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8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8화
‘저 새끼가?’
지크의 말에 피터의 눈썹이 꿈틀댔다.
자신의 위협에도 주눅은커녕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다니.
‘정신이 나간 건가? 서클도 없는 주제에 무슨 깡이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래서인지 피터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지크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호위도 없이 내 앞에 당당히 나타났을 리가 없지.’
어쩌면 방문 뒤로 아버지가 대기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알렉스 때처럼 말이다.
그것이 지크가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이유였고.
‘그런 거라면 섣불리 공격해선 안 된다. 도발에 말려들면 안 돼.’
일단은 슬립 마법으로 재운 뒤 녹음기만 빼앗아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피터가 마력을 모으던 순간이었다.
‘응?’
피터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마나가… 모이질 않잖아?’
마법을 시전하려 해봤지만, 손끝으로 모여야 할 마나가 어느 순간 흩어지고 있었다.
미증유의 힘이 마법을 시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기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피터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혹시 마나가 안 모이시나요?”
“……설마 네놈 짓이냐?”
“예. 형님한테 죽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요.”
피터는 재차 주변에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 고리에 있는 다섯 개의 서클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
미리 짜놓은 술식에 정해진 양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보통이라면 이 단계에서 발현이 일어야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모였던 마력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무슨 짓을 해도 안 된다. 전혀 발현이 안 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놀란 것도 잠시.
“뭘 믿고 그리 자신만만하나 했더니 남몰래 사특한 술수를 배우고 있었구나.”
피터는 지크가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모았던 마력을 흩트릴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실수했구나.”
피터가 품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예비용으로 지니고 있던 마법 스크롤이었다.
“이게 있는 줄은 몰랐을 테니.”
쫘아악-
스크롤을 찢자 그 안에 담겨 있던 술식이 작동되었다.
이미 마력이 깃들어 있어 찢기만 하면 발동되는 상황.
마력 흡수로 막을 타이밍은 없으리라.
피터도 그런 예측 하에 값비싼 스크롤을 쓰는 거였고.
쐐애애애액!
스크롤에 저장되어 있던 윈드 커터를 보며 피터가 입꼬리를 올렸다.
곧 있으면 바람의 칼날이 녀석의 몸을 찢어발길 것이다.
하지만 피터는 곧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시전된 마법 ‘윈드 커터’를 흡수합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30 증가하였습니다.] [2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30/100] [마법 ‘윈드 커터’를 차원의 틈새에 저장하였습니다.] [저장한 마법 1/2] [제한 시간 내에 마법을 방출할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 : 00:09:59]당장 사지를 베어도 모자를 기세로 날아가던 윈드 커터가 지크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몸에 닿기 직전 무형의 막에 의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어, 어떻게?”
“형님. 실망입니다. 정말로 저를 죽이려 하실 줄이야.”
지크는 약자를 내려다보듯 한심한 눈빛을 보이고는 그대로 마법을 돌려줬다.
“방출.”
쐐애애애액-!
“이 무슨!”
지크의 손아귀에서 발현된 윈드 커터가 피터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거걱-!
“크흐윽!”
바람의 칼날이 피터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조준만 잘했다면 사지가 절단될 뻔했다.
“일부러 빗맞힌 거니까 안심하세요. 죽일 거였으면 형님은 저한테 진즉에 죽었을 겁니다.”
‘미, 미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상대의 도발에도 피터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서클도 없는 반푼이가 갑자기 마법을 썼다.
그것도 자신이 구사한 것과 똑같은 마법을.
‘서클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지금 상황에서 고통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문제는 마법 스크롤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
‘크윽, 마법만 쓸 수 있었으면…….’
여전히 마나를 끌어모았지만, 발현 단계까지 가질 않는다.
출중한 재능의 5서클 마법사가 평범한 일반인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피터 형님. 저는 대화로 좋게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괜히 덤볐다가 상처만 나지 않았습니까?”
“네놈, 대체 뭘 어떻게 한 거냐? 서클도 없는 놈이 마법은 어떻게…….”
“지금 상황에서 그게 중요합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네놈의 부정한 짓거리를 알리는 게 급선무겠구나.”
“부정한 짓?”
“아버지께 고하겠다. 아무리 힘을 가지고 싶어도 그렇지 악마와 손잡고 사특한 술수를 배워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다니. 네놈의 죄는 아버지께서 벌해주실 거다.”
“어디 한 번 고해보시죠. 마탑주와 짜고 절 팔아넘기려던 형님도 무사하진 못할 테니까요.”
“…….”
피터의 눈이 지그시 지크를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듯한 눈빛이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빌어먹을. 마법도 쓰지 못하니 병신이 따로 없잖아, 이거.’
이럴 줄 알았으면 박투술이라도 배워둘 걸 그랬다며 후회하는 피터였지만 그는 몰랐다.
그래봤자 오러 마스터를 넘어선 지크의 상대가 되지 못하리란 것을.
“어떡할까요? 아버지께 가서 누가 더 잘못했는지 고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원하는 게 뭐냐? 내게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진 않았을 거 아니냐.”
물론이다.
지크가 피터를 죽이지 않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제가 원하는 건 단순합니다. 제 편이 되어주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뭐?”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피터는 얼떨떨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 그거면 된다고?”
“그렇습니다. 설마 가주 후보에서 물러나라고 할 줄 알았습니까?”
“……솔직히 그럴 줄 알았다만.”
“걱정 마세요. 아까도 말했듯이 가주 자리에는 터럭만큼도 관심 없으니까요. 저는 그저 제 편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
실험체로 팔아버리려던 걸 알면서도 자신의 편이 되길 바란다?
물러터진 건지 바보인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물론 안전장치 없이 제 편이 되어달라는 뜻은 아닙니다. 마나의 서약으로 맹세하시죠.”
“이 자식이…….”
그럼 그렇지, 말로만 자기 편이 되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마나의 서약으로 확실하게 끌어들일 셈이었다.
하지만 피터는 피식 조소를 흘렸다.
“안됐지만, 이거 어쩌나? 나는 이미 탑주님과 마나의 서약을 해놓은 상태인데.”
“서약 내용은요?”
“마탑주님을 배신하는 즉시 내 서클이 붕괴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충실한 심복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그래요? 뭐, 상관없어요. 저랑 새로 서약을 맺으면 되니까.”
“뭐?”
잠시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던 피터가 정신을 차렸다.
“하하! 네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이미 마나의 서약을 맺으면 다른 서약은 맺을 수 없어.”
“아니요. 가능합니다. 이 물건을 이용하면요.”
지크는 품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금색이 칠해진 볼펜으로, 카르볼의 보물창고에서 가져온 물건이었다.
“이걸로 여기 있는 양피지에 제가 시키는 대로 받아 적으십시오. 그럼 마나의 서약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존에 걸려 있던 마탑주와의 서약은 사라지고요.”
“이런 물건은 어디서…….”
“시키는 대로나 하시죠. 좋은 말로 할 때.”
“…….”
피터가 순간 노려봤지만 지크는 여유로웠다.
“왜 대답이 없죠? 싫어요? 싫으면 어쩔 수 없죠. 곧바로 아버지께 녹음기를 가져가는 수밖에. 그럼 가주 자리는커녕 서클마저 부서지지 않을까요? 제 서클이 아니니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만.”
“…….”
제안을 받아들이면 시간은 벌 수 있지만, 아버지가 알게 되면 말마따나 최악의 결과가 찾아온다.
차선책을 고르는 것이 어떻게 보면 현명한 일이었다.
“후우…… 너는 악마야.”
“동생을 팔아먹으려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한마디를 지지 않는구나. 후우, 알았다. 뭐라고 쓰면 되지?”
“나 피터 맥러플린은 절대로 지크 맥러플린을 배신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이를 어길 경우 전능하신 엘의 규율에 따라 서클이 붕괴할 것이다. 참고로 마력을 불어넣어야만 잉크가 나옵니다.”
“그런데 정말로 너와 계약을 맺으면 마탑주와의 서약은 사라진단 말이냐?”
“예. 형님의 주인이 마탑주에서 저로 변경되는 겁니다. 간단하죠?”
“그, 그럼 큰일 나는 것 아니냐? 마탑주가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형님이 말하지 않는 이상 마탑주가 알 일은 없을 겁니다. 서약이 해제됐는지도 모를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피터는 펜을 잡고 글쓰기를 망설였다.
주인이 바뀌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왜요? 저랑 계약하기 싫으세요? 싫으면 아버지에게 가겠…….”
“아, 알았다. 누가 싫다고 했느냐? 성격 참 급하기는.”
피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양피지에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적자, 글자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왔다.
‘됐어. 이걸로 고대의 맹약을 걸었다.’
지크가 방금 피터에게 시킨 것은 고대의 사람들이 썼다는 맹약.
마나의 서약보다 우선권을 가지기에 기존에 맺었던 서약은 파기된다고 카르볼로부터 들었다.
“잘하셨습니다.”
“네놈에게 칭찬 따윈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한테 시킬 일이 뭐지? 배신하지 말라고 맹약까지 하게 만든 걸 보면 진짜로 원하는 게 있겠지?”
피터의 말에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없진 않으시군요. 그럼 말하겠습니다. 제가 진짜로 원하는 건…….”
* * *
남대륙에는 5개의 왕국과 1개의 제국이 있다.
그중 데칸 왕국은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마법 쪽에서는 나름 인정받는 왕국.
그런 나라의 마탑주라면 상당한 경지의 마법사일 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마탑주인 그레고르 판테인은 8서클에 불과했으니까.
‘제라드, 그 녀석도 아직 9서클이 되려면 멀었겠지?’
그레고르는 어릴 적부터 제라드와 비교당했다.
같은 나이, 같은 지위, 비슷한 환경, 심지어 스승까지 같은 마당이었으니 비교당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어린 마음엔 그게 참 싫었지만.
‘예전에야 라이벌이니 뭐니 신경 썼지만, 이제는 상관없어. 둘 중에 성공한 건 누가 뭐래도 나니까.’
서클은 같지만, 제라드는 기껏해야 마법 명가의 가주.
데칸 지부의 마탑주인 자신과 비교할 깜냥이 안 된다.
‘그런데도 달프레드 그 영감탱이는 제라드만 예뻐한단 말이지.’
스승인 달프레드 비그스란드가 이번에 9서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레고르는 그 역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흔한 축하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한때 스승이었다곤 하지만 이미 청산한 과거.
이제 와서 연락하기도 뭐하다.
제라드만 예뻐하는 꼬락서니도 보고 싶지 않았고.
‘여든이 넘어서야 9서클에 오른 게 뭔 자랑이라고. 재능 없는 늙은이 같으니.’
이러나저러나 자신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9서클인 달프레드도 자신 앞에선 함부로 할 수 없다.
그것이 마탑주란 자리였고, 권력이고 정치였으니까.
제라드가 마도 수련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두가 마탑에 들어오길 희망하는데 자기 가문만 거절한다?
마탑의 마법사와 싸우자는 거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마도 수련이란 명목하에 피터를 부른 건 지금 생각해 봐도 잘한 짓이었어. 그 녀석이 나와 비슷한 야망을 품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 성정 또한 자신과 닮았다.
그렇기에 마나의 서약으로 충성 맹세를 받아낸 것도 있다.
피터를 꼭두각시처럼 부려 먹기 위해서.
‘그래도 아쉽구나. 장남에 이어 막내까지 데려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연구의 실험체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제라드가 지극정성을 쏟는 아이라고 들었다.
어찌 탐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막내아들이 실험체로 덧없이 죽어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제라드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참으로 궁금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기회도 없겠구나.’
지크가 죽었다는 소릴 들었을 때 그레고르는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이왕 죽을 거면 실험체로 죽어가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제라드가 절망하는 표정도 볼 수 있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실험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그러나 실망도 잠시.
그레고르는 피터에게 준 통신구를 통해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피터? 무슨 일이지?”
-지크가 살아 있습니다. 마수의 숲에서 살아나왔습니다.
“뭐?”
놀람으로 시작된 감정은 이내 흥분으로 귀결됐다.
제라드의 절망스러운 얼굴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어떻게 살아나왔는진 몰라도 거참 잘됐구나. 마땅한 실험체가 없어서 아쉽던 참인데. 다시 한번 마탑으로 불러 실험체로 써먹으면 되겠어.”
-그건 조금 어려울 듯합니다.
“왜지?”
-시기상 좋지 않습니다. 암살자로 인해 가문 분위기가 어수선한 데다 후계자 시험 또한 내년으로 미뤄졌습니다. 그런 마당에 지크를 마도 수련에 보낸다면 아버지의 불안감이 더욱 증폭될 것입니다. 그만큼 관심도 쏠릴 테고요.
“한마디로 지금 작업하기엔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다, 이 말이렷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내년 후계자 시험이 있을 때까지만 미뤄두면 어떨까 싶습니다. 일을 벌이려거든 되도록 방심하고 있을 때 벌이는 편이 나으니까요.
“흠.”
일리가 있다.
지금 당장은 시기상 좋지 않다.
마탑의 초청을 거절할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일을 벌였다간 다른 변수가 끼어들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괜찮은 의견이야.’
문제는 피터의 머리에서 나온 것치곤 상당히 디테일하다는 것이다.
“지금 의견은 네가 생각해 낸 것이더냐?”
-물론입니다. 저 아니면 누가 있겠습니까?
“흠.”
피터가 자신을 배신할 리가 없다.
이미 마나의 서약까지 걸어두지 않았는가?
“알았다. 제라드에겐 내가 직접 말하지. 당장 지크를 마도 수련에 보낼 필요는 없다고.”
-제 의견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강녕하십시오.
통신이 끊긴 후 그레고르는 씰룩 입꼬리를 올렸다.
‘마수의 숲을 빠져나왔다고?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군.’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지크를 향한 호기심이 전보다 더욱 증가했다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 녀석을 데려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