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23)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23화. 조금씩 피어나는 감정(123/214)
123화. 조금씩 피어나는 감정
2024.03.02.
“뭐, 조금 고맙기는 했어.”
로텐 경이 잠시 숨을 멈추었다. 이자벨이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여전히 괜한 참견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로제테가 이마를 짚었다.
“언니…….”
이왕 인정할 거면 확실히 고맙다고 하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로제테의 걱정과 달리 로텐 경은 이자벨의 말에 이미 마음이 사르르 녹은 얼굴이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참 보기 좋았다.
‘언니와 잘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로제테는 문득 로텐 경의 모습과 그녀에게 다정한 말을 속삭이던 미하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비교해 보았다.
‘다른 것 같아.’
미하엘은 분명 그녀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지금이야 면역이 생겼지만, 처음엔 멋도 모르게 설렌 적이 있을 정도로.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그의 눈에는 로텐 경만큼 애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미하엘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사실을 다시금 확신하자 기분이 이상했다. 배신감을 느낀다거나 실망감이 든 건 아니었다.
다만…….
‘그럼 대체 왜 그런 거지?’
미하엘은 대체 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속삭이며 그녀를 데려가려고 하는 걸까.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로제테의 마법?
하지만 그는 그녀의 도움이 필요 없어도 될 정도로 꽤 수준급의 실력을 가졌다.
아드리안과의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미하엘은 아드리안에게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체 미하엘이 진짜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꼬맹아, 무슨 생각해?”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로제테는 제 눈앞에서 손바닥을 위아래로 흔드는 루카스의 행동에 정신을 퍼뜩 차렸다.
“딱히 별생각은 안 했어요. 그냥…….”
로제테는 재빨리 주제 하나를 지어냈다.
“곧 사냥 대회구나 싶어서요.”
다행히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러네. 사냥 대회도 얼마 안 남았어.”
그가 씨익 웃었다.
“그동안 다른 걱정 때문에 사냥 대회는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로제테가 세 사람에게 물었다.
“다들 이번에 사냥 대회에 참가하세요?”
가장 먼저 대답한 건 로텐 경이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황자 전하께서 참가하신다면 할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난 할 거야.”
이자벨이 새침하게 답했다.
“날 무시하는 사람들의 코를 그나마 납작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사냥 대회니까.”
“나는 원래 귀찮아서 안 했는데 말이지.”
루카스가 기지개를 켜며 로제테를 살폈다.
“우리 꼬맹이가 손수건을 주면 참가할까 싶기도 하고.”
로제테가 그를 흘겼다.
“그런다고 제가 손수건을 줄 것 같아요?”
“예전에 형이 검술 대회에 참가할 때는 만들어 줬잖아.”
“그때 오빠에게도 만들어 줬잖아요.”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뭐가 다르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로제테는 눈을 빛내고 있는 루카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요.”
그때 로텐 경이 아차,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아드리안 경. 저희는 이만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아, 그렇군요.”
자리에서 일어난 이자벨이 두 동생에게 충고했다.
“너희 둘,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구경하다가 돌아가.”
루카스가 툴툴거렸다.
“우리가 아직도 애인 줄 아나.”
“하는 짓은 어릴 적과 다를 게 없으니까 하는 소리잖아. 알겠지, 로즈? 네가 저 녀석을 잘 데리고 들어가.”
“네, 언니.”
로제테는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짓다가 루카스의 팔에 머리를 기댔다.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루카스에게 물었다.
“오빠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
“엥?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냥요. 다니엘 오빠는 곧 결혼할 거고, 이자벨 언니도 호감 있는 사람이 생긴 것 같은데 오빠는 없나 해서요.”
루카스가 손을 휙휙 저었다.
“그런 거 없어.”
“진짜요?”
“그래.”
그때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는 너는, 꼬맹아? 넌 좋아하는 사람 같은 건 없어?”
“네?”
갑자기 왜 자신에게 불똥이 튀나 싶어 로제테가 눈만 깜빡이는데, 루카스가 제법 진지하게 캐물었다.
“너도 이제 성인이잖아? 인정하긴 싫지만 언젠가는 결혼도 할 테고.”
“결혼이요?”
“그래.”
루카스가 조금은 의기소침하게 중얼거렸다.
“평생 나나 가족들이 널 끼고 살 수는 없으니까.”
그 말에 로제테 또한 우울하게 생각에 잠겼다.
‘역시 그런가?’
사실 로제테는 아드리안을 지키겠다는 다짐 이외에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막연히 모든 것을 바로잡고 난 뒤에도 아드리안에서 지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루카스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벌써 성인이었고, 복수 외에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과거엔 한 번도 사귀지 못한 친구도 사귀었고, 아카데미도 졸업했다.
그렇지만 사랑과 결혼은 왠지 멀게만 느껴졌다.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녀가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제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아드리안에서 지낼 수 없는 건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루카스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그냥, 그러니까…….”
그가 횡설수설했다.
“다니엘 형도, 이자벨 누나도, 나도 결혼을 해서 가정이 생기면 지금처럼 너를 챙겨 줄 수 없잖아. 생각하긴 싫지만 아버지도 언제까지 네 곁에 있을 수는 없고.”
그래도 로제테가 조금 우울해하자 루카스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에잇, 모르겠다. 그냥 꼬맹이 넌 이 오빠랑 평생 사는 거야.”
“진짜요?”
“그래! 이상한 놈에게 꼬이는 것을 보느니 그냥 내가 평생 데리고 사는 게 나아!”
로제테는 그의 품속에 얼굴을 묻은 채로 푸스스 웃고 말았다.
‘하지만 루카스 오빠도 오빠만의 인생이 있으니까.’
말은 저렇게 해도 루카스 또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가정을 꾸리게 될 것이었다.
그의 성격상 결혼을 하더라도 로제테를 저택에 데리고 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건 로제테가 원치 않았다. 말 그대로 루카스에겐 그의 인생이 있는 거니까.
‘나도 나만의 인생을 찾아 떠나야겠지.’
과거의 복수나 아드리안을 지키겠다는 목표 말고도 다른 목표를 찾아야 할 때가 언젠가 올 테다.
마법 재능을 이용하여 후학을 양성할 수도 있을 거고, 루카스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결혼이라…….’
그 순간, 로제테의 머릿속에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은빛 머리에 한낮의 태양 같은 금안을 지닌 남자.
조슈아 에른하르트. 그녀와 모든 것을 공유한 남자.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그의 얼굴이 떠오른 것일까.
로제테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황자님도 황자님만의 인생이 있는걸.’
곧 황태자 자리를 놓고 본격적인 권력 싸움이 일어날 터였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린다면 조슈아는 황태자가 될 것이고 그의 세력을 지지해 줄 황태자비를 맞이할 것이었다.
그의 나이도 어느새 스물세 살이었으니까. 사실 지금까지 약혼녀나 연인이 없는 게 더 이상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지낼 수는 없겠지.’
지금까지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달려왔다. 밤에 몰래 숨어든 실버를 통해 대화도 나누고, 또 어떨 때엔 숲에서 밀회 아닌 밀회를 가졌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럴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건 조금 아쉬웠다. 유일하게 과거를 공유하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로제테는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의 계획대로였다면 그녀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그녀 혼자여야 했다. 애초부터 고독을 택하지 않았던가.
조슈아는 그런 그녀의 삶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가 또다시 예고 없이 사라지는 그런 인연.
그러니 때가 되면 보내 줘야 하는데…….
왠지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꼬맹아, 왜 그래? 이 오빠가 함께 있어 준다니까 그렇게 좋아?”
로제테가 계속 품에서 도리질을 하자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한 루카스가 킥킥거렸다. 그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으이구, 여전히 애야, 애. 넌 어떻게 10년이 넘게 지나도 변하지 않아?”
어쩌면 그건 아드리안의 애정 때문일 거라고, 로제테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아드리안의 네 사람이 있었기에 그녀는 그들 앞에서는 아이처럼 굴 수 있었다.
“그냥요.”
로제테는 웅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루카스의 온기 덕분일까. 어느새 우울감은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았다.
* * *
“몸은 좀 어떠십니까, 어마마마?”
조슈아의 물음에 오필리아가 미소 지었다.
“괜찮단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몸이 가벼워.”
조슈아 또한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아챘다. 확실히 오필리아의 안색은 로제테가 치료한 뒤로 눈에 띄게 좋아졌다.
“다행입니다.”
“그것보다 이제 북부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니?”
“지시를 남겨 두고 왔습니다. 당분간은 저 없이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구나. 이 어미야 네가 곁에 있으니 좋지만, 나 때문에 네 계획이 틀어지지 않나 걱정돼.”
“어마마마께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조슈아는 제 대답에도 안색이 어두운 오필리아를 보다가 실버를 소환했다.
[컹!]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판단한 실버가 오필리아에게 다가갔다. 오필리아가 실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래, 실버. 오랜만이구나.”
[컹!]실버가 반가움을 표현했다. 꼬리도 살짝 흔들었지만, 로제테를 만났을 때만큼 격하지는 않았다. 로제테를 봤을 땐 저러다 꼬리가 부러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붕붕 휘저었으니까.
실버를 보며 묘한 감정에 휩싸였던 조슈아는 오필리아의 질문에 정신을 번뜩 차렸다.
“그런데 조슈아.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실버라는 이름은 네가 지은 거니?”
“……네?”
조슈아가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을 찾고 되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그냥.”
실버를 쓰다듬은 오필리아의 손가락 사이로 은빛 털이 반짝였다.
“네가 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어미의 눈은 정확했다. 실제로 과거에 조슈아는 실버에게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고, 이번에도 로제테가 아니었다면 실버는 이름이 없었을 거였다.
하지만 조슈아는 시치미를 뗐다.
“제가 지었습니다.”
“그래?”
오필리아가 수상쩍게 미소 지었다.
“‘실버’가 정말 네 작명 실력이라는 거니? 털이 은색이라고 실버야?”
“그…….”
조슈아가 차마 긍정하지 못하고 어물거리는데, 오필리아가 이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로제테, 그 아이 말이다.”
그녀는 조슈아가 흠칫거리는 것을 못 본 척하며 말을 이었다.
“삐삐가 삐삐 하고 운다고 삐삐라고 이름 지었다고 했지? 그런 것을 보면 네 작명 실력도 그 아이와 비슷하구나.”
/20240302154506595290_EAB280EC88A0+EBAA85EAB080EC9D98+EB8C80EBA788EBB295EC82.jpg a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