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77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77화
“예?”
발루두크는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갑자기 뭘 만들어준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뭘 만들어주신다는…….”
[중력장 말이다. 못 알아들었느냐?]중력장은 천마 대전 때 천사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무기.
에스카가 전담으로 만들며 관리 중이었지만…….
‘놈이 배신하고 중력장을 가져가는 바람에 다 물거품이 돼버렸지.’
선구자로선 막막한 상황.
그런 와중에 뭘 만들어줘?
“저, 정말로 중력장을 만드실 수 있으십니까?”
[그렇다니까. 내 특기가 그런 거거든. 중력장뿐만 아니라 뭐든 만들 수 있지. 이를테면 신의 후예를 상대할 장치라든가.]“예?”
이번엔 아까보다 더 놀랐다.
현재 가장 걸림돌인 신의 후예가 거론됐으니.
[내 알기로 신의 후예는 마력과 마기를 차단할 수 있다 들었다. 그렇다면 그 능력들을 무력화시키는 장치를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그,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않으면 내가 뭣 하러 말을 꺼낼까?]중력장을 새로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인데, 신의 후예를 상대할 무기까지?
발루두크의 입이 귀에 걸렸다.
넙죽 엎드리는 건 덤이었다.
“말씀대로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흐흐, 그리 감사해할 것 없다. 나도 재밌어서 하는 일이니.]데카라비아에게 이번 일은 일종의 유희였다.
자신이 만든 무기가 벌레 잡는 일에 쓰인다면 제작자로서 뿌듯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잡는데 골치 아픈 벌레라면 더더욱.
[그럼, 중력장과 신의 후예 대적용 무기, 이렇게 두 가지를 만들어주지.]“감사합니다, 데카라비아 님!”
데카라비아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 * *
“그럼,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예, 꼭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무사하십시오, 지크 님.”
많은 사람이 지크 일행을 배웅했다.
엄밀히 따지면 사람이 아니라 드래곤이었지만.
“카르볼, 너도 따라갈 거야?”
“당연한 걸 묻고 그러나? 너와 난 일심동체이니라.”
“그 얼굴로 말하니 좀 그렇네.”
여성의 외모를 가진 카르볼이 그리 말하니 느낌이 좀 이상했다.
카르디플리안은 앞장서며 가이드를 자처하고 있었지만.
“동대륙까지 가는 좌표는 알지만 단번에 텔레포트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륙을 잇는 바다에는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는 역장이 간섭하고 있어서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최대한 바다와 근접한 장소까지는 이동해야 합니다.”
“비행기처럼 경유해야 한다는 거네.”
“예? 비행기가 뭐죠?”
“그런 게 있어요.”
바다와 근접한 장소라.
곰곰이 생각하던 중, 별안간 퀘스트가 떠올랐다.
돌발 퀘스트였다.
‘뭐야, 이거?’
퀘스트 내용을 읽어본 지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왜 그러느냐, 지크?”
“아니야. 아무것도. 그보다 적합한 장소가 떠올랐는데요.”
“적합한 장소요?”
“바이소 왕국은 어때요?”
카르디가 고개를 주억이며 긍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데칸 옆에 있는 왕국 말이군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바이소는 바다와 가까우니까요.”
“그럼 가는 김에 가족들에게 들리자고. 일 끝나면 알폰소 공작 가문에 찾아오라고도 했으니.”
지크와 카르볼, 카르디는 그렇게 텔레포트의 방향을 잡았다.
바이소 왕국에 들렸다가 동대륙으로 향하기로.
* * *
“어서 오시게, 제라드 공! 아니, 이젠 대공이라 불러야 하나? 하하핫!”
“환대해 줘서 고맙소, 알폰소 공작.”
눈앞에 콧수염이 늘어선 남자는 디그레이드 알폰소.
바이소 왕국에서 알아주는 마법 가문이자 제라드의 지인이다.
“오랜만에 보니 정말 반갑소. 알폰소 공작.”
“그러게 말일세. 지난번 학술회에서 만나고 거의 5년 만인가?”
“그렇게 오래됐소?”
“…….”
막역한 사이라고 볼 순 없었지만 말이다.
“어, 어쨌든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셨네. 제라드 공도, 두 부인께서도.”
“감사합니다, 알폰소 공작님.”
“호호, 환대에 감사드려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디그레이드가 옆에 있는 부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아! 여기 계신 분이 데칸의 3대 가문 중 하나라는?”
“처음 뵙겠습니다. 호세 데포르테라 합니다. 이쪽은 제 딸인 실리스 공녀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말씀은 들었소이다. 이렇게 저희 가문에 오셔서 반가울 따름이오. 자, 시장할 텐데 안으로 드시지요.”
맥러플린 가문과 데포르테 가문은 그렇게 환대받으며 알폰소 가문에 들어섰다.
그 사이, 스승인 달프레드가 제라드에게 속삭였다.
“둘이 사이가 어색해 보이는구나? 어릴 적에 마탑 동기 아니었더냐?”
“크흠…… 그렇긴 하지만 그때는 친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별다른 교류도 없이 5년 만에 만난 거고요.”
“흠, 그런데도 가문에 머물게 해달라는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다니. 좋은 동기인 것 같구나.”
“예, 저로선 고마울 따름이죠.”
알폰소 가문의 공작가는 넓었다.
가문 내에 분수와 정원이 있고 걸을 때마다 수십 개의 방을 지나쳤다.
맥러플린 일가와 데포르테 일가를 수용하고도 부족하지 않을 너비.
그만큼 시종도 많아서 마주친 사람이 몇 명인지 세어볼 엄두도 안 났다.
걸음을 빨리해 디그레이드 곁으로 간 제라드는 어색함도 풀 겸 말을 건넸다.
“가문이 참 멋있소. 넓고.”
“하하, 원래 공작가들은 다 이 정도 하지 않소이까? 맥러플린 가문도 그럴 테고.”
“그래도 여기가 더 큰 것 같소.”
“그나저나 언제 이야기해 주실 겁니까? 피신하는 이유 말입니다.”
“으음, 신변상 문제가 생겨서 그렇소. 자세한 사정은 말 못 하는 걸 이해해 주시오.”
선구자에게 쫓기고 있다고 곧이곧대로 말해봐야 믿지 않을뿐더러, 쫓기는 이유까지도 설명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크가 드래고니안이라는 이야기도 꺼내야 할 테고.
이래저래 문제였기에 말을 아끼는 제라드였고, 다행히도 디그레이드는 그 점을 이해해 주었다.
“하핫, 괜찮소. 사정이 그렇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오. 그저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있다가 가시구려.”
“그렇게 말해주시니 정말 고맙소, 알폰소 공작.”
제라드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세상 누구도 마탑 동기라는 이유로 잠을 재워주지 않는다.
그것이 5년 만에 연락한 어색한 사이라면 더더욱.
달그락달그락-
식사가 시작되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디그레이드 공작은 말재주가 많은 사람이었고 그것이 분위기를 매끄럽게 만들었다.
세 가문의 어색함이 사라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식사가 끝난 뒤.
디그레이드 알폰소는 손님들에게 각자의 방을 알려준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탁.
문을 닫은 디그레이드의 표정은 들어올 때와 180도 달라져 있었다.
‘빌어먹을 제라드 놈! 감히 나를 그딴 눈빛으로 봐?’
조금 전 식사 자리에서, 디그레이드는 제라드의 눈빛을 보았다.
사람을 깔보듯 무시하는 눈빛.
어디까지나 열등감이 빚어낸 착각이었지만 디그레이드는 철석같이 무시당했다고 믿고 있었다.
‘9서클 마법사도 스승으로 두고 아주 잘 나간다 이거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건방지구나, 제라드!’
예전부터 제라드는 인기가 많았다.
마탑에서 독보적인 재능을 보인 엘리트.
주변 사람에게 항상 인기가 있었던 그는 어떻게 보면 디그레이드가 가장 바랐던 이상향이었다.
그래서 더 친해지고 싶었고.
‘하지만 놈은 나를 무시했어.’
당시 관계를 트기 위해 말을 걸었지만, 제라드는 무심한 눈으로 흘기고는 대꾸 한번 없이 가버렸다.
40년 전의 일을 아직도 잊지 않고 생생히 기억하던 디그레이드는 그 이후로 악착같이 노력했다.
절대로 무시당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그 일을 계기로 놈을 뛰어넘고 싶었다. 그러나 재능 앞에서 노력은 무의미했지.’
제라드는 수년 전부터 찍은 8서클을, 디그레이드는 작년이 되어서야 겨우 달성했다.
열등생은 뭔 짓을 해도 열등생이라는 걸, 이제 와서야 깨달았다.
‘그래도 나 같은 평범한 인간도 너와 같은 8서클이 됐다. 어떻게 보면 너에게 감사하기도 해. 그 당시 날 무시하던 눈빛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내가 있을 순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제라드는 똑같았다.
여전히 자신을 깔보는 듯한 눈빛.
그것이 디그레이드를 화나게 했다.
무엇보다 화나는 건 5년 만에 연락한 점이다.
‘갑자기 연락하더니 뭐? 임시 거처를 찾고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냐고? 하! 기가 막히는 새끼! 너 눈엔 내가 필요할 때 찾으면 도와주는 만만한 놈으로 보였냐?’
분노로 인해 볼살이 푸르르 떨렸지만, 그것도 잠시.
심신을 안정시킨 뒤 깊은 내면으로 분노를 밀어 넣었다.
괜히 쓸데없는 분노를 드러냈다간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까.
‘후우, 그래. 병풍처럼 무시하던 나한테 도움을 청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는 거. 알고 있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고. 그분의 연락을 받았으니.’
그분께서 지시하셨다.
맥러플린 일가에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연락을 주라고.
마침 연락이 와서 그분께 전달했더니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가문에 잡아둔 뒤 암살자를 고용해 모두 죽이라는 제안.
그리고 릴리스 린이라는 포로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으라는 제안.
보통 사람이라면 거절했을 제안이지만, 디그레이드는 수락했다.
말이 제안이지 실상은 명령이었으니까.
자신이 제라드를 싫어하는 걸 알기에 그런 명령을 내렸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상관없어. 공식적으론 우리 가문이 암살자에게 습격받는 거다.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야.’
잠시 후면 자신이 고용한 50명의 암살자가 공작가에 소리소문없이 들이닥칠 것이다.
모두 6서클로 구성된 최고의 암살자들이다.
자신처럼 미리 대비하고 있지 않는다면, 기습당하기에 딱 좋으리라.
‘그분의 명령이라면, 맥러플린 일가 따윈 얼마든지 팔아넘길 수 있다.’
디그레이드의 자격지심이 동공에서 차갑게 일렁거렸다.
* * *
‘지크 공자님은 언제 오시지?’
실리스 데포르테가 굳이 맥러플린 일가와 함께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지크에게 아직 전할 말이 남았기 때문.
‘진지하게 청혼한다면…… 받아주실까?’
약혼녀는 구할 생각이 없다던 지크였지만, 그럼에도 실리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된 청혼도 하지 않았던가?
‘나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신다고 했으니 분명 먹힐 거야.’
두드리면 열리리라.
그런 믿음으로 실리스는 지크에게 정식으로 청혼할 생각이었다.
숱한 남성들로부터 구애받던 그녀가 직접 청혼한다?
구애했던 남성들이 들으면 기가 막히고 분노를 사기 딱 좋을 노릇.
하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건 자신의 감정.
그리고 약혼자로 점찍은 지크의 감정이다.
‘뭐가 됐든 기다려보자. 기다리면 오신다고 하셨으니.’
드래고니안을 찾으러 떠난다던 지크가 언제 올지는 모른다.
‘어쩌면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될 수도…….’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리워지는지.
실리스는 생각만으로도 콩닥거리는 마음에 웃음을 띠며 침대에 누웠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 얼른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지크에 관한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슨 소리가 들렸던 탓이다.
‘이게 무슨 소리지?’
침대에서 일어난 실리스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움직였다.
문밖에 귀를 갖다대는 순간.
“꺄아악!”
비명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한 실리스는 지팡이부터 챙긴 뒤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 윽!”
복도에서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둘러보니 눈을 의심케 하는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이, 이게 다…….”
복도에는 수많은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복장을 보니 시종들이다.
도대체 몇 명이 죽은 건지 모르겠다.
그때 복도 끝에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깄다!”
“……!!!”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전에.
화르르륵!
화염 덩어리가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콰앙-!
“꺄악!”
다행히 실드를 전개해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지만, 뒤로 튕겨 나가버렸다.
무시 못 할 마력이다.
‘이 정도 수준은…… 6서클?’
그녀도 어엿한 마법사지만, 6서클 마법사는 상대하기 버겁다.
자신은 기껏해야 5서클이었으니.
후웅!
바람 마법으로 거리를 좁힌 암살자가 실리스의 팔을 붙잡았다.
마법사의 주력 무기인 지팡이부터 못 쓰게 막는 것이다.
놀란 실리스가 팔을 빼려 했지만, 뒤로 또 다른 암살자가 나타나 양팔을 결박했다.
“호오, 이 정도로 예쁘장한 여자가 있다고는 못 들었는데?”
“외모를 보니 실리스 데포르테 같군.”
암살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실리스를 둘러쌌다.
그 수만 다섯.
실리스의 눈에 두려움이 차올랐다.
“어떡할까요?”
수장으로 보이던 자가 실리스의 용모를 물끄러미 보더니 히죽 웃었다.
“잠깐 즐기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저희에게도 기회를 주시는…….”
“줄 테니 걱정 마라. 대신 빨리 처리해야 한다.”
“흐흐, 감사합니다.”
“저쪽 방이 좋겠군.”
암살자들이 실리스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실리스가 발버둥 쳤지만 다섯 명이나 되는 사내의 힘을 평범한 여성의 힘으로 막을 방법은 없었다.
“저항하지 마라. 바로 죽여 버리는 수가 있어.”
협박에 얼어붙은 실리스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녀석들이 시전한 마비 마법에 걸린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
“원래는 저항하는 맛이 있는 건데…….”
“투덜대지 마라. 시간 없으니 빨리 처리하자고.”
마법사들이 주섬주섬 바지춤을 내렸다.
절망적인 상황에 실리스의 눈동자가 커지는 그때였다.
“이 새끼들이 미쳤네?”
때마침 나타난 지크가 실리스를 겁탈하려던 암살자들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