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69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69화
까드득-!
얼음중독자란 수식어에 걸맞게, 에탄 아크토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얼음을 먹고 있었다.
사아아아-
까드득!
“크으, 역시 이 맛이지.”
만들고 먹기를 반복하며 시원한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그는 돌연 표정을 굳혔다.
자신이 인생을 바치기로 맹세한 여인, 스텔라 님의 연락이 루미노스 포탈스피어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파삭!
즉시 만들었던 얼음을 부숴버리고 가부좌를 틀었다.
가상의 공간에 접속하자 일인자인 스텔라의 아리따운 형상이 자신을 반긴다.
“아아…….”
[에탄. 그대에게 시킬 일이 있어요.]잠시 일인자를 넋 놓고 바라보던 에탄이 정신을 차렸다.
“무엇이든 말씀만 해주십쇼! 발루두크를 죽이라는 명도 이행하겠습니다!”
[제가 그런 명을 내릴 리 없잖아요?]“그렇슴까?”
에탄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무슨 일을 할까요?”
[맥러플린 일가가 릴리스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들을 처리하는 임무를 맡아주세요.]“맥러플린 일가라면…… 신의 후예의 가족 말입니까?”
[그래요. 보고에 따르면 신의 후예의 모습은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잠시 자리를 비운듯합니다. 복수하려거든 지금이 기회겠지요.]“알겠습니다. 그 정도 임무라면 식은 죽 먹기죠.”
* * *
철컥! 철컥!
“젠장! 이것만 끊으면 어떻게든 나갈 수 있을 텐데…….”
전격의 선구자였던 릴리스는 필사적이었다.
손목에 채워진 구속구만 끊으면 쉽게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일반인이 쇠로 만들어진 구속구를 힘으로 끊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릴리스는 현재 마법을 쓸 수 없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후우…… 결국 그 방법밖에 없나?”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손목을 잘라버리면 된다.
양 손목을 잘라내면 구속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필사의 각오가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도 자를만한 도구가 보이지 않잖아…….’
주위를 둘러봐도 마동차 내부는 날카로운 것 하나 없었다.
그렇다고 손목을 뭉개기 위해 벽을 내리찍으면 소음으로밖에 있는 놈들이 들을 것이다.
‘이래저래 생각해 봐도 답이 없어.’
어디로 끌려가는진 알 수 없지만, 릴리스는 탈출하고 싶었다.
죄수처럼 끌려가는데 기분이 좋을 리 있겠는가?
물론 호화로운 마동차에 타고 편하게 가고 있었지만 어찌 됐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는 건 맞지 않는가?
‘이대로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 선구자들이 구하러 올 때까지.’
가뜩이나 선구자의 수도 적은 상황.
스텔라 님이 자신을 이대로 방치할 리가 없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후견인인 카르데이포르 님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걸 릴리스가 알 리는 없었지만.
‘구하러 올 거면 빨리 와라. 아니면 신의 후예 때문에 구하지 못하는 건가?’
놈을 상대했을 때의 일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지크의 가족을 노린 대가는 처참했다.
죽도록 얼굴을 처맞고 팔다리가 부러졌다.
치료는 받았지만, 놈에게 맞았던 부위가 아직도 얼얼하다.
깨졌던 이도 다시 돋아났고 놈에게 꺾여 덜렁거리던 팔다리도 정상이 된 상태였지만, 정신만은 온전치 못했다.
놈에게 당한 정신적 충격이 뼈에 새겨진 듯 남아 있었으니까.
‘다시는…… 그놈과 엮이고 싶지 않아.’
떠나기 전, 지크가 가족들과 헤어지는 모습을 마동차의 창문으로 확인했기에 행렬에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탈출하려거든 지금 기회야. 신의 후예가 없는 지금이!’
하지만 그 사실을 선구자들은 모를 수 있다.
그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 것일지도…….
‘지금이 기회란 말이다. 빨리 아무나 누가 좀……!’
그런 릴리스의 염원이 선구자들에게 닿은 걸까?
별안간 마동차가 급정거를 했다.
“정지! 누구냐? 누군데 길을 막고 서 있는 게야? 정체를 밝혀라!”
호위병의 외침이 마동차 밖으로 어렴풋이 들려왔고 릴리스는 바싹 창문으로 얼굴을 기댔다.
그 결과 확인할 수 있었다.
“와, 왔다! 에탄이야!”
에탄 아크토스.
선구자 서열 5위에 있는 빙결 마법에 특화된 9서클 마법사.
시도 때도 없이 발루두크와 마찰을 일으키는 버르장머리없는 청년이었지만, 이때만큼은 그가 믿음직스러웠다.
‘날 구하러 와줬구나, 이 새끼! 멋있다, 멋있어!’
에탄의 실력만큼은 자신도 인정하는 수준이었으니까.
* * *
“스승님! 저 앞에……!”
“나도 보인다.”
제라드의 외침에 달프레드는 진중한 눈으로 길을 막고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범상치 않은 자다. 엄청난 마력이 느껴져.’
젊어 보이지만 지금 호송하고 있는 릴리스 린에 버금가는 실력자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12인의 선구자겠지.”
“그놈들은 완전 괴물들만 모여 있는 집단입니까? 저렇게 젊은데 어떻게 저런 마력이…….”
“드래고니안을 아들로 둔 아버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제라드는 순간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그 반응이 재밌다는 듯 달프레드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에탄의 눈엔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었다.
“하, 이 새끼들 보소? 날 보고 처웃기나 하고.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
선구자인 자신을 보고도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물론 달프레드도 그건 안다.
원래라면 긴장감이 팽배해야 할 상황.
하지만 아무런 근거 없이 부리는 여유가 아니었다.
그들의 뒤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으니까.
“비그스란드 공. 저자는?”
“난데없이 나타나 우리 앞길을 막고 있소. 아무래도 선구자인 듯하오.”
블루드래곤인 카르세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상대를 바라봤다.
꽤 젊은 인간 같은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그때 옆에 있던 에스카가 상대를 알아봤다.
“저자는 서열 5위인 에탄 아크토스입니다. 빙결 계열을 다루는 얼음광이죠.”
“4위로 승격했거든? 뭘 좀 알고 떠들어 이 배신자 새끼야.”
에탄은 날카롭게 받아치면서도 손아귀에서 얼음막대기를 만들어냈다.
까드득!
치아가 걱정될 정도로 씹어먹던 에탄이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저 달프레드라는 영감이 왜 처웃나 했더니 9서클 마법사가 둘이라서 그랬구만?”
“나까지 셋이거든? 멍청아.”
카르세가 도발했지만, 에탄은 피식 웃기만 했다.
쥐뿔도 걸려들지 않은 태도였다.
“둘이나 셋이나. X밥들이 늘어봤자 거기서 거기지.”
“자네가 정녕 9서클 셋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셋이 뭐야. 다섯이 와도 다 발라버리지.”
“자신감만큼은 하늘을 찌르는 청년이로군. 하지만…….”
달프레드는 지팡이 끝에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늙었다고 너무 무시하는군.”
“위협이랍시고 끌어올린 마력이 고작 그 정도야?”
비웃던 에탄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마력이 폭사했다.
쿠그그그그-
“헛…!”
“아, 아니……?”
“…….”
살이 떨리도록 위력적인 마력의 기운이 세 마법사를 당황하게 했다.
“이 정도는 돼야 위협이라고 할 만하지 않겠어?”
비웃을만했다.
에탄이라는 청년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실력자였다.
9서클 다섯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게 허언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깨달은 그들이다.
자신들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것 또한.
‘릴리스 린도 겨우 잡았거늘, 어디서 이런 괴물이…….’
긴장한 달프레드는 옆에 있던 에스카를 쳐다봤다.
자신보다 강한, 한때 선구자였던 그조차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만 카르세라는 여인만큼은 어째서인지 몰라도 놀라기보단 호기심 어린 눈빛이다.
‘설마 자신 있다는 건가?’
카르세가 9서클이고 드래고니안이라는 건 지크에게 들어서 알지만 실제로 확인해 보진 못했다.
‘긴장하지 않는 걸 보니 에스카를 웃도는 실력의 마법사일 터.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승산이 있건 없건 적을 상대로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릴리스 린만 데리고 갈 놈이 결단코 아니었기에.
‘아마 우리 모두를 죽이러 온 거겠지.’
협상은 통하지 않는다.
그건 상대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디 한번 놀아보실까?”
까득!
얼음과자를 모두 처리하기 무섭게 에탄이 손바닥을 펼쳤다.
휘오오오!
손아귀를 중심으로 칼바람이 불더니 얼음결정이 무수히 생성되며 휘몰아쳤다.
“온다!”
달프레드는 즉시 배리어를 펼쳐 아군을 보호했다.
동시에 에스카는 소울 버스트를 날리며 공격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공격과 방어를 전담했다.
릴리스를 상대했을 때처럼.
그때와 지금에 다른 점이 있다면 9서클 마법사 한 명이 더 추가됐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블루드래곤이었지만.
‘드래곤인 걸 숨기라고 하셨으니 용언은 최대한 삼가야겠지.’
카르세는 솔직한 말로 에탄이라는 상대가 우습게 보였다.
이전에는 카르록시나의 금제에 걸려 용력을 사용할 수 없던 몸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용력을 쓰면 저딴 건 쉽게 이길 수 있을 거야.’
폴리모프를 풀고 본체인 드래곤으로 돌아가서 여과 없이 용의 기운을 사용한다면, 제아무리 선구자 서열 5위라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기 그지없다.
주인인 지크로부터 용력을 최대한 갈무리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니.
‘드래곤인 걸 들키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고 하셨어.’
그렇기에 최대한 힘을 숨긴 채로 상대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9서클이자 드래곤인 자신을 당해내진 못하겠지만.
“아이시클 샤워(Icicle shower).”
수속성의 영향을 받는 블루드래곤의 특성상, 빙계 마법은 자신의 주특기.
자신 있게 뾰족한 얼음결정 수백 개를 날려 보냈지만.
카카아아캉캉!
똑같은 얼음결정으로 쳐내는 에탄이었다.
“뭐야. 너도 이쪽 계열 전문이었냐?”
반갑다는 듯 웃어 보인 에탄이 순간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바닥에 어느새 빙판이 깔렸고 그가 사라진 자리를 뒤늦게 소울 버스트가 때렸다.
번쩍!
“쯧쯧, 그런 느려터진 공격으로 날 맞힐 수나 있겠어?”
에스카를 향해 비웃던 에탄이 손가락을 위로 들었다.
그러자 바닥에서 수많은 얼음의 창이 가시처럼 튀어 올랐다.
그대로 꼬치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보호막이 없었을 경우였다.
카카카캉!
“크윽!”
“호오. 저 영감탱이가 바닥까지 보호막을 쳐놨네? 아주 작정하고 지키겠다는 건가? 그럼 어디 지켜보라고.”
입꼬리를 올린 에탄이 연신 얼음결정을 날려댔다.
카캉, 카캉, 카캉, 카캉!
쉴 새 없이 두들기는 얼음 폭격에 달프레드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낄낄거리는 에탄의 웃음소리도 달프레드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마력으론 이 많은 수의 인원을 보호하기도 벅찼으니까.
“이크.”
그 와중에도 에탄은 미끄러지듯 빙판을 달리며 에스카의 공격을 피했다.
소울 버스트는 한 번 적중당하면 마력이 역류하는 위험한 마법.
보호막으로 막아봐야 소용없고 이처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에스카 입장에선 느려터진 공격이라 그편이 훨씬 더 쉬웠지만.
“하마터면 맞을 뻔했어, 배신자. 칭찬해 줄게. 좀 더 노력해 보라고. 그럴 새도 없이 곧 영감의 보호막이 깨질 듯하지만.”
그의 말처럼 달프레드의 보호막은 간당간당했다.
풍전등화처럼 곧 사라질 위기.
그랬기에 에스카는 필사적으로 마법을 연사했다.
어떻게든 가문 사람을 지키라는 주인의 명이 있었다.
자신을 믿고 맡긴 주인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건 또 다른 노예인 카르세도 마찬가지의 입장이었다.
“나도 있다 인간!”
카르세가 에탄을 막기 위해 자신 있는 빙결 마법을 날려댔다.
그러나 그녀를 비웃기라도 하듯 에탄은 똑같은 빙결 마법을 만들어 맞대응했고, 마법을 쓰는 족족 무위로 돌아갔다.
‘이익,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인간이야? 드래곤의 마력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니…….’
정말로 9서클 셋이 달라붙어도 선구자 한 명을 이길 수 없었다.
혼자서 보호막을 두들기면서 공격을 피하고 맞대응까지 하는 선구자라니.
내심 당황한 카르세는 진지하게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확 본체로 변해서 용언을 사용해?’
드래곤 고유의 기술을 사용한다면, 제아무리 녀석이라도 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셈.
하지만 그랬다간 정체를 숨기라는 지크 주인님의 명을 어기고 만다.
‘이 상황에선 어쩔 수 없잖아. 가문 사람들이 당하는 것보단 낫겠지!’
조금 있으면 달프레드의 보호막이 깨질 테고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리라.
그 사달을 막기 위해서라면 주인님도 이해해 주리라.
그런 생각으로 카르세가 힘을 개방하려던 때였다.
쿠콰콰쾅!
어디선가 날아온 마력 폭격이 에탄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X발, 큰일 날뻔했네. 어떤 새끼야? 9서클 마법사가 또 있었…….”
순간 에탄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뭐, 뭐야?”
말까지 더듬는 게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저벅저벅.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막은 여섯 명의 사람은, 대부분이 아는 얼굴들이었으니까.
‘리타, 자카르, 테리온, 피레오, 일레나까지……?’
죽었던 선구자들과의 상봉에, 에탄의 얼굴이 한동안 벙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