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30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30화
“너 버려진 거야.”
촌철살인 같은 주인의 말에 에스카는 움찔 몸을 떨었다.
급기야 현실 부정까지 보인다.
“에, 에이, 저 같은 기술자가 얼마나 귀한데 이대로 버리겠어요. 하다못해 중력장도 80%밖에 완성 못 했고 다른 기술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고 있는데…….”
“그럼 밖으로 나갈 수도 없게 왜 이런 장치를 마련해놨겠어?”
지크가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키자, 에스카의 고개가 돌아갔다.
조금 전까지 걸어왔던 동굴의 출입구는 어느새 벽으로 막혀 있었다.
빠져나갈 수 없게 환각을 걸어놓은 모양.
에스카로선 나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워, 원래 이곳의 용도가 침입자를 못 빠져나가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굳이 저를 타깃으로 하지는…….”
“방금까진 함정이니까 나가자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왜 이래?”
“가만 생각해 보니 저를 죽일 이유가 없거든요.”
“이유가 왜 없어? 리타를 죽이고 임무를 망친 배신자라면 차고도 넘치지.”
“…….”
주인의 말이 맞다.
자신은 버려진 사냥개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중력장도 완성하지 못했으면서 왜 저를 버리려는 걸까요? 기술에 대한 정보들은 또 어쩌고요.”
“나야 모르지. 아마 이곳에 정보를 빼낼 수 있게 장치가 되어 있든가 하겠지. 일단은 안으로 더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어.”
“발루두크의 본체를 만나시려고요?”
“응. 굴 깊숙한 곳에 생명체가 느껴지거든? 하나는 318m 지점에 있고, 다른 하나는 더 가까워. 215m 지점.”
“허……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움직임을 감지하신다고요? 대체 주인님은 어떻게 그런 재주를…….”
“아까도 말했지만, 자세한 건 묻지 말고. 영업 비밀.”
쓸데없는 건 묻지 말고 움직이기나 하자는 듯 지크가 턱짓했다.
“앞장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방패막이로 세우는 거였지만 에스카는 군말 없이 앞으로 나섰다.
스스로를 노예로 인식하기에 당연한 행동이라 생각하는 모양.
지크는 뒤쪽에서 따라붙으며 동굴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빛이라곤 한 점 없었지만, 암순응을 마친 시신경은 사물을 분간할 수 있게 해주었고.
“스톱.”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알려주었다.
“그 앞에 절벽 있다.”
“예? 절벽?”
에스카가 눈을 크게 뜨며 앞을 바라봤지만, 절벽은 보이지 않았다.
“평탄한 길밖에 안 보이는데요……?”
“그게 눈속임이야. 환각을 걸어놓은 거지.”
주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던 에스카는 눈만 동그랗게 떴다.
9서클인 자신을 속이는 환각이라니.
브라함의 환술사도 못 하는 일을 어떻게?
“아즈라힐보다도 더 강한 환술사가 동굴 안에 있는 걸까요?”
“글쎄. 그건 가봐야 알겠지.”
“어디로 가죠?”
“이쪽으로 붙어서 가.”
지크는 벽 쪽을 가리키며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알려줬다.
현자의 눈 스킬로 환각을 간파할 수 있었기에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201m…….
182m…….
정체 모를 상대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사이 함정으로 설치된 구덩이나, 가로막힌 벽 등이 보였지만 나아가는 데 문제는 없었다.
그 무엇도 지크의 눈을 속일 순 없었으니까.
다만.
“어?”
에스카의 눈을 속이는 데는 충분한 함정들이 나타났다.
“에스카!”
“쉐인…… 국왕?”
“내 아들! 살아 있었구나!”
동굴 너머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국왕.
당연히 의심부터 하는 게 정상이었지만 에스카의 사고는 멈춰 있었다.
설마 국왕으로부터 아들이란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으니까.
“당신…… 지금 뭐라고…….”
“에스카. 내 아들! 이게 얼마 만이냐. 흐흐흑…….”
데칸의 국왕은 눈물을 흘리며 에스카에게 접근했다.
그때까지도 멍하니 있던 에스카는 지크가 손을 잡아끌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뭐해? 저게 진짜 국왕으로 보여? 네 아버지인 거 같아?”
“예?”
어느덧 아공간에서 깃털 검을 꺼낸 지크가 주저 없이 국왕을 향해 휘둘렀다.
서걱!
“커어억!”
피를 뿌리며 주저앉는 모습이 영락없는 진실 같다.
하지만 지크는 끝내 한 번 더 검을 찔러 쉐인 국왕을 죽였다.
아니, 환각을 죽여 없앴다.
츠츠츠츠-
“징하네. 죽는 모습까지도 환각으로 설계해 놓다니.”
“…….”
홀연히 사라지는 시체의 모습에, 에스카는 뒤늦게 자신이 본 게 환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여긴 환각 트랩으로 덕지덕지 칠해진 굴이야. 그걸 항상 상기하고 있으라고. 국왕이 이런 곳에 잡혀 있을 리 없잖아?”
“죄, 죄송합니다. 너무 진짜 같아서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국왕이 나타난 걸 보면 아마도 환각으로 네 정보를 빼먹을 생각이었던 모양이야. 아마 가만히 놔뒀으면 판단이 흐려진 너한테서 국왕이 아버지라는 명목으로 이것저것 정보를 캐냈겠지.”
“……저, 정신 차리겠습니다. 이제부턴 뭐가 나타나든 놀라지 않을게요.”
“그래. 믿어본다.”
하지만 지크의 믿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짐이 무색하게 에스카는 눈앞에 나타난 환영에 한 번 더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다, 당신은?”
“에스카 로빈스. 날 기억하는가?”
에스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년 전, 국왕의 명령으로 자신을 죽일 뻔해서 미안하다고 양심고백 했던 남자를 잊을 리가 있겠는가?
“그 당시 국왕의 명령을 받았지만 차마 갓난아이였던 너를 죽일 수 없었지. 하지만 이런 곳에서 마주할 줄은 정말 몰랐군.”
“저도 몰랐습…….”
얼결에 대답하던 에스카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정신 차리려는 듯 중얼거렸다.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야? 이건 환영이잖아.”
“환영? 무슨 소리인가, 에스카.”
“닥쳐!”
환영으로 보이는 남자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하는군. 반갑다는 말은 듣진 못할망정 비난은 하지 않을 줄 알았건만. 어머니 없이 자라서 그런가?”
“환영 따위가!”
에스카가 지팡이를 들어 마법을 쏘아내려던 그때였다.
“진정해. 그대의 어머니는 살아계시니까.”
“뭐?”
“여기 이분이 네 어머니라네.”
곧이어 남자의 뒤로 노파가 나타났다.
젊었을 적 상당한 미인이었을 법한 외모였다.
여러모로 에스카와 닮은 구석도 많았고.
“에스카…… 우리 아들. 이게 대체 얼마 만이냐.”
“당신이…… 내 어머니라고?”
“그렇단다. 얼굴을 볼 기회도 없었겠지만 확실해.”
“어머니가 여길 왜…… 분명히 그 당시 돌아가셨다고…….”
“그건 사정이…….”
“하아…… 에스카.”
지크가 노파의 말을 끊고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너 지금 뭐 하냐?”
“아니, 주인님. 저 앞에 어머니라 주장하는 사람이…….”
“어머니는 무슨 어머니야. 어떻게 하나 지켜봤더니 환영이랑 대화나 하고 자빠졌네.”
신랄한 비난이었지만 지크는 알고 있었다.
이 동굴엔 단순히 환영만 설계된 게 아니라는 것을.
그야 아까부터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환각을 유발하는 해로운 성분이 체내로 유입되었습니다.] [저항력이 해로운 성분에 100% 저항합니다.]‘정신을 현혹하는 향 또한 곳곳에 뿌려놨다. 에스카가 속을 수밖에 없겠어.’
더구나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란 사람이 나타났으니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고 배기겠는가?
이 정도면 오감을 차단하지 않는 이상 누구라도 홀릴 수밖에 없으리라.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네.’
지크는 검을 꺼내 눈앞의 환영들을 치워 버렸다.
촤아아악!
“끄악!”
“꺄아악!”
피가 튀며 비명이 들렸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스르륵 연기처럼 사라지고 나서야 에스카는 환영임을 확신했다.
“죽었던 어머니까지 등장시켜서 널 설득하려 했나 본데, 어림도 없지.”
“거듭 죄송합니다. 주인님. 못난 모습을 보여서…….”
“됐고, 전진이나 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예…….”
시무룩하게 걸어가던 에스카는 이후로 환영을 보지 못했다.
다만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라던가, 막다른 길에 부닥치는 경우가 몇 번이고 있었지만.
“걱정할 거 없어. 환각이니까 무시하고 걸어가면 돼.”
주인의 인도에 바른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환각 트랩을 지나치던 순간.
“거의 다 왔다. 조심해라.”
“아, 예.”
주인의 읊조림에 에스카의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그건 말을 꺼낸 지크도 마찬가지였다.
‘발루두크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까?’
뭐든 간에 조금만 더 걸으면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상대는 고작해야 20m 지점에 있었으니까.
이윽고 에스카를 선두로 걸음을 좁혔다.
앞쪽엔 횃불이 있는지 노란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때부터 발걸음에 조심했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다가서자 그림자가 보인다.
그때서야.
‘음?’
상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이었다.
일단은 사람이었는데, 머리에 뿔 같은 게 나 있다.
‘수인족? 수인족은 서대륙에만 있는 거 아니었어?’
-수인족이 아니다.
여태 가만히 있던 카르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용족이다. 드래곤…… 나와 같은 종족이야!
‘저게? 리치 드래곤은 아니고?’
-리치 드래곤은 아니다. 놈들은 냄새부터가 달라!
동족을 만났다는 기쁨 때문인지 카르볼의 목소리에서 고양감이 느껴진다.
그와 달리 지크는 뿔 달린 인간 여성 모습의 드래곤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었지만.
‘뭐, 부딪쳐보면 알겠지.’
관찰하던 지크가 그림자 후드를 벗으며 말을 붙였다.
“이봐.”
그러자마자.
“헉! 이, 인간!?”
지크와 에스카의 모습을 보곤 까무러치게 놀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크는 침착한 얼굴로 천천히 접근했다.
미래 예지를 켠 채로.
‘대화할 생각도 없이 다짜고짜 공격이라…… 일단 마력부터 차단해야겠네.’
3초 뒤의 미래를 미리 본 지크는 주변의 마력부터 차단했다.
용족이 마력을 모으며 뭔가를 시도하려 했지만.
“……!?”
모이지 않는 마력에 당황을 머금었다.
“너 누구야? 발루두크의 부하냐?”
“이, 인간이 들어온단 이야기는 들었지만 여기까지 올 줄은…….”
“뭐라 중얼거리는 거야?”
-지크! 나랑! 나랑 대화하게 해다오!
‘위험하지 않겠어?’
-마력을 차단해놓으면 위험할 일이 뭐가 있겠나?
카르볼이 격렬히 요구하는 탓에, 지크는 어쩔 수 없이 목걸이를 벗었다.
“야. 인간처럼 변신한 용족.”
“내, 내 정체를 어떻게……?”
“이 목걸이나 받아라. 너랑 같은 용족께서 대화하고 싶으시단다.”
순간 자신을 잡상인처럼 바라보던 용족이 목걸이에서 흘러나오는 용력을 느꼈는지 표정이 바뀌었다.
그러더니 목걸이를 받더니 한 번 더 놀란다.
상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게 참으로 볼만했다.
‘둘이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나 보네.’
한참을 목걸이를 쥐고 그렇게 대화 나누던 용족이 지크를 바라봤다.
자신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지 어느덧 경계심이 사라진 눈빛이었다.
“당신이 지크?”
“어.”
“카르볼레아로스의 말이 사실인가?”
“뭐라 말했는지는 설명해 줘야 알지. 둘이서만 얘기한 내용을 내가 어떻게 알아?”
“아, 그, 그렇군. 서, 설명은 카르볼레아로스가 할 것이다.”
타박 당한 용족이 목걸이를 돌려줬다.
곧바로 착용한 지크가 넌지시 물었다.
‘얘기는 잘 나눴어?’
-그래! 그보다 지크! 당장 안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왜?’
-이 안에 리치 드래곤이 있다고 한다!
‘리치 드래곤?’
그러고 보니 사냥꾼의 감각에 한 명이 더 걸렸는데 그게 리치 드래곤이었나?
‘얘 정체는 뭔데? 그냥 드래곤이야?’
-그렇다. 이름은 카르세아피누스라는 블루드래곤인데, 리치 드래곤에게 붙잡혀서 노예처럼 굴려지고 있었다더군.
‘뭐? 노예?’
그러고 보니 누더기처럼 헐렁한 옷을 입은 게 복장이 좀 거시기하다.
-얼른 도와줘야 한다!
‘잠깐만, 잠깐만. 진정하고.’
도와주기 전에 자초지종부터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대체 뭔 일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