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06)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06화. 미하엘 르쉐르의 청혼(106/214)
106화. 미하엘 르쉐르의 청혼
2024.02.14.
언뜻 붉은빛이 도는 은발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남자.
그는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있는 듯한 여리여리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를 보자마자 생각나는 아이가 있었다.
‘미하……엘?’
7년 전, 불시에 그녀의 삶에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 신원미상의 아이. 그날 이후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조차 들리지 않았던 아이.
그런 미하엘과 꼭 닮은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때, 로제테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가 환하게 웃었다.
곱게 휘어지는 두 눈을 보는 순간, 로제테는 확신을 얻었다.
‘미하엘이 맞아.’
저렇게 드문 외모에 웃는 모습이 예쁜 남자는 그 아이밖에 없으니까.
‘어쩐지, 쉘튼 왕국 출신이라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거구나.’
지난 7년 동안 내내 미하엘을 걱정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다.
자신을 구해 준 미하엘의 안위가 걱정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사로잡혀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가끔,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사한 것을 보니 이제야 마음속에 있던 작은 돌덩이를 완전히 치우고 안심할 수 있었다.
로제테는 제국 측 환영단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미하엘에게 다가갔다. 그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앞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시죠?”
“저기…….”
로제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다가 겨우 말했다.
“미하엘…… 맞지?”
미하엘이 싱긋 웃었다.
“제 이름이 미하엘은 맞는데, 누구신데 제 이름을 알고 계시는 거죠?”
“……네?”
로제테는 당황했다.
‘왜 못 알아보지?’
미하엘만큼은 아니지만, 로제테도 꽤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쉘튼 왕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에른하르트 제국에선 분홍 머리가 희귀했으니까.
게다가 로제테와 미하엘은 댈러스 후작에게 같이 납치되어 생사를 함께했다.
그런 로제테를 잊다니?
“어? 혹시 나 기억 못 하는 거야? 우리는, 그…….”
로제테는 자신과 미하엘의 사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잠시 버벅거렸다.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미하엘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전에 들었던 것보다는 살짝 목소리가 낮았지만, 여전히 청아한 웃음소리였다.
“농담이야.”
그가 조금 붉어진 눈가로 웃었다.
“내가 널 잊을 리가 없잖아, 로즈.”
로제테가 그제야 안심하며 그를 따라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로즈라고 부르지 말래도.”
“하지만 로제테보다는 로즈가 더 감미로운걸.”
“그…….”
이런 직설적인 말은 처음이라서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었다.
로제테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데, 시종이 황제가 오고 있다고 알렸다.
로제테는 얼른 미하엘에게 눈인사를 한 뒤 안토니 헉슬리 옆으로 돌아갔다.
“아는 사람이야?”
안토니가 물었다.
“응. 아마도.”
“어떻게 알아?”
“예전에 제국에 온 적이 있는 아이야. 그때 봤어.”
안토니는 뭔가 더 묻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지만, 때마침 황제가 홀 안으로 들어왔다.
제국 환영단은 제국식 인사를, 쉘튼 왕국 사절단은 왕국식 인사를 했다.
어깨에 붉은 휘장을 두른 황제가 인자한 미소로 사절단을 맞이했다.
“어서 오게나. 먼길 오느라 수고했네.”
사절단의 대표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황제의 반지에 입을 맞췄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부디 이번을 계기로 에른하르트 제국과 쉘튼 왕국의 관계가 돈독해졌으면 좋겠군.”
“저희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 짐은 가 볼테니 인사들 나누도록. 저녁에 열릴 환영 파티에서 다시 보지.”
“황송합니다.”
황제가 다시 떠나간 뒤 환영단과 사절단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로제테는 미하엘과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로제테가 미하엘의 팔을 끌고 사람들이 덜 북적거리는 구석 자리로 향했다.
“어떻게 된 일이야?”
미하엘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떻게 된 일이긴. 사절단으로 방문한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로제테가 목소리를 조금 줄였다.
“7년 전에 말이야. 그때 어떻게 된 거야?”
“아, 그때 말하는 거구나.”
로제테가 눈썹을 찡그렸다.
“나는 그동안 네가 엄청 걱정됐어. 그때 너는…….”
로제테가 주위의 눈치를 살피느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이번엔 미하엘이 그녀의 팔을 끌었다.
“나가서 얘기하자.”
“으응?”
로제테가 조금 당황하자 미하엘이 쉘튼 왕국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제국 황궁은 정원이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공녀께서 안내해 주신다고 하는군요. 혹시 같이 가실 분이 있으신가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하엘이 그럴 줄 알았다는 투로 재차 말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저만 다녀오는 수밖에요.”
“아, 저도 같이…….”
안토니가 끼어들려고 했다. 그러자 사절단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 그러고 보니 헉슬리 경. 이벨린 왕립 아카데미 출신이라고 하셨나요? 저도 거기 출신인데.”
그에게 잡힌 안토니가 도움을 청하는 얼굴로 로제테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라고 뭘 해 줄 게 없었다.
로제테가 그냥 웃고 있자 미하엘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가실까요?”
로제테가 망설이다가 그의 손을 잡았다.
이성인 두 사람을 단둘이 둘 수는 없어서 시종 하나가 뒤를 따라왔다. 그는 두 사람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대화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거리를 유지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서 로제테가 시종의 눈치를 보자 미하엘이 속삭였다.
“괜찮아. 어차피 들어도 상관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정 걱정되면 방음 마법을 쓰자.”
미하엘이 손가락을 가볍게 한 번 튕기자 두 사람 주위로 방음 마법이 덧씌워졌다. 밖의 소리는 들리지만 안에서 말하는 소리는 투명한 벽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 마법이었다.
“이러면 됐지?”
“으응.”
“그래서 내가 엄청 걱정됐다고?”
그렇게 묻는 미하엘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로제테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재빨리 물었다.
“그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미하엘에게 묻는 로제테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글쎄,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될까.”
“그때 넌 댈러스 후작을 잡으러 간다고 떠났잖아. 하지만 댈러스 후작을 잡은 건 우리 아빠였어.”
당시 아드리안 공작은 직접 댈러스 후작을 잡았다고 했다. 로제테가 혹시나 해서 백금발 머리의 남자아이를 보지 않았냐고 했지만, 그런 아이는 못 봤다고 했다.
“아, 아드리안 공작이 그렇게 말했단 거지?”
“응.”
“뭐, 틀린 소리는 아니긴 하지.”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거야?”
“아냐. 네 말이 다 맞아.”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린 미하엘이 로제테가 뭐라고 되묻기 전에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댈러스 후작의 뒤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도저히 후작을 찾을 수 없었어.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괜히 잘못 엮였다간 나도 무사하지 않을 수 있겠다, 라고.”
“…….”
“그래서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쉘튼 왕국과 교류하는 무역상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돌아갈 수 있었지.”
‘우여곡절’이라고 에둘러서 표현하긴 했지만 분명 쉬운 여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하엘은 당시 자신의 나이가 어림잡아 스무 살이라고 주장했지만, 로제테는 그가 여전히 농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성장이 느리다고 해도 열대여섯 살이었겠지.’
그런 아이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귀국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테다.
로제테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미하엘의 등을 토닥였다.
“힘들었겠네.”
“뭐, 그리 힘들지는 않았어.”
“그래도 도움을 청하지 그랬어? 나에게라도 말할 수 있었잖아. 그래도 네가 날 도와줬는데 그 정도는 충분히 해 줄 수 있었는데.”
“그러게. 그걸 생각 못 했네.”
미하엘이 피식 웃었다.
예전에도 비밀이 참 많은 아이였다. 성도, 출신도 나이도 모두 비밀…….
미하엘은 로제테를 ‘친구’라고 칭했지만, 사실상 그녀는 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예전 이야기는 지루하니까 그만 두자. 넌 어떻게 지냈어?”
미하엘이 화제를 바꿨다. 로제테는 그가 그날 일을 기억하기 싫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기꺼이 넘어갔다.
“나야 뭐, 잘 지냈지. 사실 그때 이후로 바로 이벨린 왕립 아카데미로 유학가서 얼마 전에 돌아왔어.”
“이벨린 왕국?”
“응. 생각해 보니 우리 되게 가까이 있었다.”
“그러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벨린 왕국에 갈 걸 그랬어.”
참 아쉽네, 라고 속삭인 그에게 로제테가 물었다.
“너는? 쉘튼 왕국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지냈어?”
“나도 뭐, 특별히 한 것 없이 지냈어. 그냥 영지에서 마법이나 공부하며 지냈지.”
“맞아, 영지. 그러고 보니 너도 귀족이랬지? 이젠 어디 가문 사람인지 말해 줘도 되지 않아?”
“그러네.”
미하엘이 한 걸음 물러나서 허리를 숙이더니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의미를 조금 늦게 알아챈 로제테가 그의 손바닥에 손을 올리자, 미하엘이 손등에 진하게 입을 맞췄다.
“내 이름은 미하엘 르쉐르. 쉘튼 왕국의 르쉐르 백작, 아니, 이젠 후작이지. 아무튼 그래.”
“후작?”
“응. 국왕 전하가 내 마법 실력을 높게 사서 후작위를 내려 주었다, 뭐 그런 이야기지.”
빙긋 웃은 미하엘이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러나 여전히 로제테의 손을 잡은 채였다.
“있지, 로즈. 그날 마지막으로 했던 말 기억해?”
“마지막으로?”
새삼스럽게 그날 미하엘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는 게 거의 없었다. 그가 그녀를 구해 주고 작별 인사를 말했다는 것만 언뜻 기억났다.
“글쎄. 기억나지 않아. 미안해.”
“괜찮아. 그땐 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지.”
그가 로제테의 손등에 또다시 산뜻하게 입을 맞췄다.
“널 데리러 다시 온다고 했어.”
아, 기억 났다. 그런 말을 했었던 것도 같았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넘겼던 말이었는데, 미하엘은 그 말 그대로 지금 그녀의 앞에 있었다.
“난 널 데리러 이곳까지 온 거야.”
미하엘이 그윽한 눈빛으로 로제테를 내려다보았다.
“나의 로즈. 만약 내가 너한테 나와 함께 가자고 하면.”
그가 살짝 입술을 벌려 로제테의 손끝을 입술로 물었다가 놓았다.
“나와 같이 가 줄래?”
“같이 가자는 말이 무슨 말인지 물어봐도 돼?”
“나 지금 네게 청혼 하는 거야.”
“……뭐? 장난하지 마.”
로제테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리자, 그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 로즈.”
“…….”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난 참을성이 별로 없거든. 내가 제국을 떠나기 전까지 대답해 줬으면 해. 안 그러면…….”
“안 그러면?”
로제테가 되묻자 미하엘이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네가 내게 반하도록 노력해야겠지. 내 방식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