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54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54화
‘여자?’
긴 머리를 흩날리는 새하얀 피부의 여인.
칙칙한 복장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차림새로 보아 남자일 거란 예상이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프리시엘. 오랜만이구나.”
“라베르 대주교님을 뵙습니다.”
“별일 없었느냐?”
“보다시피요.”
싱긋 웃으며 대화하는 게 부쩍 친해 보이는 모습.
금발에 새하얀 피부 덕분인지 웃을 때마다 미소가 돋보인다.
피터가 그 모습을 보고 반했는지 입을 헤 벌렸다.
“지, 지크. 저 여성분은 누구야?”
“나도 모르지. 처음 봤는데.”
“엄청 예쁘시네…….”
자신을 두고 넋 나간 모습이 기분 나빴던 걸까?
메리가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참나. 나한테는 한 번도 저런 표정 짓지 않더니.”
“질투하는 거야?”
“지, 질투는요. 안 하던 행동을 하니까 그러죠. 지크 님이 말해보세요. 저 여자랑 저랑 비교하면 누가 더 예뻐요?”
“글쎄. 나는 여자 보는 눈이 없어서.”
솔직히 대답했다간 여러모로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것 같아서 애매하게 답했다.
메리는 여전히 넋 놓은 피터의 모습을 불만스럽게 바라봤지만.
‘확실히 예쁘긴 해.’
지저분한 후드 차림 때문인지 몰라도 유독 외모가 돋보였다.
피터가 확실히 반할만하다.
조곤조곤 라베르와 대화를 나누던 여성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네?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어,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여기저기 걱정스레 살피는 모습에 대주교가 인자한 웃음을 보였다.
“허허, 보면 모르겠느냐? 저분들 덕분에 멀쩡하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제야 여성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저분들은……?”
“나를 선구자들로부터 구해준 고마운 분들이지. 이리 오거라. 한 명씩 소개해 주지.”
대주교가 여성과 함께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곤 한 명, 한 명 일행을 소개한다.
지크, 카르볼, 카르세, 메리, 피터까지.
물론 마검사니 드래고니안이니 하는 정보들은 밝히지 않았다.
지크 일행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밝힐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하지만 언제까지고 숨길 수도 없었다.
“대단한 실력자들이신가 봐요. 9서클이나 되는 선구자들을 막아주신 걸 보면.”
“으음. 그렇지.”
대답하면서도 대주교가 지크의 눈치를 살폈다.
동의를 구하는 눈빛.
계속 숨길 순 없었기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를 얻은 라베르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이분은 마검사란다. 이쪽은 전설 속의 드래고니안. 둘 다 9서클이지. 여기는 6서클, 5서클이고.”
대주교의 소개에 여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 어마어마한 실력자들이시네요. 이제 이해가 가요. 어떻게 해서 선구자들을 막을 수 있었는지.”
“그런데 이분은……?”
피터의 물음에 여성이 뒤늦게 소개했다.
“아차,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프리시엘 크리스텐슨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프리시엘이라고 불러주세요.”
“프리시엘은 신성 제국의 성녀라네.”
“예? 성녀요?”
대주교의 부연 설명에 놀란 사람들이 프리시엘을 쳐다봤다.
신성 제국에 있어야 할 성녀가 왜 여기 있냐는 눈빛.
그것도 후줄근한 후드 차림으로.
이목이 모이자 프리시엘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세한 설명을 하기엔 자리가 좋지 않네요. 이럴 게 아니라 저희 집으로 가실까요?”
“집?”
“임시로 마련한 거처가 있거든요. 대화도 할 겸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은데…….”
그 말에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인 사람은 피터였다.
저렇게 아름다운 성녀의 집 초대를 어느 남자가 마다할까?
생각을 읽은 지크가 피터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피터 형. 몰랐는데 이제 보니 금사빠였네?’
* * *
성녀의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한잔 드세요. 로즈마리 허브차예요. 기억력과 면역력에 좋데요.”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둘러보는 성녀의 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혼자 살기 딱 아담한 사이즈.
그냥 원룸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할 듯싶다.
“이런 곳에서 혼자 지내신 건가요?”
“예. 지낸 지는 며칠 안 됐어요. 한 달 정도? 임시로 마련한 거처라 이제 나갈 때도 됐죠.”
지크의 물음에 곧잘 대답해 주는 프리시엘이었지만.
‘이것도 대답해 주려나?’
좀 더 자세한 정보에도 답할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브라함 왕국엔 뭐하러 오신 거예요?”
일개 호위에게 말하기엔 껄끄러운 질문.
하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다는 듯 흔쾌히 대답하는 프리시엘이었다.
“얼마 전에 정보를 들었거든요. 마도스교의 신도들이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다는 정보를. 그 때문에 조사하러 이곳에 머물면서 정보 수집을 하고 있었어요.”
“중요한 정보 같은데 그런 걸 저희에게 말해주셔도 되나요?”
“왜 안 되겠어요. 대주교님을 구해주신 신성 제국의 은인이신데. 더구나 함께 움직여야 하는 사이에 숨겨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답니다.”
“프리시엘. 그래서 정보는 얻었느냐?”
대주교가 묻자 프리시엘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네. 오늘 밤에 마도스교의 집회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해요. 신도로 위장하여 그곳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고요.”
“나도 같이 가자꾸나. 여기까지 와서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
“그러면 저야 좋지만…… 괜찮으시겠어요? 위험할 수도 있어요.”
“괜찮아. 여차하면 네가 날 지켜주면 되지 않느냐?”
가만히 대화를 듣던 피터가 끼어든 것은 그때였다.
“성녀님이 어떻게 지켜준다는 거죠……?”
“이래 봬도 제가 7서클 마법사거든요.”
“네에?”
어려 보이는 외모 탓에 몰랐는데 7서클이나 된다고?
피터가 화들짝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20살 안팎으로 보이던 성녀였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여기 호위하시는 분들도 많으시잖아요. 같이 가주실 거죠?”
“물론이죠! 호위가 안 가면 대주교님을 어떻게 지킵니까? 무조건 가야죠!”
그렇게 소리친 사람은 피터였다.
아무래도 성녀에게 푹 빠진 모양이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메리는 여전히 불퉁한 표정이었고.
카르볼과 카르세는 별 관심 없는지 무심한 얼굴이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언제 어떻게 잠입할지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프리시엘의 말에, 일행들이 한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 * *
“예, 스텔라 님.”
[브라함에 성녀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발루두크의 주름진 눈매가 커졌다.
“……대주교만 있던 게 아니었습니까?”
[대주교는 성녀를 만나러 왔던 거였어요. 정보통에 의하면 호위 다섯이 붙어 있다고 하더군요.]“설마……?”
[아마도 지크라는 마검사와 9서클 마법사들이 아닐까 생각되는군요.]“그렇겠군요. 호위를 두기엔 그놈들이 가장 믿음직할 테니까요.”
[네. 그러니 지금이 기회입니다. 선구자들에게 일러서 모조리 처리하라고 지시하세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요.]“알겠습니다.”
목소리가 끊어지자 발루두크는 곧바로 가상의 공간에 다른 선구자들을 호출했다.
저번 임무에 실패했던 피레오와 일레나였다.
“부르셨습니까, 발루두크 님.”
“추가로 얻은 정보가 있다. 성녀가 대주교와 함께하고 있다는 정보다.”
“성녀……?”
“대주교를 비롯하여 성녀까지 죽이라는 스텔라 님의 명령이시다. 성녀는 7서클의 실력자지만 조심할 필욘 없을 것이다. 진짜 조심해야 할 건 마검사 지크겠지. 물론 그 녀석이 신의 후예라는 전제하지만.”
정말로 마력과 마기를 차단할 수 있는 신의 후예라면, 피레오와 일레나가 나서도 상대가 안 될 것이었다.
“그러니 너희는 집회가 열리는 곳에 잠입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노리도록 하라.”
“기회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집회에서 음료를 마시는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그때 조금 강력한 독으로 바꿔서 모조리 죽도록 만들어라.”
“음료에 독을 타서 독살하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일전에 녹스 베노마이어가 만들어놓은 독이지. 효과가 바로 나타나진 않겠지만 먹으면 확실하게 죽는다. 제아무리 신의 후예라도 인간인 이상 독에는 면역이 없을 테니까.”
“그럼…… 애꿎은 신도들까지 죽이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 점은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하는 법이니.”
“하지만 세이레 님은 그 마검사가 죽지 않길 바라실 텐데…….”
“죽지 않는다. 독약을 먹어도 12시간은 살아 있지. 그사이에 부르면 세이레 님도 불만은 없으실 거야.”
“으음, 그런다면 뭐…….”
“확실히 괜찮은 작전 같습니다.”
독약으로 죽음이 확정된 상태로 만들어 놓고, 세이레를 부른다.
신의 후예건 9서클이건 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너희는 신도로 위장해서 음료에 독약을 타고 상황을 지켜보거라. 그러다가 때가 되면 나서서 신의 후예가 맞는지 능력을 확인하면 되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 어려운 임무는 아니군요.”
“그러니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전에 말했듯이 실패하면 너희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니까.”
피레오와 일레나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 * *
날이 저물었다.
브라함 왕국 일대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간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각.
완연한 어둠과 고요가 주변을 잠식한 그때.
끼이익-
일곱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와 조용히 어딘가로 향했다.
다름 아닌 지크 일행이었다.
모두가 평범한 복장으로 바꿔입은 채 프리시엘을 따라갔다.
마법 지팡이나 예복, 기타 장비들은 모두 집에 내버려 둔 채였다.
신도 행세를 하려면 평민처럼 보일 필요가 있었으니까.
“조금만 더 가면 집회 현장에 도착해요. 다들 들키지 않게 튀는 행동은 삼가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성녀의 말에 긴장한 일행이 주변을 경계하며 뒤따랐다.
도시의 외곽으로 향하자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보인다.
“다 왔어요.”
그 말마따나 일행은 마주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횃불을 들고서 모여 있는 집회 현장을.
“확실히, 여기라면 아무도 모르겠네. 브라함의 경비대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외진 곳이야.”
“피터 형님. 조용히 해요. 도착했어요.”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신도로 추정되는 그들이 일행의 접근에 눈알을 굴린다.
한눈에 봐도 경계하는 빛이 역력했다.
“누구십니까?”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자, 프리시엘이 침착하게 대응했다.
“저희는 마도스교에 귀속한 신도들입니다. 위대한 마도스 님의 행사가 열린다고 하여 찾아뵈었습니다.”
빛과 복원의 신인 엘로스교를 섬기는 신성 제국에서, 이단을 칭송하는 발언은 원칙적으로 사형감이다.
특히 주적이나 다름없는 마도스교라면 더더욱.
그러나 사전에 합의된 사항이었기에 대주교는 별말 하지 않았다.
정보를 얻기 위한 거짓 발언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에.
하지만 프리시엘의 그럴듯한 말에도 관계자는 의심의 눈을 지우지 않았다.
“신도라고요? 신도들이 보통 이렇게 몰려서 오진 않는데요?”
“아, 저희는 가족입니다. 가족 모두가 마도스 님을 섬기죠.”
가족 단위로 종교에 빠지는 건 그럴듯했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가족구성이 어떻게 되는데요?”
사전에 따로 협의하지 않았던 부분.
그러나 프리시엘이 다 정해놨다는 듯 싱긋 웃었다.
“이분은 저희 증조할아버지시고요.”
졸지에 증조할아버지가 된 대주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들은 제 어머니와 이모이십니다.”
카르볼과 카르세는 뭐라 소개하든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여기는 저의 형제들이고요.”
피터와 메리가 동의하듯 씨익 웃었다.
“이쪽은 제 약혼자입니다.”
마지막 소개에 지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약혼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