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76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76화
클리포드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했다.
‘리치 드래곤인 내가 모양 빠지게 도망치는 꼴이라니…….’
좀처럼 감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 그였지만, 속은 말이 아니었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을 정도로 방금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았다.
‘신의 후예가 이렇게나 까다로운 존재였나?’
까다롭다 할 뿐이랴?
리치 드래곤들을 망설임 없이 죽이는 잔혹한 손속은 클리포드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마력과 마기를 차단하는 게 이렇게 무서운 능력일 줄이야.’
정말로 아무것도 못 했다.
자신의 장기인 염동력을 발휘하기는커녕, 본체로 폴리모프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인간의 생태에 녹아들기 위해 갈고닦았던 검술마저 신의 후예 앞에선 무용지물로 보였다.
‘단순히 능력만 좋은 게 아니야. 검술마저 뛰어나다.’
누구에게 배웠는진 몰라도 최소 오러 마스터 상급 수준의 검술 실력.
딱 보면 안다.
녀석과 붙어봤자 힘과 기술에서 밀릴 거라는 것을.
‘하, 내 생전 이토록 무력해 본 적이 없었거늘.’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놈에게 꼬리를 밟힌 이유도.
자신을 굳이 살려둔 이유도.
‘우리는 놈을 죽이기 위한 계획을 짰다. 그걸 투명화 상태로 듣고 있었다면 그런 살육을 벌여도 납득은 가지. 한데 나는 왜 살려준 거란 말인가? 분명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점이 의아했지만, 지금은 이래저래 생각할 겨를이 없다.
보고가 우선이니까.
리치 드래곤 측에도, 선구자 측에도.
* * *
리치 드래곤 카르제필로스는 코웃음을 쳤다.
방금 농담 같지도 않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라 했느냐 카르클레아노스. 아니, 인간 이름은 클리포드라고 했던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 말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됩니다.”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회의장에 있던 동족들이 모조리 죽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농담이 아닙니다. 신의 후예는 우리의 주적입니다. 필시 천마 대전까지도 방해하고 나설 겁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는구나, 카르클. 인간 측에 첩자로 잠입하더니 머리도 인간화가 된 건가?”
비꼬는 카르제필로스의 모습에 클리포드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귓등으로도 들을 생각을 안 한다.
리치 드래곤은 무적이라는 선입견이 정신을 지배하는 탓이다.
“그놈은 리치 드래곤도 죽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더 이상 활개 치게 둬선 안 됩니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리치 드래곤 수십을 도륙 내버린 놈을 나더러 어찌 막으란 소리냐?”
“그건 제가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우선은 수를 더 불리십시오. 그쪽 웰터가든에 노예들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 있는 노예들을 모조리 리치화 시켜라?”
“예. 지금은 잃어버린 리치 드래곤의 수를 메꿔야 할 때입니다.”
“카르클. 아니, 클리포드라고 했나? 네가 이쪽 상황을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놈들의 주거지를 발견했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아. 노예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야. 엄밀히 말하면 노예가 아니지. 우리에게 붙잡히지 않았으니.”
“뭐가 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빨리 굴복시키십시오. 제가 선구자 측에도 이야기해서 마족들의 지원을 얻어보겠습니다.”
시종일관 진지한 투로 말하는 부하의 목소리에, 카르제필로스도 조금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네가 한 얘기가 전부 진실이란 말이냐?”
“제가 뭣 하러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믿기지 않는군. 불사의 존재를 죽일 수 있는 존재라니…….”
심각한 얼굴로 고심하던 카르제필로스가 입을 뗐다.
“알았다. 네 말대로 이쪽 드래곤들을 압박해 보지.”
* * *
‘음?’
루미노스 포탈스피어에 회의 요청 신호가 들어온 것을 보며, 발루두크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클리포드. 이 자가 왜……?’
회의 요청은 급한 일이 있을 때만 걸도록 요구되고 있다.
말하자면 심각한 상황이라는 뜻.
그런 상황이 서열 3위인 클리포드에게서 벌어졌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일단 무슨 일인지 들어는 봐야겠지.’
가상의 공간으로 들어가자 스텔라, 클리포드, 에탄이 모여 있었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영감? 영감 때문에 스텔라 님이 기다리셔야 되겠어?”
들어오자마자 시비를 거는 에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발루두크는 참았다.
사안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무슨 일로 소집한 겐가, 클리포드.”
“하, 이제 대놓고 무시하네?”
[그만 하세요, 에탄.]“넵.”
입 다문 에탄의 옆에서 클리포드가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일 처리를 하던 중, 카르제필로스라는 리치 드래곤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보고?”
“50에 달하는 리치 드래곤들이 모조리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보고였다.”
발루두크의 눈동자가 커졌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들었는지 놀라지 않았지만.
“리치 드래곤은 불사의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신의 후예가 나타났다더군. 어찌 된 일인지 자신들이 회의하던 장소에 나타나 살육을 일삼았다는군.”
자신이 겪은 일을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클리포드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
포커페이스는 그의 주특기였으니.
“신의 후예가…… 혼자서 50의 드래곤들을 도살했다고?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나는 들은 대로 전달할 뿐이다. 참살의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리치 드래곤 하나가 나에게 전해달라고 했을 뿐.”
“허……!”
50의 드래곤이 고작 인간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다니.
‘숫제 괴물이 아니던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발루두크로선 달리 도리가 없었다.
리치 드래곤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 믿는 수밖에.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제가 세이레 님에게 연락을 드려볼게요. 우리는 우리 일을 하자고요.]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신의 후예와 부딪쳐본 선구자들이다.
맞상대해선 답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리치 드래곤도 어찌할 수 없는 적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고.
[이제는 저희의 후견인인 마족들을 믿는 수밖에요.]* * *
지크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많은 인원을 어떻게 데리고 다녀?’
자신이 구한 노예 드래곤들이 부디 따라다니게 해달라고 간청했기 때문이었다.
“지크 님. 저희 동족들을 구하러 가실 거라면 저희도 따라가게 해주십시오.”
“그렇습니다. 동대륙의 지리라면 저희가 잘 압니다. 필시 도움이 되실 겁니다.”
노예 드래곤들을 리치 드래곤으로부터 해방해 주어야, 용력 스탯을 올릴 수 있다.
스탯이 20단위로 오를 때마다 새로운 용언 스킬이 개방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노예 드래곤들을 구하는 거야.’
그런 생각으로 이들에게 다른 노예 드래곤들의 행방을 물어봤다.
그렇게 알아낸 게 동대륙의 웰터가든.
‘그 숲 어딘가에 아직 노예가 되지 않은, 저항하는 드래곤들이 있다고 했지.’
리치 드래곤에게 대적하는 일종의 저항군이었다.
아직 노예가 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좀 걸렸지만.
‘저항군을 구해도 용력이 쌓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드래곤들을 구하러 동대륙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지금 이 난리가 난 것이다.
자신들도 데려가 달라고.
‘스물이나 되는 인원을 어떻게 전부 데려가? 너무 눈에 띄잖아.’
아무리 인간으로 폴리모프했다 해도 우르르 몰려다니면 눈에 띄기 마련.
잠입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있을 텐데 다 같이 다녀서 좋을 게 어디 있겠는가?
‘나 혼자만 가도 충분할 텐데.’
지크는 그 점을 어필하며 드래곤들을 설득했다.
다행히 드래곤들은 생각이 꽉 막힌 존재가 아니었다.
“으음, 확실히 잠입할 때 인원이 많으면 불리하겠네요.”
“아아, 그 점을 간과하고 있었네요.”
“역시 지크 님. 신의 후예답게 상황을 보는 눈이 남다르십니다.”
“그러면 소수 정예로 인원을 추리는 걸로 합시다. 몇 명이 좋을까요?”
“몇 명까지도 필요 없어요. 길 안내해 줄 가이드 한 명이면 돼요. 지킬 사람이 많으면 저도 힘드니까.”
지크의 말에 드래곤들은 고개를 주억였다.
혼자서 리치 드래곤들을 상대할 수 있겠냐는 헛소리를 하는 드래곤은 없었다.
이미 눈앞에서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줬으니까.
“그럼 웰터가든의 지리에 가장 해박한 드래곤이 가야겠군.”
“그렇다면…….”
“웰터가든에서 살았던 드래곤이 적합하겠군요.”
용족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들이 바라본 곳엔 카르디플리안이 있었다.
처음에 리치 드래곤에게 저항하다가 무릎이 박살 났던 그 드래곤이었다.
“제가 길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지크 님.”
“카르디플리안이라고 했죠? 웰터가든에서 살았었나요?”
“예. 3천 년 전, 그쪽에서 살다가 리치 드래곤과의 혈전을 위해 여기 남대륙으로 넘어오게 됐습니다. 몇 년 전에는 동대륙의 저항군과 마주쳤던 전적도 있고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 진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이 중에서 가장 지리에 밝으신 분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결정됐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카르디라고 불러도 되죠?”
지크가 웃으며 손을 내밀자, 카르디 역시 미소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그럼요, 지크 님.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나머지 드래곤들을 구하기 위한 동대륙행이 결정됐다.
* * *
한 동굴 속에서 나체의 남자가 나타났다.
고위 마족 서열 69위 데카라비아였다.
[흐으음. 인간계의 공기는 언제 맡아도 신선하군.]“오셨습니까, 데카라비아 님.”
검은 로브를 입은 노인이 마족을 향해 부복했다.
그를 인간계로 부르는 일은 발루두크가 맡았다.
“저는 선구자 서열 2위인 발루두크 라흐베즈라 합니다. 세이레 군단장님에게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선뜻 저희를 도와주신다고 하여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옆에 보시면 신선한 제물도 준비해 뒀으니 미천한 몸의 눈치를 볼 것 없이 마음껏 즐기시길.”
[으음, 이 여성체 인간들 말인가?]“으으읍!”
“으읍!”
재갈이 물려 있어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제단 위에 올려진 여성들은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붉은 피부의 마족이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은 채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데카라비아는 별 관심 없다는 투였다.
[제물이 신선해 보이긴 한다만 어쨌든 인간 아니던가? 난 이런 벌레들에겐 관심 없다.]“우우읍! 우읍!”
“우으으으으으읍!!!”
[시끄럽게 굴지 마라.]데카라비아가 손을 휘저었다.
퍼퍼퍼퍽!
별안간 여성들의 머리가 터지며 피가 튀었다.
그러나 피는 허공에 붙잡힌 채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데카라비아의 특기인 마혈술이었다.
똑-
그가 공처럼 응집한 핏물에 손을 찍어 만져봤다.
[확실히 피는 신선하군. 벌레의 피 따윈 맛보고 싶진 않지만.]발루두크는 두려움에 제대로 시선도 맞추지 못했다.
‘생물의 피를 자유자재로 다루다니. 만약 저 능력이 나한테 향했었다면…….’
대응할 새도 없이 머리가 터져 죽었으리라.
[그래. 신의 후예를 잡는데 걸리적거린다고 하였느냐?]“그, 그렇습니다.”
[내가 도와주겠노라.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내 진짜 특기는 이런 마혈술이 아니거든.]“예? 그럼……?”
[듣자 하니 천마 대전에 필요한 중력장을 만들 기술자를 찾고 있다고 하던데…….]데카라비아가 히죽 이를 드러냈다.
[내가 만들어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