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daughter of the great wizard of the famous swordsmanship RAW novel - Chapter (138)
검술 명가의 대마법사 막내딸 138화. 악몽(138/214)
138화. 악몽
2024.03.17.
숨이 막혔다. 이제는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적의 어린 눈빛이 그녀를 옭아맸다.
꿈속의 로제테는 간신히 입을 열어 해명했다.
-하지만 이제 다 없는 일이 되었잖아요. 내가 시간을 돌렸어요. 아빠도, 다니엘 오빠도, 황후님도 모두 무사해요. 댈러스 후작도 사라졌고요.
-그건 네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고작 시간을 돌려 모든 것을 바로잡았다는 걸로 뭐가 달라지지?
하지만 황자님은 제게 시간을 돌려 줘서 고맙다고 하셨잖아요. 과거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고…….
[삐이잇!]평소보다 우렁차고 날카로운 삐삐의 울음소리에 로제테는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마자 관자놀이를 타고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삐이이? 삐잇!]계속해서 삐삐가 무슨 일이냐며, 괜찮냐고 물었지만 로제테는 바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두컴컴한 천장을 보며 한참이나 눈을 깜빡인 뒤에야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꿈이었구나.’
그러나 조금 전의 일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도 로제테는 진정할 수 없었다. 삐삐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떠는 로제테의 얼굴에 연신 뺨을 비볐다.
[삐잇.]내가 실버처럼 몸이 컸다면 널 꽉 안아 줄 수 있었을 텐데.
로제테는 삐삐가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것을 들으며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괜찮아, 삐삐. 그냥 악몽을 좀 꿨을 뿐이야.”
[삐이?]“그냥 악몽.”
[삐이이.]그냥 악몽이 어디 있어? 괴물이 괴롭혔어?
“아냐, 그런 건 아니야.”
사실 괴물은 나였지. 로제테는 씁쓸하게 미소 짓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황자님이 보고 싶어.”
[삐이?]실버 주인 말이야? 삐삐가 그렇게 물었지만 로제테는 차마 긍정하지 못하고 몸을 옹송그렸다.
“황자님이…….”
날 경멸하지 않는다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해 입을 꾹 다물자 삐삐가 로제테의 젖은 뺨에 제 얼굴을 문댔다.
[삐이이?]내가 당장 황궁으로 날아가서 실버 주인을 불러올까? 그럼 네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아?
그렇게 묻는 삐삐의 질문에 로제테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냐, 삐삐. 마음은 고맙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삐이이…….]“황자님은 아무 때나 부를 수 있는 분이 아니거든. 게다가 지금은 주무실 테고 또 내가 부른다고 해서 이 시간에 황궁을 나오시진 않을 거야. 그리고…….”
만난다고 하더라도 황자님이 날 반갑게 맞이해 줄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 혹시라도 꿈속에서 보았던 것처럼 날 증오하면 어떡해.
이제는 조슈아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이성으로는 알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 꾼 악몽 때문인지 괜히 불안했다.
로제테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삐삐가 걱정스럽게 지저귀었다.
[삐…….]“있지, 삐삐. 넌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실 나는 나쁜 짓을 많이 했어. 물론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야. 하지만 내가 한 일은 맞아.”
[삐이.]“근데 삐삐……. 나 좀 아픈 것 같아.”
로제테는 갑자기 경련하기 시작하는 위 부근을 움켜쥐며 몸을 웅크렸다. 순식간에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삐삐가 사람들을 불러오겠다고 했지만 고갯짓으로 말렸다. 가족들에게 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위경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몸이 이상해지고 있는 것 같아, 삐삐.”
[삐이이…….]“어쩌면 나 벌 받고 있는걸지도 몰라.”
[삣!]로제테는 그런 게 절대 아니라며 제 손등에 몸을 비비는 삐삐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다가 눈을 감았다.
* * *
로제테는 밤잠을 설쳤다. 계속해서 꿈속에서 조슈아가 나왔고, 그럴 때마다 끙끙 앓던 로제테는 삐삐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렇게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여러 번. 어느새 날이 밝았다.
“아침 훈련은 가고 싶지 않은데 오늘은 그냥 쉴까, 삐삐?”
[삑!]그래, 쉬어!
“하지만 훈련에 빠지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렇지? 난 매일 아침에 체력 단련을 했으니까.”
[삐이…….]로제테는 깨알 같은 눈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삐삐의 머리에 입을 쪽 맞춘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로제테는 이내 자신의 판단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꼬맹아, 너 얼굴이 왜 그래?”
루카스가 그녀를 보자마자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 로제테가 얼굴을 가리며 시치미를 뗐다.
“제 얼굴이 어때서요?”
“완전 엉망이야. 눈두덩이는 부었고 눈은 빨갛고! 설마 울었어?”
“아니에요.”
“근데 왜 그래!”
“그냥 잠을 좀 못 잤어요.”
로제테는 대충 넘어가고 싶었지만 루카스는 코치코치 캐물었다.
“어제 실컷 재밌게 놀고 왜 잠을 못 잤어?”
“그냥 악몽을 좀…….”
“무슨 악몽!”
보다 못한 기사 하나가 끼어들었다.
“도련님, 아가씨께서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시는데 그만하시고 보내드리죠.”
“아니, 내가 뭘……. 에휴, 됐다. 꼬맹이, 너 방에 가서 쉬어. 그 꼴로 달리다간 넘어지겠다.”
“네에.”
로제테는 기사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로제테의 기분이 안 좋다는 소문이 이내 저택에 파다하게 퍼졌다. 저택의 사람들은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주방장은 그녀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잔뜩 만들어 주었고, 조앤은 로제테의 머리를 예쁘게 꾸며 주었다.
정원사는 싱그럽게 핀 꽃을 꺾어 로제테의 방을 장식해 주었다.
삐삐는 로제테를 위해 흰 들꽃을 물고 왔지만, 정원사가 먼저 가져다준 화려한 꽃다발을 보며 기가 죽었다.
[삐이이…….]“삐삐, 네 꽃이 제일 예뻐.”
[삑?]“응, 정말이야.”
로제테는 신이 나서 그녀의 귓가에 꽃을 꽂아 주는 삐삐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꿈은 꿈일 뿐이야.’
황자님이 직접 고맙다고 했잖아. 날 아드리안이라고 인정하고, 로제테라고 불러 준다고 했잖아.
그게 황자님의 진심이야. 황자님이 아직까지 날 원망하고 증오할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기분전환을 하려고 노력했다.
“삐삐, 같이 황자님의 생일 선물을 고민해 보자.”
그렇게 로제테가 일부러 더욱 활기차게 삐삐와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에선가 쉬이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창문을 넘어 흰 뱀이 기어들어 왔다. 페리토였다.
[삣!]여전히 페리토를 싫어하는 삐삐는 창문 밖으로 포르르 날아갔다. 페리토는 잠시 멀어지는 흰 새를 바라보았다가 바닥에서 S자를 그리며 로제테에게 다가왔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로제테가 채 인사를 하기도 전에, 페리토가 물고 있는 마법 통신구 너머에서 걱정 어린 미하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얼굴이 보여?”
<그건 아니고, 페리토가 전해 줬어.>
페리토가 맞다는 듯 꼬리를 느릿하게 저었다.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걱정 같은 거 없어.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거짓말. 목소리도 우울한 것 같은데.>
“걱정이 있다고 해도 너에게 말할 이유도 없잖아.”
<섭섭한걸. 우리 친구 아니었어?>
“친구 아니래도.”
조금은 단호한 로제테의 말에 페리토가 섭섭하다는 듯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로제테가 변명하듯이 덧붙였다.
“그리고 친구라고 해도 모든 것을 말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 각자 비밀은 있는 법이니까.”
<친구끼리는 모든 비밀도 공유하는 거라고 그랬는데.>
“누가?”
<내 아버지가.>
조용히 속삭이는 미하엘의 목소리가 조금 씁쓸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걸까? 그의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걸까?
조금 궁금했지만 그건 자신이 참견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로제테는 대신 다른 질문을 건넸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무슨 일 있었어?”
미하엘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나 보고 싶었어?>
“아니.”
미하엘에겐 미안하지만, 사실이었다. 돌이켜 보면 페리토가 찾아오거나 미하엘과 대화를 나눈 게 오래됐는데 그가 보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미하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가족과 조슈아와 지내며 무척 행복했기 때문이다.
<아쉬운걸. 내가 없는 사이 나를 많이 그리워할 줄 알았는데.>
“허튼소리 하지 말고. 그래서 그동안 뭐 했는데?”
<잠깐 여행 좀 다녀왔어.>
“여행?”
로제테가 처음 듣는다는 투로 묻자 오히려 미하엘이 당황했다.
<내가 말 안 했어?>
“응. 그래서 어디로 다녀왔는데?”
<비밀.>
“넌 너무 비밀이 많아. 친구 사이에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건 넌데.”
<그 말은, 우리가 친구라는 거야?>
“아니.”
로제테의 단호한 말이 뭐가 그리 웃긴 건지 미하엘이 쿡쿡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나 보네.>
“기분 나쁜 적 없다니까.”
<그래, 그렇다고 할게.>
순간, ‘그렇다고 하는 게 아니라 아니라니까’라고 반문하려던 로제테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애도 아니고.’
이상했다. 미하엘과 있으면 스스로가 유치해지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가족들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있지, 로제테. 앞으로 네 심기를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내게 말해 줘.>
“말해서 뭐 하게?”
<으음.>
작게 앓는 소리를 낸 미하엘이 침묵했다. 분명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로제테는 뭔가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고, 등골이 서늘한 느낌.
“미하엘?”
<널 슬프게 하는 사람이 꼭 이 세상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미하엘이 달콤한 말만 속삭이는 악마처럼 중얼거렸다.
<너와 널 슬프게 하는 사람을 한 하늘 아래 같이 둘 수 없지.>
“……농담하지 마. 그런 건 재미 없으니까.”
미하엘이 잠깐의 공백을 두었다가 소리 내어 웃었다.
<들켰어?>
“…….”
<그건 그렇고 얼굴 보고 싶다. 이번에 황궁에서 성대하게 파티가 열린다던데. 제1 황자의 생일이랬나? 너도 올 거야?>
“당연히 가야지.”
<기대된다.>
“뭐가?”
미하엘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예쁘게 꾸민 널 또 볼 수 있잖아. 그때는 내 춤 신청을 받아 주지 않겠어?>