회를 베푼 것이니라. 누구보다 데칸이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너 아니더냐?”
-아… 그럼요.
“믿고 맡길 테니 리타와 함께 임무를 완수하고 오거라.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일을 성사시켜야 한다.”
* * *
이윽고 리타와 만나기로 약속한 에스카가 통신을 끊었다.
그러자마자 옆에 있던 지크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어떻습니까, 주인님. 저 잘하지 않았습니까?”
“잘했어. 계획대로 리타와 같이 행동하게 됐네.”
이제 국왕을 암살하기 전에 리타를 막을 수 있으리라.
“그런데 말이야. 아까 그건 무슨 소리야? 네가 데칸이 망하기를 바란다고?”
“아…… 그거 말입니까? 실은…….”
에스카는 주인에게 조심스레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쉐인 2세는 제 아버지입니다.”
“뭐?”
이게 뭔 재미없는 농담이란 말인가?
국왕이 에스카의 아버지라고?
“진짜야, 그 말?”
“예…… 50년 전, 그러니까 국왕이 20대일 때. 시녀였던 저희 어머니에게 연정을 품었고, 그렇게 낳은 첫 자식이 저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왜?”
“모두 죽었으니까요.”
애써 억누르는지 에스카의 목소리에선 희미한 분노가 느껴졌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국왕이 죽이라고 명령한 겁니다. 저를 비롯한 어머니가 부끄러웠던 모양이죠.”
“…….”
“어머니는 살해당하고 그다음은 제가 당할 차례였지만, 차마 갓난아기를 죽이진 못하겠는지 길가에 버려졌습니다. 가만히 놔둬도 죽을 거라는 생각이었겠죠.”
“그런데 어떻게 살았어?”
“운 좋게도 지나가던 행인에게 발견되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이후로는 궁정에 얼씬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왕족의 핏줄이 될 수 있는 운명이 아니었던 거죠.”
씁쓸한 목소리로 말하던 에스카는 이후로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마법적 재능에 눈을 뜨고 9서클이 되었습니다. 이후 발루두크 님을 만났고 선구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실험과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시키는 일은 뭐든 했습니다. 언젠가 그들에게 인정을 받고 12인의 선구자 자리에 올라 당당히 이름을 떨치게 되면, 국왕이 저를 버린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그래서 제야의 고수처럼 9서클이라는 걸 밝히지 않은 건가?”
“예. 데칸 최초의 9서클 마법사라는 타이틀로 국왕의 자존감을 채워주기는 싫었습니다. 그저 아기였던 저를 버린 걸 후회하고 고통스럽게 죽기를 한평생 바라고 있었을 뿐이죠.”
‘하…… 혼란하다, 혼란해. 에스카가 국왕의 핏줄이었다니.’
지크가 한숨 쉬는 와중.
[현재 바라보는 대상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한쪽에 떠오른 메시지에 혼란스러움이 더욱 가중됐다.
지금까지 한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는 거니까.
다만 그대로 믿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없진 않았다.
“그 당시 갓난아기였다면서 국왕이 죽이려 했다는 건 어떻게 알아?”
“머리가 커지고 난 후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구한테?”
“얼굴은 잘 기억 안 나지만…… 어떤 남자였습니다. 당시 국왕의 명령으로 갓난아기였던 저를 죽이려 했다더군요.”
한마디로 죽이려던 남자가 양심고백으로 술술 털어놨다는 소리였다.
지크가 의심스럽게 보던 부분이 그 부분이었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예. 저한테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길은 없지만, 에스카가 잘못 들은 정보를 진실로 믿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만 되어도 시스템은 진실로 판독해버리니까.
“쉐인 국왕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입니다. 암살은 막지 않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네가 말한 대로라면 완전 개쓰레기이긴 한데…….”
진실인지 아닌지 믿기가 어려웠다.
지크가 만나본 쉐인은 국민을 생각하는 인덕 있는 왕이었으니.
“네 개인적인 사정은 알겠어. 그렇지만 국왕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순 없어.”
“하지만 주인님…….”
“너도 국왕이 후회하게 만들고 싶다며? 그럼 더더욱 암살을 막아야지. 지금 죽이는 건 시기상조 아니야?”
“…….”
반박할 여지를 찾지 못한 에스카는 끝내 고개를 주억였다.
“알겠습니다. 리타의 곁에서 임무를…….”
“잠깐만.”
말을 제지한 주인은 어째서인지 놀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스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정확하게는 돌발 퀘스트를 바라보고 있는 지크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