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24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24화
실바나는 잠시 멍한 눈으로 지크의 손을 응시했다.
이그드라실의 잎을 마치 맡겨놓은 물건인 양 당당하게 요구하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래? 얼른 가져와 보라니까?”
[세계수의 잎은 아무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그럼?”
[정령왕님의 허락이 아니면 구할 수 없고, 다른 차원으로 가지고 나갈 수도 없죠. 그건 정령계의 어떠한 물건도 마찬가지예요.]“그러니까, 정령왕한테 허락만 받으면 잎도 구하고 인간계로 가지고 나갈 수도 있다, 이거야?”
[그, 그렇죠. 하지만 정령왕께서 인간을 만나주실 리가…….]“그건 만나보기 전엔 모르지. 인간이 정령계에 들어온 것도 사실상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정령왕한테 안내나 해. 잎사귀 좀 얻어야겠으니까.”
막무가내로 구는 모습에 실바나가 한숨을 쉬었다.
[쫓겨나셔도 전 몰라요.]“어.”
사실 쫓겨나도 지크로선 상관없었다.
‘이곳에서 볼일은 다 봤으니까.’
비록 죽어 있었지만 다르옌 찾기 퀘스트도 완료됐고, 만난 장로의 수도 두 명이 되었다.
이제 정령계를 나와서 나머지 세 명의 장로를 만나 메인 퀘스트를 완료하면 그만.
그럼에도 지크가 다르옌 장로를 부활시키려고 하는 건 순전히 카르볼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동안 드래곤에 대한 단서를 얻고 싶어 했으니까.
‘이대로 퀘스트만 깨고 나가는 것도 좀 허무하니 정령왕이나 만나볼까?’
사실 나가는 법을 몰라서 정령왕을 만나려는 것도 있었다.
나갈 때 이그드라실의 잎을 받으면 더 좋고.
[이쪽으로 오세요. 정령왕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릴게요.]실바나는 그리 말하며 하늘에 떠 있는 세계수를 향해 날아갔다.
정령처럼 날개는 없었지만, 지크로선 하늘을 나는데 문제 될 게 없었다.
‘플라이(Fly).’
마법으로 몸을 띄우며 실바나를 쫓아갔다.
무수하게 뻗친 나무뿌리를 지나 나무 기둥을 따라 쭈욱 올라갔다.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어마어마하게 크네.’
아마 한국에서 제일 높다는 타워도 세계수에 비하진 못할 터.
끝도 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나무 기둥을 한참 동안 날아간 끝에, 잎사귀가 가득한 가지에 도달했다.
[이리로 들어오세요.]“어어.”
무수한 가지와 잎사귀로 뒤덮인 이곳은 그야말로 정글이 따로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길잡이가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안쪽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어디쯤 있는지 짐작도 되지 않을 만큼 깊숙이 들어온 끝에.
[도착했어요.]실바나는 황금빛이 일렁이는 형체 앞에서 날갯짓을 멈췄다.
[정령왕님. 손님이 오셨어요.] [알고 있다, 실바나.]빛이 밝아지며 또 하나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지크는 본능적으로 목소리의 근원이 저 빛에 있음을 깨달았다.
“당신이 정령왕인가요?”
어쩐지 자신의 존재를 이미 인지하고 있는 듯한 말투.
묘한 기분을 느끼며 지크가 당당히 말했다.
“이그드라실의 잎을 구하려고 왔는데요.”
[그걸로 다르옌 장로를 살리려는 거지?]“알고 계셨군요?”
[정령계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지켜보고 있다. 그대가 어떤 경로로 들어왔고 어떤 일들을 하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이미 알고 있지. 다만.]정령왕의 목소리가 조금 묵직해졌다.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정령 친화력을 높였는지는 도통 모르겠구나. 그대가 이곳에 들어온 목적까지도.]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건 아닐까 걱정하는 목소리.
지크는 정령왕의 걱정을 해결해 주지 않고는 잎사귀를 받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저는 다르옌 장로를 데리러 들어온 거예요.”
[누구보다 이기적인 인간이 엘프 장로를 찾으러 정령계까지 들어왔다? 왜지?]“그를 찾으면 리치 드래곤과의 싸움 끝에 사라진 드래곤의 행방에 대해 알 수 있을지 몰라서요.”
[드래곤? 그러고 보니 그대에게선 용력이 느껴지는군. 정확히는 그 목걸이에서.]“맞아요. 얘가 바로 3천 년 전 싸움에서 살아남았던 그 드래곤이죠.”
지크는 보란 듯이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
자신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라는 듯.
정령왕은 사실을 확인하려는지 잠깐 밝아지더니 이내 수긍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드래곤의 영혼이 들어 있군. 괜찮다면 그 드래곤과 대화를 나눠도 되겠는가?]“네. 그런데 목걸이를 껴야 대화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그건 문제 되지 않는다. 영혼을 인간의 형태로 형상화하면 되지. 이렇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령왕이 빛을 쏘아 보냈다.
손아귀 형태로 변한 빛은 목걸이에 들어가더니 뭔가를 끄집어냈다.
그것은 희끄무레한 영혼 형태의 여성이었다.
“뭐냐? 본좌를 어떻게 한 거냐?”
“카르볼? 너 설마 카르볼이야?”
“지크? 내가 보이느냐?”
“보여. 정령왕이 네 영혼을 잠깐 끄집어낸 거 같은데.”
“그런가?”
“응. 그런데 왜 하필 여성의 몸으로 형상화한 거지?”
[그야 그 드래곤의 성별이 여성이니까.]정령왕의 대답에 지크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카르볼이 여성체 드래곤이었다고?’
그동안 말투만 보고 남성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여성이었다니.
‘그래서 목걸이나 브로치 같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던 건가?’
어쩐지 보물창고의 물건들이 여성스럽다 싶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
“왜 자꾸 쳐다보느냐?”
“그냥… 신기해서.”
“하긴 나도 기분이 새롭군. 인간의 모습을 하기는 오랜만이니.”
성별을 알고 놀랐다는 말은 접어두고, 지크는 잠자코 정령왕을 쳐다봤다.
카르볼과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궁금했으니까.
[드래곤이여. 수천 년의 역사를 살아가는 고대의 존재여. 그대가 알고 싶은 게 동료 드래곤의 행방이라 했는가?]“그렇다, 정령왕이여. 혹시 아는 게 있다면 말해다오.”
[미안하지만 정령계에만 줄곧 있었던 나로선 아는 바가 없다. 드래곤이 정령계에 들어온 적도 전무하니.]그 말은 카르볼이 정령계에 들어온 최초의 드래곤이라는 뜻.
그러거나 말거나 여성체가 된 카르볼의 얼굴엔 실망감이 역력했다.
정령왕이 말을 잇기 전까진.
[드래곤의 생사는 몰라도 리치 드래곤과의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정말인가? 그렇다면 알려다오!”
[드래곤은 리치 드래곤에게 대패했다.]반색하던 카르볼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딱딱하게 굳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그들의 힘은 그야말로 막강했지. 200이 넘던 드래곤이 채 절반도 되지 않는 숫자에 무너져 버렸으니.]“…….”
[거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진실. 드래곤들이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어디로 흩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지.]“뭘 말이냐?”
[리치 드래곤을 타락시킨 악마가 또다시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 말이다.]악마가 전쟁을 준비한다?
악마의 적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천마 대전을 다시 일으키려는 속셈인가?”
[그렇다. 인간계의 일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천마 대전에서 패배한 마족들은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 그 일례로 놈들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리치 드래곤 중 하나가 정령계를 침범하려고 몇 번이고 시도했었지.]“리치 드래곤이…… 정령계를?”
지크와 카르볼은 동시에 눈을 키우며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드래곤의 행방은 몰라도 리치 드래곤의 행방은 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그 리치 드래곤의 이름과 위치를 알려다오!”
[알려주면? 그를 막아주겠는가?]“그렇…….”
곧장 대답하려던 카르볼이 말을 멈추고 지크를 돌아봤다.
젊은 여성으로 화한 카르볼의 사슴 같은 눈망울이 허락을 구하고 있다.
“지크. 도와주겠나? 나 혼자선 할 수 없는 일이다.”
“…….”
지크의 입에서 곧장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리치 드래곤을 잡으라고? 무슨 이득이 있어서?’
솔직히 말해 퀘스트가 뜬 게 아니면 움직일 생각이 없던 지크다.
그래서일까?
잠자코 보던 정령왕이 목소리를 내었다.
[인간이여. 그 리치 드래곤을 처리해 준다고 약속하면 그대가 원하던 이그드라실의 잎을 주겠다.]“흐음. 하나만요?”
지크가 흥정하듯 말하자 순간 당황했는지 침묵하는 정령왕이었다.
[원하는 수를 말해보라.]“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내가 줄 수 있는 건 두 개까지다.]“겨우요? 외부의 위협을 제거해 주는 대가가 겨우 나뭇잎 두 개라고요?”
[……그럼 세 개는 어떠한가? 인간계로 가지고 나갈 수 있게 허락도 해주지.]“그건 당연히 허락해야 하는 거고요, 세 개도 너무 적은데.”
팔짱을 끼며 아예 대놓고 흥정하자, 정령왕의 빛이 당황하듯 깜빡거렸다.
[좋다. 다섯 개…… 그 이상은 밖으로 반출하면 위험하다. 인간계의 질서를 어지럽힐 가능성이 있으니.]“이그드라실의 잎이 그렇게 대단해요?”
[물론이다.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건 물론 모든 병을 말끔하게 고칠 수 있지.]“어떻게 사용하는 건데요?”
[잎을 먹으면 효과가 발휘된다. 시체라면 입안에 욱여넣으면 되고.]사용법까지 들은 지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시스템이 응답을 보내왔다.
【돌발 퀘스트 : 리치 드래곤 찾기】
└리치 드래곤이 정령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정령왕의 제안을 수락하고 리치 드래곤을 찾으세요.
└리치 드래곤 찾기
└랜덤으로 스탯 1,400 증가
└5차 스킬 숙련도 70,000 증가
‘진즉에 이렇게 퀘스트를 줘야지.’
지크가 기다린 건 퀘스트였다.
퀘스트가 안 떴어도 이그드라실의 잎 때문에라도 움직였겠지만…….
‘기왕이면 퀘스트도 받는 게 좋잖아?’
더구나 이번 퀘스트만 완수하면 숙련도를 9성까지 찍고 6차 스킬을 각성할 수 있다.
지크로선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인 셈.
내심 만족하며 퀘스트를 수락한 지크였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정령왕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지크가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
[인간이란 참으로 욕심 많은 종족이군.]“뭐라고요?”
[일곱 개. 그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 인간이여.]‘잎사귀가 계속 늘어나네?’
다섯 개로 흥정을 끝내려던 지크로선 공짜로 두 개가 더 붙은 셈.
당연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요. 제안을 수락하죠.”
[좋다……. 그럼 리치 드래곤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정보를 들은 지크는 정령왕으로부터 잎사귀도 건네받았다.
[여기, 약속한 이그드라실의 잎 일곱 장이다.]빛에 감싸여 떠오른 잎사귀가 지크의 손바닥에 고이 안착했다.
[부디 정령계를 위협하는 리치 드래곤을 처리해다오.]“걱정 마세요. 보수를 받은 이상 확실하게 해결해 줄 테니까.”
[…….]정령왕은 딱히 대답이 없었다.
표정이 있었다면 아마 질린다는 듯 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와 달리 카르볼은 그저 단서를 찾았다는 생각에 기꺼운 얼굴이었지만.
“수락해 줘서 고맙다, 지크. 리치 드래곤을 찾으면 내 동료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을 거다. 어서 정령계를 나가서 녀석을 찾자!”
“잠깐.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지크가 혹시 몰라 정령왕에게 물었다.
“서비스로 다르옌이라는 엘프를 부활시켜줄 순 없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대를 인간계로 돌려보내는 것뿐이다.]“칫, 어쩔 수 없이 내 잎사귀를 써야겠군.”
잎사귀 한 장만 남기고 나머지는 아공간에 집어넣은 지크가 돌아가는 법을 물었다.
[일이 끝나는 대로 그대를 엘프와 함께 인간계로 돌려보내 주겠다.]“오케이. 그럼, 여기서 작별합시다.”
[알았다. 드래곤도 원상태로 돌려주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르볼의 형상이 스르륵 사라졌다.
-음? 원래대로 목걸이에 돌아왔나?
“그런 것 같네. 그럼 갈게요, 정령왕 님.”
지크는 정령왕으로 보이는 빛의 형상에 손을 흔든 뒤, 세계수 아래로 텔레포트 했다.
별안간 다르옌이 있던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더니 대지의 정령 그린더가 깜짝 놀란다.
“세계수의 잎을 가지고 왔어.”
[뭐라? 정령왕이 그걸 내어줬단 말인가? 그것도 인간에게?]“하나 정도 쓰는 거야 안 아깝지.”
지크는 곧장 잎을 구겨서 다르옌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죽었던 다르옌 장로가 신음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으으음…… 깜빡 잠들었었나……?”
“일어나셨어요?”
“응? 자넨……?”
다르옌은 놀란 눈으로 지크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상황을 파악했는지 눈자위가 더 커졌다.
인간이 자신과 함께 정령계에 들어와 있으니 놀랄 수밖에.
“저한테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자세한 건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갑작스레 빛이 휘감기더니 장로가 사라졌다.
그건 지크도 마찬가지였다.
정령왕이 인간계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신의 후예여. 그대의 앞날에 무운이 있길…….]정령계를 떠나는 지크의 뒤로 정령왕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