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zard's natural enemy has been reincarnated RAW novel - Chapter 199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199화
저벅저벅―
어두운 복도를 한 노인이 진중한 눈빛으로 걸었다.
다름 아닌 데칸의 국왕, 쉐인 2세였다.
하루 일과 중 하나인 보물창고의 관리를 위해, 그는 걷고 있었다.
석실 앞에 다다른 쉐인이 곧 손바닥을 수정구슬에 갖다 댔다.
―쉐인 필립 드 데칸. 확인되었습니다.
쿠그그긍.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자, 세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억만금을 주고서도 바꾸지 않을, 선조 때부터 내려온 수많은 보물이 잠들어 있었다.
쉐인은 헝겊으로 그 보물들을 정성스레 닦았다.
먼지를 털어내면서 보물의 숫자도 세어봤다.
‘모두 빠짐없이 잘 있구나.’
선대 국왕들이라면 빼놓지 않고 했던 창고의 관리를, 쉐인 역시 잊지 않고 지켰다.
국왕으로 등극한 이래로 하루도 빠짐없이.
엘프들이 인간을 믿고 맡겨놓은, 천마 대전 때 사용한 유물이었기에 관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지크라는 아이는 잘 쓰고 있으려나?’
2년 전, 독살을 막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지크라는 아이에게 두 가지 보물을 하사한 적이 있다.
반지와 스태프였는데, 지금도 잘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엘프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겐 빌려줘도 된다고 했으니, 문제는 없겠지.’
그 아이도 국왕이 내린 물건인 만큼 아껴서 잘 쓰고 있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정리를 끝낸 뒤 창고를 나섰다.
오늘 하루도 보물들을 안전하게 지켜냈다는 믿음을 가지며.
하지만, 쉐인은 몰랐다.
스르륵―
어느새 창고 안에 도둑이 들어와 있음을.
* * *
‘역시, 들어오기 쉽다니까.’
투명화를 풀며 모습을 드러낸 자는 철인, 클리포드였다.
염력으로 떠올라 왕성을 내려다본 그는 보호막이 미치지 않는 빈틈을 발견할 수 있었고, 순조롭게 왕궁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
이후 미리 숙지한 통로를 통해 지하의 보물창고에 이르렀고, 투명화를 쓴 채로 한 사람을 기다렸다.
다름 아닌 국왕을.
‘국왕이 아니고서는, 조용히 들어가긴 힘드니까.’
물론 염력을 쓴다면야 어떻게든 석실의 문을 부숴서 들어갈 순 있으리라.
하지만 그랬다간 여기저기 설치된 알람 마법과 폭음으로 인해 침입이 들통날 터.
‘그건 스텔라 님이 바라는 바가 아니지.’
최대한 조용히 보물창고를 털라고 하셨으니, 국왕이 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창고에 드나드는 걸 몰랐다면 한참을 기다릴 뻔했어.’
쉐인이 문을 열었을 때 투명화를 쓴 채로 들어갈 수 있었고, 덕분에 쉽게 잠입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물건들을 손봐볼까?’
창고 안에는 3천 년 전에 쓰인 엘프의 무구가 잔뜩 있었다.
도둑이었다면 모조리 훔치고 달아났겠지만, 클리포드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모조리 파괴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염력을 일으켰다.
물건 내부의 부품을 찌그러트림으로써 단숨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겠지만 동작은 하지 않으리라.
‘천마 대전이 일어난다면 필시 엘프의 무구들을 다시 이용하려 할 터. 하지만 이렇게 망가뜨리면 아무것도 못 하겠지.’
그것이 선구자들이 데칸의 보물창고를 노리던 이유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보물을 망가뜨릴 필요가 있었기에.
‘이걸로 마족들이 전쟁에서 질 확률은 줄어들었군.’
그렇게 모든 보물을 망가뜨린 클리포드는 임무를 다했다는 듯 창고를 나섰다.
투명화를 쓰고 유유히 왕궁을 나서는 동안,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서대륙으로 출발하기 전.
지크는 한 사람, 아니, 드래곤을 찾았다.
“서대륙으로 가려고 하는데요. 혹시 텔레포트 좌표 가지고 있는 것 있으세요?”
“예? 서대륙은 무슨 볼일로…….”
카르디플리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깨달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저희 동족들을 구하러……!”
“쉿. 목소리 낮추세요. 누가 듣겠어요.”
주변에 사람이 있었기에 바로 입을 막아버렸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정체가 드래곤이라는 걸 모른다.
자신이 드래고니안이 아닌, 노예 드래곤을 구하러 가는지도 모르고.
카르디플리안은 이내 감격에 겨운 얼굴이 됐다.
“동대륙도 그렇고 서대륙까지 넘어가서 저희를 도와주려 하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크 님!”
“목소리 낮추라니깐…….”
어색해하면서도 지크는 조용히 하라며 말을 돌렸다.
어디까지나 퀘스트의 보상이 탐나서 움직이는 것이었기에 양심에 찔리지 않을 수 없었다.
“됐고, 좌표 있어요, 없어요?”
“죄송합니다. 그쪽은 저도 동족들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영역이라…….”
‘흐음. 그럼 알아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나?’
같은 노예 출신 드래곤이었던 카르디플리안이고, 또 동대륙의 가이드를 자처했었기에 알고 있나 싶었지만, 헛다리를 짚은 듯하다.
하지만 다행히 소득이 아예 없진 않았다.
“좌표는 모르지만, 베르히만 항구에 가서 방법을 물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쪽이 서대륙과 가장 인접한 지역이니까요. 텔레포트 하려면 어차피 항구 쪽으로 가야 하기도 하고…….”
“베르히만 항구라…… 고마워요.”
목적지를 정했다.
* * *
가족들과 인사를 마친 지크는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방향을 잡자, 걸음은 빨라졌다.
그야 스킬인 빙하 길을 이용했으니까.
촤아아악!
지크가 달리는 길 앞으로 빙판이 도로처럼 쫙 깔렸다.
그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데 그 속도가 가히 마동차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엄청 빠르네, 이 스킬.’
이동속도를 300% 올려주는 풍신의 장화를 신고 있어서 더 그랬다.
‘이 속도면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겠어.’
아직 서대륙으로 가는 좌표는 구하지 못했지만, 자세한 단서는 항구에서 얻기로 했다.
‘가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속마음 읽기가 있는 이상 정보를 얻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그렇게 얼음을 뿌리며 숲길을 질주하듯 달리고 있는데, 지크의 감각에 뭔가가 걸렸다.
즉시 방향을 튼 지크가 아름드리나무 앞에서 멈췄다.
‘여기, 뭔가가 있다.’
푹!
땅속에 손을 박아 넣었다.
뭔가가 손아귀에 잡힌다.
곧바로 빼내자, 검은빛의 보석이 보인다.
‘이게 바로 마정석이라는 물건이구나?’
갑자기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뭔가 파묻혀 있는 느낌이 들길래 꺼내봤더니 이런 게 있었다.
마족 세이레에게서 얻은 마정석 탐색 스킬 덕분.
처음 보는 그 물건에 지크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이걸 먹으면 마기가 영구적으로 1 오른다고?’
흙을 털은 뒤 입에 넣어 삼켰다.
누가 보면 먹을 게 없어서 보석을 먹냐고 하겠지만 마기가 영구적으로 오르는데 고민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마정석을 섭취하였습니다.] [마기 1이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반가운 메시지에 지크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이거 좋은데? 다른 마정석은 또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려 봐도 아까와 같은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 가는 길에 또 느껴지겠지.’
그런 생각으로 다시 움직이려던 찰나.
문득 찾아야 할 사람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러셀 형의 행방을 궁금해하셨지.’
첫째 형인 피터와 달리 둘째 형 러셀은 처음부터 자신과 친하게 지냈다.
그런 러셀의 행방이 자신 역시 궁금했기에 눈을 감고 바닥을 짚었다.
[대지의 힘을 빌려 원하는 대상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위치를 추적할 대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주십시오.] [얼굴을 상세히 기억할수록 정확도가 높아집니다.]메시지에 따라 러셀의 얼굴을 떠올렸다.
1년 3개월 전, 후계자 시험을 위해 발길을 돌리던 러셀의 기억이 선연히 떠오른다.
[대상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위치 정보를 전송합니다.]‘찾았다. 방향도 같아.’
항구로 가는 길과 반대 방향이었으면 고민했겠지만, 다행히 방향도 같다.
‘러셀 형.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낼까?
지난 1년 3개월간, 무슨 일들을 하고 살았을까?
‘지금 만나러 갈게.’
지크의 움직임이 바람처럼 빨라졌다.
* * *
다그닥다그닥.
한 상단이 마차를 호위하며 가고 있었다.
어디에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으나, 한 가지 이색적인 부분이 있었다.
반들반들한 갑옷 차림의 기사와, 레더 아머를 입은 허름한 차림의 용병이 함께 호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의뢰를 받지 말 걸 그랬어.”
“저 콧대 높은 기사 놈들이랑 함께 다녀야 한다니.”
“동감이야. 불편해 죽겠네, 진짜.”
“쉿. 입조심해. 저놈들 귀가 얼마나 밝은 줄 알아? 오러인지 뭔지를 이용해서 청각까지 강화한다니까?”
“어이, 거기. 용병 찌끄래기들!”
수군거리던 용병들이 뜨끔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예? 저, 저희요?”
“그럼 용병 찌끄래기가 여기 너희 말고 또 있냐? 수군대지 말고 주변 경계나 잘해라! 조금 있으면 도적 떼가 출몰하기 좋은 지점이 나오니까!”
“예, 예이, 그, 그럽죠.”
평민인 용병들은 기사들의 호통에 저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신분에서나 무력에서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던 그들은 용병단도 마땅히 없는,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평범한 용병이었다.
소위 칼만 조금 쓸 줄 아는 무소속 용병인 것이다.
“제길. 평소처럼 잡일이나 맡을걸.”
“그래도 이번 일이 끝나면 큰돈 들어오잖아.”
“맞아. 한 달은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또 떠들고 있냐? 찌끄래기들아?”
기사의 벼락같은 호통에 용병들은 합죽이가 된 채로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그 모습을 호위 기사들이 혀를 차며 바라봤다.
“하여간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쓸모가 없긴. 적어도 인원수가 많아 보이게 해주는 효과는 있잖아?”
“큭큭, 맞아. 이것저것 귀찮은 일도 시킬 수 있고 말이야.”
“뭐, 방패막이로 이용하기엔 나쁘지 않지.”
중얼거린 기사들은 비웃음을 흘리며 용병들을 쳐다봤다.
한심한 인생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방패로 쓸 일도 없지 뭐. 도적 떼가 나타나면 우리 선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싼값에 부려 먹기엔 좋으니까, 상단에서 고용한 거지.”
중얼거리는 기사들이었지만, 그들은 몰랐다.
한 남자가 마법으로 그 대화를 귀담아듣고 있을 줄은.
‘우릴 방패막이로 쓰려고 고용한 거라고?’
그는 다름 아닌 러셀 맥러플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