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27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27화
지크가 신의 축복으로 불치병을 고친 이후.
급진파 장로들은 서클이 부서진 채 지하 감옥에 갇혔다.
공주와 다르옌을 죽이고 엘소리움을 차지하려던 그들의 계획은 그렇게 무산됐다.
“지크. 도와줘서 정말 고맙네. 그대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저들의 계획대로 됐을 것이야.”
“뭘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아닐세. 그대는 영웅이네. 엘소리움을 지켜준 영웅.”
다르옌은 지크의 손을 꼭 붙들며 몇 번이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기껏 살린 다르옌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서 나섰더니 영웅 취급을 받고 있다.
“자네였나? 장로들이 마력을 쓰지 못하게 차단한 사람이?”
“예. 정확히 어떤 방식인지는 알려줄 수 없지만요.”
“알고 싶지도 않네. 아군의 기술을 캐내는 취미는 없으니. 어쨌든 살았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나도 그렇고 유피넬시아도 그렇고.”
유피넬시아의 지병은 불치병이었다.
200년간 괴롭혀왔던, 신관도 손을 놓았던 불치병.
그렇기에 사람들은 병약한 공주로 태어난 유피넬시아를 측은하게 여기거나 동정심 어린 눈으로 보기 일쑤였다.
평생을 약한 몸으로 살다가 결국엔 죽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비극적인 운명은 지크에 의해 없어져 버렸다.
“공주의 지병을 치유하기 위해 이그드라실의 잎을 구하러 정령계로 들어갔건만, 그럴 필요도 없었구만그래. 바로 눈앞에 공주를 구할 영웅이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다르옌으로선 지크를 만난 게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죽었던 목숨도 살렸지, 엘소리움도 구했지, 유피넬시아의 지병도 치료했지.
하루 만에 행한 업적을 따지면 영웅이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다르옌은 지크에게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꺼냈다.
“지크. 드래고니안이자, 엘소리움의 구세주여. 부디 우리 엘소리움과 영원한 동맹을 맺지 않겠나?”
“예? 동맹이요?”
엘프족의 최고위 장로가 동맹을 제안한다.
놀랍긴 했지만, 당연히 거부할 필요 없는 제안.
하지만 지크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다르옌 장로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냥 동맹을 맺자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한 동맹입니다.”
“영원한 동맹?”
반문에, 유그리토가 이어서 말했다.
“서로 불가침하는 건 물론이고 평생을 저희 엘프족의 일원으로 여기며 최고 장로급의 대우를 보장하는 동맹입니다.”
“나쁠 것 없네요.”
“예. 그러나 여기엔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어떤 거죠?”
유그리토의 눈길이 슬쩍 옆에 있던 공주를 향했다.
“엘프족의 공주이신 유피넬시아와 혼인을 하셔야 합니다.”
“아…… 예?”
혼인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인지라 지크는 잠시 어리바리한 얼굴이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상대로 지목받은 유피넬시아에게로 향했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아름다운 외모.
다소곳한 자세와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
여태 보아온 여인 중에선 단연코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천생 여인이라 칭할 수 있는 게 유피넬시아였다.
그래서인지 약혼자로서는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지크였고.
‘이런 여자와 결혼하라고……?’
과분하다 못한 제안에 상대 의사부터 확인해야겠다는 듯 바라보자, 유피넬시아가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좋아요. 제 병을 고쳐주신 낭군님이라면 한평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요.”
‘좋다고……? 내가?’
상대는 오케이했다.
이제 자신만 승낙하면 둘의 혼사는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덤으로 엘소리움과의 영원한 동맹으로서의 대우도 받을 테고.
하지만, 지크로선 그리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평생의 배우자를 구하는데 난생처음 본 여자와 결혼은 좀…….’
의외로 고지식했던 지크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실망할 법도 했건만, 유피넬시아는 조금도 그런 낌새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저 참을성 있게 지크의 결정을 기다릴 뿐.
하지만 다르옌은 기다리기 힘들었나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걸 보면.
“어떤가? 유피넬시아를 신부로 맞이하고 우리와 영원한 동맹을 맺는 건.”
“어…… 동맹을 맺는 건 나쁘지 않은데요, 혼인은…… 지금 결정하기엔 너무도 갑작스러운지라…….”
사실 고향에 돌아갈 마음으로 가득한 지크에게 있어 결혼은 사치였다.
떠날 마당에 뭐하러 이곳에 미련을 남겨둔단 말인가?
행여나 결혼 후에 자식들이 태어나기라도 하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거지.’
그런 문제가 있던 지크였기에 배우자를 누구로 정할지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유피넬시아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이해해요. 당장 결정하기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으니까요. 그러면 이건 어때요?”
유피넬시아가 싱긋 웃으며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지크 님의 여정에 저도 따라가게 해주세요. 그럼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잖아요?”
“유피넬시아!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네. 이참에 못 해본 바깥 구경도 좀 하고 싶거든요. 지크 님에 대해서도 알아갈 겸.”
유피넬시아의 발언은 좌중에 있던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겁도 없이 모르는 남자를 따라가겠다고?
다르옌이 소리치는 것도 당연한 일.
하지만 상대가 지크라는 말에 다르옌과 유그리토는 곧 수긍했다.
어차피 혼인을 약속하면 문제될 건 없지 않은가?
물론 지크는 속으로 결사 반대를 외쳤지만.
‘이 여자가 뭐라는 거야? 날 따라오겠다고? 멀쩡한 얼굴에 혹 붙일 일 있나?’
지크는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리치 드래곤도 잡아야 하고, 토드인 척 위장하며 발루두크의 실마리도 잡아야 한다.
그녀가 따라다녀 봐야 방해만 될 것이다.
바깥세상을 처음 구경해 보는 멋모르는 아가씨의 안내역을 자처할 생각도 없고.
‘하지만 대놓고 말하면 상처받겠지. 엘프와의 동맹도 무산될지 모르고.’
유피넬시아와의 결혼은 그렇다 쳐도 엘소리움과의 영원한 동맹은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딱 잘라서 차단하기보단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유피넬시아. 지금은 내가 바쁜 일이 있어서 함께하지 못해요. 하지만.”
말을 끊은 지크가 그윽한 눈빛으로 유피넬시아를 주시했다.
“언젠가 돌아와서 당신이 보지 못한 세상을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약속하죠.”
느끼하다면 느끼한 멘트.
그런데도 유피넬시아의 볼엔 홍조가 피었다.
오히려 이런 말을 더 좋아하는 낌새였다.
“기, 기다릴게요…….”
그리 말하며 수줍게 고개를 숙인다.
‘원래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인가? 장로들에게 대들 때와는 완전 딴판인데……?’
어쨌거나 대답을 유보했으니 임시 동맹을 맺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아, 장로님. 그나저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가? 내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뭐든 말해주겠네.”
“과거 3천 년 전에 리치 드래곤과의 혈전을 기억하시는지요?”
“아, 드래곤과 리치 드래곤의 혈전 말인가?”
“예. 장로님이 당시 존재했던 엘프 선조님의 제자라고 들었습니다. 혹시 이에 관해 들으신 말 없습니까? 혈전이 어떻게 끝났는지, 남은 드래곤의 행방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으음, 그거에 관한 거라면 스승님에게 들은 게 있지.”
기억을 떠올리듯 시선을 위로하며 되짚어보던 다르옌이 이내 정보를 풀었다.
“당시 드래곤 측은 200 정도 되었고 리치 드래곤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네. 양측이 죽기 살기로 싸웠고 거의 50의 드래곤이 죽었다고 알려졌지.”
“50이요? 그럼 나머지 150은……?”
“50 정도는 도망쳐버렸고 남은 100마리의 드래곤은 리치 드래곤에게 포로로 붙잡혔다고 들었네. 그 이후에 어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포로로……?”
200마리 중 절반은 포로가 되었고 그 절반은 도망치거나 죽었다?
절망적인 이야기였지만 일단은 카르볼 말고도 살아 있는 동료가 있다는 점은 분명히 기꺼할만한 부분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카르볼도 희망찬 목소리를 내었고.
-지크! 얼른 다른 드래곤의 행방을 아는지 물어봐라! 얼른!
‘알았어.’
재촉하는 카르볼 탓에 지크가 곧장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기대와 달랐다.
“도망친 드래곤의 행방이야 나도 모르지. 포로들도 어디 있는지 모르고.”
“그렇습니까……?”
“다만 스승님에게 듣기론 도망칠 때 동대륙 쪽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네.”
“동대륙?”
그 순간 자카르에게서 들었던 정보가 떠올랐다.
-동대륙 웰터가든 끝자락에 드래곤의 영역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었나?’
자카르의 말을 상기하던 지크는 언제 시간이 나면 동대륙을 한번 들러봐야겠다고 여겼다.
지금은 퀘스트를 위해서라도 리치 드래곤을 찾으러 가야 하지만.
“어때? 내 정보가 도움이 좀 됐나?”
“예. 도움이 됐습니다. 그건 그렇고 슬슬 떠나야겠군요.”
“떠난다고?”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정령왕의 부탁으로 리치 드래곤이 있는 곳에 가야 한다.
그렇게 떠나려던 지크였지만, 다르옌은 이대로 보내기 아쉬웠던 모양이다.
“지크. 떠나기 전에 보여주고 싶은데 있는데.”
“보여주고 싶은 거요?”
“잠깐만 시간 좀 내주게.”
퀘스트에 기한이 있는 건 아니기에 끄덕인 지크였다.
“잠깐이라면 괜찮습니다.”
“고맙네. 이쪽으로.”
지크가 다르옌을 따라 궁궐 깊숙한 곳으로 내려갔다.
* * *
힐끔.
다르옌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지크가 잘 따라오고 있나 확인한 뒤 시선을 바로 했다.
안내하는 얼굴에는 긴장감이 어렸다.
‘지크가 부디 이 선물을 좋아해야 할 텐데…….’
현재 다르옌이 향하는 곳은 궁궐 깊숙한 곳에 있는 보물 창고.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간직해 온 엘소리움의 보물들이 즐비하다는 그곳을, 지크에게 보여줄 참이었다.
아니, 보여주다 못해 몇 개든 내어줄 생각이었다.
선물이라는 명목하에.
‘원래는 공주와의 혼인으로 영원한 동맹을 맺는 게 목적이었는데 보란 듯이 무산되었으니…….’
솔직히 다르옌은 지크가 혼인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예로부터 인간 남성은 엘프 여성에게 사족을 못 쓰는 행태를 보여왔으니.
하지만 이렇게 보란 듯이 거절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 때문에 예정에도 없던 선물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고.
‘인간은 엘프 여성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거참 이해할 수 없군.’
어쨌거나 선물을 내어줌으로써 지크와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그드라실의 잎으로 자신을 부활시켜준 데다 급진파 장로 넷을 압도적으로 처리하고 공주의 불치병을 치료해 준 존재다.
인간이고 뭐고를 떠나서 붙잡지 않는 게 바보일 정도.
당장 진 빚만 산더미인데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다.
“다 왔네. 여기네.”
다르옌이 안내한 곳은 궁궐 지하에 있는 석실 앞이었다.
“엘소리움의 역사가 이곳에 잠들어 있지. 바로 보여줌세.”
주문을 외우자 기형적인 문자로 이루어진 빛의 고리가 나타나 문에 스며든다.
구그그그긍-
석문이 열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둠을 밝히는 휘황찬란한 보물들이었다.
이에 지크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그보다는 카르볼의 반응이 더 격렬했다.
-허어! 엘프들이 이런 보물들을 숨겨놓았을 줄이야! 지크! 좀 더 가까이 가보거라! 보물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
보챌 것도 없이 지크는 이미 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도 인간인데 물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으니까.
“보석, 갑옷, 검, 방패, 서적 등, 아주 없는 게 없네요.”
“지난 500년간 엘소리움에서 모아놓은 보물들이네. 떠나기 전에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었지. 선물로 주고 싶어서.”
“선물요?”
“고국의 영웅이 떠난다는데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지 않나? 한 번 골라보게.”
“하나만요?”
“몇 개든 상관없네. 목숨을 구해준 그대에게 뭔들 아깝겠나?”
개수 상관없이 마음대로 고르라니.
통도 크다.
“그 말 진심이시죠?”
“그렇다네. 단, 가져갈 수 있는 만큼만 골라야…….”
아공간을 연 지크는 보물들을 집어 들었다.
“이거랑 이거랑 이것도 가져갈게요. 이것도 꽤 좋아 보이네.”
쇼핑 카트에 담듯 이것저것 골라 넣자 산처럼 쌓여 있던 보물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다르옌의 안색도 파랗게 질려갔다.
쉴 틈 없이 움직이던 지크의 손이 어느 순간 멈췄다.
다름 아닌 메시지 때문이었다.
[아공간이 꽉 찼습니다. 더 이상 물건을 넣을 공간이 없습니다.]“이제 됐어요.”
절반 이상 비어버린 창고를, 다르옌은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 나라를 잃은 듯한 슬픔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