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59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59화
데칸 왕국의 맥러플린 가문.
집무실에서 일을 보던 제라드가 한숨을 쉬었다.
“지크와 러셀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후계자 시험을 명목으로 자식들이 집을 나간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당시 헤어질 때의 제라드는 분명 무덤덤하기 그지없었다.
그야 장남인 피터를 마도 수련 명목으로 보냈던 전적이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2년만 있으면 아들들을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얼굴엔 근심·걱정으로 가득하고 매일 아침 심장이 쫄깃하다.
자식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적어도 피터를 보낼 때는 걱정이 없었건만…….’
그도 당연했다.
마도 수련은 일종의 유학과도 같은 것.
마탑이라는 교육 기관에 보냈으니 상대적으로 걱정이 덜 될 수밖에 없다.
반면 지크와 러셀은 어떤가?
별다른 지원 없이 생판 몸만 내던져진 것이 아니던가?
피터 때와는 차원이 다른 환경.
내색하진 않았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후우우.”
한숨을 쉬는 그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달프레드가 들어왔다.
“스승님.”
“아침부터 얼굴이 죽상이구나. 또 자식들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냐?”
“알고 계셨습니까?”
“내가 40년간 지켜봐 온 제자 맘도 모르겠느냐?”
둘의 인연은 길었다.
제라드가 소년일 적부터 사제지간을 맺은 두 사람이었기에.
“스승님은 못 속이겠군요.”
“그리 걱정되느냐?”
“그럴 수밖에요. 1년 동안 연락 한번 못하지 않았습니까. 소식도 통 들리지 않고…….”
“러셀은 모르겠다만 지크의 소식은 들리던데 말이다.”
“아, 그 황금 독수리 용병단의 마검사 말입니까?”
세간에 들리는 소문이 있었다.
지크라는 마검사가 헤밀톤과 아고스 영지전에서 대활약을 했다는.
이미 용병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파다하게 퍼진 소문이었다.
“이름만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너도 알다시피 지크는 드래고니안이다. 인간을 넘어선 무력을 지닌 데다 궁정 마법사단에서도 무영창을 선보이며 마법의 재능을 증명했어. 마검사처럼 말이지. 그런데 이름까지 같다?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될 거라 생각하느냐?”
하긴, 검과 마법, 두 가지를 다루는 데다 이름까지 같다면 소문의 지크가 자기 아들일 확률이 높았다.
“정말로 그 지크가 우리 지크라면…… 다른 쪽으로 또 걱정되는군요. 마검사라는 소문 때문에 나쁜 놈들과 연루되는 건 아닐지…….”
“허허, 명성 얻고 돌아오라고 후계자 시험을 보내놓고, 이제는 명성이 높아서 걱정하는 것이냐? 그렇게 따지면 유명한 사람 모두 제 명에 살지 못했겠구나.”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 봤나요?”
“아무렴.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딱이구나.”
유명세를 치러서 괜히 안 좋은 일에 휘말릴까 더 걱정하는 제라드였지만, 달프레드의 눈엔 배부른 소리로 들릴 따름이었다.
축 처진 제자의 모습에, 달프레드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짓궂은 농을 던졌다.
“너무 지크 걱정만 하지 말고 러셀도 걱정하지 그러냐? 러셀이 들었으면 서운했겠다.”
“물론 러셀도 걱정하고 있지요. 혹시 러셀에 관한 소식은 없습니까?”
“나도 들은 바가 없다. 어디서 뭘 하는지.”
“…….”
침묵과 함께 갑자기 더한 걱정이 찾아왔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제라드. 수련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진전은 없느냐?”
“예…… 아직 9서클에 대한 어떠한 실마리도 못 잡은 실정입니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8서클에 머물러 있다니. 네 재능이면 9서클은 진즉에 이뤘어야 할 텐데, 뭔가 이상하구나.”
달프레드야 재능이 부족했기에 70의 나이에 이르러 9서클이 됐지만, 제라드는 달랐다.
30대 후반에 8서클을 달성한 데칸 왕국의 천재 마법사.
이 속도면 50대 중반에 이른 지금, 당연히 9서클에 올라야 정상이었다.
필요한 마나는 충분히 모았음에도, 왜 아직 추가적인 마나 고리가 생성되지 않는지는 스승인 그도 알 길이 없었다.
“네가 9서클이 되어야 데칸의 국력이 한층 더 강해질 게 아니냐. 그래야 저번의 습격에도 허무하게 당하지 않을 테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도 하루빨리 9서클이 되고 싶은 심정입니다.”
달프레드가 말한 습격이란, 지난번 풍신의 리타가 왕궁에 쳐들어왔을 때를 말했다.
바람의 거인에 시선이 쏠린 틈을 타 국왕이 암살당할 뻔한 사건.
그 아찔하던 순간을 떠올리던 달프레드가 문득 당시의 이상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그때 나를 상대했던 사내 말이다.”
“에스카 로빈스 말입니까?”
“그래. 그자와 일대일로 대치했을 때 말하지 않았느냐? 녀석 앞에서 어찌 된 일인지 마법을 쓸 수 없었다고.”
“네. 마력이 모이지 않는 기묘한 경험을 하셨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죠. 왜 굳이 자신을 살려뒀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 또한.”
달프레드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당시에 나를 죽일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도 왜 슬립 마법만 걸고 지나친 걸까? 그게 여전히 궁금하지 않을 수 없구나.”
궁금했지만 해소할 방법이라곤 없었다.
그때 지하 감옥에서 탈출한 이후로 에스카라는 죄수는 찾을 수 없었으니.
한숨을 쉬는 사이, 노크와 함께 집무실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가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누구 말이냐?”
“호세 데포르테 공작님과 실리스 데포르테 공녀님이십니다.”
“아.”
제라드는 올 것이 왔다는 얼굴이었다.
“또 선물을 주러 온 건가…….”
“또? 저번 주에 왔다 하지 않았느냐?”
“예. 거의 매주 옵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할 정도로 데포르테 가문의 방문은 잦았다.
“매주 찾아와 선물을 전해주곤 하는데 당최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습니다.”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
“겉으로는 친목 도모라고 말하지만…… 속뜻까지는 파악하기 어렵더군요.”
“허허, 그것참. 제자의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는 이유가 또 있었군.”
너털웃음을 흘린 달프레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꾸나. 호세의 의도를 파악하여 내 오늘 제자의 걱정을 덜어주마.”
* * *
“아버지.”
“응?”
“지크 공자님은 여기 안 계신 거죠?”
실리스의 말에, 호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없지. 후계자 시험 때문에 당분간 못 돌아온다 들었다.”
“그렇군요…….”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실리스.
생전 처음 보는 딸의 모습에 호세는 조금 놀랐다.
남자 하나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던가?
자신의 기억으론 없다.
“지크 경이 그리 보고 싶으냐?”
“하, 하하…… 아니에요.”
“아니긴. 그럼 왜 매번 나를 따라 맥러플린 가문에 오는 게냐?”
“그, 그건…….”
“솔직히 말해 보거라. 약혼자로 지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냐?”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보래도.”
아버지의 집요한 물음에, 실리스는 계속해서 거짓으로 답할 수 없었다.
“……네, 맞아요.”
“그랬구나. 나도 그렇다.”
“네?”
“다행히도 우리 생각이 일치하는구나.”
빙그레 웃어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마음 저편의 불안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혹시나 아버지가 반대하진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든든한 아군을 얻은 느낌.
“그, 그럼 지금까지 가문을 꾸준히 방문하신 이유가…….”
“그래. 지금이라도 맥러플린 가문과 연을 맺어서 내 딸의 혼사를 성사시키기 위함이었지. 지크 공자와의 혼사 말이다. 그러니 넌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적극적으로 밀어줄 테니!”
아버지와 모처럼 뜻이 맞는다.
실리스의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피었다.
“아버지…… 고마워요.”
“그럼 이제 말해 보거라. 지크 경을 언제부터 좋아했던 거냐?”
“그, 그건…….”
실리스의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고개를 푹 숙이며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말한다.
“처, 처음부터요…….”
“널 구해줬을 때 말이구나. 하하핫! 그럴 줄 알았다.”
브라함의 환술사, 아즈라힐의 습격으로 환각의 악몽에 갇혔을 때.
실리스는 구원을 받았다.
지크라는 운명의 상대로부터.
그때부터 실리스의 마음은 줄곧 지크에게 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를 보고 싶어 가문까지 발걸음하지 않았는가?
‘이참에 예비 시아버지께 눈도장도 찍고 말이지.’
물론 지크의 마음이 우선이겠으나 실리스는 자신 있었다.
지크를 내 남자로 만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얼굴이 자꾸만 붉어지는 게냐?”
“예? 아, 아, 아니, 에요.”
“말까지 더듬는 게 영 수상한데?”
“아, 그만 좀 쳐다보세요!”
“큭큭큭.”
호세가 딸을 놀리며 즐거워하는 그때.
저벅저벅.
멀리서 예비 사돈과 두 명의 부인들이 나타났다.
가주 제라드와 첫째 부인 크리스티나, 둘째 부인 데이나였다.
“크흠.”
웃음을 멈춘 호세와 실리스가 다급히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런데 제라드 옆엔 못 보던 얼굴이 하나 더 있었다.
‘비그스란드 공? 맥러플린 대공의 스승이 아닌가?’
데칸의 3대 마법 명가라 불리는 세 가문이 한자리에 모였다.
“데포르테 공작님. 오늘도 와주셨군요.”
“하하, 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서 말입니다. 여기.”
반갑게 인사한 호세가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저희 영지의 특산물인 감자입니다. 아주 깨끗하고 튼실한 놈들만 골라서 맛이 아주 좋습니다.”
“뭘 이런 걸 다…… 매번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려요, 공작님.”
“항상 감사합니다.”
옆에 선 제라드의 부인들이 공손히 인사했다.
덕담도 잊지 않았다.
“실리스 영애는 볼수록 예뻐지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부인.”
“우리 러셀과 이어지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첫째 부인 크리스티나에게 믿을 만한 자식이라곤 러셀뿐이었다.
지금은 후계자 시험 때문에 어디에 있는지 알 순 없지만.
“일단 이쪽으로 와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 좀 나누시지요.”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비그스란드 공작께서 와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 나도 그대가 찾아올 줄은 몰랐네. 매주 선물을 가지고 온다지?”
“예.”
“말 나온 김에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데포르테 공작. 자꾸 이렇게 찾아오는 이유가 뭔가?”
직설적인 질문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호세는 곧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야 이름 높은 맥러플린 가문과 친분을 쌓고자…….”
“그런 뻔한 답을 물은 게 아닐세. 자네의 진짜 속내를 알고 싶은 게지.”
“…….”
“강요하진 않겠네. 하지만 이렇게 계속 꿍꿍이를 감춘다면 우리도 달갑게 볼 수만은 없다는 걸 알아두게.”
호세는 직감했다.
여기서 또 대강 둘러대려 했다간 관계가 끊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호세가 한숨 끝에 말했다.
“후,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듣고 있네.”
“실은…….”
호세의 시선이 옆에 있던 실리스에게 향했다.
“여기 있는 제 딸의 약혼자를 구할 요량으로 친분을 쌓으려 했던 것입니다.”
“으음, 그랬었군.”
달프레드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반응.
제라드와 다른 부인들도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약혼자를 구하러 오셨군요?”
“잘 오셨습니다. 실리스 영애 정도면 우리 가문으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실리스 정도면 외모며 배경이며 뭐 하나 빠지지 않는 1등 며느릿감.
자기 아들과 이어진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특히 크리스티나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우리 러셀이 돌아와서 들으면 정말로 기뻐하겠어요. 이처럼 아리따운 아가씨를 어느 남자가 마다하겠어요? 그렇죠?”
“어…… 그, 그게…….”
왠지 당황해하는 호세 공작.
이상을 눈치채지 못한 제라드가 옆에서 거든다.
“이공자인 러셀을 약혼감으로 염두에 두셨군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안 그래도 러셀을 누구와 이어줄지 고민하던 차였는데…….”
“잠시만요, 맥러플린 공.”
듣다 못 한 호세가 말을 끊었다.
오해를 풀 필요가 있었기에.
“저희가 염두에 둔 약혼자는 러셀 공자가 아닙니다.”
“예? 그럼……?”
굳이 물을 것도 없었다.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실리스는 지크 공자를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