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20)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20화. 흔들리는 조슈아의 마음(120/214)
120화. 흔들리는 조슈아의 마음
2024.02.28.
12년 만에 온 숲은 예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어릴 적에 걸터앉았던 나무 그루터기가 좀 자랐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그나마도 로제테의 키가 그때보다 커서 오히려 예전보다 나무가 작아 보였다.
“왔나?”
감회에 젖었던 로제테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조슈아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황자님.”
조슈아는 가벼운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요 며칠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턱선이 날카로워져 있었지만, 표정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로제테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여긴 오랜만이네요.”
“그래.”
“실버 등에 타는 것도 오랜만이고요.”
조슈아는 로제테가 실버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실버의 애교를 받아 주던 로제테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재빨리 물었다.
“그러고 보니 황후님은 어떠세요? 의식을 찾으셨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래. 쉘튼 왕국의 의원이 해독제를 잘 만들어 주었는지 어마마마께선 금방 의식을 찾으셨어. 하지만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신 상태라 경과를 지켜봐야 해.”
“그렇군요. 혹시 내상 때문에 그런 거라면 제가 황후님을 좀 살펴봐도 괜찮을까요?”
“그대가?”
“네!”
로제테가 조금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벨린 왕국에 있는 동안 치유 마법을 많이 공부했거든요.”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서였다. 과거처럼 다니엘이 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친다거나, 다른 가족들이 아프게 된다면 치료해 주고 싶었다.
조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그대의 실력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어마마마께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 괜찮다면 내일 입궁하도록 해.”
“네, 감사해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나오라고 하셨나요?”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서.”
조슈아가 담백하게 말했다.
“감사 인사요?”
“생각해 보니 지난번에 감사 인사는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안 했었나? 로제테는 지난번 마법 통신구를 통해 조슈아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중간에 루카스 오빠가 들어오는 바람에 대화가 갑자기 끊기긴 했었지.’
그렇다고 해도 조슈아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로제테가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그렇긴 하지만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어요. 황후님도 황후님이지만, 제 가족이 걸린 일이었으니까요.”
그녀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이네스 언니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하긴, 나도 다니엘이 그렇게 행복한 모습을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처음 보았으니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조슈아가 로제테에게 물었다.
“기분은 어떻지?”
“돌덩이를 치운 것 같아요. 다니엘 오라버니가 이네스 언니에게 파혼을 요구한다고 할 때만 해도 많이 걱정됐거든요.”
“아니, 그거 말고.”
조슈아가 질문을 달리 해서 물었다.
“곧 엘리샤 댈러스가 처형당할 텐데 기분이 어떤가?”
“아, 그거요.”
로제테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드리안 가족들은 로제테와 엘리샤가 얽힌 복잡한 관계를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 엘리샤 본인 또한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과거의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로제테는 여전히 엘리샤가 자신과 삐삐에게 한 짓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과거가 되었기에 그 속상함을 아무에게도 풀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조슈아가 잊지 않고 물어봐 준 것이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로제테가 고민 끝에 대답했다.
“댈러스 후작이 그렇게 됐을 땐 많이 후련했어요. 원했던 복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후작은 죗값을 치렀으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엘리샤 댈러스는 모르겠어요. 저와 삐삐를 괴롭히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잘못한 건가 싶었거든요. 그저 궁금했어요. 날 왜 그렇게 대했는지.”
“……?”
“하지만 엘리샤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니 묻지 못했죠. 하지만 이번에 알았어요.”
로제테가 빙긋 웃었다.
“그냥 그 아이는 날 짓밟는 것을 즐겼던 것뿐이에요. 그게 엘리샤의 본성이었던 거예요. 저와 삐삐가 무슨 잘못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요.”
“그래. 다행이야.”
조슈아가 그녀에게 조금 더 다가오며 긍정했다.
“네가 털어냈다고 하니 나도 기쁘군.”
“황자님께서요? 왜요?”
“글쎄.”
그가 피식 웃었다.
“동지애라고 해야 하나.”
가볍게 대답한 그가 로제테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황자님, 일어나세요!”
로제테가 당황해서 조슈아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에게 또 빚을 졌어.”
“빚이라뇨.”
“그대가 세아릴 꽃을 찾아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이번에 정말 어마마마를 떠나보냈을지도 모르지.”
그가 로제테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손등에 입을 맞췄다. 손등에 닿은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조슈아에게 손등 키스를 받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요동쳤다.
“앞으로 그대는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키겠어. 내 이름을 걸고 약조하지.”
황자의 이름을 걸고 약조한다.
결코 가벼운 뜻이 아니었다. 로제테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어 입술만 벙긋거렸다.
그때, 조슈아가 여전히 입술을 손등에 댄 채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보석 같은 그의 금안이 흔들림 없이 그녀를 향해 있었다.
조슈아의 눈을 맞바로 쳐다본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만큼 그의 눈에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적은 없었다.
신뢰, 기쁨, 확신.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열정을 발견했을 때 로제테는 차마 그의 눈을 쳐다볼 수 없어서 시선을 피했다.
“저도 황자님을 지키도록 노력할게요.”
“기대하지.”
조슈아가 다시 일어나며 그녀의 손을 놓았다.
“밤이 늦었으니 이만 가 보는 게 좋겠어.”
“그렇……네요.”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
“알겠어요.”
로제테는 어색하게 웃어 보인 뒤 몸을 숙인 실버의 등에 올라탔다. 가슴이 콩닥콩닥 기분 좋게 뛰었다. 얼굴도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럼 가 볼게요.”
[컹!]실버가 다시 숲 바깥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등 뒤에 조슈아의 시선이 꽂히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조슈아는 멀어지는 실버와 로제테를 흔들림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로제테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는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 위를 지그시 눌렀다. 손바닥에 울림이 전해질 정도로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사실, 실버와 함께 숲에 도착한 그녀를 본 순간부터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마치 아드리안 공작이나 다니엘과 함께 격렬한 대련을 끝냈을 때처럼.
로제테에게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푸른 시선과 마주했을 땐, 숨이 멈춰 버리는 것 같았다.
과거를 통틀어 벌써 3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왜 로제테에게만 이러는 걸까. 단순히 그녀가 자신의 불행을 바꾸어 주어서 고맙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조슈아는 한참을 그렇게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저 멀리서 실버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은빛 늑대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조슈아는 제 어깨에 앞발을 갖다 대고 선 실버의 털을 쓸어 주었다. 대체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은빛 늑대는 혀를 내밀고 헥헥거렸다.
이것도 로제테를 만난 뒤 바뀐 변화였다. 그전까지 실버는 사람들이 흔히 늑대를 생각하면 상상하는 이미지 그대로였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적이고, 근엄한 짐승.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실버는 로제테만 만났다 하면 순한 대형견처럼 변했다.
그녀의 다리에 길쭉한 주둥이를 문대며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기도 하고, 낑낑 앓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마도 지금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공녀가 그렇게 좋나?”
[컹!]“대체 뭐가 그렇게 좋지? 네게 간식을 줘서 그런가? 그렇지만 너는 음식 없이도 살 수 있지 않나?”
[컹컹!]실버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자기가 로제테를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면서 말이다.
“어쩔 수 없는 현상?”
다시 바닥에 네 발로 선 실버가 답답하다는 듯 앞발로 땅을 퍽퍽 팠다. 겁도 없이 조슈아의 바짓자락을 물고 잘근잘근 씹기도 했다.
“실버.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지?”
조슈아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아예 기분이 상했는지 실버가 등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꼬리는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렸다.
조슈아는 그것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패밀리어는 주인의 감정을 공유한다고 했었나.’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번 인식하고 나니, 실버의 태도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과거와 달리 로제테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서 실버가 이러는 걸까. 하지만 조슈아가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오필리아에게는 이렇게까지 달라붙지 않던데.
그때 실버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 하울링을 했다.
나는 그냥 로제테가 좋아! 간식을 주지 않아도 좋다고!
실버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조슈아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그가 지금은 진정되어 제 속도를 되찾은 심장 부근을 매만졌다.
말갛게 웃던 로제테를 생각하자 가까스로 진정된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다. 설마 내가 로제테를…….
조슈아는 여전히 꿍얼거리는 실버를 보다가 숲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골치 아픈 사건이 해결됐지만, 여전히 머리 아픈 밤이었다.
* * *
다음 날, 로제테는 루카스와 함께 황궁으로 향했다. 루카스는 잠시 응접실에서 대기했고, 로제테는 대기하고 있던 조슈아와 함께 오필리아의 침실로 향했다.
“로제테 왔구나.”
로제테를 발견한 오필리아가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조슈아가 깜짝 놀라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
“일어나실 필요 없습니다, 어마마마.”
“맞아요, 황후님. 편히 계세요.”
로제테까지 만류했지만 오필리아는 조슈아의 도움을 받아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손님을 누워서 맞이할 수는 없잖니.”
오필리아가 힘없이 미소 지었다. 로제테는 조심스럽게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그녀를 관찰했다.
오랜만에 다시 본 오필리아는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흰 피부는 희다 못해 푸른 핏줄이 보일 정도로 창백했고, 입술도 살짝 보랏빛이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모습은 이렇지만 거짓말이 아니라 몸은 정말 많이 좋아졌단다. 게다가 로제테, 널 보니 더 기운이 나는 것 같아.”
로제테는 일부러 헤헤, 거리며 웃었다.
“저도 황후님을 다시 보게 되어서 기운이 펄펄 나요.”
“어머, 그러니?”
싱긋 웃던 오필리아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웠다.
“나 때문에 아드리안과 리베라 영애가 곤혹을 치렀다고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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