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28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28화
어둠이 자욱한 공동.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검은 로브를 입은 상관에게 보고한다.
“뭐라? 누가 죽어?”
자신의 귀를 의심한 상관이 거칠게 후드를 벗었다.
곧바로 드러난 자글자글한 주름.
“다시 말해 보거라!”
“리, 리타 로즈 님이 구금 중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데칸에서 공식적으로 한 발표이니 틀림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상관, 발루두크가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최근 연락받은 게 없긴 하지만 잠자코 기다리던 그였다.
한데 뭐가 어째?
“……정말로 풍신의 리타가 죽었다고?”
발루두크가 리타에게 지시한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로, 데칸에 침입해 국왕과 손님으로 온 엘프를 암살할 것.
둘째로 국왕의 시신에서 마력 패턴을 추출해 창고에 있는 유물들을 강탈해 올 것.
바람의 신이라 불리는 그녀로선 하등 어려울 게 없는 임무였다.
‘그런데 실패했다고? 게다가 죽기까지 해?’
잡힌 것도 의아한데 죽기까지 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풍신의 리타가 누구인가?
서열은 낮지만 어린 나이에 당당히 선구자의 위치에 올라 귀추가 주목되는 인재였다.
어디를 던져놓은들 죽을 일은 절대로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보고가 늦어도 어련히 잘했겠지 여기고 있었는데, 이런 사고가 벌어지다니…….’
사고.
그렇게밖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리타의 능력으론 충분히 해결 가능한 임무였으니.
불의의 사고에 당한 거라 짐작할 수밖에 없다.
‘설마 에스카, 그놈이 배신을 한 건……?’
발루두크가 떠올릴 만한 가능성은 그뿐이었다.
약소국인 데칸엔 리타를 막을 만한 존재가 없으니.
‘빌어먹을. 일이 이 지경으로 꼬일 줄이야.’
혼자 침투하는 게 성공률이 더 높다는 리타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알았으니 가보거라.”
“예, 그럼.”
부하가 나가고 혼자 남은 공동에서 발루두크는 상념에 잠겼다.
‘에스카 그놈이 결국 배신했나? 국왕인 제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서?’
잘은 모르지만, 국왕을 암살하려 하자 에스카가 막았을 확률이 높았다.
에스카는 국왕을 아버지로 알고 있으니까.
‘국왕을 미워하네 뭐네 하더니만 핏줄은 끈끈하다 이건가? 놈을 완전히 믿지 않길 잘했군. 하마터면 루미노스 포탈스피어를 이식할 뻔했잖은가.’
가상의 회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그 술식을 이식시켜줬다면, 회의를 통해 얼마나 많은 정보가 새어 나갈지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용의자는 정해졌으니 당장 심문을 준비해야겠군.’
행동에 옮기기 전에, 발루두크는 통신구를 들었다.
일단은 에스카와 대화하며 놈의 의중을 떠볼 예정이다.
무슨 변명을 할지도 궁금했으니.
톡톡톡.
세 번 두들기며 통신구를 작동시키자 곧 깜빡이던 불이 멈추며 신호가 연결됐다.
-아, 발루두크 님.
“어찌 된 거냐, 에스카. 보고가 왜 이렇게 늦지? 일이라면 한참 전에 끝났어야 할 시간인데?”
-그, 그게 말입니다. 제가 탈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요…….
“탈옥?”
발루두크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에스카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다.
내용은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였다.
암살에 실패한 리타와 에스카가 왕실 지하 감옥에 붙잡혔고, 기회를 틈타 자신은 탈출했지만 리타는 놈들의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
‘변명도 그럴싸하군. 네놈이 배신한 주제에.’
납득하라면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걸리는 부분이 없진 않았다.
“왕실을 침투하는 데 성공한 9서클 두 명이 뭔 짓을 했길래 암살에 실패한 거지? 국왕의 정체가 알고 보니 마법의 종주라는 드래곤이기라도 했느냐?”
-그게 말입니다…… 후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통신구 속 에스카는 뜸을 들이다가 참담하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리타 님이 방심하고 말았습니다.
“방심?”
-예…… 제가 달프레드를 상대하는 사이, 리타 님은 혼자서 국왕을 암살하러 가셨는데, 상대 엘프의 정령술을 깔보다가 그만 구속구에 제압을…….
‘허…… 듣자 듣자 하니 어처구니가 없군.’
발루두크는 증언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리타 로즈는 까칠하긴 하지만 누구보다 꼼꼼하고 실수가 적은 아이였다.
그동안 시킨 암살 임무를 실수 없이 해낸 걸 보면 발루두크가 얼마나 신임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
그러나 에스카는 그런 리타가 실수했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다.
‘아니, 누명을 씌우는 거겠지. 자신이 죽인 걸 감추기 위해.’
빠득-
이가 갈렸지만 발루두크는 속내를 드러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에스카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통신일 뿐.
심증만큼은 굳건했기에 자세한 건 놈을 데려와서 심문해 보면 알 수 있으리라.
물론 말로만 하는 심문은 아니었지만.
“알았다. 우선 몸을 피하고 있어라. 나중에 다시 연락하지.”
통신을 끊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보고였다.
우두머리처럼 계획의 총괄을 맡은 그였지만 자신 위에도 상관은 있다.
애당초 선구자 중 이인자였으니.
‘그분께 연락부터 드려야겠어.’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튼 발루두크는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아니, 그렇게 보였지만 실은 루미노스 포탈스피어를 이용해 일인자인 그분께 연락을 취하는 것이다.
통신구처럼 불완전한 물건은 도청될 여지가 있으니.
이윽고.
츠으으으-
가상의 공간 속에 발루두크는 서 있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무슨 일이죠, 발루두크? 보고인가요?]“예. 죄송합니다. 제가 방해했습니까?”
[아니요.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보고가 우선이죠.]“그럼 보고드리겠습니다.”
깍듯하게 대답한 발루두크는 조금 망설인 끝에 입술을 뗐다.
자신의 상관에게 임무 실패를 보고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그렇다 해도 발루두크는 그답지 않게 긴장하고 있었다.
임무 실패에 대한 부하들의 타박에도 끌끌거리며 웃던 본래의 모습과는 꽤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나요. 실패할 걸 염두에 두고 테스트를 진행하신 것 아닌가요?]“그런 부분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만 설마 에스카가 정말로 배신할 줄은…….”
[사람이라는 게 바람 따라 떠도는 풀잎처럼 상황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잖아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가, 감사합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였음에도 발루두크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일인자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에 각인되어 있는지 연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그걸 봤는지 목소리에서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그러세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아…… 아닙니다. 그저 면목이 없어서…….”
[면목이 없다……. 그게 끝인가요?]“……죄송합니다.”
[저는 죄송하다는 말이나 들으려고 그대를 이인자에 앉힌 것이 아니에요. 사람이 실패를 거듭했으면 다음에는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러면서 발전이 있어야겠죠? 그런데…….]나긋하던 목소리에 냉랭함이 깃들었다.
[발루두크, 그대는 전혀 발전이 없네요. 죽여 버리고 싶게.]“죄, 죄송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요,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대책은 마련해뒀습니다! 당장 에스카를 데려와서 고문하면…….”
[기껏 마련한 기술자를 버리겠다는 뜻인가요? 만들고 있던 중력장이 아직 미완성인 걸로 아는데요.]“그, 그럼 어찌하는 게 좋을지…….”
눈치를 보는 발루두크의 귓가로 작은 한숨이 울리는 듯했다.
[에스카를 받아들이세요.]“예?”
[그를 정식 선구자로 받아들이라는 뜻이에요.]“아니, 배신자를 어찌……?”
발루두크가 곧장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설명해 드리죠.]다 생각이 있다는 듯 일인자가 이어서 설명했다.
그러자 발루두크의 얼굴에 자리 잡던 의구심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 알겠습니다. 역시 이 늙은이보다 뛰어난 혜안을 가지신…….”
[아부는 싫어한다는 걸 알 텐데요.]“……죄송합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세요. 에스카부터 해결하고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죠.]“예!”
* * *
자박자박-
숲을 걸어가는 지크의 발걸음이 가볍다.
‘길을 헤매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야.’
현재 지크는 리치 드래곤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정령왕으로부터 위치도 들었고 퀘스트도 깨야 했기에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다만, 그곳까지 어떻게 갈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가 걱정이었을 뿐.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군. 나무들이 길을 알려주니까.’
자연의 축복 버프에는 동식물과도 소통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처음 그 설명을 봤을 땐 정확히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동식물을 마주하면 자연히 행동을 알아듣고 대화할 수 있었으니까.
‘소통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물론 사람처럼 말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동식물의 움직임만으로 무엇을 말하고 느끼는지 전달이 됐다.
한마디로 보디랭귀지가 통한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지크는 식물들에게 물어 쉽게 방향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식물에 대한 감정이 느껴지다 보니 이제는 풀을 밟기도 미안하다는 것.
‘……자연을 소중히 해야겠어.’
그런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던 차에, 지크가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구석진 자리에 메시지가 떠올라 있다.
[자연 에너지를 1 얻었습니다.] [현재 모은 자연 에너지 : 97/100] [자연 에너지가 100에 달하면 랜덤한 스탯으로 치환됩니다.]자연 에너지.
설명이 없어서 처음엔 뭔지 몰랐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느낀다.
자연과 함께했을 때 얻는 에너지임을.
‘숲에 들어오자마자 에너지가 차오르기 시작했지.’
길을 물어보기 위해서 숲으로 다니는 것도 있지만 자연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그런 것도 있다.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낄수록 에너지라는 것이 빠르게 차올랐으니까.
‘이거 숲에서 야영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자연 에너지가 어느덧 100에 도달했다.
[자연 에너지 100을 랜덤한 스탯으로 치환합니다.] [회복력 1이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현재 모은 자연 에너지 : 0/100]자연 에너지가 초기화됐다.
이렇게 초기화된 것만 지금 다섯 번째다.
즉, 스탯이 5는 올랐다는 이야기.
‘2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스탯 5라……. 이거 완전 개꿀이잖아?’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인으로 살기만 해도 스탯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리라.
‘퀘스트고 뭐고 그냥 숲에서만 주구장창 있을까?’
진지하게 자연인을 업으로 삼을까 생각하는 그때, 지크의 품에서 통신구가 번쩍였다.
에스카의 통신구였다.
“에스카. 어떻게 됐어? 발루두크와 통신해 봤어?”
-예! 주인님의 예상대로 리타에 관해서 묻길래 준비한 대로 답했습니다.
“반응은 어때? 의심하진 않았어?”
-모르겠습니다.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노인이라…….
“뭐, 괜찮나 보지.”
발루두크가 연락할 것을 대비해 대충 핑곗거리를 만들어줬었는데 다행히 의심하진 않은 모양이다.
-주인님. 그쪽 일은 잘되어가고 계십니까?
“어. 여전히 리치 드래곤 찾으러 가는 길이다.”
-제가 기쁜 소식을 들고 왔는데 말입니다.
“응?”
기쁜 소식이라니?
“뭔데?”
-제가 드디어 정식 선구자로 인정받았다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그 말을 들은 순간 지크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럼…… 그거 받기로 했어?”
-예! 선구자들이 회의 때마다 이용한다는 루미노스 포탈스피어를 이식받으러 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정말이야? 누가 전수하는데?”
-발루두크가 직접 전수해 주겠답니다.
지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드디어 12인의 선구자 중 이인자라는 발루두크를 만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