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8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82화
라인하르트 부자는 하던 대련을 멈추고 가문 앞으로 나가보았다.
“지크!”
돌아온 탕아를 맞이하듯, 크리오스의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번졌다.
“어디 갔다가 이제 돌아온 게냐? 내 얼마나 기다렸다고!”
“하하, 죄송합니다, 스승님. 일이 좀 있어서요.”
“그런데 이분들은……?”
지크 뒤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기는 저희 가족입니다. 이쪽은 데포르테 가문이고요.”
“처음 뵙겠소, 제라드 맥러플린이라 하오.”
제라드가 나서며 악수를 청했다.
얼결에 맞잡은 크리오스였지만, 의혹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지크? 대체 무슨 일로 가문 사람들까지 데려온 것이냐?”
“소원을 쓰러 왔어요.”
“응? 소원?”
난데없는 말에 크리오스는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크와의 대련에서 패배한 대가로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던 일을.
“그 소원을 지금 쓸까 해요.”
“무슨 소원이냐?”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인 지크가 원하는 바를 말했다.
“저희 가족들 좀 맡아주세요.”
* * *
‘으으으음…….’
접견실에서 라인하르트 일가와 마주한 제라드는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고요한 분위기.
침묵이 내려앉은 이 자리가 못내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색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크가 괜찮다고 하여 찾아오긴 했다만……. 저들은 오러 유저가 아닌가?’
대륙은 크게 두 개의 파벌로 나뉘었다.
오러 유저와 마법사.
상반된 성격을 가진 두 집단은 앙숙 관계에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엄밀히 말하면 오러 유저가 마법사에게 핍박받는 처지였다.
‘힘의 우위를 지닌 마법사들은 예로부터 오러 유저들을 깔보고 무시해 왔다. 그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같은 시간을 들였을 때 더 강해지는 건 마법사였다.
오러 유저는 마법사가 되지 못한 도태된 집단의 차선책일 뿐.
그런 까닭에 마법사는 오러 유저를 급 낮은 칼잡이로 무시해 왔다.
반대로 오러 유저는 마법사를 오만하고 기피해야 할 존재로 인식해 왔고.
‘그러니 우릴 좋게 볼 리가 있나.’
지금도 줄곧 차를 마시며 침묵을 지키는 철혈의 군주가 아니던가?
그러니 제라드로선 이 자리가 가시방석일 수밖에.
하지만.
“미안하오, 잠시 생각 좀 하느라. 선구자들이 가족들을 노린다니. 이거 생각하면 할수록 심각한 상황 같구려. 제자의 부탁이니 우리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쉬어주시면 고맙겠소.”
예상과 달리 크리오스는 제라드를 환대했다.
선입견 있는 눈으로 보기는커녕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차를 홀짝 마셨다.
철혈의 군주라는 차가운 이명과는 동떨어진 사내였다.
‘으음. 한데 내뿜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구나. 과연 오망성이라 이건가?’
부드러움 속에 칼을 숨겼다고 할까?
어떨 땐 부드러워 보이면서 어떨 땐 강인하고 차갑다.
그랜드 오러 마스터의 위압감을 몸소 느껴보던 제라드였지만 그것도 잠시.
지크 이야기가 나올 때면 크리오스의 기세가 달라졌다.
“지크가 대련에서 나를 이겼다는 이야긴 들었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내기를 하셨다고요.”
“나를 건들기만 해도 이긴 걸로 치는 대련이었는데, 솔직히 이길 자신이 있어서 수락한 거였습니다. 한데 내 뺨에 상처를 낼 줄이야.”
감탄하던 크리오스는 뺨을 살짝 매만졌다.
그때의 상처는 이미 아문지 오래지만, 당시 느꼈던 감동과 흥분만큼은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지크에겐 검의 재능이 있습니다. 대련할 때마다 강해지는 걸 볼 때면 조만간 자리 하나를 내어줘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크의 실력이 그 정도란 말입니까?”
“그럼요. 이대로만 큰다면 장차 여섯 번째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되어 육망성이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극찬이었다.
아들의 칭찬을 듣는 제라드로선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제게 딸아이가 없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딸이 있었다면 지크를 사위로 삼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지크가 들으면 기겁할 만한 소리였지만, 그만큼 크리오스는 지크를 아들 그 이상으로 생각했다.
스승의 제자 자랑은 이후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 * *
[크리오스에게 허락받기 완료!]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스탯 4,000이 증가합니다.] [보상으로 6차 스킬 숙련도 20,000이 증가합니다.] [9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287,878/300,000]돌발 퀘스트 보상을 받자, 전체적인 스탯이 1만을 돌파했다.
‘이거 엄청나네. 스탯이 쥐꼬리만 하던 내가 어느새 1만을 넘기다니.’
매일매일 쌓이는 양도 있지만, 퀘스트로 증가하는 양이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그때, 접견실에서 나오는 제라드와 크리오스를 보며 지크가 다가갔다.
“두 분, 이야기는 잘 나누셨어요?”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느냐?”
“예. 떠나기 전에 말씀드리려고요.”
“떠나? 또 어딜?”
“아직 일을 끝내고 온 게 아니라서요.”
지크는 제라드에게 드래고니안을 찾으러 간다고 말했었다.
그 사실을 기억해낸 제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구나. 다녀오거라.”
“네. 여기서 스승님과 함께 지내고 계세요. 바이소에서 라인하르트 공작가만큼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요.”
“알았다.”
“지크,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떠난단 말이냐? 대련이라도 하지 않고…….”
떠난다는 소리를 들은 크리오스가 옆에서 아쉬운 소리를 냈지만, 지크는 웃으며 대답했다.
“죄송해요, 스승님. 다음에 기회 되면 실컷 대련해요. 그때는 진짜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전이랑은 완전히 다를 테니까.”
“하하핫, 기대되는구나. 얼른 볼일 보고 돌아오거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예.”
가족들과 연이어 작별 인사를 나눈 지크는 다시금 길을 떠났다.
카르볼, 카르디와 함께 동대륙으로.
* * *
“지크 공자님은요?”
“벌써 떠났단다.”
“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실리스는 아연실색했다.
지크에게 청혼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놓치고 말았다.
“아.”
허탈한 심정으로 복도를 거닐고 있는데, 누군가 톡톡 어깨를 두들긴다.
고개를 돌리니 귀족 차림의 남자가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공자인 루인 라인하르트라고 합니다.”
“…….”
실리스는 갑자기 자기소개를 하는 남자를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뭘 어쩌라는 건데요?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루인이 말했다.
“저… 보통 이럴 때는 상대방도 자기소개하던데…….”
“아! 죄송해요. 제가 지금 정신이 반쯤 나가 있어서요. 저는 실리스 데포르테라고 해요.”
“앗, 데포르테 가문의 공녀님이셨군요. 형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잭 라인하르트 아시죠? 일공자인 저희 형. 형이 그렇게 구혼했는데도 받아주지 않았다고…….”
“그랬었죠…….”
“아까 지크와 함께 오셨죠?”
“지크……?”
말을 놓는 걸 의아해하자, 루인이 웃으며 설명했다.
“아, 지크와는 서로 말을 놓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제자가 된 이후로 친해져서 말이죠.”
“그러시군요.”
자꾸만 말 걸고 싶어 하는 루인과 달리, 실리스는 단답형으로만 답했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그동안 셀 수도 없는 대시를 받아온 경험으로, 실리스는 단번에 알아챘다.
루인이 어떤 의도로 말을 걸었는지.
“죄송해요. 이미 약혼자가 있어서요.”
그렇기에 단박에 거절했다.
단호박 같은 대답에, 루인은 조금 벙쪘지만.
“예……. 시, 실례했습니다.”
루인이 벌게진 얼굴로 돌아섰다.
* * *
‘아, 쪽팔려.’
이름은 모르지만, 엄청나게 예쁜 여자가 지크와 함께 왔길래 말을 걸어봤었다.
그 사람이 형이 누누이 말하던 실리스 데포르테인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형이 포기했다고 해서 나라도 한 번 용기 내 본 건데…….’
대차게 까이고 말았다.
약혼자가 있는 줄도 몰랐고.
‘형은 알고 있나? 약혼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까 독종 같은 형이 포기한 거겠지.
‘형이랑 얼굴이 똑같다고 싫어하는 건가? 아오.’
괜스레 울적해지는 마음을 달래러 형을 찾았다.
마침 쌍둥이 형인 잭 라인하르트가 복도를 서성이고 있다.
“형, 대련하자.”
무작정 형을 끌고 훈련장으로 갔다.
즉시 목검을 던져주고 자세를 잡았다.
“간다, 형. 나 오늘 제대로 할 거니까 각오해.”
“어…….”
잭과 루인의 실력은 엇비슷했다.
보통 50대 50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수준.
그러나.
따악!
“윽.”
딱!
“으윽!”
몇 번이고 잭이 공격을 허용한다.
“형? 뭐해? 오늘 실력이 영 아닌데?”
“아이고, 아파라…….”
목검에 맞은 팔꿈치를 쓰다듬는 잭의 모습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어딘가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다고나 할까?
“형, 무슨 고민 있어?”
“어? 아, 아니.”
“아니긴. 평소답지 않게 말도 더듬는구만.”
“…….”
“고민 있으면 말해. 들어줄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잖아.”
반박할 수 없는 소리에 픽 웃던 잭이었지만 금세 울적한 표정이 됐다.
“후우, 실은…… 이번에 온 지크의 일행 중에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어서…….”
루인의 표정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형. 설마 실리스 공녀 말하는 건 아니지?”
“인마. 실리스 공녀는 포기했다고 전에 말했잖아.”
“그랬지. 그래서 나도 좀 전에 말 걸어봤었지.”
“뭐? 실리스 공녀한테?”
“물론 단박에 까였어. 약혼자가 있다고 하더라.”
잭의 두 눈이 커졌다.
동생이 실리스에게 말 걸었다는 것보다 약혼자가 있다는 말이 더 놀라웠다.
“진짜야? 그 자존심 센 여자가?”
“응. 몰랐어?”
“나야 몰랐지!”
“그것 때문에 형이 포기한 줄 알았는데.”
“두들겨도 안 열리길래 포기한 것뿐이야. 마음의 문을 꽉 잠그고 있는데 무슨 수로 열어?”
“근데 그 문이 다른 사람에겐 열렸네? 큭큭.”
남의 일처럼 웃는 모습에 잭의 표정이 뚱해졌다.
“지금 누구 놀리냐?”
“그보다 말해봐. 형이 반했다던 여성이 누군데? 어떻게 생겼어?”
“갈색 머리칼이야.”
“아! 나 봤어.”
루인은 지크의 일행을 떠올렸다.
그 여자도 눈에 띄게 예쁘긴 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 여자에 눈길이 가는 거야?”
“어…… 지크와 무슨 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전해 봐. 내가 뒤에서 서포트해 줄게.”
“실리스 공녀한테 차이고 온 네가 서포트하겠다고? 푸흐흐, 지나가던 개가 다 웃겠네.”
루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낄낄거리는 형의 웃음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형이라고 뭐 다를 거 같아? 분명 나보다 더 빨리 까일걸?”
“뭐 인마? 너랑 나는 얼굴부터가 다르잖아.”
“웃기고 있네. 쌍둥이인데 다를 게 어디 있어?”
자존심을 긁어주자 잭의 눈썹이 꿈틀댔다.
“내가 보여줘?”
“보여줘 봐, 그럼.”
“좋아. 지금 바로 가자고.”
잭이 목검을 세워놓고 성큼성큼 걸었다.
조금 전까지 울적해하던 형이 맞나 싶을 정도다.
‘하여간 단순하다니까, 형은.’
피식거린 루인이 형을 뒤따라갔다.
잭은 누군가를 찾듯 공작가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마침 잭이 찾던 사람이 보였다.
“저, 저깄다.”
가리킨 곳엔 갈색 머리칼의 여성이 남자 한 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는 형의 모습이 보인다.
좀 전의 자신감이 무색하게 긴장한다.
“형. 화이팅.”
“어?”
“뭐해? 안 가고? 보여준다며.”
“어어. 보, 보여준다, 진짜로.”
자신감 있게 잭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피터와 함께 있던 메리가 눈길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흠칫한 잭은 큼큼 목을 가다듬고는 고개를 숙였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일공자인 잭 라인하르트라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브라이언트 백작가의 메리 브라이언트예요.”
“아……. 이름이 메리셨군요. 아름다운 이름이시네.”
“네?”
“아, 아닙니다.”
중얼거린 잭은 이후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얼굴이 벌게진 채로.
‘가, 가까이서 보니 더 예쁘잖아?’
실리스와는 다른 느낌으로 예뻤다.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다.
“…….”
“……?”
둘 사이에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누군가 말을 해야 하는데 서로 쳐다만 보고 있다.
보다 못한 피터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잭 라인하르트 공자?”
옆에 남자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언짢았던 잭이 시선을 돌렸다.
“누구십니까?”
“맥러플린 가문의 일공자인 피터 맥러플린입니다. 지크의 형이죠.”
“아, 그러세요?”
잭은 시큰둥했다.
그러다 머릿속의 경종을 울리는 생각이 떠올라 물었다.
“설마 둘이 약혼한 사이는 아니죠?”
“예…?!”
“뭔…….”
둘의 그 반응만으로도 대답이 되었다.
메리로선 확실히 하고 싶던 모양이지만.
“절대 아니에요! 그런 사이.”
“그거 다행이군요.”
잭은 안심했다.
하지만 피터는 그 반응이 굉장히 아니꼬웠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죠?”
“저한테도 기회가 있다는 거니까요.”
“기회? 설마 메리를 마음에 두시는 겁니까?”
“예. 그럼 안 됩니까?”
남자들 간에 보이지 않는 알량한 자존심 싸움이 오갔다.
“안 됩니다. 얘는 누구에게도 줄 수 없어요.”
“그쪽이 무슨 자격으로요?”
그리 묻자 피터가 충동적으로 말했다.
“저도 메리를 좋아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