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26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26화
저벅저벅-
두 명의 엘프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 명은 유그리토고 다른 한 명은…….’
아름다운 드레스로 치장한 여리여리한 엘프 소녀였다.
다르옌이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피넬시아.”
“장로님. 안녕하세요.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다른 장로분들도 안녕하셨죠?”
다르옌과 달리 급진파 장로를 향한 유피넬시아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급진파가 자신을 몰아낼 궁리를 한다는 걸 그녀도 모르지 않는 모양이다.
“공주. 여기 어쩐 일인가? 아니, 그보다 방금 뭐라고 했지?”
“그만들 하시라고요. 높으신 분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싸우기만 하실 거예요? 엘소리움의 기둥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맹랑하고 당차다.
그것이 유피넬시아를 본 지크의 첫인상.
하지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나이 어린 소녀에게 타박을 들으면 기분 좋을 리가 없으니.
아니나 다를까.
급진파 장로들이 눈을 부릅뜨며 기함을 토했다.
“뭣이 어째? 새파랗게 어린 공주 따위가 엘소리움의 최고위 장로들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제가 뭐 틀린 말 했나요?”
“네년이 정녕!”
“유피넬시아! 그만!”
다르옌 장로가 말렸고 유피넬시아는 유그리토의 보호를 받으며 뒤로 물러났다.
키엘을 위시한 급진파 장로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안 되겠다. 이렇게 된 거 당장 서열 정리를 할 수밖에!”
“엘소리움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누가 급진파 아니랄까 봐 장로들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힘을 과시할 준비를 했다.
그동안은 다르옌이 정령계를 들락날락하며 얌전히 죽기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참을 수 없다.
힘으로 온건파 장로들을 밀어내고 엘소리움을 완전히 차지할 작정이었다.
“아르킨 장로! 그대는 어느 쪽에 설 텐가? 우리 쪽인가? 아니면 다르옌 쪽인가!”
키엘의 외침에, 아르킨은 잠시 고민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붙은 쪽은 급진파인 키엘 옆이었다.
“아르킨 장로! 지금 뭐 하는 겐가!”
“미안하오, 다르옌 장로.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강한 자 옆에 서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니오?”
“이이……!”
가식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보란 듯이 배신하는 아르킨의 모습에, 키엘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허허, 상황판단이 좋군그래. 아무렴 그래야지. 목숨이 달린 일인데 더 가능성 있는 쪽에 붙어야지. 안 그런가, 다르옌?”
“…….”
“아르킨 장로가 우리 쪽에 넘어왔으니 이제 온건파는 자네뿐이구만. 혼자 외롭게 공주를 지키면서 기어이 피를 볼 텐가? 아니면 순순히 자결할 텐가?”
다르옌은 대답 없이 입술만 짓씹었다.
상대는 장로 넷.
이대로 싸운다면 확실히 자신 쪽이 불리했다.
기껏 살아난 목숨을 허무하게 잃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다르옌이 걱정하는 건 자신의 목숨 따위가 아니었다.
‘이대로면 유피넬시아가 위험하다.’
그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한들 마찬가지였다.
본색을 드러낸 급진파의 장로들이라면 자신과 공주를 죽인 뒤 병으로 쓰러졌다고 공표하고도 남는다.
‘그런 뒤, 꼭두각시로 부려 먹을 공주를 선출해 엘소리움을 쥐락펴락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다르옌이 지팡이를 들었다.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놈들을 막아야 한다.
엘소리움을 타락한 장로들의 손에 내어줄 순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간과하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드래고니안인 지크였다.
“분위기 뭐지? 지금 싸우려는 거예요?”
지크가 앞으로 나서자 다르옌이 놀라며 소리쳤다.
외부인이 싸움에 말려들게 할 순 없었다.
“그만! 위험하니 자네는 당장 여기를 떠나게!”
“괜찮아요, 괜찮아. 대화나 해보려는 거니까.”
손을 휘저은 지크가 여유롭게 급진파 장로들 앞으로 걸어갔다.
겁도 없이 다가오는 모습에 키엘 장로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 거기 인간 한 마리도 있었군.”
“한 마리……?”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벌레니까 마리라고 칭해도 문제 될 것 없지. 역겨운 인간족 같으니.”
키엘 장로가 이를 드러내며 분노를 표출했다.
다른 장로도 별반 다를 것 없는 표정이었다.
하나같이 인간에 대한 적대심으로 가득한 얼굴들.
쪽수 때문에라도 움츠러드는 게 마땅했지만, 지크는 당당했다.
살짝 기분 나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릴 뿐.
“지금 저한테 시비 거는 거예요?”
“걸다 뿐이랴? 네놈도 다르옌과 함께 이 자리에서 죽여주마.”
“죽인다는 말을 함부로 하는 걸 보니 인성이 보이네요. 교육이 필요하겠어요.”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반푼이 주제에.”
“드래곤을 목에 걸고 있다고 아주 자신만만하구만?”
“드래곤의 영혼이라 해봐야 영혼일 뿐이지.”
“인간이라 봐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열등한 종족일 뿐이고.”
급진파 장로들의 비웃음에도 지크는 별말 없이 앞으로 나섰다.
그저 뚜둑뚜둑 주먹을 풀며 앞으로 나설 뿐.
“더 다가오면 죽는다, 인간.”
경고했지만 지크의 발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쯧.”
기어코 피를 봐야겠냐는 듯 혀를 차던 장로들이 지크를 향해 지팡이를 뻗었다.
그러나.
“음?”
“왜 이러지?”
“고, 고장이 났나?”
바람 앞에 촛불처럼 훅하고 사라진 마력에, 장로들이 하나같이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러는 사이, 지크와의 걸음은 손 뻗으면 닿을 만큼 좁혀졌고.
“장로님들.”
웃으며 팔을 든 지크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뒤질 준비는 되셨죠?”
* * *
장로들의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시비가 붙을 줄은 몰랐던 유그리토는 마음을 졸이며 상황을 지켜봤다.
가능하면 싸움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짜다. 정말 피를 볼 작정이야.’
게다가 온건파 장로였던 아르킨이 본색을 드러냄으로써 다르옌 장로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9서클인 다섯 장로가 싸우게 된다면 왕궁은 엉망진창이 될 건 불 보듯 뻔한 일.
이 와중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힐끔.
옆에 있는 유피넬시아를 지키는 것.
‘다르옌 장로님. 죄송합니다. 싸우게 된다면 저는 참전할 수 없습니다. 공주의 기사로서 유피넬시아 님을 지키는 게 우선이니.’
슬금슬금 물러나던 유그리토는 조용한 목소리로 유피넬시아에게 귀띔을 흘렸다.
“공주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물러나시죠.”
장로들 앞에서 당당히 외치던 유피넬시아도 말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꼈다간 고래 싸움에 새우 등만 터지고 만다.
그때.
‘응?’
유피넬시아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인간 한 명이 당당히 나서더니 장로들과 대립하고 섰다.
“유그리토. 저분은……?”
“아, 제가 말씀드렸었죠? 오늘 온 손님 중에 지크라는 드래고니안이 있다고. 그분이 저분입니다.”
공주가 본 지크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더 어리다는 것이었다.
자신과 같은 또래로 보일 정도?
‘그런데도 드래곤의 재능을 받았다니.’
대단한 인간임엔 틀림없었지만, 장로에 비할 바는 아니다.
아무리 인간이 강해도 1,500년의 세월을 수련해 온 마법사를 감당할 수야 있겠는가?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렇게 확신했는데.
퍼억! 퍽!
이변이 일어났다.
장로들이 인간 한 명에게 주먹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허둥지둥거리며 재차 지팡이를 겨눠봤지만 그게 끝이었다.
마법으로 대응할 생각이 아예 없는 모습.
‘아니, 못 하는 건가……?’
당황하는 장로들을 보니 자신의 짐작이 맞았던 모양이다.
지크의 실력에 감탄하는 유피넬시아 옆으로, 유그리토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9서클의 장로들이 인간 한 명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
마법은커녕 바닥을 기며 도망치려는 모습이 꼴사납기 그지없다.
“유그리토 경…… 상황이 거의 끝난 것 같은데요?”
“그…… 그렇군요.”
두 사람은 도망치는 것도 잊은 채 장로들이 두들겨 맞는 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감상했다.
* * *
“사, 살려…….”
퍽! 퍽!
“제, 제발 그만…….”
퍽! 퍼억!
무자비한 구타에 장로들의 멀쩡한 치아가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 모습에 키엘은 굳은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얼핏 보기엔 침착한 듯했지만 실은 당황해서 움직일 생각도 안 들었다.
‘어, 어떻게 된 거냐! 대체 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키엘은 장로들이 주먹질에 쓰러지는 다급한 와중에도 상황을 되짚어봤다.
‘아르킨 장로가 이쪽에 넘어오면서 전력 차는 압도적으로 기울였다. 그런데 어찌!’
9서클 장로 넷이서 한 인간을 감당하지 못하다니!
물론 그가 당황하는 이유는 인간의 무력 때문이 아니었다.
‘멀쩡하던 마력이 왜 안 모인단 말이냐! 대체 왜!’
언제나 그렇듯 모여야 할 마력이 오늘만큼은 고장이라도 난 듯 말썽을 부렸다.
지팡이도 먹통이고 주변의 마나를 끌어모아 봐도 마력들이 어딘가로 새어 나가 버린다.
이러니 술식을 완성하고 무슨 짓을 해도 그 흔한 실드 마법 하나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
‘안 되겠다. 정령술을 이용할 수밖에!’
과거, 인간은 엘프의 정령술을 가로채기 위해 생체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엔 정령에게 선택받은 엘프 고유의 기술이라는 걸 깨닫고 악행을 그만뒀지만, 키엘은 알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정령술을 부러워하는지.
정령술의 장점이 무엇인지.
‘정령을 이용하면 마력을 부리지 않아도 마법을 쓸 수 있지.’
키엘은 서둘러 정령을 소환시켜봤다.
하지만 지금 처맞고 있는 장로들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령이여! 나의 부름을 들어라!”
“정령이여! 나의 부름을…… 커억!”
한 장로가 지크의 주먹에 맞고 나자빠졌다.
어찌 된 일인지 정령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봐도 대답은 없었다.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엘프가 자랑하던 정령술이 저 인간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 모습을 본 지크가 주먹을 털며 피식 미소 지었다.
‘아무리 해봐라. 정령의 힘을 빌릴 수 있나.’
이미 정령왕으로부터 리치 드래곤이라는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기로 한 지크다.
정령계의 구원자로 나선 지크를 정령들이 공격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셈.
게다가 정령 친화력 스킬까지 있어서 정령들에게 지크는 아군을 넘어 친구 수준이었다.
‘그러니 반응이 없을 수밖에.’
나름의 힘 조절을 하며 세 장로를 때려눕힌 지크가 남은 한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헛!”
눈이 마주친 키엘 장로가 흠칫 어깨를 떤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주먹부터 먹여줬다.
조금 강하게.
뻐억!
“우, 우웨에엑!”
복부를 얻어맞은 키엘이 오늘 먹었던 점심을 토해냈다.
재빨리 토사물을 피하며 인상을 쓴 지크는 그대로 발차기를 날려 키엘을 저 멀리 치워버렸다.
“에이, 더럽게. 몸에 묻을 뻔했잖아.”
투덜거렸지만 현재 서 있는 사람이라곤 지크 한 명뿐.
마법도 정령술도 쓰지 못하는 네 명의 장로들을 때려눕히기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다르옌 장로님.”
“으, 응……?”
여태까지의 광경을 지켜보던 다르옌이 멍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이 사람들 어떻게 할까요?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까요?”
“흡……!”
“헙!”
지크의 살벌한 소리를 들었는지 신음을 흘리던 장로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장내에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처분을 기다리던 지크를 향해, 다르옌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네. 그보다 더 가혹한 처분이 있지.”
“어떤……?”
“서클을 폐한 뒤 지하 감옥에 가두려고 하네. 죄인은 죄인다운 처벌을 받아야지.”
한마디로 폐인으로 만들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우리 속에 집어넣겠다는 소리였다.
‘하긴. 한순간에 고통을 주는 것보단 그게 더 낫지.’
합당하다고 여긴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유, 유피넬시아 님!”
갑자기 쓰러지는 유피넬시아를 유그리토가 부축했다.
“무슨 일인가!”
“고, 공주님이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다르옌이 서둘러 유피넬시아의 머리를 짚더니 마력을 흘려봤다.
체내로 들어간 마력이 공주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이런…… 상태가 더 악화했어!”
“예?”
“무리하게 서 있던 탓에 이렇게 된 모양이야. 아까 평소답지 않게 소리치기도 했고.”
본디 뼈가 약해지는 지병 탓에 10분 이상 서 있기조차 힘든 유피넬시아였다.
그 때문에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일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 사실을 기억해낸 지크가 유피넬시아에게 향했다.
“잠시만 나와보세요.”
“왜 그러나?”
장로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지크가 손을 들었다.
손바닥에서 따스한 빛이 흘러나와 유피넬시아를 감쌌다.
이그드라실의 잎을 쓸 필요도 없었다.
쓰러졌던 그녀가 곧바로 정신을 차린 걸 보면.
“으음…….”
“유피넬시아? 정신이 들어요?”
“지크…… 님?”
“몸은 어때요? 일어나 보세요.”
유피넬시아는 시키는 대로 몸을 일으켰다.
확연하게 달라진 자신의 몸 상태에 눈자위가 커진다.
그걸 느낀 건 비단 유피넬시아뿐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다르옌과 유그리토가 놀란 표정이 됐다.
“자네 지금 뭘 한 겐가?”
“유피넬시아의 병을 치료했어요.”
“뭐?”
“…….”
좌중에는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당사자를 포함한 모두가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유피넬시아의 지병은 200년 동안 고쳐지지 않은 불치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