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19)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19화. 황제, 리처드 에른하르트의 변심(119/214)
119화. 황제, 리처드 에른하르트의 변심
2024.02.27.
릴리스 공녀는 황제의 목소리에 희미하게 깃든 노기를 눈치채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눈치를 보자 황제가 한숨과 함께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그냥 넘어갔다고 해서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하는 천치로 보이나?”
“천치라뇨, 무슨…….”
“당분간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릴리스 공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확실히 내가 성급하긴 했던 것 같아.’
그녀는 날 때부터 모두가 우러러보는 공녀였다.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었고,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할 수 있었다.
비록 황족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려야 했지만 황족도 릴리스 공작가를 마냥 얕보지는 못했다.
그러니 그녀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20여 년 전, 데뷔탕트 파티에서 당시 황태자였던 리처드 에른하르트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검은 머리에 황족 특유의 금안을 지닌 황태자는 기골이 장대하고, 위압감을 풍겼다.
만인의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면서, 모진 풍파 속에서 자신의 사람들을 완벽하게 지켜 줄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 남자였다.
릴리스 공녀는 마치 동화 속에서 왕자에게 한눈에 반한 공주처럼 그날 그에게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그래서 그에게 먼저 다가갔다. 황태자 또한 그녀가 나쁘지는 않았는지 그녀의 장단에 맞춰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데뷔탕트가 열리는 홀에서 나와 정원에서 입을 맞추기까지 했다. 릴리스 공녀는 그날 일어난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미 황제의 혼처가 정해졌을 뿐만 아니라 국혼 준비도 어느 정도 끝났다는 점이었다.
데뷔탕트 파티가 끝나고 저택으로 돌아간 릴리스 공녀는 아버지인 릴리스 공작에게 따졌다.
-왜 절 황태자비로 만들지 않으신 건가요?
릴리스 공작은 난감해했다. 릴리스 공녀 본인이 황궁에 갇혀 사는 것은 싫다며 질색을 하며 반대했었기 때문이다.
-황태자 전하께서 그런 분이신 줄은 몰랐으니까 그랬죠. 지금이라도……!
그녀는 아이처럼 떼를 썼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릴리스 공녀는 리처드 에른하르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지지 못한 것이라는 게 그녀의 승부욕과 독점욕을 더욱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그 후 그녀는 모든 혼사도 마다한 채 황태자의 비밀 연인이 되었다. 릴리스 공작이 알면 뒤로 넘어갈 만한 일탈이었다.
그가 국혼을 치른 뒤에도, 황제로 책봉된 뒤에도 그의 곁에 있었다.
사실 그녀라고 평생 황제의 그림자로 살 생각은 없었다. 그냥 한때의 유희 정도로 여겼다. 황후도 가지지 못한 황제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에 희열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루이스가 생기고 만 것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다.
릴리스는 제국에서 사생아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대충은 알았다. 제국에서 정부는 눈감아 주는 편이었지만 사생아는 아니었다. 사생아는 귀족이어도 귀족 취급도 제대로 못 받았다.
제국에서 가장 존귀한 황제의 피를 이었다고 해도 사생아는 사생아. 황족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미혼의 몸으로 아이를 낳은 릴리스 공녀의 평판은 또 어떻게 되겠나.
그 모든 사실을 안 릴리스 공작은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루이스를 숨겨 기르며 제 딸을 황후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회심의 독살 계획이 탄로 나고 오필리아는 무사했다. 그 뒤로 자잘한 암살 계획을 세웠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더 이상 루이스를 숨길 수 없어 황자로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릴리스 공작가의 권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부족했다. 릴리스 공녀는 가면 갈수록 애가 탔다. 사교계에서 미묘하게 달라진 평판 때문이 아니라 황제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황제는 그녀와 루이스를 조금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색을 보였다.
게다가 조슈아가 요즘 공을 세우고 다닌 뒤로 그를 아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던 건데, 이게 이렇게 들킬 줄이야…….
릴리스 공녀가 어금니를 꽉 깨무는데, 황제가 그녀의 손등을 조심스럽게 톡톡 두드렸다.
“게다가 내가 로제테 아드리안을 루이스의 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아이만 있으면 루이스는 지지 세력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어째서 내게 상의도 없이 아드리안을 건드린 거지?”
“아드리안 공녀가…….”
릴리스 공녀가 이를 꽉 깨문 채로 중얼거렸다.
“과연 우리 루이스와 결혼하려고 할까요?”
“흠?”
“그 아이는 이미 완벽한 아드리안이에요. 아드리안이 루이스의 힘이 되어 줄 리가 없잖아요. 등에 칼을 꽂는다면 모를까.”
황제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런 공녀의 마음을 돌리는 게 그대 역할이지. 애송이 마음 하나 못 잡아서 어떻게 큰일을 하려고.”
“하지만…….”
“하아, 레오니.”
황제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조슈아가 지난번에 해적왕으로 불리는 자를 잡아 온 것은 알고 있지? 무역을 주로 하던 귀족들과 상인들 사이에서 조슈아의 위상이 꽤 높아졌어.”
“…….”
“이번에는 직접 마물 토벌을 나서기도 했지. 비록 황후의 일로 잠깐 다시 수도에 오긴 했지만.”
“그래서요?”
되묻는 릴리스 공녀의 목소리가 제법 뾰족했다.
“그에 반면 루이스는 딱히 한 게 없어.”
황제의 팔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릴리스 공녀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래서 지금 우리 루이스가 1황자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그녀가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 아이는 날 때부터 완벽했어요. 저와 당신의 아들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모든 능력이 출중해요.”
“레오니.”
“물론 1황자와 달리 마법은 쓰지 못하지만, 검술 실력이 뛰어나고 머리가 비상해요! 어릴 때부터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던 아이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그 아이를…….”
“비약하지 말아. 루이스의 실력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귀족이 보기에 그렇다는 거야.”
릴리스 공녀가 입을 다물며 입술을 삐쭉였다.
“아직 루이스의 지지기반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가 자꾸 황후 쪽을 들쑤시면 여론이 어떻게 되겠나.”
“…….”
황제의 말에도 레오니는 기분이 상한 얼굴이었다. 평소였다면 저 뾰로통한 입술에 입을 맞추며 기분을 풀어 줬을 테지만…….
‘내키지 않는군.’
비단 지금뿐만 아니라 요즘 들어 레오니의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는 오필리아와 국혼을 치르기 몇 달 전 열린 데뷔탕트 파티에서 릴리스 공녀를 처음 보았다.
머리를 하나로 느슨하게 땋아 장미를 꽂고 있는 그녀를 보았을 때만 해도 황제는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그저 ‘소문대로 아름답군.’이라고 생각한 게 감상의 전부였다.
그런데 레오니 릴리스가 그에게 먼저 관심을 갖고 다가왔다. 레오니 릴리스는 그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다. 그게 그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비가 될 오필리아 이벨린에 대해서 들었다. 조용조용하고 나긋한 성품으로, 장차 황후가 되기에도 충분한 왕녀라고 했다.
좋은 비가 될지는 몰라도 그녀와의 생활이 재밌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황제는 금방 릴리스 공녀에게 빠졌다.
오필리아와 실제로 만나 국혼을 치른 뒤엔 릴리스 공녀를 향한 마음이 더 커졌다. 예상대로 제 눈조차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오필리아에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오필리아와 달리 당당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릴리스 공녀를 좋아했다.
그게 사랑인지, 아니면 단순히 호기심에서 파생한 소유욕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슬슬 릴리스 공녀의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루이스를 정식으로 황자로 인정하고 난 뒤부터였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레오니는 당당한 것을 넘어 아주 기고만장해졌다. 황궁을 제집처럼 헤집으며 마치 자기가 황후라도 된 것처럼 경거망동하게 행동했다.
나이가 든 탓일까. 오히려 황제는 조곤조곤한 오필리아가 끌리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함께 지내고 나니 오필리아의 진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나긋하고 조용하긴 했지만 결코 유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황제의 앞에서도 해야 할 말은 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관심이 갔다.
게다가.
‘조슈아 녀석도 내 생각과는 달랐지.’
검술도, 마법도 어중간해서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여겼는데, 조슈아는 양쪽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게다가 할 줄 알는 것은 귀족들과 시시덕거리는 것밖에 없는 루이스와 달리 제국을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행보가 확실히 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황제는 한때 레오니 릴리스와 국혼을 맺기 위해 릴리스 공작의 행동을 묵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굳이 릴리스 공녀를 황후로 맞이해야 하나, 라는 의문이 늘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번엔 그에게 상의도 없이 일을 벌였다.
아드리안을 노리다니. 성공했다면 또 모를까, 보란 듯이 실패하고 말았다.
릴리스 공작의 반응을 봐선 레오니 릴리스의 단독 행동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그가 총애하는 연인이래도 이번에는 선을 넘었다.
그가 그래도 릴리스 공녀에게 죄를 묻지 않고 덮은 건 그가 자신의 연인이자, 루이스의 어미이기 때문이었다.
‘이러다간 아예 황제 자리를 노릴 기세야.’
만약 루이스가 황태자가 안 될 것 같으면 조슈아를 황태자로 책봉하기 전에 황제를 죽여 황위 쟁탈전을 할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꺼림칙했다.
황제는 여전히 뾰로통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릴리스 공녀의 팔을 다소 거칠게 떼어 놓았다.
“리처드? 아니, 폐하?”
“이만 돌아가도록 해. 보는 눈도 있으니 당분간은 입궁을 자제하도록 해.”
황제는 그 길로 발을 돌려 황후궁으로 향했다.
릴리스 공녀는 손이 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쥐며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정원을 나섰다.
* * *
그날 밤, 실버가 로제테를 찾아왔다. 로제테에게 반가움을 표시한 실버가 뒤늦게 그녀의 앞에 몸을 숙였다.
로제테는 실버의 신호를 바로 알아들었다.
“타라고?”
[컹!]로제테가 망설이다가 실버의 등에 오르자 실버가 빠르게 밖으로 나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은빛 늑대가 향한 곳은 어릴 적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 숲이었다.
12년 만에 온 숲은 예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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