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35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35화
테리온 말도나도가 있는 곳으로 텔레포트 한 지크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아무도 없잖아, 이거?’
현혹의 굴처럼 무슨 동굴이었는데 주변에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냥꾼의 감각이 생명체 따윈 없다고 확실히 말해주고 있다.
‘다른 마력의 흔적도 안 느껴지고, 그냥 걸어서 나간 건가?’
역추적 스킬을 또 쓰려고 했지만 걸어서 굴을 나갔다면 찾을 방도가 없다.
대충 수색이나 하려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도 없었다.
‘단순히 눈에 띄지 않게 텔레포트 하려는 용도로 쓰는 동굴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아무런 흔적도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쳇, 공쳤네.”
어쩔 수 없이 돌아가기로 했지만, 소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좌표라도 알아놨으니 언제라도 다시 이곳에 방문할 수 있다.
“텔레포트(Teleport).”
주문을 외우자 지크의 몸이 다시 원래의 굴로 돌아왔다.
기다리던 에스카와 두 드래곤이 격하게 반긴다.
“주인님!”
“지크, 생각보다 빨리 왔군.”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테리온이 텔레포트 한 곳으로 가봤는데 별 소득이 없더라고.”
“예? 텔레포트 좌표를 추적했다고요?”
카르세가 놀란 눈을 뜨더니 이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물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마나의 잔향을 느끼고 마나 패턴을 역추적하면 돼.”
“그건 불가능해요. 우리 드래곤도 못하는 방법을 대체 어떻게…….”
“쯧쯧, 누가 보면 블루드래곤 아니랄까 봐. 그냥 그러려니 하거라. 지크가 곤란해하지 않느냐.”
옆에 있던 카르볼이 타박을 줬지만 카르세는 계속해서 ‘어떻게 가능하지?’라는 말만 중얼거렸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고. 누가 올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동의한 지크 일행은 그렇게 현혹의 굴을 빠져 나왔다.
“이제 어떡할 거냐, 지크. 다른 리치 드래곤에 대한 단서도 없는데.”
“음.”
카르볼의 물음에 지크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당장은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카르볼이 카르록시나의 기억을 되찾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그동안 우리는 뭘 하고?”
“우선 에스카는 중력장 장치를 너만 아는 장소에 옮겨놓는 게 좋겠어. 죽었다고 생각한 발루두크가 회수하러 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주인님. 당장 옮기러 가겠습니다!”
“어, 옮기고 나면 나한테 연락하고.”
“예!”
에스카는 그 말을 끝으로 텔레포트를 써서 사라졌다.
“그리고 너희 둘은…….”
인간화가 된 카르볼과 호기심 많은 카르세를 어떻게 처리할까 번갈아 보던 지크는 한숨을 쉰 뒤 턱짓했다.
“날 따라와. 동료를 소개해 줄 테니까.”
* * *
새해가 밝았다.
판게아 대륙도 사람 사는 곳이니만큼 새해의 의미는 깊다.
모두가 새 출발 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다짐이나 소망을 빈다.
얼굴에 웃음기를 띄우며.
하지만 발루두크는 웃을 수 없었다.
새해 첫날부터 일이 어그러졌으니까.
[카르록시나 님과의 연락이 끊겼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된 거죠?]“죄, 죄송합니다…….”
가상의 공간이라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발루두크는 머리를 조아리며 일인자에게 예우를 보였다.
부디 일인자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바라며.
[에스카라는 먹잇감으로부터 정보를 뽑아달라고 카르록시나 님에게 말해놨고, 에스카도 문제없이 현혹의 굴에 들어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왜 결과가 이 모양이죠? 뭐라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송구합니다…… 저도 어찌 된 일인지 잘…….”
[모른다고요? 모르면 확인해 봐야 하는 게 그대가 할 일 아닌가요?]“부하를 시켜 현혹의 굴을 조사해 봤습니다만 별다른 흔적은…….”
[흔적이 없다? 에스카도, 노예 드래곤도, 리치 드래곤도?]“예…….”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전부 손을 잡고 사이좋게 사라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끝나는 일이 아니잖아요! 새해부터 기분 잡치게 만드시네요!]“하, 한 번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연결을 끊고 가상의 공간에서 빠져나온 발루두크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도 사람인지라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다분하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대체 어찌 된 일이지? 왜 현혹의 굴에 아무도 없는 게야?’
정보 빼는 거야 문제없다며 호언장담하던 리치 드래곤은 종적을 감춘 데다 에스카의 시체 또한 없다.
부하 몇몇을 통해 꼼꼼히 탐색했으니 확실하다.
‘이럴 때 테리온, 그 녀석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카르록시나의 부하인 테리온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녀석과 연락이 두절된 지 오래라는 것.
입술을 잘근 씹고 있는 그때.
“…!!”
발루두크는 루미노스 포탈스피어에 접속한 누군가의 존재에 눈자위를 키웠다.
‘테리온? 테리온이 접속했어?’
루미노스 포탈스피어는 각자의 심상을 구현화해 가상의 공간에 펼쳐놓는 기술.
자신의 영역에 테리온이 접촉한 걸 보면 이야기하고픈 게 있는 모양이다.
얼른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아 접속을 시도한 발루두크는 곧 테리온의 심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테리온! 그동안 말도 없이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게야!”
만나자마자 호통부터 친 발루두크였지만 표정은 집 나갔다 돌아온 탕아를 맞이하듯 걱정으로 가득했다.
테리온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진중한 얼굴이었지만.
“발루두크 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나 역시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먼저 묻겠습니다. 카르록시나 님과 연락이 되는지요.”
“누구?”
“제가 모시는 분 말입니다. 갑자기 연락이 끊겨서요.”
“나도 그분의 행방을 물으려던 참이었는데?”
“…….”
“…….”
둘 사이에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리치 드래곤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테리온조차 행방을 모른다?
‘그 망할 드래곤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게야?’
속으로 투덜거릴 뿐 겉으로는 내색하지 못한 발루두크였다.
행여나 테리온이 거짓말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보다 테리온. 그동안 왜 연락도 없었던 게냐? 무슨 일…….”
“죄송합니다, 발루두크 님.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겠습니다. 그럼.”
테리온의 형상이 홀연히 사라졌다.
접속을 끊은 것이다.
“이런 X발! 망할 놈이!”
제멋대로 구는 선구자에, 발루두크로선 분노를 터트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 * *
‘카르록시나 님의 행방을 발루두크도 모른다니…….’
테리온 말도나도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 카르록시나 님. 나의 주인이여…… 어디 계십니까.”
말은 주인이라고 했지만, 그 이상의 관계가 되고 싶은 게 테리온의 심정이었다.
하여 새해가 되자마자 주인과 이어지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것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일지라도 상관없었다.
‘저는 카르록시나 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주체할 수 없단 말입니다…….’
달아오른 귓불이 테리온의 마음이 진심임을 증명했다.
그렇게 혼자서 속앓이를 하며 사모하던 카르록시나였지만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다.
혹시 몰라 현혹의 굴에 찾아가 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책이 사라지긴 했지.’
사라진 거라곤 악마의 술법이 적혀 있는 책이었다.
카르록시나보다 더 높고 위대한 분에게 받았다고 알려진 그 책을 가지고 간 걸 보면 뭔가 일이 있어서 종적을 감춘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사정상 몸을 피해야 했거나.
‘뭐가 됐든 반드시 찾아낼 것입니다. 저를 버리고 떠날 순 없습니다, 카르록시나 님.’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테리온이 찾아내지 못할 상대는 없다.
그것이 대지의 선구자라 불리는 자신의 능력이었으니까.
* * *
최근 바이소 왕국의 영지전이 무마되면서, 황금 독수리 용병단은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여유가 길어지면 늘어지는 법이고, 또 불안해지기도 한다.
피터와 메리는 후자였다.
“지크 님은 대체 언제 오시는 걸까요?”
“글쎄. 퇴출당하기 싫으면 어련히 알아서 오겠지.”
“요새 너무 바쁘셔서 얼굴 보기가 힘드네요. 대체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길래…….”
“어디서 여자라도 꼬시고 있는 거 아닐까? 큭큭.”
낄낄거리는 피터였지만 장난처럼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는지 메리의 표정이 살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어, 재미없었나?”
머쓱해진 피터는 정색하는 메리를 보며 괜스레 뒷머리를 매만졌다.
그동안 붙어 다니면서 친해졌지만 메리가 이토록 정색한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얘는 계약을 어떻게 맺었길래 종일 지크만 걱정하는 거야?’
지크가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피터도 알 건 안다.
그 황금색의 빌어먹을 펜으로 거부할 수 없는 맹약을 맺어 배신하지 못하게 만들어놨다는 것쯤은.
하지만 메리는 그 정도가 조금 심했다.
온종일 지크에 대해서만 떠드는 게 지크 바라기라고나 할까?
“메리. 너는 지크를 왜 그렇게 좋아해?”
“예? 제, 제가 뭘요?”
“얘 좀 봐라? 아닌 척하기는. 오매불망 지크만 기다리고 있으면서.”
“제, 제가 언제요?”
시치미 떼는 메리였지만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불쑥 한 사람이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왔다.
크리스 단장이었다.
“피터, 메리, 여기 있었구나.”
“단장님. 무슨 일이세요?”
“지크는 아직도 안 왔느냐?”
“안 왔죠. 그걸 왜 저희에게 물으세요? 저희보다 단장님에게 소식이 들어가는 게 더 빠를 텐데…….”
“저번에 보안도 뚫고서 몰래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느냐. 이번에도 그럴까 싶었지.”
“근데 지크는 무슨 일로 찾으세요?”
“손님이 와 있거든.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는데 영지전이 아니면 얼굴 한 번 보기가 힘드니…….”
중얼거리던 크리스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통신구에서 빛이 번쩍이지 않았다면 말이다.
“어, 그래. 뭐? 왔어? 당장 기숙사로 오라 해.”
경비와 통신구로 대화하던 크리스가 웃으며 통신을 끊었다.
“마침 녀석이 돌아왔다더구나.”
“정말요?”
“지크 님이 왔다고요?”
“이번에는 몰래 들어오지 않고 당당히 들어왔다는군.”
드디어 주인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메리가 눈을 빛냈다.
피터는 밖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잔뜩 물어볼 생각에 기대하고 있었고.
잠시 후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아니, 세 사람이었다.
지크 옆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들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아…….”
“어…….”
메리와 피터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벌린 건 그쯤이었다.
“오랜만이야. 다들. 어? 단장님도 계셨네요.”
“지크. 얼굴 보기가 힘들구나. 그런데 옆에 있는 분들은……?”
“아, 잠깐 알게 된 분들이에요. 인사드려.”
“카르볼이라고 한다.”
“카르세예요.”
가볍게 소개한 두 여인의 외모를 홀린 듯 바라보던 크리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차, 지크.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마침 잘됐네요. 저도 할 말 있어서 왔는데.”
“할 말?”
이윽고 지크가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저 이제 용병 일 관두려고요.”
크리스 단장으로선 폭탄선언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