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36)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36화. 뱃놀이(2)(136/214)
136화. 뱃놀이(2)
2024.03.15.
“내가 그대를 로제테라고 불러도 될까?”
바람에 실려 온 것 같은 나긋나긋한 목소리. 로제테는 조슈아의 표정과 목소리에 홀려 그의 말뜻을 조금 늦게 알아들었다.
“……네?”
저도 모르게 반문했던 그녀가 이번엔 비명을 지르다시피 목소리를 높였다.
“네에에?”
로제테가 뒤늦게 주위 시선을 의식하며 두 손으로 입을 가리자, 조슈아가 작게 소리 내어 웃으며 물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야 당연히…….”
로제테는 웅얼거리며 말을 아꼈다.
‘일단 너무 갑작스럽지.’
조슈아는 어릴 적부터 가족처럼 자란 다니엘과 루카스를 이름으로 부르며 막역하게 대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이자벨 또한 어릴 적엔 이름으로 부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로제테는 이름으로 부른 적이 거의 없었다.
‘아예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나마도 아드리안 외에 조슈아가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름이 가진 무게 때문이었다.
로제테가 살고 있는 에른하르트 제국의 귀족 사회에서는 호칭이 꽤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보통 성과 함께 직위를 나타내는 호칭으로 상대를 불렀다.
이름으로 부르는 건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 같이 특별한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동안 조슈아가 로제테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에게 거리를 두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인이 된 뒤로 호칭도 ‘너’에서 ‘그대’로 바뀌지 않았었나.
그런데 왜 조슈아는 이제 와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고 선언하는 걸까.
그의 의도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자, 조슈아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혹시 기분이 상한 건가?”
“아뇨, 그건 아니에요.”
로제테는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그저 갑작스러웠을 뿐.
조슈아의 표정을 살피며 그의 의중을 가늠해 보았지만 역시나 생각을 읽어 낼 수는 없었다. 결국 로제테는 직접적으로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건지 이유를 여쭤 봐도 될까요?”
“이유가 필요할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동안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으셨잖아요.”
“흐음.”
조슈아가 로제테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노를 저어 다른 사람들에게서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실버가 열심히 헤엄쳐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그러고 싶어서, 라고 하면 부족할까?”
“그러니까 왜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드셨는지가 궁금해요.”
“다니엘이나 루카스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면 될까?”
“하지만 이자벨 언니는 이름으로 부르시지 않잖아요.”
“아드리안 경보다는 그대와 더 친분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게다가 굳이 따지자면 아드리안 경은 황실 기사단 소속 기사로서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려고 하는 거고.”
“그렇군요.”
조슈아가 로제테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그래서 싫은 건가?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거라면 솔직히 말해도 돼.”
“그게…….”
로제테가 가까워진 조슈아의 시선을 피해 옆을 흘끔거렸다. 실버와 삐삐가 배 옆에서 동동 뜬 채로 이 상황을 어쩐지 흥미진진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싫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따지자면 좋았다.
조금 전 조슈아가 흘러가듯이 속삭인 ‘로제테’라는 이름이 감미롭게 들렸으니까.
그가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로제테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샘솟았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혹시 사람들의 이목이 걱정된다면, 둘이 있을 때만 그렇게 부르도록 하지.”
조슈아가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은 사람처럼 말했다. 로제테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로제테.”
다시 한번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로제테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로제테. 분홍 머리카락이 마치 장미꽃을 닮았다고 고아원 사람들이 지어 준 이름.
제인을 비롯하여 고아원 사람들이 다정히 불러 주었기에 이름을 좋아할 때도 있었지만, 이 이름이 싫은 적도 있었다.
-너 같은 게 그런 어울리지도 않는 과분한 이름을 갖고 있다니. 저런 칙칙한 분홍색이 어딜 봐서 장미색이라는 거야?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엘리샤가 과거 그녀의 이름을 비웃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콤플렉스로 여기던 분홍 머리가 좋아진 것처럼, 가족들이 애정을 담아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자신의 이름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조슈아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가족들이 불러주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가족들이 부를 땐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다면, 조슈아가 부를 땐 낯간지러우면서도 행복했다.
조슈아는 특별한 감정 없이 이름을 부르는 것일 테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로제테가 두 뺨을 감싸쥐며 콩닥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는데, 조슈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로제테, 혹시 괜찮다면 그대도 나를…….”
그러나 그의 말은 채 완성되지 못했다. 말하는 도중, 그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꾹 다물었기 때문이다.
“네?”
로제테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되묻자 그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아니다. 그건 너무 빠른 것 같군.”
“빨라요?”
“그래.”
대체 뭐가 빠르다는 걸까. 로제테는 궁금했지만,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다. 조슈아의 성격상 묻는다고 해서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황자님도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하는 건 아닐 테고.’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부정했다.
귀족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큰 만큼, 황족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도 컸다. 아니, 귀족의 것과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황족에게 이름은 가족, 그것도 피가 진하게 이어진 직계 가족이나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직계 가족끼리도 부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현 황제 또한 조슈아를 이름이 아닌 ‘황자’라고 부르고는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조슈아를 이름으로 부르라는 말을 하려 했다니.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로제테는 더 이상 조슈아가 하려고 했던 말에 관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다시 물속에 손을 집어넣어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곧 황자님의 탄신일이지 않나요?”
로제테는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해 보았다. 조슈아의 생일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여름 무렵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 다음 달이지.”
“얼마 안 남았네요. 파티가 열리겠죠?”
“아마도 그러겠지.”
“황자님이 주인공인 날인데 별로 관심이 없으시네요?”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나?”
“그야, 생일이니까요.”
픽, 하고 웃은 조슈아가 심드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생일은 성가실 뿐이야. 진심 없는 축하를 받는 것도 한두 번이지. 원치도 않는 축하를 받는 것도 이제는 지겨워.”
“하지만…….”
로제테는 아드리안가에 와서 처음으로 맞이했던 생일을 떠올렸다.
여덟 살의 생일 이후, 아드리안 공작과 삼 남매는 그녀의 생일 때마다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이번엔 어떤 생일 파티를 해 줄지 고민했다.
로제테의 반대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떠들썩한 파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인을 비롯한 고아원 아이들을 초대하기도 했고, 가까운 친구를 초대해 식사를 하기도 했다.
생일은 그저 고아원에 버려진 날이라고만 여겼던 로제테는 성인이 된 지금도 생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조슈아가 생일의 즐거움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안쓰러웠다.
“왜 그렇게 보지?”
“황자님의 이번 생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날이 될 수 있도록 제가 노력해 볼게요.”
“그대가?”
“네!”
로제테는 기합이 잔뜩 들어갔다.
“사실 저도 생일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어요. 제가 살던 고아원에선 여유가 충분하지 않아서 생일을 화려하게 챙겨 주지 못했고, 댈러스 후작가에서는 다들 제 생일이 언제인지도 몰랐으니까요.”
“…….”
“게다가 제 생일은 태어난 날이라기보다는 고아원에 버려진 날이어서 특별하다는 느낌이 없었고요. 그렇지만 다니엘 오빠의 말을 듣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다니엘이 뭐라고 했는데 그러지?”
“제 생일은 제가 버려진 날이 아니라, 아드리안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 날이랬어요. 그날, 제가 그 고아원에 갔기 때문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거라고요.”
조슈아가 순순히 긍정했다.
“그건 그렇군.”
“황자님 생일도 마찬가지예요.”
고개를 주억거리던 조슈아가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내 생일이?”
“그날이 있었으니 제가 황자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거잖아요. 진심이 없는 축하만 들으셨다고 하셨나요? 하지만 그 속에 정말 진심이 하나도 없었을까요?”
로제테가 계속해서 설명했다.
“황후님도, 아빠도, 다니엘 오빠도 모두 황자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했을 거예요. 실버도 말이에요!”
잠자코 듣고 있던 실버가 동의하듯 컹, 하고 짖었다.
“그리고 이젠 저도 있으니까요. 전에는 제가 어려서, 아니, 사실 어렸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챙기지 못했지만 이젠 챙길 수 있어요.”
“그대가 축하해 주는 생일이라.”
작게 중얼거리던 조슈아가 피식 웃었다.
“꽤 즐겁겠어.”
“그렇죠?”
“그대가 어떤 생일을 준비해 줄지 기대하도록 하지.”
로제테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웅얼거렸다.
“그,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기대하지 말라는 거지?”
“진심으로 축하해 드릴 거예요. 하지만 저는 파티 같은 것에는 자신 없어서…….”
“파티 같은 것은 아무래도 괜찮아.”
조슈아가 그녀의 말을 끊고 말했다.
“중요한 건 그대의 진심이지.”
“그…….”
“야, 꼬맹이!”
로제테가 뭐라고 반박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로제테의 뒤쪽에서 루카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녀의 뒤를 확인한 조슈아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기어코 따라왔군.”
로제테는 그를 따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동행 없이 배에 혼자 탄 루카스가 무서운 기세로 노를 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