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08)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08화. 미하엘의 결심(108/214)
108화. 미하엘의 결심
2024.02.16.
“공녀야말로 르쉐르 후작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는군.”
그는 미하엘이 로제테를 ‘로즈’라고 부를 때보다 더 언짢아 보였다. 사실, 표정은 평소와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상해 보였다.
옆에서 조슈아의 눈치를 보며 낑낑대는 실버만 봐도 그랬다.
“아, 그건…….”
왜 변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로제테는 재빨리 변명했다.
“친구니까요.”
“아하, 친구?”
이상했다. 분명 해명을 했는데도 조슈아의 분위기가 여전히 미묘했다.
“공녀는 친구가 참 많기도 하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로제테도 실버와 마찬가지로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조슈아의 눈치를 봤다.
그때, 그녀를 구원해 주듯 춤곡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춤곡이 시작됐네요.”
“그러게.”
미하엘이 웃으며 로제테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랑 한 곡 추지 않겠어?”
로제테가 본능적으로 조슈아를 흘끔거렸다. 그는 팔을 살짝 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어, 그…….”
그녀가 망설이자 미하엘이 속삭였다.
“친구끼리 춤도 한번 못 추는 거야?”
“그건 아니지.”
로제테는 망설이다가 미하엘의 손을 잡았다.
“그럼 다녀올게요, 황자님.”
“그래.”
“로즈, 가자.”
로제테를 데리고 홀 중앙으로 향한 미하엘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스탠딩 자세를 취했다.
음악에 맞춰 발을 내디딘 로제테는 미하엘이 아니라 조슈아 쪽을 흘끔거렸다.
‘기분은 좀 나아지셨으려나.’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미하엘이 그녀를 좀 더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별생각 안 하는데.”
“자꾸 황자 전하 쪽을 보는 것 같은데. 신경 쓰여?”
“아냐, 그런 거.”
로제테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실버를 본 거였어. 실버가 혼자 심심한 것 같아서.”
“흐응, 그래?”
“응.”
“그래도 지금은 나와 춤을 추는 중이니까 나에게 집중해 줬으면 좋겠는데.”
“알겠어.”
로제테는 간신히 조슈아에게서 시선을 떼고 미하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키도 많이 컸네?”
“나? 응. 많이 컸지.”
7년 전 미하엘은 로제테와 엇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었다. 외모도 그녀와 또래로 보일 정도로 앳됐다.
그런데 지금 그는 키가 부쩍 컸다. 아드리안의 두 형제나 조슈아만큼이나 커서 로제테는 그를 올려보기 위해 고개를 꺾어야만 했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은 앳된데.’
지금쯤 아마 성년이 되었을 텐데, 미하엘은 소년 같이 싱그러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또, 딴 생각하지?”
미하엘은 미소 짓고 있었지만, 살짝 언짢아 보였다.
“아냐. 네 생각했어.”
말하고 나서야 로제테는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7년 사이에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
“어쨌든 내 생각을 했다는 거지? 기쁘네.”
“뭐, 굳이 따지면 그렇겠지? 아, 근데 계속 말을 하다간 발을 밟을지도 몰라.”
“밟혀도 되는데. 아니, 네게 밟히는 거라면 기쁠 것 같아.”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로제테는 그 후로 입을 꾹 다물고 춤에 집중했다.
미하엘은 그 점에 조금 불만이 있어 보였지만, 그녀에게 대화를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주로 쉘튼 왕국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날 설득하려고 하는 것 같지?’
아까는 반 정도는 농담으로 흘려들었는데, 미하엘은 진심으로 청혼한 것 같았다.
‘충분히 생각하고 나중에 대답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럼 내가 불편해.’
몇 번을 생각해도 로제테의 대답은 같았다. 미하엘에게는 미안하지만 로제테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제일 큰 이유였고, 가족들과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저, 미하엘.”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답을 하려고 할 때였다. 어느새 춤곡이 끝나고 말았다.
“응? 할 말 있어? 한 곡 더 출까?”
“그게…….”
로제테가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어느새 두 사람에게 다가온 조슈아가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한 곡 추지 않겠어, 공녀?”
그때까지도 로제테에게 붙어 있던 미하엘이 그녀를 놓고 물러났다.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도록 해.”
“응.”
로제테는 사절단 틈으로 사라지는 그를 보다가 조슈아의 손을 잡았다. 조슈아가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그녀를 능숙하게 리드했다.
“실버는요?”
“다른 패밀리어와 놀라고 했어.”
“지금이라도 삐삐를 소환할까요?”
“그럴 건 없고, 지금은 춤에 집중하도록 해.”
“네.”
춤을 추는 동안 조슈아와 로제테 사이에서는 별다른 말이 오고 가지 않았다. 그러나 로제테는 미하엘과 춤출 때보다 조슈아와 있을 때 더 편안했다.
춤곡이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내내 조용히 있던 조슈아가 불쑥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대답을 제대로 못 들었군.”
“대답이요?”
“그래. 손수건에 대한 대답.”
그가 피식 웃었다.
“다니엘에게는 만들어 줄 테지. 곁다리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만드는 김에 내게도 손수건을 만들어 주지 않겠어?”
로제테는 왠지 모르게 조금 긴장한 것 같은 조슈아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빙긋 웃었다.
“그럼요. 당연히 만들어 드려야죠.”
* * *
그날 밤, 하루 종일 서 있느라 지친 로제테가 기절하다시피 잠든 뒤 미하엘의 패밀리어 페리토가 찾아왔다. 이번에 페리토는 통신 마법구를 입에 물고 있었다.
[삐잇, 삣!]로제테는 백사의 등장에 난리가 난 삐삐의 울음 소리에 깼다.
“삐삐, 무슨 일……. 어? 너는, 페리토?”
어느새 침대 밑까지 기어온 페리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기다려 봐. 삐삐, 괜찮아. 페리토는 널 해치지 않을 거야.”
[삣!]뱀은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다고!
이벨린 왕국에서 만난 뱀 패밀리어의 장난에 호되게 당한 삐삐가 과거를 생각하며 날개를 파닥였다. 단호한 삐삐의 말을 들은 페리토가 조금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쉬잇, 삐삐. 괜찮대도.”
로제테가 성난 삐삐를 달래는데, 통신 마법구에서 미하엘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 해?>
조금 뾰로통한 목소리로 답했다.
“자고 있었지.”
<이런. 내가 깨운 거야?>
“정확히는 삐삐가. 페리토를 보자마자 난리가 났거든.”
<아, 미안해. 그래도 페리토가 해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줘.>
로제테가 간신히 진정하고 제 어깨 위에 앉은 삐삐의 목을 간질였다.
“들었지, 삐삐? 괜찮대.”
[삣!]삐삐는 바닥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페리토를 보다가 창문 밖으로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백사가 조금 풀이 죽은 듯이 고개를 떨구었다.
로제테가 망설이다가 침대를 톡톡 치니 페리토가 기둥을 타고 올라왔다.
“네가 이해해 줘. 삐삐도 어쩔 수 없는 새잖아.”
쉬이익. 페리토가 혀를 날름거리며 소리를 냈다. 아마도 괜찮다고 하는 것 같았다.
안심한 로제테가 이번엔 페리토가 침대에 놓은 마법 통신구를 쥐며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야?”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로제테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 거 말고.”
<진짠데.>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페리토를 돌려보낼 거야.”
<안 돼, 잠깐만. 그러지 마.>
다급한 말에 로제테가 선심 쓰듯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용건은?”
<지금 얼굴 볼 수 있어?>
“그게 용건이야?”
<응. 얼굴 보고 싶어.>
“또…….”
로제테는 한숨을 푹 쉬었다. 대체 지난 7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미하엘이 참 많이 변한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미하엘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미하엘은 예전과 달라졌다. 물론, 전에도 로제테가 하지 말라고 해도 꿋꿋하게 ‘로즈’라고 부르는 뻔뻔함이 있긴 했다.
그런데 지금은 뻔뻔함을 넘어 얼굴에 철면피를 깐 것 같았다.
“미하엘, 네가 한 얘기 잘 생각해 봤어.”
<잠깐, 로즈.>
무슨 얘기를 할지 짐작됐는지 미하엘이 그녀의 말을 막았다.
<내가 말했잖아. 천천히 생각하고 답해 줘도 된다고. 지금 대답할 필요 없어.>
“더 생각해도 내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로제테의 단호한 목소리에 미하엘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날 좋게 봐 줘서 고마워. 하지만 미하엘, 나는 네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이유는 너도 알 거라고 생각해.”
<나에게 마음이 없어서?>
로제테가 콧잔등을 살짝 찌푸렸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말한 이유는 그건 아니지만, 그 이유도 없지 않아 있긴 하지. 어떻게 좋아하는 감정이 없는 사람과 결혼하겠어.”
<귀족들 사이에선 정략결혼을 하기도 해, 로즈.>
“그래서 넌? 마음도 없는 나와 정략결혼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그건 아니야. 난 네 마음을 원해.>
“그렇지? 그래서 안 돼.”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더 커. 있지, 나는 7년 동안 이벨린 왕국에서 있으면서 가족들을 오래 못 봤어. 심지어 3년 동안 못 봤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 너무 힘들었어.”
로제테는 루카스와 간신히 편지만 주고받던 때를 떠올렸다.
분명 뱃길이 막힐 것을 알았고, 가족들을 못 만날 것을 각오하고 떠난 유학길이었다. 그런데도 막상 가족을 만나지 못하니 방학 때는 우울한 감정에 시달렸다.
만약 조앤이나 멜로디 그리고 두 호위 기사가 없었더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테다.
그런데 쉘튼 왕국이라니. 기한이 있는 유학 생활과 달리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 했다.
몇십 년 동안 가족들을 보지도 못하고, 소식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건 끔찍했다.
‘그걸 모두 감수할 만큼 미하엘을 사랑한다면 모르겠지만, 미하엘은 그저 친구인걸.’
설령 이번 일로 미하엘과의 우정이 깨진다고 해도 이 말은 꼭 해야 했다.
“미안해, 미하엘. 난 널 따라갈 수 없어. 몇 번을 말해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거야.”
* * *
페리토가 풀이 죽은 채 돌아왔다. 미하엘이 백사가 건넨 통신 마법구를 주먹이 하얘질 정도로 꽉 쥐었다.
“내 사랑은 참 매정하기도 하시지. 천천히 답을 줘도 된다고 했는데 하루 만에 거절하실 줄이야.”
쉬이익. 페리토가 너무 상심하지 말라며 그를 위로했다. 미하엘이 다른 손으로 백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페리토.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페리토가 혀를 날름거리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라고.
“로즈가 당연히 날 따라오고 싶을 정도로 날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만약 그것도 실패한다면?
눈치도 없이 페리토가 다시 물었다. 미하엘이 조금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글쎄,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미하엘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역시 내 식대로 하는 수밖에 없겠지?”
[쉬이익?]“너도 알다시피 나는 좀 가학적인 성향이 있어서 말이야. 로즈가 울면서 내게 매달리는 모습도 보고 싶기도 하단 말이지.”
[쉬익.]“가족 때문에 나를 거절한 거라면, 거절할 명분 자체를 없애 주면 되지 않겠어?”
달빛만이 요요히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미하엘이 속내와 달리 선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