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57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57화
“부탁이요?”
모르는 척 되물었지만 이미 생각을 읽고서 파악한 지크였다.
‘나한테 호위를 맡길 셈이군.’
아니나 다를까, 대주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 같았다.
“이 녀석들을 신성 제국으로 이송하는 동안 호위로서 함께 해주었으면 하네. 보다시피 이들을 막을 사람은 자네들뿐이지 않은가?”
라베르의 그윽한 시선이 지크 일행을 훑었다.
부담을 주려는 눈빛이 아니다.
믿음, 신뢰, 든든함, 고마움 등이 담긴 눈빛.
한편으론 불안감도 떠올랐다.
“……어떻게, 안 되겠나?”
“…….”
지크가 대답을 안 했으니까.
물론 퀘스트를 기다리기 위해 말을 아낀 것이었지만, 그런 걸 대주교가 알 턱이 없었다.
“지크 경이 도와준다면 내 충분한 사례를 하겠네.”
“…….”
“아, 그러고 보니 돈은 관심 없다고 했지? 허허.”
당최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지크의 표정에 다급해진 라베르였다.
“그럼 이건 어떤가?”
라베르가 다가가더니 지크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네. 돈이든 작위든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책임지고 들어주도록 하지. 어떤가? 당장 원하는 게 없다면 이것도 괜찮은 보상이 아닐까 싶네만…….”
“좋습니다.”
지크의 입에서 기대하던 대답이 나왔다.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정말인가? 좋네, 좋아. 하하!”
불안감이 씻긴 얼굴로 라베르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소원이라는 말에 혹한 게 아니라 퀘스트 때문에 수락한 줄도 모른 채.
【돌발 퀘스트 : 신성 제국으로】
└대주교 라베르가 죄수들을 신성 제국으로 이송하는 동안 호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신성 제국까지 대주교 라베르를 호위하십시오.
└신성 제국까지 라베르 호위하기
└랜덤으로 스탯 3,000 증가
└6차 스킬 숙련도 15,000 증가
* * *
“무슨 일이에요. 나 급해요. 용건만 빨리 말해요.”
브라함 왕국의 선구자 중 가장 유명한 건 철인 클리포드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유명인도 있었다.
전격의 선구자 릴리스 린이 그랬다.
“급하지도 않으면서 급한 척하는 건 여전하구나.”
“무슨 소리예요. 진짜로 급하니까 하는 소리죠.”
“시킨 일은 전부 완수했으면서 대체 뭐가 급하단 말이냐?”
발루두크는 무슨 변명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듯 팔짱을 꼈다.
돌아온 변명은 예상대로 없었다.
“아, 몰라요. 하여튼 급해요.”
“너는 그놈의 말버릇과 성격 좀 바꿔야 한다. 매번 그리 바쁘게 굴면 간단한 일도 놓치기 쉬운 법이야.”
“훈계나 하실 거면 갈게요.”
“시킬 일이 있다. 아주 중요한 임무다.”
“뭔데요.”
임무라는 말로 릴리스를 붙잡아둔 발루두크가 이어 말했다.
“어제 들어온 소식이다만 대주교를 암살하는 임무에 실패했다.”
“그거 중요한 임무였잖아요.”
“그렇지. 모처럼 제국 밖으로 나온 대주교라 암살하기에 좋은 기회였지. 하지만 피레오와 일레나가 완전히 망쳐 버렸어.”
“둘이나 보냈는데 암살에 실패했다고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
그도 그럴 것이 피레오와 일레나는 선구자 서열 6, 7위.
릴리스의 상식으론 왕국 하나도 괴멸시킬 수 있는 전력일 터였다.
그런 파괴 전차 둘이 나섰는데도 고작 70살 먹은 노인네를 암살하지 못하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신의 후예의 짓이다. 그 지크라는 마검사가 신의 후예라는 게 증명된 게지.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쉽게 막혔을 리 없으니.”
“지크?”
처음 들어본다는 얼굴로 묻자, 발루두크는 그간 일어난 일들을 전부 말해주었다.
릴리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도 그쯤이었다.
“그런 괴물 같은 녀석이 있단 말이에요?”
“그렇다. 국왕 암살 건도 그렇고, 헤밀톤 영지전도 그렇고, 사사건건 우리 일을 방해한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지.”
발루두크는 이를 갈며 벼르고 있었다.
그간 지크라는 놈을 암살하기 위해 아즈라힐, 에스카, 자카르 등에게 얼마나 많은 지시를 내렸던가?
하지만 한 번도 암살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 결과가 이거라는 거지.’
고작해야 7명밖에 남지 않은 선구자들.
진즉에 지크를 죽였다면 선구자가 이렇게까지 줄지는 않았으리라.
“일의 심각성은 알겠어요. 그럼 제가 해야 할 일은요?”
“대주교에게 붙잡힌 피레오와 일레나가 신성 제국으로 호송되고 있다. 둘을 죽이고 대주교까지 암살한 뒤 돌아오도록 하거라.”
“피레오와 일레나도 죽이라고요?”
“그렇다. 이미 두 번이나 임무를 실패한 폐기물들이야. 재활용하기엔 글렀으니 이제 죽어 마땅하지.”
“그런 건 에탄한테 시키면 되잖아요.”
릴리스 린은 현재 서열 4위.
얼음 중독자로 불리는 에탄 아크토스는 서열 5위다.
이런 뒤처리는 당연히 서열이 낮은 에탄이 할 일.
하지만 발루두크에겐 다 이유가 있었다.
“노인공경도 할 줄 모르는 그 싹수없는 놈이 내 말을 들을 것 같으냐? 보나 마나 이인자의 말은 안 듣는다며 무시할 게 뻔하지.”
“그럼 일인자인 스텔라 님께 부탁하면 되잖아요.”
“스텔라 님은 현재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라 바쁘시다. 당장 수습할 수 있는 전력은 같은 브라함 왕국 소속인 너뿐이야. 거리상으로 가깝기도 하고.”
“알겠어요. 제가 처리하죠.”
릴리스의 대답은 빨랐다.
고민하는 시간도 없었다.
어차피 할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지 않은가?
더구나 혼자 가야 하냐는 말 따위도 꺼내지 않았다.
임무에 실패한 버러지들을 처리하고 대주교까지 암살하는 일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서열 4위인 그녀로선 식은 죽 먹기였다.
“그 지크라는 놈도 죽일까요?”
“죽일 수 있으면 그게 좋겠지. 하지만 쉽지 않을 거다. 마력을 차단하면 재빠른 네 특기도 살리지 못할 테니. 그리고 그 녀석은 어차피 세이레 님이 점 찍어둔 사냥감이다. 그분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게야.”
“그럼 패배자들과 대주교를 암살하는 걸 우선시할게요.”
“그래. 신의 후예가 대응할 수 없도록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염려 마세요. 그럼 언제 출발할까요?”
“지금.”
“바로 처리하도록 하죠.”
그 말을 끝으로 릴리스의 모습이 가상의 공간에서 사라졌다.
* * *
신성 제국까지 호위를 이어간다는 지크의 말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없었다.
피터와 메리, 카르세는 계약으로 맺어진 지크의 노예였으니 당연했고 카르볼도 딱히 싫어하진 않았다.
물론 처음엔 강렬한 의문을 표했었다.
―저 빌어먹을 놈들을 신성 제국에 넘기겠다고?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지크!?
―어쩔 수 없잖아. 입을 열지 않는데.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지금 당장 고문을 해서라도 놈들의 입을 열게 만들 테니!
―그런 과격한 방법은 안 통할 거야. 대주교와 성녀가 그걸 용납할 리도 없고.
―그럼 어쩌란 말이냐? 놈들에게서 동족에 대한 정보를 들어야 하는 마당에 가만히 발가락이나 빨고 있으란 소리냐?
―발가락을 어떻게 빨아. 손가락이겠지.
―뭐든 간에 말이다! 다른 방법이 없냐는 말이다!
―흥분하지 말고 기다려. 내가 정보 좀 얻어볼 테니까.
―무슨 수로 말이냐?
―다 방법이 있어. 그냥 나만 믿고 따라와. 내 말 듣고 일 안 풀린 적 있어? 없잖아. 그러니 일단 신성 제국까지 호위나 하자고.
지크의 설득 끝에 비로소 얌전한 양이 된 카르볼이었다.
표정은 뭔가 불만이 가득해 보였으나 아무렴 좋다.
저 표정도 나중에는 만족스럽게 바뀔 테니.
‘퀘스트대로만 하면 돼.’
지크가 믿는 구석은 다름 아닌 퀘스트에 있었다.
퀘스트가 정보를 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 알려준 탓에, 지크로선 큰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사전작업.
‘흐음, 일단 손님맞이를 하려면 대주교의 허락부터 받아야겠는걸?’
잠시 이송을 멈춘 지크가 라베르의 마동차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 지크 경. 왜 멈췄지?”
“대주교님. 녀석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지크가 눈짓으로 또 하나의 마동차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녀석들이란 죄수의 처지로 호송되고 있는 피레오와 일레나.
대주교는 부정적인 표정이었다.
“설득이라도 할 셈인가? 죽음을 각오한 놈들이라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말은 해봐야죠.”
“알았네. 충분히 대화한 후에 나오게. 안 되면 다시 출발하도록 하지.”
“예.”
지크는 죄수들이 갇혀 있는 마동차로 들어갔고, 10분쯤 지났을까.
고개를 저으며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됐나요? 지크 경?”
프리시엘의 물음에 지크는 대답 대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잘 안 됐군요?”
“고집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럴 거예요. 암살자를 설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죠.”
“신성 제국에 가면 뭔가 다를까요?”
“다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국법이란 게 있잖아요? 절차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거기에 기대할 수밖에 없겠네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지크.
물론 연기라는 걸 프리시엘은 몰랐다.
그가 죄수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왔는지도.
* * *
‘찾았다.’
임무를 받은 지 1시간 만에 릴리스는 타깃을 찾았다.
마동차 두 개가 신성 제국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발루두크가 알려준 정보대로였다.
‘저 중 하나에 피레오와 일레나가 잡혀 있단 말이지?’
유심히 살피던 릴리스의 눈에 한 마동차의 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예복을 차려입은 노인이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 노인네가 대주교구나. 그렇다면 다른 쪽 마동차에 피레오와 일레나가 있겠군. 둘이 함께 타고 있진 않을 테니.’
예측은 정확했고 판단은 빨랐다.
‘우선 빠르게 피레오와 일레나부터 처리하고 대주교를 노린다.’
원래 계획은 광범위 마법을 써서 한꺼번에 일망타진하는 것이었으나, 생각해 보니 위험 요소가 컸다.
만약 실패하면 마법이 차단되어 그다음 공격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그러니 최대한 빠른 속도로 처리해야 해.’
실패하더라도 둘 중 하나는 성공시킨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릴리스는 일망타진의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속도에만 치중하기로 했다.
지크라는 신의 후예가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첫 번째 목적을 달성.
그 후, 틈이 생긴다면 두 번째 목적인 대주교도 죽일 셈이었다.
‘여유가 되면 지크라는 마검사도 노려보고.’
뭐, 마지막 목적은 힘드리라 예상된다.
앞서 희생된 선구자들이 바보라서 당한 건 아닐 테니까.
‘간다.’
파지지지직!
마력을 끌어모으자, 릴리스의 몸에 어마무시한 스파크가 튀었다.
이윽고.
번쩍!
전격화를 끝낸 릴리스가 그야말로 번개처럼 튀어 나갔다.
첫 번째 목표는 선구자가 잡혀 있는 마동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