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31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31화
카르볼에게 들은 자초지종은 이랬다.
3천 년 전, 리치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드래곤들에겐 세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죽거나, 잡히거나, 도망치거나.
카르세아피누스라는 블루드래곤은 그중 두 번째의 경우.
노예처럼 붙잡혀서 이런저런 잡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낸 지 3천 년이 지났고?”
“그렇다…….”
뿔 달린 여성이 세상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다.
세상에, 3천 년이나 노예 생활을 하다니.
‘미친. 최저시급으로 계산만 해도 이게 얼마야.’
현대인인 지크의 관점에선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도망칠 생각은 못 했어? 반항이라든가.”
“그게 가능했다면 진즉에 빠져나왔겠지.”
“리치 드래곤이 그렇게 강해?”
“엄청나게 강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그들은 불사의 존재일뿐더러 힘, 마력, 용력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하지. 나처럼 젊은 드래곤은 장난감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하긴, 애당초 수명을 늘리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했으니…… 고대의 드래곤들이 대부분이겠네.’
그런 생각을 하는 차에 문득 나이가 궁금해졌다.
“너 나이가 몇인데?”
“올해로 3,542살이 넘었다.”
“……그 정도면 젊은 편이야?”
“1만 년까지도 사는 게 우리 용족이니 젊은 편이 아닌가?”
하긴 인간으로 치면 서른으로 봐야겠다.
‘근데 3천 년 전이면 500살 전후밖에 안 되잖아?’
인간으로 치면 5살 정도의 어린이일 때 전쟁에 휩쓸려 납치당했다고 봐야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좀 불쌍한걸?’
측은한 눈으로 여성 드래곤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나이를 정확히 기억하네?”
“드래곤은 망각을 모르는 존재니까.”
‘그러고 보니 카르볼, 넌 몇 살이야?’
―영혼 상태로 지낸 세월까지 더하면 올해로 8,529살이다.
‘헐…….’
꽤 나이 든 드래곤이었잖아?
놀랄 노 자다.
그때 노예 차림의 드래곤이 입을 열었다.
“인간. 네가 신의 후예라는 말은 들었다. 날 도와줄 수 있다는 말도.”
“카르볼이 그렇게 말했나? 도와줄 수 있다고.”
“그렇다. 본체가 없는 그분께선 도와주실 수 없는 몸이지만, 신의 후예인 그대는 다르다고. 한 번 믿고 맡겨보라고. 그리 말했지만…….”
노예 드래곤이 곧장 미심쩍은 눈빛을 보낸다.
“솔직히 그대가 어떻게 날 해방해 줄 수 있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니, 날 도와줄 의지가 있는지조차도.”
“왜 그리 생각하지?”
“그야 인간은 다 똑같으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는 생물이 아니니까.”
노예 드래곤의 음성에서 경멸이 느껴진다.
인간에 대한 환멸.
드래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일 것이다.
엘프와 달리 인간은 드래곤과 그리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니.
‘인간 세상에 폴리모프하면서 인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종족이 드래곤이라고 들었어. 끝없는 탐욕으로 종족 전쟁도 불사했다 하니 진저리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하지만.
지크는 눈앞의 드래곤을 도와줄 의향이다.
다름 아닌 퀘스트창이 떠올랐으니까.
【메인 퀘스트 : 리치 드래곤 처치하기】
└블루드래곤 카르세아피누스가 리치 드래곤에게 노예로 붙잡혀 있습니다.
└리치 드래곤을 처치하고 카르세아피누스를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해 주세요.
└리치 드래곤 처치
└신규 스탯 ‘용력’ 획득
* * *
인간은 망각의 존재.
그러나 드래곤은 다르다.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잊는 법이 없다.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지능으로 보이지만 누구에게는 저주받은 재능이다.
블루드래곤 카르세아피누스는 후자에 속했다.
문득 떠오른 인간에 대한 오래된 기억이 그녀를 두고두고 괴롭혔으니까.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야. 탐욕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
리치 드래곤에게 붙잡혀 노예 생활을 하던 당시.
처음 만난 인간이라는 종족은 자신을 겁탈하려고 했다.
정체가 드래곤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눈이 돌아가 발정 난 개처럼 덤벼들었으며, 몇몇은 자신에게 거래를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드래곤의 힘을 보이면 바로 잠잠해지거나 태도를 바꾸기 일쑤였지만, 인간형으로 폴리모프했을 때 인간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그렇다고 나쁜 인간만 있던 것은 아니지.’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게 측은지심을 갖거나 관심을 보이며 꺼내주려 하는 부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가 드래곤이고, 그 뒤에 리치 드래곤이 있음을 알게 되면 곧바로 태도가 돌변했다.
‘무섭겠지. 인간에게 드래곤은 전설 속의 존재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드래곤의 비늘을 얻기 위해,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기 위해 뒤통수를 친다거나 병력을 불러오는 건 너무한 일 아닌가?
‘인간은 다 똑같아. 결코 순수한 선의로 남을 돕는 법이 없지.’
그녀가 겪은 인간은 그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리치 드래곤에게 붙잡혀 노예 생활을 할 때 확실하게 느꼈다.
그건 비단 과거에 국한된 일만이 아니다.
현재에도 12인의 선구자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인간들이 자신을 깔보고 있다.
리치 드래곤의 후광을 업어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인간 주제에 인간 같지도 않은 힘을 받은 천부적인 마법사들이니.
‘드래곤인 나조차 12인의 선구자들에겐 대항할 수 없었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에겐 금제가 걸려 있다.
용력을 통한 힘을 일절 발휘하지 못하도록.
허약한 인간의 몸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탓에 인간 혐오증이 걸려버렸지만.
‘날 보는 인간은 대개 같은 반응이지. 그건 저 지크라는 인간도 마찬가지일 터.’
신의 후예라는 카르볼레아로스의 설명이 있었지만 그리 기대하진 않는다.
본판은 어찌 됐든 인간이 아니던가?
‘아마도 도와주지 않겠다고 거절을…….’
할 줄 알았건만, 곧이어 들린 말에 카르세아피누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도와줄게.”
“……뭐라고 했지?”
“노예 생활에서 해방해 준다고.”
“네까짓 게 어떻게 말이냐?”
도와준다는 사람에게 말하기엔 다소 퉁명스러운 반응이었지만, 그녀로선 당연한 물음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외모에 반해 해방해 준다는 인간만 수두룩했었으니.
“그야 리치 드래곤이란 놈을 때려잡아야지.”
“참 쉽게도 말하는군.”
저것도 예상한 말이었다.
자신을 도와준다던 인간들은 리치 드래곤을 무슨 오우거보다 살짝 강한 몬스터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 만만한 존재였으면 3천 년이나 붙잡혀 있을 거란 생각도 못 하고.
하지만 매번 그렇듯 도와준다는데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의 후예는 조금 다르진 않을까 하는 기대가 올라왔다.
‘아니. 저 녀석도 똑같아. 그래 봐야 인간이니.’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올라왔던 기대감이 사그라졌다.
그러든 말든 지크는 퀘스트를 수락한 이상 돕지 않을 수 없었지만.
“도와줘도 되지? 아니면 계속 노예로 있고 싶은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그럼 돕는다?”
“마음대로 하거라!”
“반응이 참 거시기하네. 기껏 도와준다는 사람한테 소리나 치고 말이야.”
“흥! 너 같은 인간은 많이 봐왔다!”
팔짱을 끼며 고개를 돌리는 꼴이 시작부터 신용을 잃은 모습.
아무래도 믿음을 증명하려면 행동으로 보이는 수밖에 없겠다.
“너 이름이 뭐라 했지? 카르세아피노스?”
“카르세아피누스다, 인간!”
“너무 기니까 카르세라고 부를게.”
“누구 맘대로 이름을 줄이는…….”
“카르세. 뒤에서 얌전히 구경이나 하고 있어. 그리고 똑똑히 기억해라.”
지크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앞장서며 말했다.
“너한테는 오늘이 역사적인 날이니까.”
* * *
12인의 선구자 중 가장 연락하기 힘든 인물을 꼽으라면 한 사람밖에 없다.
테리온 말도나도.
자카르 패트릭과 같은 바이소 왕국 출신이며 대지의 선구자라 불리는 인물.
수년째 발루두크의 연락을 의도적으로 씹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그보다 더 높은 분의 지시가 있었으니까.
“부르셨습니까, 카르록시나 님.”
머리를 조아리며 부복하는 테리온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머리 위의 검은 뿔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테리온. 발루두크에게선 연락이 없었느냐?”
“모르겠습니다. 통신구를 확인해 보지도 않아서.”
“잘했다. 녀석과는 지금처럼 연락을 끊고 살도록.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만난다는 것도 비밀이다.”
“아무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래. 그보다 내가 지시한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이미 수를 써뒀습니다. 곧 있으면 반응이 나타날 겁니다.”
“그런가? 알았다. 한 달 후에 또 보도록 하지.”
“저기, 떠나기 전에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테리온이 슬쩍 눈치를 보며 말하자, 카르록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라.”
“12인의 선구자 중 왜 하필 저를 선택하신 건지…….”
테리온은 선구자 중 서열 9위.
난다긴다하는 괴물들의 집단 가운데 약하다면 약한 축에 속하는 위치.
그런 자신의 어떤 면을 보고 부하로 삼기로 마음먹었는지.
그것이 내내 궁금했던 테리온이었다.
상대는 악마를 후광으로 둔 리치 드래곤이었으니까.
여태껏 묻지 않았던 질문에, 주인인 카르록시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시답잖은 질문을 하는구나. 이유야 간단하지 않느냐?”
“이유라면……?”
“대지 계열에 특출난 힘을 지닌 너를 이용해야 정령계를 침범할 수 있으니까.”
“……그뿐입니까?”
“그럼 다른 이유가 뭐 있겠느냐? 아, 발루두크에게서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라는 점도 선택의 요인 중 하나였겠군. 이제 궁금증이 풀렸느냐?”
“……예.”
대답은 했지만 테리온의 표정은 썩 홀가분해 보이진 않았다.
“그럼 한 달 후에 좋은 결과를 가지고 찾아오겠습니다.”
“알았다.”
잠시 후 마력이 모이며 빛이 번쩍였다.
테리온이 텔레포트로 사라지자마자, 카르록시나가 픽 비웃음을 흘렸다.
“멍청한 인간 놈. 기대한 대답이 아니라서 실망한 모양이군.”
아마도 테리온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해서 선택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으리라.
능력 때문에 부하로 삼은 것이 아니라.
테리온이 자신을 보면 미묘하게 흥분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하여간 인간 남성들은 예쁜 여성만 보면 주인이고 뭐고 가리지 않는군. 주제도 모르는 멍청한 족속 같으니.”
인간 따위가 감히 리치 드래곤을 넘보다니.
헛웃음이 나오다 못해 당장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역겨웠지만, 정령계를 침범하기 위해선 녀석을 살려둬야 했다.
대지를 움직이는 그의 힘은 리치 드래곤인 자신도 쉬이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정령계를 침범하기만 하면 그 빌어먹을 인간 노인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진다. 정확히는 노인네 뒤에 있는 마족의 눈치지만.’
정령계를 침범하는 공로를 인정받는다면, 자신의 후견인으로 있는 마족의 위상이 높아진다.
반대로 발루두크의 후견인으로 있는 마족의 위상은 떨어질 터.
그것이 발루두크 몰래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였다.
모든 건 뒷배로 있는 마족을 위해서.
‘나를 리치 드래곤으로 만들어주신 그분의 은혜를 갚기 위해선, 반드시 정령계를 침범해야 한다.’
현혹의 굴을 만든 이유도 그분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찾아오는 인간의 시체를 모두 제물로 바치고자.
“그러고 보니 에스카라는 인간이 찾아올 거라고 했지.”
선구자 중 일인자가 말했다.
에스카 로빈스라는 인간이 찾아올 테니 정보를 빼달라는.
귀찮은 일이었지만 일인자의 뒷배로 있는 마족은 자신의 후견인으로 있는 마족보다도 더 상위의 존재.
카르록시나로선 불쾌하지만,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카르세아피누스, 그 노예 년에게 상황을 보고 오라 해야겠군.”
입구에 건 알람 마법으로 현혹의 굴에 인간이 침입한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 왔는지는 몰랐지만.
그래서일까?
“야 이 노예 년아! 어딜 갔다가 이제 온 거냐. 찾고 있지 않았…….”
노예와 함께 나타난 인간들의 모습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알아서 데려온 것이냐?”
“그, 그게…….”
우물쭈물 눈치만 보는 카르세를 뒤로 물리고, 한 남자가 나섰다.
“네가 리치 드래곤이냐?”
“에스카 로빈스?”
“에스카는 뒤에 있는 애고. 난 지크야.”
지크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지금부터 널 두들겨 패줄 인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