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87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87화
“제, 제우스! 제키! 왜 너희 뒤에 리치 드래곤들이…….”
“설마, 너희가……?”
“죄, 죄송해요. 흑흑…….”
앞장섰던 제우스는 죄스러움에 울먹였고 제키는 팔이 부러진 고통에 그럴 정신도 없었다.
그 모습에, 주민들은 단번에 상황 파악을 끝냈다.
이런 상황에서 둘의 배신을 눈치채지 못하는 바보는 없다.
그렇다고 둘을 탓할 수도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을 테지. 목숨은 소중한 법이니까.’
하나, 촌장인 이든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애당초 마을 사람들을 통제한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군.’
50명을 통제하기란 어렵지 않을 줄 알았건만, 보란 듯이 실패했다.
빡빡한 규율과 억압이 오히려 사달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카르카이든. 오랜만이군. 100년만인가?”
“카르제필로스.”
둘은 백 년 전에 한 번 붙은 전적이 있었다.
‘당시엔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시간 벌이용 싸움을 벌였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기회조차 보이지 않는다.
놈들이 그때완 달리 인질을 잡고 있었으니까.
“이놈 팔 보이나?”
“아악!”
“제키!”
제키의 부러진 팔을 잡아끌던 카르제필로스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놈의 다른 쪽 팔이 부러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도망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꼭 그렇게 피를 봐야겠나?”
장로 드래곤 카르카이든의 눈매에 이글거리는 증오가 엿보였다.
“이렇게까지 해서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냐는 말이다! 카르제필로스!”
“무슨 소리지? 노예라니? 난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그럼? 우릴 모두 죽이는 게 목적인가?”
“아니.”
리치 드래곤의 수장, 카르제필로스가 코웃음을 쳤다.
“원래는 노예로 만들 작정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너희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제……안?”
“우리와 같은 리치 드래곤이 되어라. 여기 있는 모두가 문제없이 리치화를 진행한다면, 단 한 명의 드래곤도 피를 보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든은 이를 꽉 물며 분노했다.
저게 어딜 봐서 제안이란 말인가? 협박이지.
“거절한다면?”
“네놈이 그토록 싫어하는 피를 봐야겠지. 아마 그 피는 가장 먼저 여기 있는 두 놈의 피가 되겠군.”
카르제필로스가 덜덜 떨고 있는 아이들을 쓰다듬었다.
두려움에 떠는 제우스와 제키를 보니 촌장의 마음이 약해졌다.
‘하아…… 이를 어쩐다? 이 마당에 모두를 데리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마음먹으면 당장이라도 도망칠 순 있으리라.
저쪽은 25명, 우리는 50명.
숫자부터 두 배나 많은데 전력으로 도주하면 몇몇은 생존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모두를 구하진 못한다.
당장 공포에 떨고 있는 제우스와 제키부터.
‘주민들을 희생시키고 도주할 순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싸워야 하는가?’
자신을 희생하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터.
전처럼 싸움을 유도하며 주민들이 도망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야겠다.
그게 현재로서 최선.
그러나 도망친 주민들이 다시 붙잡히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새롭게 마을을 꾸릴 만한 리더도 주민 중엔 없었고.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의 희생을 막을 수 없다는 거다.’
도주하든, 맞서 싸우든, 피해를 보는 건 똑같다.
그간 끈질기게 추적한 만큼, 놈들은 절대로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리치화가 남아 있긴 하지.’
놈들의 제안대로 리치화가 된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성을 잃은 존재가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전의 삶은 기억도 못 하는 산송장이 되고 마는데?
‘절대로. 리치화만은 절대로 할 수 없다.’
이래저래 따져보니 선택지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나머지 주민들을 구한다.
그런 생각으로 타이밍을 보던 차였다.
바스락-
“음?”
수풀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동물의 소리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그 존재를 확인한 순간.
“아.”
이든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눈에 익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카르디플리안?’
몇 년 전.
촌장은 우연히 카르디플리안과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노예였던 그였기에 마을의 위치를 알려주진 못했다.
행여나 배신이라도 하면 또다시 철새처럼 주거지를 옮겨야 할 테니.
‘그런데 여길 찾아왔어? 어떻게 알고?’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리치 드래곤의 노예이니 리치 드래곤과 함께 왔을 게 뻔하다.
그가 여기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달리, 리치 드래곤들에겐 이상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뭐냐, 네놈은?”
“저항군이 또 있었나?”
“잠깐. 이놈은 노예 드래곤 아니야? 전에 남대륙에서 지원 왔을 때 본 기억이 있어.”
“남대륙에 있어야 할 노예 드래곤이 어떻게 동대륙까지 온 거지?”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카르디플리안의 등장을 예상치 못했음을.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인간의 존재 역시도.
“저건 뭐야?”
“용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설마 인간?”
인간, 지크는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는 리치 드래곤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찾았다. 쓰레기 도마뱀들.”
* * *
카르제필로스는 작금의 상황이 의아했다.
‘뭐 하는 놈들이냐? 저것들은?’
저항군을 협박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새로운 놈들이 나타났다.
‘한 명은 노예 드래곤이고, 다른 한 놈은 처음 보는 드래곤. 그리고 마지막 한 놈은…… 인간?’
드래곤 두 마리와 인간 하나가 무슨 볼일로 나타났단 말인가?
뭐가 됐든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방금 저 인간이 쓰레기 도마뱀이라고 욕하지 않았는가?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말이지.’
잘못 들은 건 아니었는지 카르가스트가 눈을 부라리며 나섰다.
“뭐라고 했냐? 벌레 같은 인간 놈아.”
“꼴에 자기들이 쓰레기 짓한 건 인정하나 보네? 알아듣고 자진해서 나오는 걸 보니?”
“하……. 뭐 이런.”
어이가 없는지 카르가스트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모기가 겁도 없이 왱왱거리며 알짱대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마력 한 줌만으로도 터트려버릴 수 있는 인간이 주제도 모르고 설치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됐다. 그만 죽어라.”
더 이상 대화할 가치도 느끼지 못한 카르가스트가 마력을 운용했다.
마력의 압박으로 단숨에 머리통을 터트릴 요량이었다.
그게 먹히지 않을 줄은 몰랐지만.
“……!?”
“뭐 하고 있나? 빨리 죽이지 않고.”
“뭐, 뭐지?”
“왜 그러나, 카르가스트.”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왜 그러냐니까?”
답답한 마음에 카르제필로스가 언성을 높였다.
카르가스트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마, 마력이…… 발현이 안 됩니다.”
“뭐?”
“어? 저, 저도 그래요.”
“저도…….”
“저, 정말이네?”
“이, 이거 왜 이러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마력이 생성되지 않는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카르제필로스는 되묻기보다 마력을 일으켜보기로 했다.
‘음?’
마나를 끌어모았지만, 다시 흩어지면서 어딘가로 사라지고 만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
정말로 마법을 발현할 수가 없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갑자기 마력이 사라진다고?’
평생을 움직여오던 팔다리가 갑자기 고장 나버린 느낌.
왜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
그것도 뜬금없이.
그때 카르제필로스의 눈에 히죽 웃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순간, 번뜩이며 머릿속을 스쳐 가던 정보가 있었다.
클리포드가 했던 경고였다.
-회의장에 있던 동족 50여 명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신의 후예라는 인간 때문입니다. 녀석은 불사의 존재도 죽이는 힘을 지녔습니다. 게다가 마력과 마기를 흡수하는 기상천외한 능력으로 상대방을 완전히 무력화시킵니다.
처음 들었을 땐 질 나쁜 농담으로 치부했었다.
‘서, 설마…… 조심하라던 인간이 바로…….’
카르제필로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인간을 바라봤다.
동족 수십을 죽였다던 신의 후예가 바로 눈앞에 있다.
‘클리포드의 말대로라면 마기 역시 통하지 않겠지.’
확인 차원에서 슬그머니 마기를 끌어올려 보자 아니나 다를까.
마력과 마찬가지로 모이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확실하다. 그 신의 후예가 확실해!’
마력과 마기를 차단하는 존재가 있다니.
당시 클리포드한테는 비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직접 겪어보고 맞닥뜨리고 있었으니까.
‘큰일이다. 이, 이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 * *
카르제필로스가 속으로 애태우고 있을 때.
다른 의미로 큰일이라고 여긴 사람이 있었다.
촌장, 이든이 그랬다.
‘저 인간이 왜 쓸데없는 도발을……!’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서 하는 도발은 아닐 거다.
불사의 리치 드래곤임을 안다면 저렇게 무모하게 시비 걸 수가 없다.
‘한데, 표정들이 왜 저러지?’
이든의 눈에 보인 리치 드래곤들은 하나같이 당황하는 얼굴이었다.
뭔가 곤란한 일을 겪기라도 한 사람처럼 저마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리더 격인 카르제필로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뭐라 말하는 걸 듣긴 했지만 웅성거려서 자세히는 듣지 못했다.
하여튼 도망가려거든 지금이 기회다.
‘미안하지만 저 인간은 구해낼 수 없겠어…….’
자신이 도망치든 말든, 이미 리치 드래곤의 눈 밖에 난 이상 살아남을 가능성은 제로였다.
적어도 자신들이라도 기회를 엿봐 도망가는 편이 나은 판단이리라.
‘구하지 못해 미안하오.’
속으로 애도를 표하던 이든은 한슨에게 눈치를 줬다.
“한슨.”
“아…… 정말로 하실 겁니까?”
이든이 끄덕이자 한슨은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미끼가 된 촌장이 리치 드래곤들과 싸우며 시간 벌이를 하는 동안, 주민들을 데리고 도망가라는 말뜻을 한슨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서로 척하면 알아보는 것이다.
‘지금부터 셋을 셀 테니 준비하라.’
‘예.’
‘하나…… 둘…….’
눈짓으로 대화하며 속으로 셋을 카운트하는 순간이었다.
빠각-!
‘세…… 응?’
골통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가 날아왔다.
털퍼덕-!
발밑에 날아와 쓰러진 것은 카르가스트라 불리던 리치 드래곤이었다.
순간 무슨 상황인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리니 주먹을 푸는 인간이 보였다.
“너희들 리치 드래곤 맞지? 맞으면 일어나서 부활해 봐. 얼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리통이 부서지다시피 했던 카르가스트가 깔끔하게 회복한 채로 일어섰다.
영혼에 잠재되어 있던 마기가 육체를 자체적으로 복구시킨 것이다.
“일어나는 거 보니 리치 드래곤 맞네.”
“후우…… 내가 인간에게 맞았다고?”
카르가스트는 일어나고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마기와 마력이 차단된 건 둘째 치고 주먹질 한 방에 머리가 부서졌다는 게 용납하기 힘든 모양.
그러거나 말거나 지크는 아공간에서 깃털 검을 꺼냈다.
빨리 리치 드래곤들을 처리하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야 했으니까.
“맞는 걸로 놀라기엔 일러. 너희들 모두 내 손에 뒤질 테니까.”
“하찮은 벌레 주제에 제정신이 아니구…….”
순간 카르가스트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 모습에 이든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움직였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일단 한 마리는 죽였고.”
지크가 웃으며 다시 번개처럼 튀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