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60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60화
실리스의 얼굴이 벌게졌다.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밝히다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다른 이유로 얼굴이 벌게진 사람도 있었다.
크리스티나의 얼굴이 그랬다.
‘우, 우리 러셀이 아니라 지크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그 사생아 따위를?’
믿을 수 없는 현실.
자기 아들이 뭐가 못나서 그따위 사생아에게 밀린단 말인가?
크리스티나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정말이니? 실리스? 러셀이 아니라 지크를 흠모하는 거야?”
“아아, 네…… 사실이에요.”
수줍은 대답.
부끄러워하는 태도만 봐도 지어낸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크리스티나의 눈이 도끼눈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거짓말하지 마! 지크와는 만난 적도 없고 아무런 연도 없잖니!”
“크리스티나! 손님께 이 무슨 무례한 짓이오? 언행을 삼가시오!”
아무리 나이 어린 귀족가의 영애라도 눈앞에서 소리를 치는 건 무례한 언사.
하지만 그 정도로 크리스티나는 다급했다.
눈앞에 닥친 현실이 거짓이라고 믿고 싶었으니까.
당황하는 실리스 대신, 호세 공작이 입을 열었다.
“저희와 지크 공자는 아주 뜻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라드를 비롯한 모두가 궁금한 눈초리로 쳐다봤고 호세가 말을 이었다.
“몇 개월 전. 저희 가문에 아즈라힐 존스턴이라는 사내가 습격했었습니다. 12인의 선구자이자 브라함의 환술사로 유명한 자였지요.”
운을 뗀 호세는 지크와의 인연을 가지게 된 계기를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이렇게 된 이상 숨길 필요도 없어 보였으니까.
“아즈라힐은 난데없이 찾아와 저희를 협박했습니다. 알고 보니 헤밀톤 광산을 탐내서 저지른 짓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실리스가 환술에 걸려 폐인이 될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때 기적처럼 나타나 구해준 사람이 바로 지크 공자입니다.”
“지크가……?”
“환술을 어느 정도 익혔기에 자기가 해제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즈라힐과 용감하게 대치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았고요.”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맥러플린 가문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아무래도 헤밀톤 영지의 마검사가 지크인 게 확실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데포르테 가문과도 엮이게 된 거겠지.
놀라는 제라드와 마찬가지로 달프레드도, 데이나도 처음 듣는 지크의 이야기에 눈을 빛냈다.
‘고 녀석. 어디서 뭘 하나 했는데 큰일을 해내고 있었군.’
‘우리 아들이…… 데포르테 가문을 구해준 거야?’
놀람과 감탄이 사람들 얼굴 사이에 떠올랐다.
이 자리에서 질투심에 불타는 사람은 오직 크리스티나뿐이었다.
“지크는 실리스와 저희 가문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입니다. 이때부터 인연이 되었고 대화도 많이 나눠봤지요. 오히려 얼굴도 보지 못했고 아무런 연도 없는 건 러셀 공자입니다만…….”
호세가 그리 말하며 크리스티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애써 시선을 피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조금 전 소리 쳤던 자신을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인연이 있으셨다니. 전혀 몰랐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지크 경은 지금 후계자 시험 중이 아닙니까? 가문에도 찾아오지 않은 걸로 압니다만.”
“그렇습니다. 근 1년 동안 얼굴도 소식도 들은 적이 없지요.”
씁쓸히 말하던 제라드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걸까?
호세는 조금 오지랖을 부려보기로 했다.
“저어, 이런 말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크 공자는 대단히 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식이 들리지 않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죠. 으음…… 저에게 소식이 있긴 한데, 들려드릴까요?”
“지크에 대한 소식 말이오?”
“예.”
들을 준비됐다는 듯 제라드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원래 입이 가벼운 사람은 아니지만 소식을 전혀 모르는 제라드가 안쓰러웠기에 호세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알기로 지크 경은 황금 독수리 용병단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마검사 지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봤소.”
“그 소문의 주인공이 지크 경입니다. 홀로 아고스 군에 맞서 헤밀톤 영지를 지켜냈지요. 그로 인해 헤밀톤 영주가 지크 경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고요.”
지크의 활약상을 나열하는 호세의 표정이 들떠 있다.
마치 영웅담을 구전하듯 자신이 더 신난 얼굴이었다.
“트레이시라고 헤밀톤 영주가 애지중지하는 딸이 있는데, 지크 경이 환각 마법으로 트라우마를 극복시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주 잘 지내고 있죠.”
“우리 지크가 정말 좋은 일을 해냈네요.”
“하하, 그렇습니다, 부인.”
데이나는 감격했고,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불퉁한 표정이었다.
아까부터 지금까지 줄곧 지크 이야기뿐, 러셀 이야기라곤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바이소 왕국의 크리오스 라인하르트라고 아십니까?”
“알다마다. 철혈의 군주라 불리는 오망성 중 하나가 아니오.”
“저희 딸에게 구애하는 남자 중에 그자의 아들이 있었는데, 지크 경이 우연히 엮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기회가 닿아 철혈의 군주와도 만나게 됐고요.”
“철혈의 군주와?”
자신도 못 만난 철혈의 군주를 만났다는 말이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말은 다음에 튀어나왔다.
“지크 경이 그 크리오스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됐습니다.”
“제…자?”
“그랜드 오러 마스터로부터 검술 실력을 인정받은 게지요.”
제라드 일가는 듣는 내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휘둥그레진 눈과 벌어진 입을 다물 틈이 없다.
그건 자리에 있던 크리스티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생아 놈이 마검사에, 뭐? 오망성의 제자라고?’
실리스가 점찍어둔 약혼자라는 것도 어이가 없을 지경인데 연달아서 뒤통수를 치는 소식이 튀어나온다.
머리가 다 어질어질하다.
“허허헛! 이거 집 나가더니 아주 여기저기서 인연을 만들고 다녔구나, 지크! 허허허!”
달프레드의 웃음을 시작으로 제라드 부부의 입가에도 은은한 미소가 지어졌다.
처음엔 좀 놀랐지만, 상황을 파악하자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이렇게 되면 후계자 자리는 거의 정해진 건가? 깜깜무소식인 러셀과 달리 지크의 업적은 하나같이 놀라운 것들이니.’
달프레드는 그리 생각하며 제자를 돌아봤다.
자랑스러워하는 제라드였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스며 있는 것이 러셀의 소식을 알고 싶은 모양이다.
‘흐음, 어떻게 러셀의 위치를 알 방법은 없을까? 어디서 뭘 하는지 원…….’
덩달아 걱정하는 그때.
달프레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이, 이 마력은 대체!’
벌떡!
도란도란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무서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 그러시오? 비그스란드 공?”
“호세 공작은 느껴지지 않으시오?”
“뭐가 말입니까?”
그 순간이었다.
콰콰콰콰쾅!
“꺄아아악!”
“크윽!”
난데없는 폭발음과 함께 사람들이 몰려왔다.
“가, 가주님! 치,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침입자?”
호위병의 말에 되묻는 찰나, 제라드의 표정이 굳었다.
“커허르르르르…!”
갑자기 벼락 맞은 사람처럼 부르르 떨던 호위병이 털퍼덕 쓰러졌다.
그 뒤로 나타난 한 여인.
“여기가 신의 후예를 배출한 가문인가?”
다른 사람과 달리 표정이 여유롭기 짝이 없는 걸로 보아, 이 사태의 장본인이 분명했다.
“네년은 누구냐?”
“그러는 네놈은 누구?”
“네 정체가 먼저다, 침입자.”
“하, 좋아. 빨리빨리 끝내야 하니 말해주지. 내 이름은 릴리스 린. 전격의 선구자라고 하면 알아듣겠지?”
“전격의 선구자……!”
제라드를 비롯한 사람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법사는 물론 일반인들도 아는 게 선구자의 존재.
좌우지간 9서클의 대마법사가 여긴 무슨 일로 왔는지가 궁금했지만.
‘필시 좋은 목적은 아니겠지.’
멋대로 침입해 눈앞에서 호위병을 죽인 것만으로도 의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일 셈인 거다.
제라드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부인들을 돌아봤다.
“내가 녀석과 싸우는 사이, 부인들은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시오. 호세 공작님과 실리스 영애도 함께 말이오.”
“아닙니다, 제라드 공. 저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3대 마법 명가답게 호세 또한 8서클의 대마법사.
같이 싸워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리라.
“그리 말해주니 고맙소. 하지만 손님을 관여시킬 순 없는 법. 부디 물러나 주시오. 스승님과 함께하면 침입자를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거요.”
“하지만…….”
그때 달프레드가 대화 도중 끼어들었다.
“제라드. 너도 물러나거라. 여긴 내가 어떻게든 막아보마.”
“스승님. 그럴 순 없…….”
“네가 끼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니 네 식구나 잘 지키거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9서클과 8서클 사이에는 그만한 격차가 있다.
보통 8서클 마법사 열 명이 9서클 한 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
8서클 마법사가 끼어들면 필시 도움은 되겠으나, 미미한 수준이었다.
특히나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저 무시무시한 마력의 선구자를 상대로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달프레드의 표정은 비장하기 짝이 없다.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있다.
그 사실을 눈치챈 제라드가 눈동자를 키웠다.
“스, 스승님…… 설마…….”
“꾸물거리지 말고, 가라.”
“듣자 듣자 하니 얘네들 웃기네? 누가 보내준대?”
상황을 지켜보던 릴리스가 지팡이를 들었다.
파직파직파직!
보기만 해도 아찔한 고압 전류가 지팡이 끝으로 모였다.
“딱 보니 맥러플린 일가 같은데, 겁먹지 마. 다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너희는 인질로서 살아 있을 필요가 있거든.”
“인…질?”
“무슨……?”
누구를 겁박하기 위한 인질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릴리스에게 의문을 풀어줄 마음 따윈 없었다.
“하지만 저 늙은이는 죽어줘야겠어.”
무리 중 가장 강한 존재를 알아본 릴리스가 지팡이를 겨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전광이 달프레드의 몸에 적중했다.
콰콰콰콰쾅!
“스, 스승님!”
다행히도 우려하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난 괜찮다.”
이럴 줄 알고 미리 배리어로 막아낸 달프레드였으니까.
“이걸 막았어? 과연 데칸 왕국 유일의 9서클이라더니 세월을 헛산 건 아닌가 봐?”
“당연하지. 손주뻘 되는 애송이 하나 막는 게 뭐 그리 어렵겠나?”
조롱을 받아치는 달프레드였지만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마력이다. 어려 보이는 나이에 이런 마력을 지니다니…….’
방금의 공격을 막으며 달프레드는 직감했다.
자신의 마력으론 고작해야 한두 번밖에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이대로면 죽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빨리!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가거라!’
달프레드가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심정을 읽은 제라드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야 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하지만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릴리스가 아니다.
파지지지직!
어느새 출구에 광범위한 전격의 장막이 펼쳐졌다.
“못 간다고 했을 텐데?”
단번에 퇴로가 막히자 가족들은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됐다.
시간 끌기 싫었던 릴리스가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반응을 보는 것도 재미없네. 노인네. 이만 죽어줘야겠어.”
릴리스의 지팡이 끝이 달프레드에게 향하는 그때였다.
순간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릴리스가 돌연 전격화로 변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번쩍!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빛 덩어리가 내려앉았다.
하마터면 빛에 적중당할 뻔한 릴리스였다.
“어떤 새끼가 날린 거야!?”
“나다. 이 새끼야.”
뒤에서 들린 소리에 릴리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달프레드와 제라드의 눈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