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17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17화
바람의 거인이 침입하기 몇 분 전.
쉐인 2세는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소, 유그리토 경.”
“별말씀을요. 도움이 필요하면 달려오는 게 기사의 도리지요. 그것이 친우나 다름없는 데칸 국왕의 요청이라면 더더욱.”
“허허, 친우라니. 이거 일찍이 엘소리움과의 관계를 개척한 선대 국왕께 감사드려야겠구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유그리토라 불린 사내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유려한 외모가 더욱 빛을 발한다.
특유의 쫑긋 솟아오른 귀까지도.
“실례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저희가 준 물건에 문제가 생겼다 들었는데…….”
“아!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소. 가져오너라.”
국왕이 명령하자, 한쪽에 마련해 뒀던 물건을 시종이 가져왔다.
유그리토의 눈빛이 단번에 진지하게 변했다.
“이건…… [성스러운 빛의 바람 갑옷]이 아닙니까?”
“그렇소. 선대 국왕이 그대들과의 약속에 따라 수백 년간 보관하고 있던 보물이오. 나도 전대 국왕이 그랬던 것처럼 매일같이 창고에 들러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지. 한데 며칠 전부터 이상한 현상이 생겨서 말이오.”
“이상한 현상?”
말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좋겠다 싶었는지 쉐인이 갑옷을 들었다.
매끄러운 표면을 보면 그간 얼마나 꾸준히 관리해 왔는지 알 수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여기, 표면을 보시오. 붉은 글자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는 게 보이시오?”
국왕의 말대로 갑옷에는 붉은 문자 여러 개가 떠올라 있었다.
유그리토의 표정이 심각해진 건 그쯤이었다.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엊그제부터 이랬소.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이길래 단번에 눈치챘지.”
“…….”
“이것이 경을 부른 이유요. 엘소리움과의 협약에 따르면 물건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부르기로 되어 있었으니.”
“예. 그렇지요.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아보겠소? 이 문자의 의미는 또 뭔지?”
유그리토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모르는지는 표정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이 갑옷은 아무래도 엘소리움에 가져가야겠습니다. 무슨 현상인지는 평의회 장로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리하시오. 어차피 그대들이 맡겼던 물건이니.”
“감사합니다.”
갑옷을 내어주기로 함으로써 볼일은 끝났다.
유그리토가 이대로 떠나도 문제없는 상황.
하지만 모처럼 맞이한 손님을 이대로 보내긴 아쉬웠는지 쉐인이 이런저런 말을 덧붙였다.
“공주는 잘 계시오?”
“물론입니다.”
“마음 같아선 엘소리움에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싶은데…… 아마 힘들겠지?”
“예. 보나 마나 장로들이 극구 반대할 겁니다. 전쟁의 폐해를 겪었기 때문인지 누구보다도 보안에 민감한 그들이니까요.”
“아쉽군. 올 수 있다면 성대한 연회를 열어 맞이했을 텐데…….”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돌아가면 그 뜻을 공주마마께 전하겠습니다.”
“고맙소.”
여전히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실은 엘소리움과 관계를 튼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국왕이었다.
인간과 교류하길 꺼리는 그들이 이처럼 믿고 물건까지 맡길 수 있는 건 데칸이 유일했으니까.
그래서인지 국왕은 자꾸만 말을 붙이며 유그리토를 붙잡아두려 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손님이었으니까.
하지만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밖에서 웬 소란이 들렸으니까.
“전하! 얼른 피신하셔야 합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침입자가 들어왔습니다!”
“침입자?”
대전에 들어와 외치는 신하들의 다급한 음성에도, 쉐인은 눈만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작년에 독살당할 뻔한 이후로 왕궁의 보안을 더욱 강화했다.
데칸 최고의 궁정 마법사들이 철통 보안 속에서 왕궁을 지키고 있다는 뜻.
그런 마당에 침입자라니?
“얼른 피신하셔야 합니다!”
“알겠다.”
다급한 신하의 표정이 연기처럼 보이진 않았기에 쉐인은 서둘러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유그리토 경. 궁에 문제가 생긴 듯하니 얼른 자리를 피해야겠…….”
“어딜 가시게?”
난데없이 들린 제삼자의 목소리에, 왕궁에 있던 모두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더니 어느새 30대의 여인이 허공에서 착지하듯 내려왔다.
“……!!!”
“……!!!”
그 모습에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허공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난 것보다는 왕실까지 너무도 쉽게 침입한 것에 더 놀랐다.
“웬 놈이냐!”
“웬 놈이라니. 숙녀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죽여버리고 싶게.”
호위병의 외침에 능청스레 대꾸한 여인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한차례 바람이 불더니.
서걱!
호위병의 목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그 행동 한 번에, 대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치, 침입자다!”
“침입자를 제압하라!”
“국왕 전하를 보호하라!”
차앙! 창!
대전에 있던 열 명의 호위가 검을 빼 들고 달려들었다.
자신에게 달려든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여인의 표정엔 한 점의 당황스러움도 엿볼 수 없었다.
살기등등한 눈빛만이 스쳐 지나갈 뿐.
“그렇게 오면 다 죽어.”
경고였지만 달려오는 누구도 그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
머릿속엔 그저 동료를 죽인 간악한 마법사를 제압할 생각뿐.
하지만.
쿠콰콰콰콰!
여인을 중심으로 회오리친 바람이 순식간에 호위병들의 몸을 찢어발겼고.
후두둑―
핏물과 함께 떨어지는 몸뚱어리에, 도망치려던 국왕이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오,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의 호위병들이 한순간에…….”
“흥, 마법도 못 쓰는 이딴 버러지들로 날 막을 생각이었다면 한참 잘못 봤어. 적어도 거기 숨어 있는 왕실의 친위대라면 모를까.”
“……!”
쉐인 국왕이 흠칫 놀랐다.
그건 곁에 숨어서 비밀리에 호위하던 왕실 친위대 또한 마찬가지.
스르륵-
이미 들켰다고 여겼는지 국왕 곁에 있던 친위대가 투명화를 풀고 하나둘 나타났다.
그 수만 열 명 남짓.
그 모습에 여인보다 오히려 신하들이 더 놀랐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알게 모르게 국왕을 호위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전하. 저희가 막을 테니 손님과 함께 몸을 피하십시오.”
“괜찮겠느냐?”
“물론입니다.”
자신감 넘치는 친위 대장의 말에, 지켜보던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데칸의 왕실 친위대가 아무리 베일에 싸여 있다곤 하지만 기껏해야 8서클 이하. 그런 놈들 열 명이서 이 몸을 막겠다고? 그게 가능하다면 풍신의 리타라는 이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겠지.”
“푸, 풍신의 리타?”
국왕이 놀란 눈으로 여인을 바라봤다.
바람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베르 왕국 유일의 선구자가 침입자의 정체라고?
놀란 건 국왕만이 아니었는지 열 명의 친위대 또한 눈동자를 키웠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간에, 자신들이 할 일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전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아, 알았다. 부디 조심하거라.”
국왕이 움직이려 하자, 리타의 눈빛이 바뀌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누가 보내준대?”
리타가 손짓하자 바람의 벽이 한순간에 출구를 틀어막았다.
대전에 갇힌 신세가 된 국왕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여기 있는 놈들은 내 허락 없이 한 놈도 못 빠져나가. 거기 있는 엘프도 마찬가지고.”
리타가 말한 사람은 유그리토였다.
표정이 굳어 있자 리타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넌 죽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죽을 거야. 국왕을 비롯한 모두가.”
그 와중, 친위대는 지팡이 끝에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리타가 고개를 돌린다.
“헛짓거리하기는.”
“포격 개시!”
열 개의 지팡이 끝에서 온갖 마법이 쏟아져나왔다.
그야말로 폭격하듯 퍼부어댔지만 리타는 그저 바람의 장막을 펼치고 있을 뿐이었다.
콰콰쾅!
콰쾅!
연속적으로 마법을 퍼붓는 와중에도 친위 대장이 다급히 쉐인을 돌아봤다.
“지금입니다! 몸을 피하십시오, 전하!”
“하지만 갈 곳이 없지 않은가!”
“그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유그리토가 바람이 소용돌이치는 벽을 향해 검을 빼 들었다.
“바람의 정령이여, 나의 부름을 들어라.”
순간 검에서 밝은 빛이 터지면서 바람이 일었다.
그러자 잠시 후 거짓말처럼 벽이 해제되어 사라져버렸다.
“지금입니다. 쉐인.”
“고맙소. 얼른 갑시다.”
두 사람이 떠나려 하자, 리타는 피식거리며 비웃었다.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벽을 허물다니. 칭찬은 해줄게. 하지만 거기까지야.”
리타를 감싸던 바람 장막이 한순간에 돌풍이 되어 날아들었다.
쿠콰콰콰쾅-!
“컥!”
“어억!”
마법을 퍼붓던 친위대가 모조리 나가떨어졌다.
다행히 실드로 보호했는지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팔다리가 찢어지거나 피투성이가 된 게 한눈에 봐도 마법을 쓰기엔 무리처럼 보였다.
“버러지들이 죽지도 않고 살았네. 아무렴 상관없지.”
중얼거린 리타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후우우웅!
바람이 지나간다 싶더니 어느새 국왕과 유그리토 앞에 나타났다.
“내가 말했지? 누구도 내 허락 없인 못 나간다고.”
“이 사악한 년이!”
“노인네가 곧 죽을 거라고 막말하는 것 좀 봐? 빨리 끝내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리타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국왕, 넌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줄게.”
지팡이를 들고 마력을 모으려는 그때.
유그리토의 검이 리타의 머리를 노렸다.
후웅!
그러나 신기루처럼 사라진 탓에 허공만 베었고, 리타는 어느새 유그리토의 뒤를 점했다.
“넌 잠이나 자고 있어.”
리타가 슬립 마법으로 재우려 했지만.
팅!
유그리토가 입고 있던 갑옷의 반발력이 마력을 밀어냈다.
“어떻게 된 거야?”
살짝 놀라는 것도 잠시.
“불꽃의 정령이여. 나의 부름을 들어라.”
한순간에 나타난 화염이 리타를 덮쳤다.
화르르륵!
그러자 리타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무영창으로 마법을 쓰다니. 정령술이라는 거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성가시네?”
여유로운 미소로 국왕의 뒤에 있었을 뿐.
“어, 어느새!”
“입 닥쳐, 국왕. 내가 말했지? 고통스럽게 죽여준다고.”
키이이이잉!
바람의 칼로 변한 리타의 손아귀에서 날카로운 파쇄음이 일었다.
“난 한다면 하는 여자야.”
리타가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곧이어 국왕의 몸이 두부처럼 갈릴 거라고.
노인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올 거라고.
리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람의 칼날이 사라지는 걸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거 뭐야? 왜 이래?”
손아귀를 감싸던 바람의 칼날이 보란 듯이 사라졌다.
국왕은 십년감수 한 표정이었지만 리타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시도해도 손끝에 마력 한 줌 모을 수 없었으니까.
지팡이까지 이용해서 주변의 마나를 끌어내 봤지만 구속구를 찬 듯 반응이 없었다.
풍신의 리타라는 이명이 무색하게 바람 한 점 만들어낼 수가 없다.
“뭐 이런 개 같은 일이…….”
“말조심해. 듣는 개가 기분 나빠하겠어.”
앞에서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리타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흉신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에스카! 이 개 같은 새끼! 네놈 짓이었구나!”
자신을 막은 게 누구인지 깨달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