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86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86화
동대륙의 웰터가든에 한 마을이 있었다.
목책과 오두막을 지어 생활하는, 도시와는 거리가 먼 목가적인 마을.
그러나 보기와 달리,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카이든 장로님. 할 말이 있습니다.”
“이든이라 부르라 하지 않았느냐, 제우스.”
“죄송합니다, 이든 장로님.”
“장로가 아니라 촌장이라 불러야지.”
제우스라 불린 청년의 얼굴에 불만이 어렸다.
카르카이든이라는 본명을 두고 왜 인간의 이름으로 생활한단 말인가?
겉모습은 인간으로 폴리모프했어도 본질은 드래곤일 텐데.
그 마음을 꿰뚫어 봤는지, 촌장이 제우스를 지긋이 쳐다봤다.
“네가 인간처럼 생활하기를 꺼리는 걸 이해는 하나, 어쩔 수 없느니라. 드래곤의 몸으로 생활하기엔 너무도 눈에 띄는 법이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도 적응해나가는 중이고요.”
“하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나를 찾아온 것이냐?”
제우스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심을 입 밖으로 내었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뭐라?”
“이런 지긋지긋한 시골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더 큰 대도시로 넘어가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 없는 처지라는 걸 너도 잘 알 텐데?”
“리치 드래곤이 뭐, 대수입니까? 놈들이 그리도 무섭습니까?”
약간 흥분한 어조로 말하던 제우스는 전부터 이곳 체계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숲으로 둘러 막힌 풍경.
단조롭기 짝이 없는 생활.
지긋지긋한 사람들.
빡빡한 규율.
변화라곤 눈곱만큼도 기대할 수 없는 곳이 이곳, 웰터가든이었다.
기왕 인간으로 유희를 즐기고자 한다면, 좀 더 커다란 도시에서 생활하고 싶은 게 청년의 작은 바람이었다.
하지만, 장로는 그 바람을 허하지 않았다.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리치 드래곤들은 죽지 않는 존재이니라. 제아무리 강한 마법으로 때려 부어도 재생하고 또 재생하는, 괴물 같은 놈들이지. 그런 놈들이 눈을 희번덕 뜨고 우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나가겠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느냐?”
“제 정체를 알지 못하도록 용력을 최대한 감추겠습니다. 그럼 되는 일 아닙니까?”
“아직 컨트롤이 미숙한 주제에 누구보다 민감한 리치 드래곤 앞에서 용력을 감추겠다고? 퍽이나!”
“자신 있습니다! 완전히 인간으로 보이게끔 행동하겠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 너 하나를 내보내면 다른 청년과 아이들도 마을을 벗어나고 싶어질 테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다!”
촌장의 태도는 강경했고, 제우스의 불만은 쌓여갔다.
쾅!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 나서는 걸 보면.
* * *
“빌어먹을!”
“왜 그래, 제우스 형?”
“닥쳐! 날 그딴 이름으로 부르지 마.”
올해로 2,123세인 자신보다 440년 어린 드래곤을 신경질적으로 쏘아본 카르막제우스는 목책이 있는 문을 바라봤다.
나가고 싶다.
미치듯이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그런 열망이 눈빛으로 보였는지, 어린 드래곤, 제키가 물었다.
“나가고 싶어서 그래? 형?”
“아, 신경 쓰지 마.”
“나갈 거면 지금이 기회야. 저기 봐.”
제키가 말한 곳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경비들이 보였다.
경계가 느슨해져 있다.
제키의 말마따나 나가야 한다면 지금이 기회다.
“너, 내가 나가자마자 마을 사람들한테 이를 거지?”
“그럴 리가. 내가 그런 짓을 왜 해?”
“정말이야?”
“대신 나도 데리고 가줘.”
“뭐?”
카르막제우스의 눈자위가 커졌다.
“진심이야?”
“나도 나가고 싶어.”
“넌 여기가 고향이나 마찬가지잖아.”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나라고 나가고 싶지 않은 건 아니라구.”
제키의 말에서 제우스는 진심을 엿봤다.
그동안 이곳 체계에 대해 투덜거리면 제키가 맞장구쳐주곤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좋아. 나가자. 우리 둘이.”
제키와 제우스는 결심을 굳히곤 주변을 살피며 움직였다.
목책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동안, 누구도 두 드래곤이 사라졌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마을 밖에 설치한 마법 경계선을 넘기 전까진.
* * *
부스럭.
숲을 돌아다니는 25명의 사람이 있었다.
마치 뭔가를 찾듯 수풀을 헤집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꼼꼼히 수색해라. 분명 이 근방에 저항군의 주거지가 있을 것이다.”
동대륙의 리치 드래곤이자 수장, 카르제필로스의 말에 한 드래곤이 인상을 찌푸렸다.
카르가스트라는 이름의 드래곤이었다.
“여긴 얼마 전에 찾아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꼼꼼하게 찾지는 않았지.”
그 말에 카르가스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이었으니까.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왜 갑자기 저항군 수색에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말하지 않았나? 놈들을 리치화 시켜서 세력을 불려야 한다고.”
“그러니까 이리 급하게 리치화할 이유가 뭐냔 말입니다.”
카르제필로스는 조금 고민됐다.
동족들에게는 아직 남대륙의 상황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
‘신의 후예라는 놈한테 남대륙의 리치 드래곤 50여 명이 모두 죽었다는 소리를 한다면, 믿을 놈이 얼마나 있을까?’
태반은 헛웃음을 지으며 비웃을 게 분명하다.
불사의 리치 드래곤이 죽는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으니까.
클리포드로부터 소식을 들었던 자신 또한 여전히 반신반의 중이었고.
‘뭐가 됐든 말하면 비웃음이나 살 게 뻔해.’
대충 둘러대기로 한 카르제필로스가 생각해둔 핑곗거리를 꺼냈다.
“천마 대전을 앞당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될 수 있는 한 세력을 더 불려놓으라더군.”
“지금보다 더 불리란 말입니까? 서대륙에 있는 리치 드래곤까지 합하면 100이 넘을 텐데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 아니겠나? 군소리 말고 수색에나 집중하지. 언제까지 저항군과 술래잡기나 할 것인가?”
“아니, 놈들이 워낙 철저하니 찾으려야 찾을 수 없지 않습니까?”
“하여튼 분발하자는 소리다. 이 이상 끌 수도 없는 노릇이니.”
동대륙의 리치 드래곤들이 저항군을 제압하지 못한 건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마법의 경계를 쳐놓고 위기의 순간마다 일찌감치 자리를 옮기는 그들의 철두철미함이 리치 드래곤들을 애먹게 했을 뿐.
“후우. 그래. 이참에 지긋지긋한 놈들을 뿌리 뽑는 것도 좋겠습…….”
“잠깐.”
카르제필로스가 돌연 심각한 표정으로 수색대를 멈추게 했다.
“느껴지지 않나? 우리와 다른 용력이 감지된다.”
“……정말이군요. 기운으로 보면 두 마리입니다.”
“이 근방에 있는 모양이다. 찾아라.”
스물이 넘는 리치 드래곤들이 재빠르게 흩어졌다.
“찾았습니다!”
외침을 들은 카르제필로스가 서둘러 움직였다.
잠시 후 부하의 손에 붙잡힌 소년 드래곤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이거 놔!”
“푸, 풀으라고!”
마력의 속박에 얽매여 발버둥 치는 드래곤들은 조금 전에 탈출했던 제우스와 제키였다.
설마 마을에서 떠나던 날 리치 드래곤에게 붙잡힐 줄은 생각도 못 한 그들이었다.
카르제필로스가 짐짓 무서운 표정으로 소년들에게 다가갔다.
“보아하니 3천 살도 넘지 않은 어린 녀석들이군.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건가?”
“우, 우릴 풀어줘. 얼른!”
“어허, 움직이지 마라. 죽고 싶어?”
윽박지르던 카르가스트가 마력의 속박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꽈아악!
몸을 옥죄는 힘은 어른의 그것과 같았고, 붙잡힌 소년들은 옴짝달싹 못 한 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공포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으니까.
“저항군이 있는 위치를 불어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우, 우린 몰라. 그런 건…… 아아아악!”
별안간 마력의 옥죄임이 거세졌다.
우드득-
“아악!”
급기야 팔이 부러지기까지 한 제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켜보던 제우스의 낯빛이 창백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정말 몰라?”
“제, 제가 알아요. 마, 마을이 있어요. 저, 저쪽에!”
제우스의 말을 들은 카르제필로스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이거 생각보다 놈들을 뿌리 뽑는 일이 빨라지겠는걸?”
* * *
촌장 이든은 별안간 한숨을 쉬었다.
조금 전에 제우스와 다퉜던 일이 마음에 남은 탓이었다.
‘안 그래도 불만이 많던 녀석이었는데 내가 너무 했나?’
무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장로로서,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녀석들도 지긋지긋하겠지. 이런 단조로운 시골 생활이.’
아니, 시골 생활이라기보단 도피 생활에 가깝다.
짧으면 몇 년, 길면 백여 년을 주기로 마을을 옮기곤 했다.
리치 드래곤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들을 추적하고 있음을 뻔히 알기에.
‘정착할 만하면 옮겨 다니고, 그렇다고 외출을 허락하는 것도 아니니 아이들로선 불만이 쌓일 수밖에.’
그런 심정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허락할 순 없다.
어디까지나 종족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마을 주변에 대규모 마법진을 만들어놓아 우리 종족의 기운과 마을 전체를 숨겼다곤 하지만…….’
언제 발각될지는 모르는바.
결단코 마을 사람들의 외출을 허락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가끔 콧바람을 쐬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제우스의 불만도 달랠 겸.’
어디까지나 경계선 안쪽에서의 피크닉이었지만, 지금으로선 그 정도가 베풀 수 있는 한계였다.
‘결정한 김에 바로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그때, 별안간 촌장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알람 마법이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경계선 밖으로 누군가 빠져나갔다고.
‘이런!’
서둘러 집에서 나온 촌장이 입구를 지키는 드래곤한테 달려갔다.
“한슨! 한슨!”
“예? 무슨 일이십니까, 촌장님?”
“누군가 목책 밖으로 나가지 않았는가?”
“예? 그, 글쎄요?”
“무슨 대답이 그런가? 자네가 여길 감시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 그렇긴 합니다만…….”
한슨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반응을 보아 감시를 소홀히 한 게 분명하다.
“지금 마을 밖에 설치해뒀던 알람 마법이 울렸다. 누군가 경계선을 뚫고 나간 것이야.”
“예? 대체 누가…….”
순간 촌장의 머리에 번뜩이며 떠오르는 드래곤이 있었다.
“제우스. 제우스는 어디 있는지 봤느냐?”
“아니요. 못 봤는데요?”
“촌장님. 무슨 일입니까?”
소란을 듣고 온 마을 주민들에게 촌장이 다시 한번 물었다.
“제우스요?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안 보이네?”
“제키도 안 보여요.”
“이 녀석들, 설마 밖에 나간 건 아니겠지?”
“에이, 경계선 어딘가에 있겠죠.”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촌장만큼은 불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이거 아이들을 찾으러 가봐야겠네. 수색조를 꾸리세.”
“아, 알겠습니다. 모두 모여보세요.”
주민들이 수색조를 꾸리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꼼꼼하게 어디부터 수색할지 루트도 정해놓았다.
“우리의 목표는 제우스와 제키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다. 아마 마을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고 호기심에 바깥으로 나간 것 같아. 그러니 둘을 신속하게 찾아 데려오되, 리치 드래곤들을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한다. 경계선 밖으로 나간 이상 우리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촌장님.”
“그럼, 녀석들을 찾으러 출발하지.”
주민들과 함께 움직이려던 촌장은 이내 걸음을 멈췄다.
마을 가까이 다가오는 인영이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확인해 보니 자신들이 그토록 찾던 제우스와 제키였다.
“이 녀석들! 내 함부로 마을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따끔하게 혼내려던 촌장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숨이 턱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우스와 제키의 뒤로.
“크큭, 드디어 찾았네. 쥐새끼들.”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구만?”
“아주 평화롭게 잘살고 있었네?”
“누군 찾느라 쌔빠지게 고생하고 있었구만.”
리치 드래곤 25마리가 걸어오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