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71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71화
‘미친.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빙결의 선구자 에탄은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걸었다.
아직도 좀 전에 받았던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이.
까드득!
얼음과자를 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와중, 자신이 넣은 연락의 답장이 날아왔다.
루미노스 포탈스피어로 접속하라는 소집 명령이었다.
얼음을 마저 씹은 뒤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곧 가상의 공간으로 접속하자 세 명의 인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스텔라, 발루두크, 클리포드까지.
서열 1, 2, 3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탄. 무슨 일인데 회의 요청을 한 거죠?]“급한 일이 아니면 회의 요청은 하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당연히 급한 일이니까 연락했지 영감탱이야.”
퉁명스레 대꾸했더니 발루두크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하지만 에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정말 급한 안건이 있어서 회의 요청을 한 거니까.
그 와중 무표정한 사내, 클리포드가 물었다.
“이번에 릴리스를 확보하기로 한 건은 어떻게 되었나?”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불러 모은 겁니다.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요.”
“심각한 문제?”
에탄은 심호흡하며 뜸을 들이더니 이내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신의 후예 가족 습격 건은 실패했습니다. 당연히 릴리스 린 님의 신병을 확보하지도 못했고요.”
“네깟 놈이 그럼 그렇지!”
발루두크는 예상한 일이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쉬운 임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보나 마나 얼음과자나 씹으면서 방심하다가 개처럼 깨갱거렸겠지?”
“아이 씨, 이 영감탱이가…….”
“그만.”
클리포드의 중재에 두 사람이 입을 닫았다.
“싸움은 나중에 하고, 보고가 먼저다. 어째서 실패했지? 너 정도면 9서클 마법사 둘을 상대하기엔 충분할 텐데?”
“둘이 아니라 셋이었어요. 어떤 여자가 한 명 더 있더라고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당시의 일을 곱씹던 에탄이 침을 한 번 삼킨 뒤에 말했다.
“선구자들이 살아 있었어요.”
“선구자?”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게냐?”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
억울한 마음에 에탄이 소리쳤다.
“정말이에요! 리타, 자카르, 테리온, 피레오, 일레나까지! 갑자기 우르르 나타나서 저를 막았다니까요? 그중엔 오망성인 말리고르 데스본도 있었고요!”
“애새끼가 뭘 잘못 처먹었나? 설마 환각제를 들이킨 게냐?”
“아, 진짜라고요! 들어보세요!”
에탄은 자신이 겪은 일들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묘사할 수 없는 디테일.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발루두크는 아예 미친놈 취급하고 있었고.
“얼음과자나 처먹더니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군. 끌끌.”
“아, 좀 믿어줘요! 왜 안 믿는 거야? 미치겠네, 진짜!”
“죽었거나 실종된 게 분명한 놈들이 어떻게 살아 돌아온단 말이냐?”
“애초에 죽었던 게 아니었겠죠!”
“그럼? 네 말은 쿠데타를 일으킬 작정으로 숨어 있다가 우릴 습격한 거라 이거냐?”
“정확해요. 놈들이 우릴 배신했다고요. 그 가능성밖에 없죠.”
“죽은 놈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큼이나 황당한 소리군. 놈들이 굳이 우릴 배신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이냐?”
“그건 저도 모르죠! 더 높은 자리가 탐났던가, 하위권에 있는 게 불만이었던가, 뭐 그런 이유 아니겠어요?”
“리치 드래곤들이 감시하고 있는 와중에 말이냐? 퍽이나 그러겠다.”
“아, 왜 내 말을 못 믿어?”
그때 발루두크와 에탄의 언쟁을 지켜보던 스텔라가 입을 열었다.
[에탄. 정말로 선구자들을 상대했나요?]“그렇다니까요?”
[내 앞에서 맹세할 수 있나요?]그 말에 에탄이 그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스텔라 님. 저 맹세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저놈이 약 처먹고 환각을 봤을지 어떻게 압니까?”
“이 노인네가 진짜…….”
[그렇다 해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임무에 실패했고, 신의 후예의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멀쩡히 돌아다닌다는 거죠.]스텔라는 상황을 냉정히 바라봤다.
[클리포드. 시간 되시나요?]“시간 말입니까?”
[그대에게 릴리스를 확보하는 일을 맡기고 싶어서요.]“죄송합니다. 밀린 일이 있는지라…….”
[발루두크는? 시간 안 되시죠?]“예…… 저도 처리할 일이 많아서…… 송구합니다.”
서열 2, 3위가 거절하자 나설 사람은 에탄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스텔라는 이빨 빠진 개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스텔라 님. 제게 만회할 기회를 주십쇼. 릴리스 님을 반드시 되찾겠습…….”
[선구자들이 다섯이나 있었다면서요? 게다가 어둠의 군주까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에탄 혼자서 상대할 수 없을 텐데요?]“그, 그렇지만 만반의 준비를 하면…….”
[됐어요. 그러다가 에탄까지 잃을까 봐 두렵네요. 신의 후예는 건들지 않도록 하죠.]스텔라는 신의 후예에 그다지 미련이 없었다.
방해꾼인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신경 쓰기엔 낭비 같기도 했다.
동원할 인력도 부족했고.
[당장 저희에게 중요한 건 천마 대전에 대한 준비를 갖추는 것이에요. 우릴 방해한 신의 후예가 고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괜히 벌집을 건드릴 필요 있겠어요? 녀석은 마족들에게 맡기고 우린 우리 일을 준비해나가죠. 천마 대전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 *
알비츠 왕국은 약소국인 데칸, 바이소와 달리 국력이 강한 나라다.
다섯 왕국 중 가장 강한 데다 서열 2위인 발루두크가 자리 잡은 왕국이었으니 말 다 한 셈.
‘이런 곳에 리치 드래곤들이 숨어 있단 말이지? 인간인 척 폴리모프한 채로.’
지크는 주변을 둘러보며 카르데이포르를 따라갔다.
수상할 정도로 둘러보는데도 그 누구도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그야 그림자의 후드를 쓴 채로 따라갔으니까.
‘지금이 밤이어서 다행이야. 뭐, 낮이었다면 인비저빌리티를 썼겠지만, 디텍팅 마법에 걸릴 가능성이 있으니…….’
지크는 숨죽이며 안내역을 자처한 리치 드래곤을 뒤따랐다.
카르볼도 마찬가지로 긴장한 채로 걸었다.
“다 왔소. 여기가 회의 장소요.”
카르데이포르는 카르볼을 외곽에 있는 저택으로 안내했다.
저택에 안내인으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카르데이포르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은 평범했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시오.”
그는 접견실이 아닌 지하실로 안내했다.
얼마나 뚫어놨는지 어두운 계단을 하염없이 내려가니 불빛이 보인다.
앞에 횃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조심히 따라오시오.”
두 사람이 어둡고 습한 통로를 횃불에 의지하며 걸었다.
숨어 있는 지크를 포함하면 세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얼마 걷지 않았을 즈음, 좁았던 통로가 넓어지며 거대한 공간이 나왔다.
공간 중앙에는 백여 명을 수용할 법한 원탁의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었다.
테이블 앞엔 저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저기 왔군.”
“왔는가, 카르데이포르.”
“자네 꼴찌야.”
“미안, 좀 늦었네.”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하던 카르데이포르는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르록시나와 함께 왔군.”
“누가 연인 아니랄까 봐.”
“후후. 보기 좋아.”
사람들은 카르볼을 카르록시나로 착각하고 있었다.
긴장했는지 아무 말도 안 하던 카르볼이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카르록시나는 원래 무뚝뚝한 성격이었으니까.’
투명화 상태로 상황을 관망하던 지크는 앉은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모두 인간으로 위장한 리치 드래곤들이다. 저마다 마기가 느껴져.’
리치 드래곤끼리 모여서 그런지 아주 대놓고 마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성별, 나이, 종류는 가지각색이었다.
‘저놈은 남성체 블루 드래곤. 저놈은 여성체 블랙 드래곤. 저놈은…….’
속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 놈들의 정체를 간파하기도 쉬웠다.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카르데이포르를 포함해 모두 53명인가?’
백여 명을 수용하는 테이블이라 드문드문 앉아 있었지만, 녀석이 말한 대로의 인원이 모였다.
‘이거 완전 노다지인걸?’
놈들을 죽여서 마기의 근원을 제거하면 얼마나 많은 마기를 얻을 수 있을까?
아마 이 자리에서 마기 흡수를 9성으로 만들고 7차 스킬을 각성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지크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돌발 퀘스트 : 회의 정보 얻기】
└리치 드래곤들의 회의가 곧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들의 회의 내용을 들으며 드래곤에 대한 정보를 얻으세요.
└드래곤에 대한 정보 얻기
└6차 스킬 숙련도 20,000 증가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정보를 얻으라는 퀘스트가 떴다.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인지라 지크로선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때 한 명의 드래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려한 외모의 남성체 드래곤이었다.
“인원이 다 모인 것 같군. 그럼 슬슬 회의를 진행하겠소.”
사람들이 주목하자 진행자가 흠흠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안녕하시오. 오늘 회의의 진행을 맡은 골드 리치 드래곤 카르빌뤼드라 하오. 먼저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오. 원래 오늘은 회의 날이 아니지만 중요한 안건이 있어 긴급회의를 열었소.”
“중요한 안건?”
“그게 뭡니까?”
“설마 계획에 차질이라도 생긴 겁니까?”
리치 드래곤들이 저마다 말을 보태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카르빌뤼드가 손을 들어 상황을 진정시켰다.
“그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설명해 줄 거요. 카르데이포르?”
드르륵.
지명 당한 카르데이포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블랙 리치 드래곤 카르데이포르입니다. 제가 회의를 연 이유는 한 인간 때문입니다.”
“인간?”
“지크 맥러플린이라는, 아주 개 같은 인간이죠.”
마지막에 감정이 담겼지만, 좌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고작 벌레 같은 인간 하나 때문에 회의를 열었다고?”
“이게 뭔……?”
“하! 이거 시간만 낭비했구만.”
“자자, 진정하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봅시다.”
중재는 언제나 진행자의 몫이었다.
“크흠, 먼저 지크 맥러플린은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신의 후예로 추정되는 인간으로, 우리 계획을 대놓고 방해하는 중이죠.”
“신의 후예?”
“그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린가?”
“신의 후예는 인간들이 지어낸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던가?”
다시금 회의장이 시끌벅적해졌다.
카르데이포르는 무시하고 좀 더 목소리를 높였다.
“녀석은 사특하면서도 강력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원하는 상대의 마력과 마기를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능력으로, 가히 우리를 위협할 만한 신의 후예입니다.”
“뭘 봉쇄해?”
“마력과 마기를?”
“어디서 허무맹랑한 소리를.”
“도무지 믿기지 않는군.”
헛소리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카르데이포르는 순간 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입니다! 제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신의 후예는 사특한 술법을 사용하며, 우리 리치 드래곤들을 단숨에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건, 저와 여기 제 연인인 카르록시나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직접 놈에게 당했었으니까요.”
갑작스러운 언급에 카르볼이 당황했다.
사람들의 눈길이 그녀에게 모이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와중, 진행자인 카르빌뤼드가 주장에 힘을 보탰다.
“카르데이포르의 말은 사실입니다. 저도 처음엔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했으나, 마계 군단장이신 세이레 님께서 증언해 주셨습니다. 신의 후예의 존재는 가히 위협적이라고.”
“세이레 님께서……?”
“마기를 차단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세이레 님도……?”
진행자가 침울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세이레 님의 화신체도 놈에게 당하고 마계로 귀환하셨습니다. 현재 마계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계십니다. 저희는 저희대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고요.”
세이레까지 언급하니 이제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눈에서 의심의 빛이 사라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떡하면 좋단 말이오?”
“놈이 천마 대전을 방해하게 둘 순 없지 않소?”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선구자들도 골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불렀습니다. 나오시게.”
진행자가 소리치자, 통로 구석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회의장에 들어선 남자가 무심한 표정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현재 12인의 선구자 서열 3위이자 철인이라는 이명을 지닌 클리포드 스튜어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다는 말과 달리 표정은 무뚝뚝하기 그지없었지만, 지크는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제삼자의 기척은 읽고 있었지만 그게 선구자일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이 녀석 정체가…… 인간이 아닌 리치 드래곤이라고?’
놈의 속마음을 읽고 정체를 간파해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