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7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7화
러셀이 물었다.
“후계자 시험을 내년으로 미루신다고요?”
“그래.”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여긴 제라드가 말을 이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마법사의 세계에선 재능을 최우선으로 친단다. 나이가 어려도 서클만 높으면 황족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지.”
서클이 높다고 전부 나이가 많은 건 아니었다.
머리가 하얘질 때까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아도 8서클에 겨우 도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제라드처럼 중년의 나이에 이미 8서클을 뛰어넘은 사람도 있다.
재능에 따라 성장 속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다.
12인의 선구자라는, 마법사의 정점에 오른 존재 중에서도 노인은 몇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렇기에 맏아들이 모든 것을 물려받는 세습 방식을 떠나, 나이를 불문하고 재능이 높은 자식만이 가문의 모든 걸 이어받도록 하고 있단다. 그것이 우리 가문이 명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고. 그런데…….”
제라드가 말하던 도중 한숨을 쉬었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험의 취지와 달리, 서로를 반목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암살단까지 고용하고 있으니. 내 어찌 후계자 시험을 진행할 수 있겠느냐?”
“하면, 시험을 없애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진 않다. 오랫동안 이어온 가문의 방식을 버릴 수야 없지. 다만 앞서 말했듯이 내년으로 미루어 시험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한다. 혹시 이에 대한 불만이나 다른 의견이 있으면 가감 없이 말해보도록.”
“없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요.”
불만이 있다 한들 아버지 앞에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럴 명분도 없었고.
의견이 합치된 것이 기뻤는지 제라드가 빙긋 미소 지었다.
“좋다. 모두의 동의하에 후계자 시험은 1년 뒤로 미루도록 한다. 그사이에 시험을 어떻게 보강할지는 내 천천히 고민해 보고 알려주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아버지.”
“알겠습니다.”
그리 대답하는 형제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없어 보였지만 제라드는 몰랐다.
유독 한 사람만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키고 있다는 것을.
* * *
“지크!”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지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곤 저 멀리서 달려오는 한 사람을 보며 깨달았다.
‘아…… 그러고 보니 말 안 했구나. 어머니한테.’
알렉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해서 집으로 복귀한 지크였다.
그렇기에 어머니한테는 아직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밝히지 않았었다.
말할 틈도 없었고.
‘젠장. 등짝 스매시 당해도 할 말이 없다.’
달려오는 데이나를 보며 등짝을 내줄 각오를 다진 지크였지만 돌아온 건 따끔한 매질이 아니라 포근한 포옹이었다.
“살아 있었구나, 우리 아들!”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어머니.”
“괜찮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보다시피 멀쩡해요.”
팔을 휘적거리며 멀쩡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자 그제야 안심되는지 미소를 짓는 데이나였다.
* * *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난 괜찮네, 달란트.”
직속 호위 마법사에게 괜찮다며 손을 저었지만, 제라드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눈앞에서 자기 자식의 서클이 무너지는 꼴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것이 아무리 못난 아들이라 할지라도.
‘내가 자식을 잘못 키운 탓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제라드가 일순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달란트를 바라봤다.
“검은 달이라는 암살단에 대해선 조사해 봤느냐?”
“예. 뒷세계에서 암암리에 인정받고 있는 신흥 조직으로 6서클 마법사 이상으로 구성된 실력 좋은 암살단이라고 합니다. 암살단이 으레 그렇듯 여기저기 점조직을 취하고 있고요.”
“그럼 수장을 잡기가 쉽지 않겠군.”
“예. 암살단의 수장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도 없어서 뿌리 뽑으려면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최대한 놈들의 정보를 캐내고 위치를 추적한 뒤 모조리 말살하도록. 우리를 건든 대가는 치러야 하니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달란트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잠시 미뤄뒀던 집무에 시선을 옮기려던 찰나.
똑똑-
“아버지.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노크와 함께 막내아들이 찾아왔다.
“지크? 무슨 일이냐?”
“따로 궁금한 점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달라질 후계자 시험의 규칙이 궁금하기라도 한 것이냐?”
“아니요.”
지크에게 있어 후계자 따위는 관심 없었다.
훗날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가문에 욕심을 내겠는가?
“제 관심사는 마도 수련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요.”
“아. 그 문제가 있었구나. 으음.”
턱을 괴며 잠시 골몰하던 제라드가 착잡한 심정으로 말했다.
“원래라면 후계자 시험이 미뤄진 만큼 마도 수련도 미뤄지는 게 맞겠지. 하나…… 마탑의 초청은 시험과는 별개의 일인지라 나로서는 호의를 거절할 명분이 없구나.”
“그럼 예정대로 마도 수련을 가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단다. 혹시 가기 싫은 것이냐?”
“예.”
솔직한 대답에 제라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 8년이나 그곳에 있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으음, 그렇다면 내가 마탑주에게 다시 한번 잘 말해보마. 불미스러운 일을 핑계로 댄다면 초청을 물릴지도 모른다.”
안심시키듯 웃어 보인 제라드였지만 지크는 여전히 불안했다.
데칸 왕국의 마탑주는 제라드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기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아버지만 믿고 있을 순 없어. 나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지.’
눈빛을 빛낸 지크가 인사 후 집무실에서 나왔다.
* * *
‘하, 개 같네, 정말.’
피터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있는 대로 인상을 구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토록 고대하던 후계자 시험이 내년으로 미뤄졌다.
유력 후보인 그로서는 하등 좋을 게 없다.
당장 시험에 합격하고 차기 가주로 낙점받아 마땅한 상황이 한 차례 유보된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이게 다 알렉스 그 새끼가 쓸데없는 짓을 벌였기 때문이야.’
암살만 없었으면 막냇동생은 지금쯤 마탑에서 실험체로 썩어 있을 것이다.
자신은 가문에서 유유히 힘을 키우며 자리를 잡았을 테고.
그런데 알렉스의 쓸데없는 암살 시도로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피터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되는 일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그나마 다행이라면 알렉스라는 떨거지 한 명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뿐.
‘이제 지크 녀석만 마탑으로 보내버리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거야.’
그렇게 되면 후보는 러셀과 자신으로 좁혀진다.
둘 중 서클의 성취가 더 높은 자신이 가주가 되는 건 당연한 일.
‘러셀은 심성이 유약해서 가주 자리엔 어울리지 않지. 그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여러 조건을 따져봤을 때 러셀에게 밀릴 수가 없다.
솔직한 말로 경쟁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재능을 갖고 태어날 때부터 가주 자리는 이미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걱정하는 일은 없었다.
한 가지 의문이 신경 쓰이게 했을 뿐.
‘지크, 그 녀석은 어떻게 마수의 숲에서 돌아온 거지?’
처음 지크를 봤을 때, 피터는 도플갱어가 아닌가 의심했다.
죽은 사람의 흉내를 낸다는 도플갱어의 괴담이 퍼질 정도로 마수의 숲의 악명은 자자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어. 정말로 살아 돌아온 거였어.’
지크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을 지키던 호위 기사들과 시종들 또한 멀쩡한 몰골로 가문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암살자의 추격을 뿌리치고 마수의 숲에서 빠져나온 거지? 그럴 만한 실력자는 없을 텐데?’
단장인 레이커 반이 그나마 봐줄 만한 실력자였지만 그래봤자 오러 블레이드도 만들지 못하는 떨거지다.
최상위 몬스터로 득실댄다는 마수의 숲에서 버티기엔 실력이 미천하다.
‘하지만 살아왔잖아. 그것도 보란 듯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돌아와 버렸다.
먼저 도망친 게 무색하게도.
‘젠장. 내 꼴이 말이 아니구나. 싹 다 죽어버렸으면 자존심만큼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을…….’
버린 줄 알았던 쓰레기가 집으로 딸려온 기분이다.
짜증이 났지만,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차피 쓰레기는 다시 버리면 그만이야.’
지크는 마탑의 초청을 거절할 수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마도 수련을 위해 떠나야 하는 몸.
다시 마탑으로 버리러 가면 그만이다.
‘탑주님께 말해야겠어. 지크의 생환을 모르고 계실 테니.’
피터가 막 통신구를 들어 올리던 그때였다.
똑똑-
“첫째 형님, 안에 계십니까?”
‘이 목소리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목소리가 방문 앞에서 들려온다.
지크였다.
“무슨 일이냐?”
“잠시 안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럽니다.”
“들어오거라.”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만, 피터는 지크의 방문을 허락했다.
자신 또한 궁금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터 형님.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는데 먼저 와 계실 줄이야.”
“걱정해? 네가?”
자존심 상하는 발언에 발끈했지만, 피터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인비저빌리티를 쓰고 먼저 도망친 사람이 누군지 잘 알기에.
“안부 인사는 됐고, 말해 보거라. 마수의 숲에서 어떻게 살아나왔는지.”
“저희가 마수의 숲에 들어가는 걸 보셨군요?”
“봤지. 하필이면 거기로 도망칠 줄이야. 당시엔 운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잘못 짚었나 보군. 이렇게 버젓이 살아 돌아왔으니.”
“예, 정말로 운이 좋았지 뭡니까. 이런 대화도 녹음하고 말이죠.”
“대화?”
반문하는 그때, 지크가 품에서 나비 모양의 브로치를 꺼내 작동시켰다.
-마력의 반작용 연구에 대한 실험체가 필요하다고 지크를 데려오길 원하셨…….
-……죽일 거였으면 너에게 실험체를 데려오란 말도 하지 않았겠지. 실험체는?
-지크는 살아나오지 못할 겁니다.
-안타깝군. 마나 친화력이 없다 하여 마도 수련을 핑계로 직접 살펴보고 싶었거늘.
“……!”
피터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방금 들은 건 분명하게도 자신과 마탑주의 대화였으니까.
“제가 운 좋게도 이런 걸 녹음했는데 말입니다. 들어보니 형님의 목소리와 똑같단 말이죠. 정말로 형님이 맞습니까?”
“너, 너 그걸 어떻게…….”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녹음했는지가 중요하겠습니까?”
지크의 말대로다.
어떻게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이걸로 뭘 하려는지가 중요하지.
경악했던 피터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냉정한 매의 눈처럼 지크를 쏘아봤다.
“너, 설마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형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형님의 통신구를 도청한 결과가 이거니까요.”
“내 통신구를 도청해?”
“함께 마동차에 타지 않았습니까? 그때 작업을 해뒀죠.”
“하…….”
자신도 모르게 그런 괘씸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니.
순간적으로 욱할 뻔한 피터였지만 칼자루를 손에 쥔 사람은 다름 아닌 지크였다.
“왜 그러셨습니까? 형님. 저를 마탑에 팔아버릴 정도로 꼴 보기가 싫으셨습니까?”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구나.”
“아니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그럼 알렉스 형님과 똑같지 않습니까?”
“…….”
“형님은 지금 저한테 사과하셨어야 했습니다. 뭐, 받아줄 생각도 없지만.”
마치 모든 걸 손에 쥐었다는 듯 여유롭게 웃는 모습이 피터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으니까.
“하하, 완전히 당했구나.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어.”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십쇼. 먼저 뒤통수 맞은 사람은 저입니다.”
“코스… 뭐? 아니다, 됐다. 이렇게 된 이상 숨길 것도 없겠지.”
가면을 벗어던진 피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설마 후계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협박이라도 할 셈이냐?”
“후계 자리라뇨. 그런 것엔 관심 없습니다.”
“그럼 왜 내 방으로 찾아와서 그런 녹음을 틀어 보인 거지?”
“형님의 사과를 받고 싶어서요.”
“큽, 크흐흐흐흐.”
실소를 참지 못하던 피터가 이내 정색하며 노려봤다.
“나름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멍청한 놈이었구나. 내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먼저 가져갔으면 상황이 더 나았을 것을.”
“사과하지 않으면 찾아갈 겁니다.”
“누가 보내준다더냐?”
피터의 눈엔 전에는 볼 수 없던 살기가 담겨 있었다.
전신에선 5서클의 마력이 끓어올랐다.
“넌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저를 죽이셔서 어쩌시려고요. 아직 집에 아버지가 계십니다만?”
“방금 슬픈 소식을 접했는데 말이다. 알렉스가 사주한 암살자가 집안에 침입해 막냇동생을 죽였다는구나. 참으로 슬픈 일이지 않으냐?”
살 떨리는 위협이었지만 지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점은 염려하지 말아라. 네 죽음은 내가 애도해 주마.”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