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41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41화
카르볼은 황당함에 입을 벌렸다.
수천 년을 살아온 그조차 마족에 대항할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한다.
한데 이 인간은 무슨 자신감으로 마족을 죽이겠다는 발언을 하는 건가?
아무리 지크가 리치 드래곤도 잡은 신의 후예라곤 하지만, 이건 아니다.
“허풍이 심하구나, 지크.”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으니 단탈리안부터 불러보자고. 연기야 제대로 해줄 테니까.”
“후우, 네 고집을 누가 이길까. 알았다.”
카르볼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몸을 돌렸다.
테리온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동굴 안으로 녀석이 들어왔다.
“대화는 끝나셨습니까?”
“그래. 그보다 나와 이야기 좀 해야겠다.”
그리 말한 카르볼이 지크를 쳐다봤다.
“테리온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 자리 좀 비키거라.”
“알겠습니다, 주인이시여.”
순순히 답한 지크가 동굴 밖으로 나가자,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테리온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주인?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지도 모를 애새끼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아닙니다. 그런데 저랑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둘만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지 않느냐?”
“아.”
테리온은 그제야 주인이 단둘이 보자고 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단탈리안 님을 소환하시려는 거군요? 그래서 저놈을 밖으로 내보내신 거고요.”
“그런 셈이지. 소환 방법에 대해서는 들었느냐?”
“예. 처녀 다섯 명의 피를 받아 악마 소환 마법진을 그리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처녀는 반드시 10대에서 20대여야 하고, 살아 있어야 한다고…….”
“그렇겠지. 단탈리안 님은 산 제물을 좋아하시니.”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잘 아는 것처럼 연기한 카르볼이 테리온에게 명령했다.
“그럼 녀석 몰래 의식을 위한 준비를 하도록 하여라.”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 * *
“패트리샤! 이것 좀 도와주거라.”
“예, 아버지.”
이마의 땀을 닦은 패트리샤가 아버지를 도와 농작물을 수확했다.
날씨가 더워 힘들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불평 한 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40대이신 아버지도 하는 일인데 16살인 자신이야 못할 게 뭐란 말인가?
“다 됐어요.”
“허허, 매번 고맙다. 우리 아가.”
“헤헤, 뭘요.”
“이제 넌 들어가서 쉬어라.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
“아니에요. 빨리 끝내고 같이 쉬어요.”
일손이 부족한 걸 알고 매번 도와주는 기특한 외동딸을, 아버지 란트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제 시집 보내도 될 정도로 다 컸지만 지금 봐도 아기 같고 보석처럼 귀한 딸이 아닐 수 없다.
“이봐, 란트! 쉬엄쉬엄해! 오찬은 들고 일해야지!”
자신을 챙기러 왔는지 동갑내기 마을 친구가 다가와 소리를 높였다.
“알았어, 이것만 하고.”
“안녕하세요, 제이크 아저씨.”
“어이고, 우리 패트리샤는 오늘도 아버지를 돕고 있는 게야?”
“그럼요. 제가 아니면 누가 돕겠어요.”
“허허, 란트, 자네가 딸 하난 잘 뒀어! 효녀가 따로 없구먼그려!”
“내가 자식 하난 잘 키웠지, 암!”
뿌듯해하는 아버지와 부러워하는 아저씨.
둘의 상반된 모습에 패트리샤가 쿡쿡 웃음을 흘렸다.
“한데 패트리샤, 너도 시집갈 나이가 되지 않았니?”
“시, 시집이라니요. 그런 건 생각도 안 해봤어요.”
“하긴 우리 마을에 청년이 없기도 하니 생각도 안 들겠지.”
“청년만 없겠어? 먹거리도 없고 놀거리도 없고, 도시에 비하면 없는 거 천지지.”
불평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패트리샤는 그러지 말라고 손을 저었다.
“저는 그래도 도시보단 마을이 좋아요. 저기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워요.”
덥지만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맑은 하늘과 구름.
언뜻언뜻 산을 타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보기만 해도 눈이 편해지는 푸른 나무들.
목가적인 청취가 물씬 풍기는 디온 마을은 패트리샤에게 있어서 도시 그 이상으로 멋스러운 곳이었다.
도시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환경에 불만이 많은 듯 보였지만.
“멋있긴 뭐가 멋있어. 외지인도 찾아오지 않는 이런 촌구석이.”
“또 그런다, 또. 네 아버지가 도시에 대한 환상이 있어.”
“환상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야. 이런 시골에 있다간 숨 막혀 죽을 거라고.”
“그런 사람이 여긴 왜 기어들어 왔나? 도시에서 계속 살지.”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지, 나라고 오고 싶어 왔겠나?”
“그만 하세요, 아버지. 제이크 아저씨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
아무리 친하다 해도 마을 토박이인 제이크 앞에서 마을 흉을 보다니.
패트리샤가 말렸지만, 제이크는 괜찮은 듯 웃어넘겼다.
“괜찮다, 패트리샤. 이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 뭘. 내가 네 아버지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말이야. 지금은 농사일하면서 살지만 언젠가는 떼돈을 벌어서 도시로 진출할 거야. 해서 우리 패트리샤한테 어울리는 신랑감도 찾아주고! 우리도 번듯한 집에서 풍요롭게 살고! 어? 그렇게 살아갈 거라고. 기왕이면 꿈은 원대하게 꾸는 게 좋으니까.”
“술도 안 마신 사람이, 누가 보면 취한 사람으로 보겠군.”
“아버지가 조금 약주를 하시긴 하셨어요.”
“아…… 그랬어?”
제이크가 머쓱하게 머리를 매만지던 끝에, 어느덧 정리가 끝났다.
“고생했다, 패트리샤. 이제 가서 약주 좀 걸치면서 새참을…….”
아버지가 말하다 말고 한쪽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외지인?”
“뭐? 외지인이 왔어?”
시선을 따라가 보니 정말로 마을 주민 같지 않은 사람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더구나 로브를 걸치고 있다.
“마법사?”
“에이, 설마. 마법사나 되는 사람이 이런 촌구석을 올 리가…….”
아버지의 말에도 패트리샤는 마법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째 스산한 기분이 느껴지는 게 분위기가 심상찮다.
왠지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시선 또한.
씨익-
남자가 이쪽을 향해 미소 짓자, 패트리샤가 움찔 놀랐다.
불안감이 현실로 닥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아, 아버지. 가, 가요.”
“가긴 뭘 가?”
“저 사람은 상대하지 말고 가자고요.”
패트리샤의 목소리를 들은 걸까?
마법사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여자의 직감이라 이건가? 보기보다 감이 좋군.”
“마법사님. 누추한 저희 마을엔 무슨 일로…….”
파앙!
순간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접근하던 제이크가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제, 제이크!”
놀란 란트가 소릴 질렀지만, 마법사는 뭘 이런 걸 가지고 놀라냐는 듯 손을 젓는다.
“단순히 바람을 일으켜 튕겨냈을 뿐이다. 죽진 않았어.”
“너 이 자식! 지금 뭐 하는……!”
란트는 순간 자신을 향해 겨눠진 지팡이에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석화 마법에 걸린 듯 몸이 회백색으로 물들어간다.
쩌저적-
“아, 아버지!”
“괜히 건드리지 마. 잘못하다 부서지면 내 책임 아니다?”
돌이 된 아버지의 모습에, 패트리샤가 공포에 젖은 눈망울로 마법사를 바라봤다.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대체…….”
“이유는 물을 것 없고, 얌전히 따라오기나 해라. 안 그러면 마을 사람 전부 사지를 찢어버릴 테니까. 가장 먼저 본보기를 보이는 건 네 아버지가 되겠지.”
“아…….”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해줘?”
마법사, 테리온 말도나도가 비릿한 웃음을 입가에 걸쳤다.
“너 지금 납치된 거야.”
* * *
사람이 공포에 지배되면 아무 생각도 안 든다.
몸도 굳어버리고 생각도 굳어버린다.
그런 패트리샤가 조금씩 정신을 차린 건 제단처럼 차가운 곳에 몸을 뉘었을 때였다.
‘내, 내가 왜 여기에…….’
상황을 인지한 패트리샤는 심히 당혹스러웠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
‘아…… 납치.’
어떤 마법사에게 납치당했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떠오른 것은 석상이 되어 굳어버린 아버지였다.
‘아, 아버지를 구해야 해.’
곧장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팔다리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사지가 검은 사슬로 완전히 결박당해 있었기 때문.
당혹스러웠지만 그보다도 패트리샤를 당황하게 한 건 제단에는 자신 말고 다른 여자들도 있었다는 거다.
‘다, 다들 납치당한 건가?’
수를 세어보니 자신을 포함한 다섯 명의 여성들이 제단 위에 결박당해 있다.
곧 정신을 차렸는지 여성들이 자신과 똑같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당황, 공포, 두려움.
아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거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어떡하지? 우, 우리 아버지는……?’
도저히 빠져 나갈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다섯 명의 여성들은 곧 절망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어렴풋이 직감했으니까.
* * *
“준비는 끝났느냐?”
“예, 카르록시나 님. 분부하신 대로 처녀 다섯을 납치해 제단 위에 모아놨습니다.”
“쓸데없는 살생은 저지르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나의 주인인 단탈리안 님을 소환하는 신성한 의식이니라. 어떤 부정 타는 짓도 저질러선 안 돼.”
“염려 마십시오. 누구의 명령인데 제가 거스르겠습니까?”
테리온에게 재차 확인해 보니 정말로 깔끔하게 데려온 듯하다.
‘핑계가 먹혀서 다행이군.’
카르볼은 내심 안심하며 지크가 있는 쪽을 힐끔거렸다.
“녀석은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조용히 진행하기엔 무리가 있어.”
“그럴 줄 알고 구속구를 준비해 왔습니다. 여기.”
테리온이 내민 구속구를 카르볼이 받아들었다.
“이걸로 놈을 제압한 뒤에 의식을 시행한다.”
“알겠습니다.”
“내가 직접 하지.”
카르볼은 그리 말하며 지크에게 은밀히 접근했다.
미리 상의했던 대본이고 연기였다.
“아, 카르록시나 님.”
지크가 뒤늦게 카르볼을 인지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철컥!
구속구가 손목을 휘감으며 마력을 차단한다.
지크의 두 눈동자에 당황이 깃들었다.
“이, 이게 뭐 하는…….”
“미안하지만 너를 노리는 분이 계시다. 네가 얌전히 있지 않을 것 같아서 구속구를 채운 거고.”
“예? 대체 무슨 말입니까, 카르록시나 님?”
“설명하기엔 시간이 없다.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그리 말한 카르볼이 몸을 돌렸다.
이제 마족을 소환하러 갈 시간이다.
“킥, 병신 새끼.”
멀리서 지켜보던 테리온이 비웃음을 보내왔다.
자신이 당한 배신의 감정을 녀석이 고스란히 느끼게 됐으니 오죽 기쁠까?
하지만 지크는 속으로 웃어넘길 따름이었다.
모든 것은 카르볼과 지크의 연극.
도리어 속은 사람은 테리온이었으니까.
‘곧 있으면 볼 수 있겠군. 단탈리안이라는 마족을.’
지크의 입가에 씨익 웃음이 번졌다.
* * *
카르볼이 지켜보는 하에, 의식이 진행됐다.
“아얏!”
“아아!”
테리온이 마법을 이용해 여성들의 손목에 작은 상처를 냈다.
흐르는 핏물이 자연스레 마법진이 음각된 제단 위로 흐른다.
이윽고 다섯 명의 처녀의 피로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Snowwood Poe Imler Et Poe Day Et Ruff Essiperkers A Derey Pape Evi, Denapser pour la fête de l’Assail(마계의 군단장께 공양할 제물을 마련했사오니, 부디 모습을 드러내어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테리온이 주문을 외우자, 마법진에 새겨진 피가 더욱 붉어졌다.
동시에 주변의 마나가 마법진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슈아아아아-
마나란 마나는 모두 먹어 치우겠다는 듯, 쉴 새 없이 빨아들이던 마법진은 더 많은 양을 요구했다.
이에, 당황하지 않고 테리온은 자신의 마력을 기꺼이 쏟아부었다.
‘내 마력도 가져가거라!’
거대한 마력을 끊임없이 삼키던 마법진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멈췄다.
이내.
콰아아아아-
빛과 함께 마법진에서 터져 나온 거대한 마력의 돌풍이 제단을 휩쓸었다.
묶여 있는 다섯 여인은 사슴처럼 바들바들 떨었고, 테리온은 입가에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다.
3m 가까이 되는 장신에 박쥐 날개.
자신이 일전에 마주했던, 단탈리안이라는 마족의 생김새와 똑같은 존재가 나타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