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화. 되돌린 시간(1)(1/214)
1화. 되돌린 시간(1)
2023.11.01.
“대체 왜…….”
서늘한 음성이 로제테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로제테는 그 목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이미 시야가 뿌옇게 변해서 눈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누군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조슈아 에른하르트. 에른하르트 제국의 1황자. 그가 로제테의 앞에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실핏줄이 터져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선 서러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대체 왜 그랬지?”
로제테는 20년 평생 다 큰 남자가 이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심지어 상대는 늘 사람들 앞에서 완벽하기만 하던 황자였다.
차갑고, 때로는 냉소적이던.
“스승님과 다니엘이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죽였어! 대체 왜!”
어머니였던 전 황후를 잃었을 때도 울지 않았다던 그가 아이처럼 오열했다.
그게 로제테의 마음속에 있던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녀는 잔뜩 부르트고 찢긴 입술을 겨우 달싹였다.
“저는…….”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처럼 그의 스승인 아드리안 공작과 그의 친우인 다니엘 아드리안을 죽인 건 로제테였다.
로제테의 심장에 저주가 걸려 있고, 그 저주 때문에 댈러스 후작의 명령대로 몸이 움직였다는 것은 핑계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의 자의는 아니었지만 로제테는 분명 그를 죽였다.
로제테는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괴로워하는 조슈아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차가운 돌바닥이 그의 눈물 자국으로 얼룩졌다. 로제테는 숨죽이고 날것 그대로의 분노를 받아냈다.
잠시 후 남자가 일어났다. 감정을 갈무리한 그의 얼굴은 지독할 정도로 서늘했다.
“네 사형 날짜가 정해졌다.”
예상했던 일인 탓일까. 로제테는 그의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말에는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죽는다고 두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넋을 기릴 수는 있겠지. 그대도 일말의 죄책감이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 속죄하도록.”
그 말이 로제테의 마음을 또 한 번 건드렸다. 그녀는 목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남자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죄인이었고, 남자의 앞에서는 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남자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로제테를 보다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어스름한 달빛이 들어오는 감옥 안에는 로제테 혼자 남았다.
그제야 로제테는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말라가기 시작하던 눈물 자국 위로 또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열흘 전, 아드리안 공작과 다니엘을 죽이던 그 순간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히 기억났다.
-후작에게 이용당하는 게 괴롭지 않나?
로제테가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녀를 쉽게 공격하지 못했다.
-널 보면 내 딸이 생각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돌아가거라. 너는 이런 일에 어울리지 않아.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제껏 로제테의 손에 죽은 사람은 많았지만, 모두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빌거나 그녀에게 욕을 했다.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로제테는 아드리안 공작을 죽였다. 명색이 소드마스터를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가 그녀를 공격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를 죽인 순간부터 로제테는 줄곧 피로 얼룩진 제 인생을 후회했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댈러스 후작의 손을 잡지 않았을 텐데…….
‘돌아가?’
로제테는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고 혀를 깨물었다. 잇새로 흘러나오는 피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지가 묶여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피가 제대로 나지 않아 혀를 몇 번이나 다시 깨물고, 중간에 정신이 흐릿해졌지만 꿋꿋하게 마법진을 완성했다.
성공한 사람이 없다 하여 지금은 금기된 마법. 과거에 댈러스 후작이 강제로 읽으라고 했던 고서 중에 있던 마법이었다.
-만일을 대비하여 마법진을 익혀 두도록 해라.
아마도 후작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을 사용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댈러스 후작님은 이걸 이렇게 쓸 줄은 몰랐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이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로제테는 털썩 쓰러지며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마법진에서 터져 나온 빛이 그녀의 몸을 감싸 안았다. 로제테는 이제는 희미해진 눈물 자국을 보며 다짐했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는 꼭…….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낯선 듯 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천장이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금이 쫙쫙 가 있는 천장을 보던 로제테는 이내 여기가 어디인지 기억해 냈다.
댈러스 후작가에 입양되기 전 지내던 고아원이었다.
‘정말로 돌아왔어?’
로제테는 어리둥절하여 제 몸을 살펴보았다. 짤막한 팔과 다리, 단풍잎처럼 자그마한 손.
깡마른 것은 예전과 똑같았지만 전체적으로 몸이 작아져 있었다. 얼핏 보아도 성인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몸 같았다.
‘진짜 그게 가능했다고?’
마법진을 발동할 때만 해도 성공할 거란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시간을 돌린 것인지 아니면 그냥 꿈을 꾸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로제테가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파악하기 위해 뺨을 더듬거릴 때였다.
“로즈,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천천히 문이 열리며 한 아이가 들어왔다. 로제테는 적갈색 머리에 초록색 눈을 가진 아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제인 언니?”
그녀를 친동생처럼 아끼던 제인이었다. 로제테는 무릎으로 기어가 제인을 안았다.
맞닿은 제인은 따뜻했다. 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감촉이었다.
‘돌아왔어.’
그제야 로제테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터뜨렸다.
“로즈? 왜 울어? 악몽을 꿨어?”
로제테는 제인의 품속에서 고개를 저었다.
“아냐, 기뻐서……. 언니를 다시 보니까 좋아서 그래.”
제인은 10여 년 전, 모종의 이유로 죽었다. 그런 제인을 다시 보니 이번에는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열감이 로제테를 사로잡았다.
‘내가 바꿀 거야.’
제인의 미래도, 아드리안 공작가의 미래도.
‘그리고 그 남자의 미래도.’
하지만 지금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눈앞에 있는 제인이었다.
로제테는 13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옛 기억을 되새겼다.
로제테가 댈러스가에 입양되기 몇 달 전, 마을로 나갔던 제인이 도둑으로 몰렸다. 화근은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이었다.
제인이 그동안 우유 배달을 하며 정당하게 번 돈으로 산 원피스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도둑질을 했다고 오해를 한 것이었다.
-너, 그거 어디서 났어!
-훔친 거 아냐?
설상가상으로 그녀에게 직접 팔았던 옷가게 주인 또한 제인이 옷을 사 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정말 잊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 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주인 또한 제인을 도둑으로 몰아갔다.
-이건 제가 돈을 주고 산 거예요!
-네가 무슨 수로!
-우유 배달을 해서 돈을 모았어요!
제인은 열심히 제 무고함을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급기야 제인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제인이 몸을 옹송그리고 저항하자 그녀에게 돌팔매까지 하기 시작했다. 고작 열 살 아이의 작은 몸에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당시 로제테는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제인을 찾으러 갔다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
로제테는 제인이 도둑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었다. 잘못했다간 자신 또한 돌팔매질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찍이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만 보았다. 제인의 머리에서 새빨간 피가 흐르는데도 하지 말라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그리고 피를 잔뜩 흘린 제인은 의원의 진찰을 받기도 전에 숨을 거두었다. 로제테는 뒤늦게 그녀의 옆에 쪼그려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로제테는 죽기 전까지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물론 내가 나섰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겠지.’
오히려 최악의 경우 로제테 또한 돌팔매질을 당해서 똑같이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나섰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생각이 늘 로제테의 발목을 잡았다.
“언니, 내가 많이, 많이 미안해.”
로제테는 늘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사과를 중얼거렸다. 다시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정말 미안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제인은 그녀의 사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뭐야, 이것도 또 꿈을 꾼 거야?”
로제테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세차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꿈이라면 꿈이었다. 그 끔찍했던 모든 것들은 로제테가 시간을 돌림으로써 이제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었으니까.
그러나 없어진 미래라고 해서 그 일이 아예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제인은 또다시 도둑으로 몰려 죽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바꿀 수 있어.’
제인을 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댈러스 후작을 피해 도망가자. 그럼 그에게 이용당하는 일도, 아드리안 공작을 죽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로제테는 일단 제인에게 오늘 날짜를 물어보았다.
다행히 제인은 별 의심 없이 대답했다. 오히려 잔뜩 신이 난 눈치다. 그녀는 요즘 로제테에게 숫자를 가르쳐 주고 있었으니까.
“1월 5일! 숫자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서 헷갈리지? 어제가 4일이었으니까 오늘은 5일!”
제인은 어릴 때부터 로제테를 가르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다른 아이들은 고아가 글이나 숫자를 배워서 뭐에 써 먹냐고 그녀를 한심한 듯이 쳐다봤지만 제인은 야망이 컸다.
마을에 나가서 그나마 그녀에게 우호적인 서점 주인에게 조금씩, 조금씩 글과 숫자를 배웠다. 그리고 그걸 고스란히 로제테에게 가르쳐 주었다.
로제테가 처음 댈러스 후작가에 가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도 다 제인 덕분이었다.
“곧 내 생일이네.”
로제테의 생일은 1월 22일이었다. 정확한 생일을 알 수가 없어서 고아원에 처음 온 날을 생일로 삼았다.
로제테의 중얼거림에 제인이 기회를 잡았는지 묘하게 웃었다.
“자, 로즈. 이번 생일이 지나면 로즈는 몇 살이 되지?”
그거 몰라 지금 이 기나긴 질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제테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제 생김새로 나이를 대략 추측했다.
“여섯…… 살?”
“땡! 여섯은 일곱보다 하나가 적은 숫자잖아. 지금은 일곱 살이니까 일을 더해야지.”
“아, 여덟 살.”
나 곧 여덟 살이 되는구나. 생각보다 몸이 작았구나.
막연하게 생각하던 로제테는 문득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맙소사, 여덟 살이라면…….’
분명 댈러스 후작이 그녀를 찾아온 것은 여덟 살이 되던 해 봄이었다. 그리고 제인은 로제테가 여덟 살이 채 되기 전에 죽었다.
그러니까 제인은 며칠 뒤에 죽을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조금만 늦은 날짜로 돌아왔다면, 제인을 살리지 못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