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25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25화
나이가 많을수록 사회에서 존중받는 위치와 권위는 높아진다.
그건 엘프 사회도 마찬가지.
1,500살까지 장수한 다섯 장로라면 그 권위란 말할 것도 없다.
엘소리움에서 장로의 말은 곧 법이라 할 수 있을 정도.
장로가 그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데엔 물리적인 힘도 없지 않았다.
본디 마법사란 마력을 쌓을수록 더 강해지는 법이었고, 엘프는 선천적으로 마법에 타고난 종족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장로들이라고 서로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다.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뉘는 그들이었으니까.
“키엘 장로! 정말 다르옌 장로를 찾으러 들어가지 않을 것이오?”
온건파 장로인 아르킨의 물음에, 급진파인 키엘이 퉁명스레 말했다.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오? 내가 뭐하러 그런 수고를 해야 한단 말이오? 다른 사람도 아닌 다르옌 때문에.”
키엘은 재고의 여지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아르킨은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장로끼리 뭉쳐야 할 판에 이렇게 반목해서야 되겠소? 그러지 말고 같이 다르옌을 찾으러 가봅시다. 올 시간이 한참 지나지 않았소?”
“난 됐으니 그리 걱정되면 아르킨, 당신이나 들어가시오.”
“키엘 장로도 알지 않소. 장로 중에 마력이 약한 내가 들어가 봐야 일주일도 버티지 못한다는 걸.”
“그 일주일이라도 들어가서 찾아볼 생각이나 하지 뭐 하는 게요? 정말 찾을 마음이 있긴 한 거요?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요?”
“다른 꿍꿍이라니……?”
“다르옌을 위하는 척 다른 장로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혼자 엘소리움을 차지할 생각은 아니오?”
순간 아르킨의 인상이 콱 일그러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가식 떨지 마시게, 아르킨. 여태껏 한 번도 위험을 감수한 적 없는 주제에 유피넬시아를 위하는 척, 다르옌을 위하는 척 가식이나 떨다니. 그대가 겁쟁이라는 건 장로는 물론 기사단장도 아는 일이외다.”
“더 이상의 모욕은 참지 않겠소!”
“흥,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더니. 딱 그짝이군.”
“…….”
“잠자코 다르옌의 영결식이나 준비하시오. 보름이 지났는데도 안 돌아왔다는 건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이니.”
“설마, 그럴 리가…….”
충격받은 표정을 짓는 아르킨을 보며, 키엘이 헛웃음을 지었다.
‘다르옌이 죽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가식을 떨다니. 어지간히도 겁쟁이로군.’
얼핏 보면 다르옌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키엘은 간파했다.
아르킨이 시커먼 속셈을 감추기 위해 가식이라는 가면을 장착했다는 것도.
그렇기에 키엘은 온건파 녀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급진파에 속하는 자신과 다른 두 장로만이 엘소리움을 이끌어 갈 미래라고 생각할 뿐.
‘다르옌이 죽었으니 유피넬시아를 보호할 울타리도 이젠 없다. 병 든 공주는 빨리 치워 버리고 새로운 꼭두각시를 뽑아야겠어.’
유피넬시아 곁엔 아르킨이 남아 있지만, 곧 혼자서는 힘들다는 걸 깨달을 터.
얼마 안 있으면 백기를 들고 급진파인 자신들 아래로 들어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키엘이 간과하는 점이 있었다.
이러한 계획들은 어디까지나 다르옌이 죽었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르옌이 살아 돌아온다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다르옌은 다섯 장로 중 가장 강한 마법사였으니까.
‘하지만 돌아올 수 있을 리가 없지. 정령계는 나 같은 최고위 장로도 열흘을 버티는 게 고작이니.’
그런데 보름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시체가 되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정령계에 들어간 다르옌을 이미 죽은 사람 취급하는 이유.
그러나 같은 온건파인 아르킨은 그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살아 돌아오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는 걸 보면.
“정령계에는 그 드래고니안도 들어갔다 하지 않았소? 그가 분명 다르옌 장로를 데리고 돌아올 것이오.”
“흥, 어림도 없는 소리. 사람 찾기가 그리 쉬운 줄 아시오? 정령계가 얼마나 넓은데. 어찌어찌 찾는다고 해도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겠지.”
“…….”
“그러니 다르옌 장로는 잊어버리고 이제 그만 우리 쪽에 넘어오시오. 공주를 위한다는 가식은 때려치우고.”
“가식이라니. 난 절대로…….”
“쯧, 혼자 남은 마당에도 끝까지 가식을 떨다니.”
키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는 그때.
워프 게이트의 빛이 번쩍이며 두 엘프가 나타났다.
다른 급진파 장로인 아부르 장로와 뎀파이 장로였다.
“다르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이까?”
“안 왔소.”
“역시 죽은 건가?”
“그럴 수밖에 없겠지. 올 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키엘과 마찬가지로 다른 두 장로도 다르옌의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얼굴에서 애석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평소에 자신들의 사상과 맞지 않는 다르옌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그들이었으니 없어진다면 오히려 더 좋다.
“찾으러 갔다는 인간의 소식은?”
“그 또한 없소. 더 기다려 봐야 하지 않겠소?”
“하긴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슬며시 아르킨을 바라봤다.
사실상 같은 편이 없던 아르킨은 괜스레 위축을 느껴야 했다.
“아르킨 장로. 그대도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와 뜻을 함께할 생각은 아예 없는 것이오?”
“이제 혼자나 다름없는데, 계속해서 유피넬시아를 보호할 작정이오?”
세 사람의 질문에 아르킨은 곤란한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빨리 다르옌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릴 뿐.
하지만 급진파에 속하는 장로들은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정령계가 얼마나 거친데, 거길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가.’
‘아마 죽었으면 벌써 죽었겠지.’
‘이참에 멋모르고 들어간 그 드래고니안이라는 인간도 죽어버렸으면 좋겠군.’
세 장로 모두가 다르옌이 이미 죽었을 거라고 완전히 확신하는 상황.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츠츠츠츠!
다르옌이 인간과 함께 보란 듯이 살아 돌아올 줄은.
“다들 기다리셨죠?”
“……!!!”
“아닛?”
“음……!”
정령계로 통하는 게이트 앞에서 별안간 두 사람이 나타났다.
지크와 다르옌 장로였다.
설마 살아 돌아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장로들이 떨떠름한 침음을 흘렸다.
지크로선 퀘스트 완료에 좋아할 따름이었지만.
[엘소리움 장로 만나기 5/5명 완료!]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버프 ‘자연의 축복’이 적용됩니다.]‘오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장로들이었구나. 바로 퀘스트가 완료된 걸 보면.’
나머지 장로들은 어떻게 만날지 고민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기 다 모여 있었으니.
[버프 : 자연의 축복]―효과 : 추위와 더위에 면역을 가지며, 자연 에너지를 얻어 스탯으로 변환시킬 수 있습니다. 추가로 동식물과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특이사항 : 정령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에만 버프가 유지됩니다.
무신의 축복에 이은 두 번째 버프가 들어왔다.
설명을 보니 꽤 나쁘지 않은 버프 같다.
‘자연 에너지가 뭔지는 몰라도 스탯을 올려준다니, 괜찮네.’
추위와 더위에 면역을 가지거나 동식물과 소통할 수 있는 점도 나름의 장점이었다.
당장 와닿진 않았지만.
그러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던 지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다들 똥 씹은 표정을 하고 그래요? 정령계에서 돌아왔는데 환대해 주진 못할망정.”
“크흠….”
“흠…….”
다들 말을 아끼는 모양새.
갸우뚱거린 지크였지만 의문은 곧 옆에 있던 다르옌 장로가 풀어주었다.
“다들 내가 죽기를 바랐던 게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다르옌.”
“왜?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정령계에서 죽어가는 동안 누구 하나 찾으러 들어온 장로가 없거늘.”
“그야 정령계는 위험하니까 안 들어갔지!”
“혼자 사지에 들어가 놓곤 왜 우리를 탓한단 말인가!”
급진파 장로들이 분개했지만 다르옌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탓하는 게 아니라 이제 그만 솔직해지자는 걸세. 다들 내가 자리에서 물러나길 바라지 않는가? 병든 유피넬시아도 치워 버리고 싶은 심정일 테고.”
갑자기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지 몇몇 장로가 탄식을 터트렸다.
“허, 인간과 붙어먹어서인지 사람이 달라져서 돌아왔군.”
“죽을 위기를 겪어서 정신이 나간 모양이지.”
“잠깐만요.”
듣고 있던 인간, 지크가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썼다.
“가만히 있던 저는 왜 끌어들여요? 듣자 듣자 하니 기분 나쁘네. 그리고 이분은 죽을 위기가 아니라 진짜로 죽었었는데요?”
“다르옌 장로가 죽었었다고?”
“뭐라는 거야, 이 인간이.”
헛소리로 치부하려던 장로들은 지크가 아공간을 열어 잎사귀를 꺼내자 놀란 눈초리가 되었다.
“이게 뭔지 알아요? 죽은 이도 살린다는 이그드라실의 잎이에요. 정령왕이 저한테 선물로 준 거죠.”
“……정령왕이?”
“인간 주제에 정령왕과 대화를 나눴다고?”
“정신 나간 소리도 가지가지 하는군.”
가짜라고 생각하는지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다르옌 장로만은 달랐다.
의식을 잃었던 자신이 깨어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그게 정말로 이그드라실의 잎인가?”
“예.”
“그걸로 죽었던 날 살려내었고?”
“두말하면 입 아프죠. 믿을진 모르겠지만…….”
“아니, 믿네.”
즉답한 다르옌은 정말로 믿는지 지크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처음엔 잠깐 졸았나 싶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니었어. 정령계의 기상천외한 환경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었던 게야.”
다르옌이 덥석 지크의 손을 잡았다.
눈빛에는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나를 살려줘서 고맙네. 그대의 이름을 알고 싶네.”
“지크 맥러플린이라고 해요.”
“지크…… 그대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는지 지크를 그윽하게 바라보던 다르옌이 고개를 돌리며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죽기를 바란 저 장로들보다 날 구하러 들어온 지크, 자네가 백 배, 천 배는 더 믿음직스럽군.”
“뭐라?”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장로들에게서 눈길을 거둔 다르옌이 눈을 감고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더니 잠시 후 뜻밖의 선언을 했다.
“엘소리움의 장로인 나, 다르옌은 인간인 지크 맥러플린에게 목숨을 빚진바, 이에 지크를 믿고 따르며 그를 위해선 목숨도 불사하지 않을 것을 자연의 신 ‘무느’에게 맹세한다.”
“뭣!?”
“지금 뭐 하는 겐가!”
장로들이 놀라는 사이, 다르옌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오며 언약이 맺어졌다.
이제 맹세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아무렴 좋다는 듯 다르옌은 덤덤한 얼굴로 장로들을 바라봤다.
“이제 지크는 내가 믿고 따르는 유일한 인간이 됐네. 앞으로 지크에게 나와 동등한 대우를 하지 않을 시에는 나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가만히 있지 않겠네.”
“…….”
지크에게 함부로 말하던 장로들이 입을 다물었다.
자연의 신을 걸고 한 맹세의 의미가 어떤지는 자신들이 잘 알고 있었기에.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얼떨떨해하는 건 당사자인 지크였다.
‘뭐한 거야? 지금? 내게 목숨을 바친다고 맹세한 거야?’
드래곤에 대한 단서를 더 얻으려고 다르옌 장로를 부활시켰더니 갑자기 맹세했다.
고맙긴 하지만 조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크. 그대는 내 생명의 은인이네. 맹세를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그대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그대를 따를 것이야. 그러니 혹시라도 여기 있는 장로들이 그대에게 언짢은 행동을 보인다면 말하게. 그대가 받은 모욕은 내가 받은 모욕과도 같으니.”
“아…… 그러죠.”
지크가 끄덕였지만, 장로들은 그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놓고 눈살을 찌푸리는 걸 보면.
지크도 그런 장로들이 언짢았는지, 똑바로 마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르옌 장로님. 여기 있는 사람들 시선이 좀 마음에 안 드는데요.”
“그러한가?”
“예. 싹 다 정신교육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건 나한테 맡겨주시게.”
그리 말한 다르옌이 곧장 키엘 장로를 비롯한 급진파 장로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당장 시선 깔게. 안 그럼 도전으로 알고 결투를 불사하지 않을 것이야.”
하지만 급진파 장로들은 코웃음만 칠 따름이었다.
다르옌이 장로 중에 가장 권위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숫자만 따지면 이쪽이 한 사람 더 많다.
지크를 포함하면 동등해지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드래고니안이 강해봐야 1,500년이나 마력을 쌓아온 자신들만 하겠는가?
그래서였을까?
“결투?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어디 한번 해보지 그러나?”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잘됐겠군. 어떤가? 이참에 장로 자리를 걸고 결투하는 건.”
“힘 있는 자가 엘소리움의 권력을 차지하는 걸로 하지.”
결투라는 말에도 다들 좋다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명분이 필요했던 그들로선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이참에 온건파를 밀어내고 장로를 셋으로 줄여도 좋으리라.
그렇게 정치적인 싸움이 개싸움으로 변하기 일보 직전.
“그만들 하세요!”
난데없이 울린 미성의 목소리에 장로들의 고개가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